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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실 때 어디서 온 물인지 생각한다. 10년이 넘게 주식투자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려고 했다. 내가 주식투자로 인해 돈을 벌었다면 그건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경험을 통해 혹은 타고난 재능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그 누군가가 큰 용기를 내서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고민을 하고 인생을 바쳐 실현시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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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에 빨갛고 파랗게 물드는 숫자 너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피와 땀이 있다. 주식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명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번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왜 그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부동산 투자는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아파트를 사서, 땅을 사서 돈을 번 건 그 사람이 똑똑해서, 잘나서, 부지런해서, 노력을 많이 해서, 가 아니다.

 

나라에서 그 주변에 길을 만들었거나 지하철을 개통했거나 어떤 회사가 그 근처에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아파트나 땅의 가격이 올라가는데 부동산 소유자가 한 일은 거의 없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미친 듯이 올라간 건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똑똑하고 잘 나서라거나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남의 장학재단 빼앗아 장학금 주면서 음수사원(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외치던 박정희 때부터 강남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사회적 자본을 투입해 온갖 사회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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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 덕에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게 아니라, 그 주변 시설 덕에 가격이 올랐단 얘기다.

 

주식투자 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 중에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본인이 똑똑하고 잘난 데다 노력까지 한 덕에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며 으스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가 열심히 발품 팔고 공부한 것도 자신이고, 가격이 오를 아파트를 산 것도 자신이며, 매입자금도 내 돈이니 순전히 내가 잘해서 돈 번 건데 왜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하느냐는 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그 사람의 노력은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무가치하다. 그 사람의 노력은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그 사람이 한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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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열심히 길을 닦고 건물을 짓고 길거리를 청소하고 지하철을 운행한 덕에 가격이 오른 거다. 본인은 혜택만 고스란히 누리는 거다. 자신이 받는 월세나 전세 또한 누군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인간이라면 그 세입자에게 감사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세입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임대인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집주인이라며 으스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한 일이다.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손님에게 으스대는 주인은 거의 없는데, 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은 으스댈 수 있는가?

 

부동산이 추가적인 생산이 불가능한 재화이기 때문이다. 핸드폰은 만들 수 있지만, 부동산은 만들 수 없다.

 

또한 부동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넓건 좁건 자기 몸 누일 공간이 필요하다. 부동산은 누구나 반드시 필요로 하지만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극도로 한정된 굉장히 특이한 재화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멸망할 때 부동산의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바꿔 말하면 부동산을 소수가 소유하는 국가는 멸망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면, 소수가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사회일수록 양극화되어 있고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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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됐건, 임대가 됐건, 우리 모두는 살 집이 필요한데 소수가 그걸 독점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떨어져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실패했지만, 국가적 노력은 있었다

 

70년대부터 아니 그 전부터, 내 집 마련은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의 꿈이었다. 처음으로 자기 집을 마련해 이사가는 사람의 감격을 표현한 소설이나 영화는 수없이 많다.

 

싱가폴이나 홍콩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처럼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는 거의 없다. 국토 면적 대비 인구밀도도 높지만,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산간 지역인 탓에서 실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훨씬 좁다는 특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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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인구 분포

 

이 와중에 개발과정에서 서울, 수도권 지역에 사회 인프라를 집중시킨 탓에 서울과 수도권의 비대화, 과밀화는 극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탓에 인프라가 더 많이 만들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역대 정권들은 분양가 상한제, 토지 공개념 도입 시도 등 갖가지 정책을 동원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둔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다들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저런 정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그나마 이 정도 선으로 유지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가 LTV, DTI 등으로 대출을 엄격하게 규제한 덕에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를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벌어지지 않은 위기를 예방한 공적은 평가받지 못한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마찬가지다. 저런 정책들이 없었다면 훨씬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었지만, 대중은 벌어지지 않은 파멸을 막은 공적보다는 벌어진 위기를 막지 못한 책임만 주목하는 법이다.

 

홍콩이나 싱가폴 같은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고도 동경, 뉴욕,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과 비교하면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비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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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기준, 세계 주요 도시 부동산 비교

 

서울은 국가 인프라의 대부분이 몰려있어 약 천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부동산 보유세가 자동차세보다 낮아 소유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또 전세 제도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특이한 임대방식과 선분양제라는 특이한 주택 판매 제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도시가 이 정도 수준으로 부동산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노력이 존재했고 어느 정도 행운/불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알았고, 그것이 국가와 정권에 해로울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승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을 견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등장

 

지금은 안 쓰는 말 중에 복부인이라는 말이 있다.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서 복부인이 아니라 땅 투기 하려고 복덕방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부녀자라는 의미다. 다분히 비하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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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하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든지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던 70년대 시대상을 반영한 여성에 대한 비하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부동산 투기가 나쁜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담긴 비하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건 기본적으로 사회에 어떤 생산도 해내지 않으면서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의 생산에 편승하는 행위다. 비윤리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크게 떳떳하고 당당할 일은 아니다.

 

복부인이라는 말에는 그런 무임승차를 비판하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계속됐지만 언제부턴가 조금씩 이런 부정적 인식이 희석됐다.

 

아이돌은 꿈을 파는 사업가다. 춤과 노래, 연기를 통해 현실에는 없는 이상형을 보여주고 유사 연애 감정과 꿈을 파는 게 그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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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그들이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서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는 얘기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프로그램의 다른 출연자는 너는 꼭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며 격려까지 해준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꿈을 파는게 직업인 사람들의 꿈이 고작 누군가의 노력에 편승해서 부동산을 소유해 놀고먹겠다는 것이란 점도 그렇지만 이런 얘기를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정상이 아니다.

 

불법적인 일도 아닌데 그렇게 말할 것까지 있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적이 아닌 모든 일이 당당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새 특히 지탄받는 갑질도 엄밀히 말하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지탄받는 거다.

 

부동산의 소유에 의한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노동과 수고를 연료로 삼는다.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을 했건 간에, 불로소득을 얻는 그 순간부터 누군가를 착취하는 행위다.

 

건강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자식에게 놀고먹으라는 부모와 열심히 땀 흘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부모 중 어느 쪽이 제대로 된 부모인가?

 

아이돌들이 건물주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된 사회로 변한 후, 이전까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늦추고, 겉치레일망정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을 견제하려던 노력은 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박살 나버린다.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발전을 시작한 이래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을 막기 위해 계속된 국가적 노력을 박근혜 정권이 깡그리 부정하면서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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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노컷뉴스>

 

나라에서 부동산 투기를 권장해 부동산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건물이나 아파트 가지고 세 받아먹으며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걸 부끄러워하게 만들기는커녕 자랑스러운 일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국민들에게 대놓고 부동산 투기를 권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박근혜 아니 최순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국민들이 고통을 받건 말건, 숫자만 나오면 된다는 각오로 온갖 정책을 사용한다.

 

이것이 보수언론에서 찬양해 마지않던 초이노믹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