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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에 앞서, 하나를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노가다, 할만한 직업> 편에서, ‘노가다판은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그렇기 때문에 굳이 정치질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정정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건 분명하다. 해서, 굳이 정치질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데도 정치질할 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 돈이다. 너무 당연한 소린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일용직 노동자라는 점 때문이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근로계약 시스템이 노가다꾼을 정치꾼으로 만든다.

 

이게 뭔 소리냐. 보통 큰 현장에서는 ‘출근 일수 X 단가’로 계산해서 월 말에 준다. 극단적으로 1월과 2월을 예로 들어보자. 1월에 일이 좀 많아 일요일에도 몇 번 출근하는 바람에 28일 일했다 치자. 20만 원 받는 기공이면 540만 원이다. 그에 반해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는 데다가 설 연휴에도 쉬니까, 일요일 빼고 꼬박 일해도 21일이다. 이래저래 좀 더 빠져서 18일만 일했다 치자. 340만 원이다. 1월과 2월 월급이 무려 200만 원 차이다.

 

그런 까닭에 노가다꾼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도 데마(일거리가 없어 쉬게 되는 걸 노가다판에서는 데마 맞는다고 표현한다. 비슷한 뜻의 일본어 てまち[데마찌]에서 파생)다. 데마 맞는단 얘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쉰다는 뜻이고, 쉰다는 건 그만큼 월급이 줄어든단 얘기니까.

 

바로 이 데마가 문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쉰다는 것, 바꿔 말하면 내 출근을 누군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단 얘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가다판 권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정치질이 시작된다. 먹고사는 문제 즉, 돈과 직결된 부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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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부매일>

 

그럼 도대체 데마를 왜 맞냐. 일 못 해서?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여기서 그런 순수한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니까, 패스. 날씨 때문에 데마 맞는 것도 패스. 진짜 이유는 오야지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공사 맡은 하청은 공정별 오야지를 현장으로 부른다. 형틀목수 오야지 3명, 철근 오야지 1명, 비계 오야지 1명, 해체·정리 오야지 1명 등. 오야지들은 자기 팀원들 데리고 현장으로 들어온다.

 

축구로 치면 엔트리가 정해진 거다. 엔트리가 정해졌으니 이제 경기에 나가면 될 거 같은데, 문제가 하나 있다. 여타 공정은 보통 한 팀씩 현장에 들어온다.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다. 형틀목수팀이 문제다. 기본이 두세 팀이다. 다섯 팀까지 있는 현장도 봤다. 포지션이 겹치는 거다.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할까? 대화로 할까? 우린 이성을 가진 사람이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있지 않은가. 하청 소장이 형틀목수 오야지 세 사람을 불러 커피 한 잔 마시는 거다. 이런 식으로.

 

“이번에 우리가 6개 동 맡았으니, 반장님들이 공평하게 2개 동씩 맡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참 훈훈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게 서로 양보하면 좋으련만, 이 또한 안 될 일이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노가다판에선 누가 주전으로 뛸지, 누가 벤치 지킬지, 정해놓지 않는다.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 시작한단 얘기다. 이게 노가다판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첫 번째 이유다. 이름하여 1막 1장, 아첨시대(阿諂時代)다.

 

1막 1장 아첨시대(阿諂時代)

 

현장 하나 따내기까지, 오야지들이 어떤 짓까지 하는지는 <기술 발달이 노가다판에 미친 영향> 편 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어쨌거나 현장 따낸 오야지들, 본전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해서, 어떻게든 다른 팀보다 많은 일거리 차지하려고 한다. 이걸 노가다판에선 “물량을 확보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런 식이다.

 

“빨리빨리 치고 나가줘야 내가 물량 확보할 거 아닙니까. 디테일한 마감은 천천히 봐도 된다고요. 일단 눈에 보이는 큰 것들 쭉쭉 치고 나가주라고. 103동 확보 못 하면 일주일 이상 데마 맞을 수밖에 없는 거, 다들 아시죠? 103동은 내가 어떻게든 확보해볼 테니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속도 조금만 올리자고요. 자~ 파이팅 합시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공사 시작하기 전, 각 팀에서 얼마큼의 물량 맡아 작업할지 왜 사전에 조율하지 않는 걸까. 그러면 오야지끼리 눈치 싸움할 필요도 없고, 오야지가 하청 소장 졸졸 따라다닐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우선, 변수가 너무 많다. 공사라는 게 계획한 대로, 예상한 일정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보통은 하청 소장이 상황과 일정 고려해가며 오야지들에게 물량을 찔떡찔떡 나눠준다.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먹이 주듯이.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런 방식의 일감 나눠주기가, 말하자면 찔떡찔떡 물량 나눠주는 방식이 갑의 위치를 을에게 시시각각 자각시켜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물량을 딱 쪼개놓고 시작한다 치자. 오야지들은 더 이상 하청 소장 눈치 안 봐도 된다. 아니, 좀 덜 볼 수 있다. 근데 물량을 찔떡찔떡 나눠주다 보니 공사 끝날 때까지 하청 소장 눈치 봐야 한다.

 

장난감 사달라고 엄마 뒤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처럼, 소장 쫓아다니며 103동 지하 2층 달라고, 104동 지하 1층은 꼭 줘야 한다고 사정도 해야 하고, 혹시 밉보이면 물량 못 받을까 싶어 괜히 굽실거려야 하고, 연휴라도 껴있으면 하다못해 사과라도 한 상자 들고 쫓아가서 연휴 잘 보내시라고 해야 하는 거다. 그런 모든 순간순간마다 오야지는 을로서의 위치를 자각할 수밖에 없을 테고, 하청 소장은 갑으로서의 위치를 증명받게 된다.

 

이따금, 별로 보고 싶은 않은 장면 볼 때가 있다. 환관처럼 뒷걸음으로 총총 소장 사무실에서 나오는 오야지, 그런 오야지 어깨 툭툭 쳐주면서 “그럼 고생하세요.” 하고는 뿌듯하게 미소 짓는 소장 얼굴……. 참 더럽고 아니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2막 1장 이간시대(離間時代)

 

거창하게 시작해놓고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면 우습겠지만, 오야지와 하청 소장 관계라는 건 승자와 패자가 너무나 분명한 관계다. 실상, 특별할 건 없다. 진짜 다이내믹한 건 각 팀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질이다. 2막 1장, 이간시대(離間時代)다.

 

환관처럼 소장 사무실에서 나온 오야지도 자기 사무실에 들어갈 때는 어깨 쫙 펴고 들어간다. 그곳에선 오야지가 왕이니까. 노가다판에서 오야지가 왕일 수밖에 없는 이유?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부들 출근을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상상도 못 할 거다. 내일 출근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 걱정해야 하는 노가다꾼 삶을 말이다.

 

세상사 참 얄궂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부터 설명할 상황이 꼭 그렇다. 오야지가 아무리 소장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닌다 해도 물량이라는 건 있다가도, 없다가도 한다. 물량이 아예 없어, 차라리 팀 전체가 쉬게 되면 속이라도 편하련만, 물량이라는 게 또 아예 없는 경우는 드물다. 몇 명은 출근하고, 몇 명은 데마 맞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얄궂게 말이다. 그럴 때 오야지가 팀원들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다음 주는 물량이 많지 않아서 30명 전원이 출근할 순 없으니까, 지금부터 이름 부르는 열 사람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일주일만 쉬는 걸로 하겠습니다. 홍길동, 김철수, 박영철…….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너무 불만들 갖지 마시고, 이해해주세요.

 

"……."

 

왜들 대답이 없어. 이해하시라고요.

 

"……. 네에……."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근엄하면서도 단호한 오야지 목소리와 그런 오야지 입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팀원들 눈동자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대놓고 기뻐하지 못하는 이들의 미소와 일주일이나 쉬게 된 자들의 일그러진 눈썹을 보게 되는, 그런 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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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노동뉴스>

 

그건 내가 대체로 호명되어서 민망한 마음에. 혹은 쉬게 된 자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감정도 없진 않았으나, 그보다도 정치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를 본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 정치 드라마에서 주연까지는 아니어도 조연 정도는 분명히 했을 나 자신에 대한 꺼림칙함 같은 감정 때문이었던 거 같다.

 

2막 2장 이심전심(以心傳心)

 

나는 출근하는데 너는 출근하지 못하는 이유. 예상하는 것처럼 네가 못나서가 아니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다.

 

어릴 적, 놀이터 풍경 떠올리면 된다. 대장 노릇 하던 녀석이 엄지손가락 쭉 펴고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외치면 우르르 몰려가 대장 녀석 엄지손가락 먼저 잡으려고 발을 동동거렸던, 그 시절 그 풍경 말이다. 내가 출근하는 이유? 대장 녀석의 불끈 솟은 엄지손가락을 먼저 차지했기 때문이다. 2막 2장,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그렇다. 그 대장 녀석의 불끈 솟은 엄지손가락을 차지하기 위해, 날 포함한 노가다꾼들은 일상적으로 유치한 소꿉놀이를, 아니 정치질을 한다. 삼삼오오 무리 만들고, 자기네 무리가 최고라고, 혹은 저쪽 무리는 좀 별로인 것 같다고, 오야지와 담배 한 대 나눠 피우며, 술 한 잔하며, 낚시 따라가서, 소곤소곤, 쑥덕쑥덕 마음에서 마음을 전한다.

 

현장보단 주로 사무실에서 시간 보내는 오야지는 그런 이간질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물량이 많지 않을 때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다. 몇 명은 출근하고, 몇 명은 쉬어야 할 때 말이다. 그렇듯, 실력보단 오야지와의 친분 중심으로 번호표 부여받고, 부여받은 번호표대로 놀이터에 입장한다. 여전히, 우리는.

 

놀이터에 입장 못 한 사람은? 주섬주섬 전화를 꺼낸다.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린다. 수십 년 현장 밥 먹으며 쌓은 인맥을 총동원해 사정사정한다. 일주일만 일하게 해달라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인력소라도 간다. 같이 일했던 형님에게 들은 얘기다.

 

“재작년 겨울이었나? 원래 겨울에 일이 많이 없잖냐. 한 달 정도 데마 맞았는데, 마냥 쉴 수 있어야지. 모아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한테 매달 들어가는 돈은 고정적이니까. 그래서 못주머니 차고 인력소에 갔는데. 뭐, 인력소라고 사정 다르냐? 인력소에서도 목수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잡부라도 시켜달라고 했어. 그래서 한 달 동안 잡부로 일했다니까. 날은 춥지, 욕은 욕대로 먹지. 진짜 서럽더라. 잡부로 일 하니까 막말로 쫀심도 좀 상하고. 일당도 적고……. 한 달 정도 데마 맞아봐라. 일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처신 잘해. 오야지한테 괜히 대들지 말고. 뭔 말인지 알지?”

 

그런 거다. 대장 녀석의 불끈 솟은 엄지손가락을 쫓아 발 동동거리는 우리 모습이라는 게 말이다. 특별하게 영악해서도, 특별히 정치적이어서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가장으로서의 발버둥인 거다. 엄지손가락 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만 먹고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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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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