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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고시촌을 지나 옛 육교의 흔적을 더듬으며 길을 건너면, 오래된 굴다리가 나온다. 초입부터 밀려오는 짠내를 맡으며 관문을 통과한다. 이윽고 새로운 도시가 펼쳐진다. 바다 냄새로 들썩이는 곳, 대한민국 내륙지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 이곳은 노량진수산시장이다.  

 

노량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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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어디나 공평하게 내린다. 불야성을 뽐내던 노량진 수산시장에도 어김없이 밤이 스며든다. 행인들이 하나 둘 시장을 빠져나간다. 들어오는 이보다 나가는 이가 더 많다. 생선 퍼덕이는 소리와 가격 흥정하는 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을, 묵직한 적막이 스믈스믈 침범한다. 좀 전의 북적임과 들썩임은 온데간데 모르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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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회식당 마지막 손님들이 거나해진 몸을 이끌고 귀가를 서두른다. 이제 정말 시장은 새벽 빈 정류장 같다. 내려앉은 공기 속에 비릿한 냄새가 좀 더 진하게 올라온다. 여기저기 나른함이 감돈다. 생선도 사람도 고단한 하루를 마친 것이다. 

 

아스팔트 위의 바다

 

지하철 막차가 떠나고 택시에 할증요금이 붙기 시작할 무렵, 어두컴컴 잠들어있던 경매장에 적막을 깨고 환한 조명이 들어찬다. '버석-버석-' 각종 수산물을 담은 스티로폼 박스가 내는 마찰음이 여기저기 울려 퍼진다. 출렁이는 물차는 데크에 뒤꽁무니를 맞추며 행렬을 이룬다. 잠시 고요했던 시장이 다시 생기를 내뿜는다. 진짜 노량진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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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1층 A, B, E, F 구역. 경매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분산처리장’이다. 전국 각지의 수산물들이 이곳으로 집결되어 가격을 받고 전국으로 다시 분산된다. 그래서 상인들은 이곳을 '분산장'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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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스팔트 위의 거대한 항구다. 동해 서해 남해에 촘촘하게 포진된 포구와 항구에서 수산물들이 새벽을 가로질러 노량진으로 상경한다. 평생 만날일이 없었던 묵호항의 오징어와 완도항의 가자미가 스티로폼 박스에 포개져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둘 다 몇 시간 전까지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던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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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마트나 재래시장 어물전에서 때깔 좋은 고등어와 눈이 마주쳤다면, 그 녀석은 이곳 노량진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 유통 채널이 다변화된 요즘은 과거보다 도달 경로가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수산물 대부분의 첫 관문은 노량진이다. 

 

모든 물건은 제값을 쳐주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 하지 않았나. 뭍으로 나온 생선도 일단 서울로 오고 본다. 그만큼 가격에 하자 날 일이 다른데보다 적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법정도매시장의 총 거래량 중 40% 이상이 여기 노량진에서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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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주, 경매사, 감정사, 기장, 중도매인, 판매상인, 하역원 등 수백 명의 어업인들이 작업복과 장화에 바닷물을 흠뻑 적시며 그것들과 몸을 부대낀다. 여기는 영락없는 바다다.

                   

59번 중도매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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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무릇 그렇듯, 여기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어우러진다. 노량진 새벽시장의 상인은 물건을 가져온 출하주 그리고 그들을 대신해 경매를 관장하는 수협 경매사다.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주식회사'라는 자회사를 운영한다. 전국 각지의 출하주들이 위탁한 수산물들을 중도매인들을 대상으로 경매에 부친다. 

 

수협이 징수하는 수수료는 4.3%. 과거 구시장 시절에는 이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노량진 인근에 좌판을 깔고 직거래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다. 노량진 시장이 현대화된 이후로, 상장 없는 거래는 불가능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신시장 현대화 사업의 순기능 되시겠다.  

 

여튼, 이 새벽시장의 주인공은 쇼핑을 담당하는 중도매인들이다. 경매에는 서울시로부터 허가받은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모자 위에 표기된 라이센스 넘버로 경매에 참여한다. 새벽에 올라온 물건을 적절한 가격에 매입해 서울 수도권 전역으로 분산한다. 수산물 유통의 맥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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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수산시장 59번 중매인의 하루는 저녁 7시에 시작된다. 아침에 잠들기 위해 햇빛을 막아 세운 암막 커튼을 쳐내는 게 그의 첫 일과다. 그에게 달빛은 아침햇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상파울루의 어느 부지런한 직장인과 바이오리듬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의 출근 시간은 저녁 8시. 늦어도 8시 반까지는 경매장에 들어선다. 본격적인 경매는 날짜를 넘긴 새벽 1시부터. 그전에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그날 올라올 물건의 선도, 물량, 거래처에서 발주한 물품 등을 체크한다. 간밤에 각 품목별 산지의 어획량은 어느 정도인지, 오늘 통관된 수입품목은 몇 톤이며 그중 어느 정도가 노량진으로 넘어오는지, 이동 중인 물류의 양과 행방을 쫓아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고 받는다. 경매에 임하기 전에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정리해놓아야 한다. 그날의 성패는 이 시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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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기고서야, 한숨 돌린다. 수집된 정보를 동료들과 공유하며 다시 한번 그림을 그린다. 아무리 치밀하게 작전을 짜놓아도 틀어지기 일쑤다. 적정 물량과 목표가를 세워놓긴 했지만, 그래봤자다. 바닷속은 변수가 너무 많다.

 

간밤에 어느 바다에서 농어가 쏟아져 나와 오늘 가격이 폭락할지 모른다. 전날 마리당 3000원~4000원에 떨어지던 갑오징어 였지만, 어느 항구에 날씨가 오지게 궂어 배가 나가지 못하면 갑오징어 값은 순식간에 만 원 너머로 폭등한다. 전국의 수많은 바다의 사정이 이곳 경매장에서 몸을 부대낀다. 포세이돈의 위력은 횡포에 가깝다.   

 

싸게 사서 거래처에 넘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량진의 경매가가 산지 가격보다 하락할 때도 있다. 상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올라와서 가격이 '까진' 것이다. 심한 경우, 그 물건이 노량진에 올 때까지 관여한 출하, 운임, 하역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흔들릴 정도의 큰 타격이 일어나기도 한다. 59번 중도매인도 그들과 공동운명체다. 잡는 사람, 옮기는 사람이 흔들리면 파는 사람도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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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곳은 삶의 현장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용왕신이 몽니를 부려도, 그것들을 감내하고 버텨나가야 하는 것이 이들의 하루고 삶이다. 땅을 탓하지 않는 농부처럼. 밤을 낮 삼아 일하는 모두의 하루가 의미 있어지도록, 상생의 방법을 서로 모색하고 또 모색한다.

 

이날 오징어의 물동량이 심상치가 않다. 경매 시작을 앞둔 59번 중도매인은 핸드폰에 수협 전산망 정보를 띄워놓고 연신 새로 고침 한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천 원짜리 매점 냉커피 얼음을 버적버적 씹어 삼킨다. 출정을 앞둔 군인의 비장함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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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드디어 운명의 숫자가 떴다. 당일 경매에 올릴 모든 물건은 12시 전까지 노량진에 도착해야 한다. 도착한 물건들의 종류와 양이 수협 사무실에 접수된다. 집계된 정보가 경매장 중앙의 전광판에 게시된다. 아스팔트 위의 바다, '노량진 대항구'의 오늘 조황인 것이다. 모두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위치로 기민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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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는 지금부터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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