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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대의 전투폭격기

 

20151117일 프랑스가 동원할 수 있는 대외 투사력의 총합이었다. 여기에는 샤를르 드골 호의 함재기(군함에 탑재된 항공기)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떨어뜨린 폭탄의 총합은 1115일 공습에서 20, 16일 공습에서 16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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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 국민들도 이 이상의 보복 공격은 어려울 거란 걸 내심 알고 있었다. 이미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나라가 아니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정도였다.

 

(‘그 정도라고 하지만, 일반적인 국가라면 이 정도도 상상하기 힘들다. 항공모함을 끌고 와 보복 공격이라니.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다만, 이게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어서 크게 부각되지 않은 거다)

 

(샤를르 드골이 완공되기까지 수많은 뻘 짓을 했던 게 프랑스 정부이지만, 드골 호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투사력의 이미지’를 부정할 수는 없다. 프랑스는 드골 호를 나름 쏠쏠하게 잘 써먹고 있다. 사족이지만, 원자로 때문에 배를 반으로 가르고, 프로펠러가 두 동강 나고, 활주로가 짧아 연장공사를 하는 등등 수많은 바보짓을 하긴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듯이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든 건 아니었다. 그리고 핵추진 항공모함을 만든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너나 할 거 없이 만들지 않았겠는가? 프랑스는 시행착오란 대가를 치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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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르 드골 호

 

 

마크롱, 그리고 EU

 

2018년 이후로 프랑스는 유럽에서 군사 강국의 위치를 재설정하는 듯이 보였다. 트럼프의 압박이 아니어도 브렉시트로 촉발된 전략적 위상의 변화는 프랑스에게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유럽 유일의 핵보유국

유럽에서 가장 확실한 대외 투사력을 보유한 나라

 

가 된 거다. 영국이 사라진 상황에서 EU에서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여기에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거세질수록 미국을 떠나는 유럽 독자 행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거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지금 당장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겠지만, 유럽인들이 트럼프에게 빈정이 상한 건 사실이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독자적인 노선을 흘리며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걸 눈여겨 봐야 한다)

 

툭 까놓고 말해서 유럽이 너무 하긴 했다. 독일은 이미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10위 밖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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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준 자료. 현재 독일의 세계 군사력 순위는 13위이다(대한민국 6위).

 

128대의 유로파이터 중 4대만이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상황이고, 보유하고 있는 레오파트 2 전차 숫자는 고작 432대뿐이다. ‘전차군단독일의 이미지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U-보트의 나라 독일의 이미지 역시 끝없이 추락했다. 현재 독일이 보유한 잠수함 숫자는 6척이다.

 

2018년 기준으로 독일의 총 병력 수는 178,600명이고 군사비 지출은 370억 유로. GDP 대비 1.2%에 랭크 돼 있다. 예산으로 치면 40조를 너끈히 넘는다. 우리나라 2020년 국방예산이 50조다.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도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차만 24백 대가 넘어가고 이 중 3세대 전차만 1600여 대가 넘어간다(K2 포함). 전투기 숫자는 350여 대가 넘어가고 있고, 이 중에는 스텔스기도 포함돼 있다.

 

공중급유기와 조기경보기를 포함해 튼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해군도 이지스함 3척을 포함해 5천 톤급 구축함 세력만 6척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잠수함 전력까지 포함하면 꽤 괜찮은 전력이다.

 

독일은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큰 문제는 모병제의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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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0만에 가까운 병력을 징병으로 모았지만, 냉전이 끝나고 나서 모병제로 전환하면서 17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힘에 겨웠다.

 

이러다 보니 전력 유지를 위한 비용을 구하기도 버거웠고, 결국 예산 절감 차원에서 예비 부속품을 비축해 놓지 않게 됐다. 이러다 보니 전체 장비 중에서 실전 동원이 가능한 장비 비율은 40% 수준에 머무르게 된 거다.

 

여기에는 독일 정치권의 의도적인 외면도 한몫했다. 독일 정치권은 냉전 붕괴 이후 경제발전과 동독지역 개발을 핑계로 국방비를 의도적으로 계속 줄여나갔다. 그 결과 GDP 대비 1.2 ~ 1.3%대의 국방비를 지출할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던 거다.

 

(EU는 독일의 제4 제국이란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는데, 독일은 총칼이 아니라 유로화로 유럽을 거의 정복했다. 군사적으로 가장 강성했을 때 독일은 패망했지만,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지금 독일은 유럽을 정복했다. EU 체제 성립과 유로화로 유럽 경제를 통일시킨 건 독일에겐 그야말로 축복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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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의도적으로 군사비 지출을 억제했고, 그 돈으로 독일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발전에 힘을 썼다. 당연히 미국이 화를 낼 만했다. 그리고 이제 독일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유럽 내의 다른 국가가 독일에 핵우산을 제공한다면, 이에 대한 반대급부. ,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법리검토를 마쳤다. 이건 합법적이다.”

 

이대로 간다면, 독일은 EU에서 경제 패권을 담당하게 되고, 프랑스는 군사 패권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건 이후 독일이 얼마만 한 군사비 투자를 하는 가와는 별개의 문제다.

 

? 바로 핵우산 때문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프랑스는 2018년에 GDP 2.3% 대의 군사비 지출을 보였다. 그리고 2025년까지 3천억 유로를 투입할 계획이다. 1960년대 GDP6%를 군사비로 투자하던 시절에 비하면 애들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2천 년대 초반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거다.

 

이걸 주목해 봐야 하는 게 프랑스는 5년간 공공재정 600억 유로 감축 계획을 실행 중이란 거다. 마크롱은 공공 지출을 줄이는 상황에서도 국방비를 계속 늘리고 있는 거다.

 

이건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국도 퀸 엘리자베스항공모함을 건조했다.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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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끼겠다고 징징대던 유럽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푸틴 덕분에 유럽의 해빙기가 끝난 거다.

 

이제 너나 할 거 없이 징병제 카드를 꺼내 들었고, 군비 확충에 나선 거다. 여기에 오바마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돼 오던 나토에 대한 불만이 트럼프 때 폭발한 거다.

 

너희들 돈 내란 말야! 언제까지 무임승차할 거야?”

 

란 직격탄을 맞은 유럽. 크림반도 사태에 트럼프의 행동과 발언이 결합되면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 거다.

 

때는 2017525. 주인공은 역시나 트럼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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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트럼프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 광장 앞에서 트럼프가 연설하기 시작했다. 나토 회원국 정상들 27명을 앞에 두고, 트럼프의 입에서 엉뚱한말이 나왔다.

 

미국은 우리 편에 선 친구들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거다.”

 

이 발언과 그 뒤의 발언을 엮어서 들으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후 연설에서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 중 23개국이 여전히 국내 총생산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방비를 내고 있다고, 이건 미국에서 성실히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에게 불공정한 일이며, 방위비를 적게 내는 나라들은 미국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이라며 맹비난을 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한국인 입장에선 얼른 와 닿지 않는 거 같은데, 이걸 한국으로 대입하자면,

 

방위비 안 내는 너희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 빼먹는 날강도 같은 존재다. 너희 계속 돈 안 내지? 우리 한미상호방위조약. 그거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 어때?”

 

라고 볼 수 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충격파가 크다.

 

우리랑 미국이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게 한국에 전쟁 나면 미국이 당장 같이 싸워주는 조약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3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헌법상의 수속이 뭘까? 미 의회의 승인이다. 여기에 6를 보면 멍해지는데,

 

6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 시킬 수 있다.

 

그렇다. 그냥 통고한 후 1년 지나면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휴지조각이 된다.

 

생각 외로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그렇게 단단하지않다. 그럼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와 늘 비교되는 나토 헌장 제5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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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국들은 유럽이나 북미에서 한 가맹국 또는 그 이상의 가맹국들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가맹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데 동의하고 그러한 무장공격이 발생할 경우, 각 가맹국은 국제연합헌장 제51조에서 인정하고 있는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북대서양 지역의 안보를 복원 및 유지하기 위해 무력의 사용을 포함하여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개별적 그리고 다른 가맹국들과 협력하여 공격당한 가맹국이나 가맹국들은 도울 것을 합의한다.』

 

 

나토 조약 제5. 소위 말하는 원포 올, 올 포 원(one-for-all, all-for-one)조항의 위엄이다. 나토 성립의 핵심 기반이며, 집단방위(collective defence)의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조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1949년 나토를 설립한 이후로 관례적으로 나토 헌장 5조를 재확인하고, 이를 명시적으로 선언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걸 거절했다. 대신 돈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가면, 나토 탈퇴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했는데, 트럼프는 돈 이야기만 했다.

 

그래, 트럼프는 미친놈이니까...”

 

이렇게 가볍게 치부 5할 상황이 아니었다. 나토는 유럽 방위체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예전의 미국이 아니었다. 이제 유럽은 미국을 다시 보게 됐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당장 커다란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미국 없는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한 거다. 그 핵심이 바로 프랑스인 거다.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는 그나마 믿을만한 구석이 있는 게 프랑스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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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탈퇴한 상황에서 마크롱이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그리고 높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다.

 

트럼프가 50년 뒤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50년 뒤 국제사회가 어떤 식으로 변할진 모르지만, 그 변화의 근저엔 트럼프가 내뱉은 말과 행동이 깔려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트럼프가 또 어떤 미친 짓을 할진 모르겠지만, 이게 트럼프 개인의 돌출행동이라 보긴 어려울 거 같다. 트럼프가 내뱉은 말은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미국의 말이다.

 

, 이 방향성이 계속 이어질 거란 의미다(물론, 그 속도는 늦춰지거나 빨라질 수 있겠지만). 이 와중에 영국의 브렉시트는 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역시나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인 것 같다.

 

첨언.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며 써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