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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현 추천48 비추천-1

 

고수(高手)는 특정 분야에서 기술이나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그러니 여러 분야에서 여러 형태의 고수들이 존재할 수 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분들도 마땅히 고수라 할 수 있을 것이요. 그 외에도 묻혀 있는 여러 분야의 고수들이 우리 주변에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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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고민하지 마라. 차인표 씨 맞다. 드라마 <계백>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고수라 하면 어떤 분야보다도 무예의 달인(達人)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무협지나 무협 영화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그럼 우리는 무예의 기술이나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면 모두 무예의 고수라 불러도 될 것인가?

 

 

정숙 선생님과 만남 그리고 깨달음

 

필자가 30대 중반 때의 일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수련해 온 필자는 3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부쩍 실력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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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향상뿐만 아니라 적당히 몸무게가 불면서 힘도 좋아지고 무엇보다도 동작에 세련미가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실력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은 충만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조금만 심하게 운동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면서 약간의 편두통 증상이 일어났다. 때로는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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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한국양생회 회장

 

그러던 어느 날,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사)한국양생회 회장이신 정숙(鄭淑, 1933~ )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정숙 선생님은 우리나라 현대 지압의 1세대로 지압(指壓)과 경락(經絡), 경혈(經穴) 조절에 최고로 손꼽히는 분이셨다. 

 

그 외에도 태식(胎息)과 섭생(攝生)은 물론이고 동양철학에 이르기까지 두루 섭렵하신 분이다. 그와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도 내셨고 대학과 사회기관 등에서 강의도 하고 계신 우리나라 최고의 양생(養生) 대가 중 한 분이셨다. 

 

선생님을 만나 뵙고 필자의 증상에 대해서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상기(上氣)되었구나!” 

 

하시더니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셨다. 전통무예를 수련한다고 대답하자

 

“무예 수련은 왜 하는데?”

 

다시 물으셨다.

 

“무예의 고수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자기 몸도 못 다스리는 사람이 무예 고수가 되겠다고?!”

 

솔직히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그때의 상황과 대화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자기 몸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 사람이 무예의 고수가 어찌 되겠느냐!?’는 따끔한 일침은 필자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터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필자는 무예를 수련한다는 것은 무예의 기능을 향상하고 근력과 지구력, 유연성 등을 발달 시켜 가장 효과적으로 잘 싸우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해져서 상대를 효과적으로 잘 제압할 수 있을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운동을 하여 몸이 성할 날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몸을 다치거나 혹은 몸이 아픈 것은 강해지는 과정에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필자의 급하고 좌충우돌하는 성품 역시 타고난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정숙 선생님을 만나 뵙기 전까진 내 몸과 내 정신을 다스리는 것들을 무예 수련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숙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뭔가가 번쩍하고 가슴 깊이 들어와 박혔다. 

 

‘아! 나는 그동안 싸움만 잘하려고 했지 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못 했구나. 내가 나 하나도 못 이기면서 상대와 싸워 이길 생각만 했던 것이구나!’

 

부끄럽지만 아마도 그때가 처음으로 진정한 무예 수련의 의미를 생각해 본 때였던  것 같다.  

 

그날 정숙 선생님은 필자에게 지압해주시고 기(氣)를 다스리는 호흡법을 가르쳐 주셨다. 매주 한 번씩 찾아뵈었는데 다섯 번도 채 찾아뵙기 전에 필자의 몸은 아주 상쾌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상기되어 끄떡하면 얼굴로 몰리던 기가 내려가고 몸이 아주 편해지면서 두통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 후 필자는 망설임 없이 정숙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기로 마음먹었고, 본격적으로 호흡과 경락, 경혈, 섭생 등 양생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그렇게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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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회장의 팔순 잔치에서 필자와 함께 찍은 사진

 

송덕기(宋德基, 1893~1987. 초대 택견 인간문화재) 스승님으로부터 택견을 전수 받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무예의 강인함을 수련하던 필자가 인생의 두 번째 스승님을 만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수련하게 된 것이다.   

 

 

고수의 자격

 

어떤 분야에서든 고수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기꺼이 그 사람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 있다. 그 자리에 있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이겨낸 엄청난 인내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예에서는 ‘고수’라는 명예를 얻기 위해 그 무예에 대한 높은 식견과 상대를 잘 제압할 수 있는 강인한 실력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스로를 다스린다고 하여 산속에 들어가 도(道)를 닦는 등의 신비한 모습을 상상하진 말아 주길 바란다. 

 

자신을 잘 다스려 육체적으로는 자신의 몸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무예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사리 분별력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것이겠으나,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육체적 힘을 지녔기에 더욱 갖추고자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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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스승이자 초대 택견 인간문화재 송덕기옹

 

필자는 여전히 무예의 고수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송덕기 스승님께 택견을 전수 받은 지 40여 년, 정숙 스승님께 양생을 사사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를 다스리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 걸 보면 진정한 무예의 고수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 자신을 다독이며 되뇌어 본다.

 

“나를 이기지 못하면서 어찌 남을 이길 수 있겠는가?!”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선 무예 고수의 싸움법을 다룰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법에는 하수, 중수, 고수의 3단계가 있다. 그렇다면 무예 고수의 싸움법은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