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기술 배우라는 말’ 편에서 노가다꾼이 기술 배우면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 얘기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심정으로 기술 배우게 됐다는 말도. 이번 편은 그 후속 에피소드다. 어떤 기술 배우고 있는지, 왜 하필 그 기술이었는지에 관한 이야기.
얘기했던 것처럼 직영 잡부 시절, “젊은 놈이 왜 잡부하고 있어? 기술 배우지 않고!”라는 말, 참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열에 아홉은 철근공 추천했다.
“철근 배워, 철근! 무조건 철근이여~”
내가 봐도 그게 상식(?) 적인 선택 같았다. 모든 이가 입 모아 철근공 추천하는 이유, 현장에서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젊은 노가다꾼이 대부분 철근공인 이유, 간단하다. 돈 많이 주고, 기술 배우기 쉽고, 상대적으로 일 편하니까. 이왕 기술 배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런 기술 배우는 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택이니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2020년 기준, 철근공 일당은 22만 원 안팎이다. 현장마다 조금 다르긴 하다만, 어쨌든 아파트 현장에선 제일 많이 받는다. 내가 알기로 노가다판에서 일당 제일 많이 받는 기공은 내장 목수다. 보통 25만 원 정도 받는다 한다. 한옥 짓는 목수도 그 정도 받는 거로 안다.
일정 수준의 디자인 감각이 필요한 내장 목수, 이제는 몇 남지도 않아 장인 대우받는 한옥 목수, 그다음 정도가 철근공이니까 꽤 많은 거다.
심지어 철근 쪽엔 '판떼기 팀'이라고 따로 있다. 이 팀에 속한 철근공들은 한 달에 천만 원씩도 가져간다. 판떼기 팀은 일당으로 받는 게 아니라, 한 판에 대한 단가, 즉 아파트 한 세대를 단가로 계산해 받는다. 쉽게 말해, 철근 엮은 만큼 돈 받는 거다. 그래서 일을 좀 ‘빡세게’ 한다. 그래도 한 달에 천만 원이니까 눈 딱 감고 해볼 만하다.
철근은 배우기도 쉽다. 기술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별것 아니다. 그 기술이 쉽냐 어렵냐 하는 문제는, 그 공정에서 다루는 연장 가짓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철근공이 가지고 다니는 연장은 딱 두 가지다. 갈고리(철근과 철근 교차점을 결속선[실처럼 아주 가는 철사]으로 엮을 때 쓰는 연장. 정식 명칭은 결속핸들이다.)와 줄자. 철근공은 갈고리만 다룰 줄 알면 된다. 숙련도 차이는 있겠으나, 잡부도 하루면 배울 수 있다.
연장이 단출하다 보니 출퇴근할 때도 간편하다. 다른 공정 기공들은 묵직한 연장 가방이며, 무식하고 큰 연장 등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데, 철근공은 허리춤에 갈고리와 줄자만 차고 다닌다. 갈고리 사이즈는 매직펜보다 좀 더 큰 정도다.
작업 방식이 간단해 일도 상대적으로 편하다. 이건 그 공정에서 다루는 자재와 부속 자재 종류만 봐도 알 수 있다. 철근공은 건물 뼈대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거 필요 없다. 철근과 결속선이 끝이다.
작업 방식은 이렇다. 바닥이든, 벽이든, 기둥이든 바둑판처럼 철근을 가로, 세로로 쭉 깐다. 혹은 종대, 횡대로 쭉 세운다. 그다음 철근과 철근이 교차하는 부분에 결속선 대고 갈고리로 휙휙 엮는다. 이게 끝이다. 정말 이게 끝이다.
물론, 날씨 영향도 많이 받고 허리 숙이고 작업할 일이 많긴 하다만, 다른 공정처럼 무거운 걸 계속 날라야 한다거나 위험하고 거친 작업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난 아직, 철근공이 작업하다 심하게 다쳤단 얘긴 못 들어봤다.
철근공, 정리해보자. 일당 22만 원 안팎으로 노가다꾼 중 제일 많은 편인 데다가, 기술 배우기 쉽고(기술 배우기 쉽단 얘긴 빨리 기공될 수 있단 얘기다. 철근공은 보통 6개월에서 1년만 배우면 기공 대접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일 편하고 위험하지 않으니까 몸 상할 일도 적다.
그러니, 상식 있는 사람이면 철근 배워야 하는 게 맞다. 근데도 난, 형틀 목수 일 배우고 있다. 푸하하하하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한 번이니까
직영 잡부 시절, 고민 끝에 기술 배우기로 결심했다. 소장을 찾아갔다.
“소장님, 저 기술 배워보려고요. 처음에는 그냥 머리나 식힐 겸, 용돈이나 벌 겸 노가다판에 왔던 건데 생각보다 적성에도 잘 맞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요.”
“이 쉐끼 이거!!! 기껏 일 가르쳐놨더니 가겠다고? 그래! 젊은 놈이 잡부 일하면 뭐하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기술 배워야지. 뭐 배우려고?”
“목수 일이요…….”
“뭐, 뭐???? 형틀목수???? 왜??????”
“재밌을 거 같아서요. 하하.”
“이거 완전 또라이네? 얌마, 일을 재미로 하냐? 내가 노가다판만 20년이여. 니가 지금 형틀목수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너 골병 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철근 배워. 너 목수 배우겠다고 하면 안 보내줄 거니까 그런 줄 알어.”
그때 소장은 전혀 뜻밖이라는 듯 날 위아래로 훑으면서 엄청나게 흥분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고는 정말로 날 안 보내주려고 했다. 난 몇 날 며칠 소장을 따라다니며 애걸복걸했고, 겨우 그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장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니가 굳이, 구태여, 꼭 목수 일을 배우고 싶다니까 보내주긴 하는데, 목수 일은 엄청 위험해. 현장에서 안전사고 터지면 거의 목수여. 그러니까 가서도 늘 몸조심해. 너 성격 급하다고 직영 일하듯 뛰어다니고 서두르면 무조건 다친다. 니 몸 다치면 너만 손해니까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해. 알았어?”
“네~ 감사합니다.(웃음)”
그렇게 난 형틀목수가 됐다. 모든 사람 조언 무시하고, 소장한테 매달려가며 오직 재미 하나만 보고 형틀목수를 택한 자! 그의 삶이 어떤지는 다음 편에서 풀어보도록 하자. 잠깐, 눈물 좀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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