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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퐈 추천16 비추천0





바야흐로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제1의 화두는 Self promotion, 자기 PR, 즉 잘난 척이다. 일찍이 너부리옹은 이를 꿰뚫어보고 인문학적 교양이 바닥난 우리 세대에게 방어용 호신 교본이라 할 수 있는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을 출간하였으나, 그로부터 시대는 더욱 삭막해지어, 취업준비와 스펙 쌓기 등으로 인해 고전문학을 진짜 읽은 이들의 수가 현저히 감소하였으니, 읽은 척할 일조차 없게 된 무뢰배들은 이 책을 냄비받침으로 용도 변경한 지 오래이다.

 

하여, 연말연시 각종 술자리가 잦아지는 지금, 각 직장 부장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 좀 더 자신을 즉각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토픽은 '경제'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에 경제 뉴스 중에서도 2015년에 핫했던 뉴스만을 정리하여 특별편으로 게시하니, 기승전먹고사니즘으로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아는 척을 해보자.




1. 그리스 유로존 탈퇴 위기


 사용법

 

올해 상반기를 가장 핫하게 달구었던 뉴스라면, 그리스발 경제위기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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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한민국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미 잊혀진 지 오래인 떡밥이라, 연말 술자리에서 써먹고자 한다면 상당한 무리수가 뒤따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떡밥인지라, 아는 척을 시전 시, 듣는이가 토를 달기가 어렵다는 장점이 있고, 한국의 IMF 사태를 상기시킨다든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역사의 혁신은 대부분이 북미대륙과 아시아대륙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유럽연합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거로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꽤 뛰어난 범용성을 갖춘 토픽이라고 하겠다. 요즘 유로가 싸서 명품사기가 좋네, 그리스 매춘 화대가 낮아졌네, 같이 1차원적인 대화가 오갈 때, 이 토픽을 이용해 그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낸다면, 사람이 참 고급져 보일 수가 있다.

 

 이슈정리


꼭 내가 다시 글쓰기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지난 글에서 한번 정리를 한 적이 있으니, 이걸 클릭해보길 바란다 (지난 기사 링크). 요약해보면, 그리스가 유럽연합한테 돈을 옛날에 잔뜩 대출받아 논 게 있는데, 대출연장 조건을 놓고 채무자인 그리스와 채권자인 유럽연합이 첨예하게 갈등을 빚은 사건이다.

 

그리스는 그동안 계속해서 돈을 갚기 위해 긴축재정을 시행해왔음에도 빚은 줄지 않고 경제 상황만 나빠지자, 반서방적인 성격이 강한 좌파성격의 정당인 시리자와 젊은 개혁성향의 지도자 치프라스가 집권하였다. 이에 맞서 독일을 위시한 유럽연합 채권국들은, 그리스 말고도 돈을 빌려준 스페인, 포르투갈 등과의 채무협상이 남아있는 상태라,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리스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되게 협상에 임했다. 


여기서 그리스와 채권국 간에 어떤 협상 조건을 두고 이견이 있었는지와 같은 디테일은 사태가 종료된 지금에 와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당 사건을 아는 척을 함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은, 이런 채권협상 속에서 치프라스가 취한 협상 전략과 실제로 얻어낸 협상의 내용이 판이하다는 점이다. 


처음에 치프라스는 유럽연합이 제시한 협상 조건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유럽연합이 제시한 협상안을 거부하는 쪽으로 여론을 모았다. 이러한 협상 반대여론을 바탕으로, 유럽연합과의 재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꼼수를 부렸으나, 독일은 단호박으로 일관하며 그리스사태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만약 그리스가 채무를 연장하지 못하면, 그리스는 국가부도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 유로존에서 탈퇴, 독자 화폐를 발행하여야 할 텐데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은 유로화가 항공사 마일리지마냥 소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불어넣어 유럽연합 전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문제였다.

 

이런 치킨게임의 전개를 긴장감 있게 청중에게 서술하다가, 이 포인트에서는 약간의 한숨을 쉬며, 결론부로 들어가자. 치프라스의 강공책은 유럽연합 전체에 위기감을 주고, 사태의 주도권을 쥐는 데까진 성공했으나, 문제는 그가 준비된 지도자, 혹은 협상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찍이 외교깡패 북한은 화전양면 전술을 개발, 유화책과 강경책을 번갈아가며 사용하여, 삥을 뜯어내는 능력을 보여줬으나, 그리스는 강대강 대치만 되풀이하다가, 독일에게 탈탈 털리게 된다.


그리스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열린 브뤼셀 정상회담에서 치프라스는 개선장군인 양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고, 재무장관은 다른 나라 장관들에게 왜 그리스사태의 원인이 서부 유럽에 있는지를 강의했다. 이런 모습은 생생히 전파를 타고, 서부유럽 국민들에게 방송되었고, 자기가 낸 세금으로 딴 나라 빚을 갚아줄 판임을 감지한 이들 사이에 반그리스 정서 역시 고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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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치프라스의 표정


여기에 그리스는 충분한 유로화 비축 없이 갑자기 배 째라 버팅기기에 나선 터라, 현금은 물론 슈퍼마켓까지 텅텅 비게 되었고, 결국 치프라스는 애초의 유럽연합이 제시한 원안보다 못한 재협상안에 사인을 하게 된다.

 

이를 놓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고분고분하게 IMF 말을 따랐던 한국의 상황과 대비하여, 국민들의 뜻을 모아 국제사회와 협상해보려 했던 숭고한 시도였다고 마무리하든, 미숙한 협상 스킬과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아 안 하느니만 못했던 개김이었다고 마무리하든, 둘 중 부장님의 정치적 성향에 맞추어 취사선택해주며 얘기를 끝내면 되겠다.

 

또한, 유럽연합에 대하여 아는 척이 하고 싶을 경우, 애초의 체급이 다른 독일과 그리스 같은 나라가 하나의 통화를 공유함으로써 발생되는 엄청난 경제적 혼란, 그리고 이런 위기가 발생했을 때 단일 화폐 존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의 한계에 대해 되집으면서, 유럽연합의 태생적인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척을 한다든지, 비록 채무협상이 타결되며 사태가 일단락되었으나, 추후 그리스나 다른 유럽국가가 비슷한 위기를 겪을시 이런 혼돈의 카오스를 다시겪을수있단 선례를 남기어, 유로화 가치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남겼단 식으로 분석하는 척을 나름대로 해볼 수도 있다. 


후속 기술로 아까이 소라님이 연재 중인 '프랑스는 지금'을 완독해온 독자라면, 그리스 경제 위기와 프랑스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아는 척 시전하여 유럽 출장 발령 대상자가 될 수도 있으니 이 점 참고하시어 상황에 맞게 써 먹길 바란다.




2. 원자재가격 폭락


 사용법

 

남자들이 모여서 술이 들어가면 꼭 나오는 차 얘기에 미스 김이 지루해할 때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석유 값이 계속 떨어지는데 참 큰일입니다"라는 식으로 툭 치고 나가면 본인이 자가용이 없더라도 순간 토픽을 자기 위주로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의 경제하강, 미국금리인상 등과 연계한 콤비네이션 기술을 시전하기 용이하므로, 광역 아는 척을 시전하기에 매우 유용한 주제가 이것이라 하겠다. 




다만 주의할 점은 주위 사람 몰래 조선, 철강 관련 주식이나 원유선물 등에 손댔다가 올 한 해 내내 피본 직장동료가 있을 경우 눈치 없는 놈으로 찍힐 위험이 있으니, 아는 척 시전에 앞서 평소 직장상사가 어떤 네이버 뉴스를 보는지, 낯빛은 괜찮은지를 미리 체크해두자.

 

 이슈정리

 

사실 원자재 가격이란, 공급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있어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이 되어있으므로 원래 예측하기가 어렵다. 또한 자칫 중동의 IS,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과 같은 복잡한 종교적 분쟁까지 건드려야 하는 대화의 흐름이 형성될 경우, 본전도 못 찾을 수 있으니 (혹시 이 부분이 염려될 경우 본게방 16회-1로 예방접종을 맞자), 이슈를 수요 쪽으로 한정 지어 이야기하겠다고 사전 선긋기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공급 부분에 대한 언급 없이 아는 척을 하기란 대단히 어려우므로, 중동 전반보다는 미국의 셰일가스 VS 사우디의 프레임으로 공급과잉문제를 언급하자.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 석유가격 그래프를 보면, 브렌트유의 경우 꾸준히 100불 이상을 찍으며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높은 석유 가격은 미국 에너지기업들로 하여금, 다소 생산단가가 높고 환경오염이 따르더라도, 기존에 채취할 수 없었던 셰일층의 원유를 뽑아내기 위해 Fracking 공법을 앞다투어 도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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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king공법을 설명하는 그림.

셰일층에 관을 박고 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을 쏴서 틈을 만든 후

여기에 모이는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이런 미국의 석유 생산 증가는, 석유 최다생산국으로 군림해온 사우디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작용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우디는 올해 미친 듯이 산유량을 늘렸다. 언뜻 들으면 잘 이해가 안 갈 수 있는데, 이런 대응에는 두 가지 계산이 깔려 있다.

 

하나는, 사우디와 미국의 석유채굴 단가가 다르다는 점이다. 미국이 Fracking을 통해 비싼 가격으로 석유를 뽑아내는 반면, 사우디는 훨씬 더 저렴한 방식으로 석유를 뽑아낸다. 석유 가격이 하락수준을 넘어 폭락해도, 사우디는이익 폭이 줄어드는 수준인 반면, 미국은 손익분기점 이하로 팔아야 할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덤핑은, 예로부터 경쟁자를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또 하나는, 선제적인 견제이다. 거의 모든 원자재생산에는 엄청난 개발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향후 얻게 될 수익과 비교하여 투자를 할지 말지를 정한다. 이중, 향후 얻게 될 수익을 예측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예상 유가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름값이 폭락해버리면, 똑같이 1조가 들어가는 투자의 예상수익이 1,000억에서 500억으로 수정되어질수있다. 전자는 매년 10%를 회수하는 괜찮은 투자이지만, 후자는 연 5%짜리 투자로 이자비용을 제외하면 투자하기가 망설여 지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사우디의 이런 견제가 계속되지 않더라도 이렇게 기름값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 버릴 수 있다는 압박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에너지 기업으로 하여금 거액의 투자를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런 설명에 덧붙여,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깽판을 친 러시아를 길들이기 위해 석유 가격을 컨트롤 하려 한다, 와같은 (러시아는 에너지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 중 하나이다) 음모론을 곁들이면 자칫 지나치게 진지해질 수 있는 분위기에 반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올 한 해 동안 기름값만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철강 등을 비롯한 여러 원자재가격이 폭락을 거듭한 바, 당 주제를 얘기하며 공급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되려 상대방의 아는 척을 유도할 수 있다. 따라서 수요에 대한 분석을 곁들여야 하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후속편에서 다룰 중국의 경제하강이나 미국의 금리 인상 이슈 부분을 참고하자.

 

대신, 아는 척을 위한 본글의 취지에 좀더 부합하는 주제를 하나 더 건드려드리겠다. 원자재 가격 하락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사는 사회가 1984년도 아닐진데, 몇 년 전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여 기업들이 힘들다란 기사를 분명본 거 같은데, 원자재 폭락에도 기업이 힘들다란 얘기는 왜 또 나오는지, 올라도 힘들고 내려도 힘들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최초에 "기름값이 떨어져서 큰일입니다"라는 말에 대한 자문자답이기도 하겠다.

 

보통, 이렇게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기업과 이익을 보는 기업이 나뉜다. 원자재를 많이 소비하는 기업, 예를 들어 한전 같은 기업 입장에서는 원자재가격이 떨어지는 현 상황이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수출주력업종들의 경우는 다르다. 원자재가격 하락으로 오히려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재를 재가공해서 파는 정유나 철강 등은 판매가격 역시 낮아지기에 힘들 것이다. 또한, 원자재생산자나 생산국을 대상으로 수출을 하는 업종 역시 그들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됨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조선을 건조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많이 깔아놓은 조선업의 불황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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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경향 비즈


개별 업종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나 중동, 인도네시아, 호주와 같이 원자재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로 수출하는 기업들 역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원자재 시장이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는바, 이런 얕은 상식을 다 쏟아부었다간 이쪽으로 좀 더 빠삭한 친구가 자리에 있을 경우 심한 역공을 맞을 위험이 있다. 고로, 아는 척을 시전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적당한 출구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론 이런 분석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한 분기씩 벌어먹는 게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기업들은 필요한 원자재를 선물계약을 통해 6개월이나 1년 전 가격으로 고정을 시켜두기 때문에, 일시적인 원자재 하락이 당장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그보다는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 각 기업이 사업구조를 재편하는지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있다" 혹은, "지나친 원자재가격 상승 혹은 하락은 시장의 변동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그 변동성 자체로 기업들에게 타격이 갈 수 있다"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파두자.

 

다음 글에서는 중국 문제와 미국 문제에 대해 정리하고 마무리를 하겠다.





씻퐈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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