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무리 공사들이 남았다. 외부 공사인 정화조 설치와 부대 토목 공사가 걱정이다. 미리 주문한 정화조를 묻을 터를 파기 위해 포클레인이 움직인다. 부대 토목 팀은 경계석 철거와 빗물받이 시공을 위한 작업을 한다.
정화조 작업 이틀째, 구청에서 공사를 중지하란다. 민원이 들어간 것이다. 정화조 구멍 파놓고 중단하면 인접 도로가 유실될 수 있고 안전에 큰 문제가 있으니 일단 정화조를 묻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구경꾼들의 시선 속에 정화조는 무사히 자리 잡았다. 부대토목 팀은 건물 주변에 집수정을 설치하고 시오수관 연결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마지막, 주변 도로 아스콘 공사만 남았다.
이슬비 속에 기존 아스콘(아스팔트)을 긁어낸다. 소음이 크다. 통행도 제한된다. 이날도 민원이 들어갔다. 구청 도로과와 환경과에서 공사 중단을 지시했다. 아스콘 벗겨놓은 땅은 어쩔 것이며 이 공사는 구청에서 하라고 해서 하는 건데 대체 어쩌라고?! 아스콘 작업은 건물을 위해 하는 공사라기보다는 ‘니 집 지었으니 도로포장 정도는 해라’라는, 공공을 위한 준공 요건이다. 아스콘 냄새와 소음으로 빗발치는 민원 속에 공사를 간신히 마쳤다. 금속 작업과 도장 작업등을 마무리하며 박소장은 준공 서류를 준비했다. 하느님 아부지! 드디어 끝이 보이는 듯.
준공에 필요한 공사를 마쳤다. 서류를 준비해서 설계사무소에 전달하고 구청에 사용승인 접수를 요청했다. 그런데 구청에서 사용승인 접수를 보류했다는 연락이 온다. 이유는 주변 민원을 정리한 후에 접수하라는 것. 네 명의 민원인들이 준공 전에 내 발목을 잡으려고 작정하고 집중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들로부터 “너 준공 나게 냅두나 봐라”고 노골적인,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여러 번 들었다.
민원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내 안의 빡침을 최대한 억누르고 되도록 객관적이고 드라이하게 말해보겠다.
민원인들은 대략 몇 가지의 스타일로 나뉜다. 첫째, 흡혈귀형으로 나의 피와 살을 말린다. 경제적, 정신적 린치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후려친다. 둘째, 막가파형. 앞, 뒤도 맥락도, 팩트도 없이 덮어놓고 니 탓이라는 주장을 한다. 셋째, 능구렁이형. 감성적이고 착한 듯 보이지만 집요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타이밍을 적절히 이용한다. 울고 읍소하고 소리 지르고 가끔 작은 소리로 뒤통수에 쌍욕도 한다. 넷째, 감시자형. 나는 니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타입이다. 현장 대각선 반지하에 위치하고 유리창이 넓어 현장을 시시각각으로 관찰하기 용이한 점을 이용해서 혹시 안전모라도 안 쓰면 바로 민원을 넣어 현장의 안전을 걱정하곤 했다. 그 외에는 무난한 일반형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피해가 있는 부분은 협의를 통해 고쳐주거나 돈을 받고 끝낸다.
흡혈귀형은 바로 옆집이었다. 철거 이후 자신의 부주의로 동파된 것을 내 탓으로 몰기 시작했다. 준공 날 때까지 사사건건 민원을 넣고 고소하고 막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단한 에너지의 소유자다.
물론 현장과 1미터 사이를 두고 있는 집이라 피해가 극심했던 건 사실이다. 소음과 진동뿐 아니라 거푸집 해체나 외부 벽돌 메지 작업 등으로 핀과 못, 볼트, 시멘트 찌꺼기 등이 옥상과 창틀에 떨어져 많이 불쾌하게 만든 것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처하는 그녀의 자세는, 내 상식으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쪽에서 본격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것은 옆집 방면 강관 비계 문제였다. 다른 3면은 시스템 비계를 설치했지만 그 집 쪽은 간격이 좁아서 강관 비계를 설치했다. 하지만 강관 비계라도 최소 필요 폭이 있고 그 집과의 경계를 넘어서 설치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옆집 사람은 경계 침범으로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비계를 철거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비계 없이 어떻게 공사를 하란 말인가. 여기저기 방법을 알아봤다. 좁아서 크레인도 안되고 파이프를 외줄로 설치하고 작업자들이 파이프 한 줄 밟고 공사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단다.
쇠 파이프 한 줄에 의지해 벽돌을 쌓고 창을 달아야 한다는 건 작업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다. 옆집 주장은, 비계가 경계를 넘어올 것이 뻔함에도 그런 설계를 한 것 자체가 불법이니 당장 철거하라는 것이었다. 외줄 작업은 작업자가 너무 위험하다니 철거할 수 없고 공중 비계 사용에 대한 임대료로 월 50만 원씩 지불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내가 외줄 타라고 한 적 없다. 내가 거지인 줄 아느냐"라는 답이 돌아왔다. 협의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구청 건축과에도 몇 번 불려 갔다. 어찌 되었든 경계를 넘어간 것은 불법이니 비계를 철거하란다. 그럼 외줄 타고 공사하는 거 산업안전 관리공단에서 나오면 공사 중지이고 벌금 나올 텐데 어떡하지요? 그걸 떠나서 외줄 공사는 내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경계 침범의 불법과 사람의 안전은 저울질할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산업안전 관리공단에서 나오면 구청에서 비계 철거하라고 했다 할 테니 책임 지실 건가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담당도 자기가 맡은 일일뿐이고, 민원인에게 일 똑바로 하라고 욕이나 잔뜩 먹었을 텐데 무슨 죄가 있나.
기본적으로 구청은 민원인 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구청에서 담당을 만나려고 기다리다가 목격했다. 다른 현장 관계자인듯한 사람은 “별거 아니야. 이러쿵저러쿵…” 담당이 훈계도 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경청했다. 그 사람 나갈 때 여러 공무원이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도 한다. “음. 그래. 다음에 사우나에 놀러 와~” 하며 나간다. 부럽다.
사실 비계가 옆집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뚝섬역 근처 공공건축물 현장도 옆집으로 비계가 넘어가 있었고 대로변 200평 땅 사옥 신축 현장도 옆집 벽에 비계가 닿아있다. 도대체 저 많은 불법 현장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시공사가 민원을 무시하거나 돈다발을 주었을까. 많은 경우, 옆집이 불평하지 않고 너그러웠을 테지.
그러던 중 길에서 옆집 사람을 마주쳤다. 다짜고짜 반말로 언성부터 지른다. 이때 대화는 녹음도 해두었다. 첫마디인 “너 양아치야?’’는 미처 녹음을 못했지만 대충 “왜 철거 안 해. 니 이익 보자고 내가 지금 손해 보고 있잖아. 얍삽하게 인부들 안전 때문에 철거 안 한다고? 니가 철거하면 내가 안전하게 공사할 방법 알려줄게. 언제 철거할 거야?”란다.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화요일에 철거하겠습니다.” 꾸지람을 마치고 박소장에게 전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네요.”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하는 내용 중에 유독 이익과 손해에 대한 언급이 많다.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할 수도 없지 않나. 채 두 평이 되나 싶은 땅 공중권도 큰맘 먹고 월 50만 원 불렀다가 욕만 먹었는데 말이다. 자기가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으니 속는 셈 치고 나흘 후 비계를 철거했다. 옆집 사람은 현장을 봐 주기로 한 분이 금요일에 온다고 했다. 물론 금요일에도 연락은 없었다. 기다리다 화요일에 문자를 보냈다.봐주기로 분이 “현장 설계팀이나 건축팀이 알아서 할 일인데 옆집 공사에 뭐허러 신경 쓰냐”고 했단다. 야이 ㅆ
공사 일정 손해 보고 비계 해체하고 재설치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속은 쓰리지만 ‘당신 참 믿을 수 없는 사람인 걸 셀프 인증했군요’라는 생각에 그다지 속상하진 않았다. 다시 비계 설치 일정을 잡았다. 구청에서 옥상에 떨어지는 파편들로 불만이 많으니 옥상 위로 낙하물 방지망을 설치하란다. 암요~ 낙하물 방지망을 설치하기 위해 작업자가 옆집 옥상 담벼락에 올라서서 작업을 했다. 옆집 사람은 사진을 찍어서 ‘남의 집에 무단 침입을 해? 이것들이 정신이 나갔나, 우리 집이 니네 공사 지지대야?’라는 문자를 보내왔고 경찰서에 주거침입으로 고소했다.
권리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배타적 권리라 하더라도 그 권리를 존중하겠다는 사람에게 존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나 여지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옥상 위로 이물질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방지망을 설치하면서 옥상 난간도 밟지 말라고 하는 건 애초부터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책임과 권리란 것이 서로가 어울려 살기 위해 만든 ‘룰’이라면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아니지 않나.
작업자의 신상을 알려고 경찰이 연락해 왔다. 업체를 알려줬고 업체 사장님께 혹시 문제가 커지거나 처벌을 받게 되면 연락하시라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고 그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 비계를 설치하고 가림막을 세 겹씩 설치해도 옆집 옥상과 창틀은 더럽혀지고 잡다한 공사 파편들이 떨어졌다. 옥상과 창틀을 매일 청소해 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한다. 거친 반말과 “개소리”, “미친 것들”이라는 욕설을 들으며 비계를 철거할 때까지 두 달 반을 더 버텼다.
정화조 공사를 마무리할 땐 길에서 옆집 여자와 소리까지 지르며 싸웠다. 꾹 참은 말을 뱉어내고 조금은 속이 시원했지만 정말 창피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 후 옆집은 태도가 조금 변했다. ‘선량한 피해자’ 컨셉에서 ‘빚 받으러 온 채권자’로 컨셉이 바뀌었다. 안전진단 시 이미 있었던 계단실 누수 수리와 공사로 인해 훼손된 유리창, 화분 교체를 요구해왔다. 현장 돌이 떨어져 깨졌다는데 도저히 이해 안 되는 각도였다. 그밖에 옥상 방수, 청소비 등을 요구해왔다. 준공을 받기 전에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나 보다.
도대체 그 집은 어떻게 지었길래 옆집 공사로 옥상 방수가 깨지고 집이 그 지경이 되었다는 건지. 집수리 견적서는 850만 원이었다. 견적서는 허술했고 대충 훑어봐도 비용이 적절하지 않았다. 견적 낸 업체를 만나 금액이나 공사 범위를 협의해야겠다 하니 절대 그럴 수 없단다. 그럼 공사를 내가 하겠다니 너를 어떻게 믿고 공사를 맡기냐고 한다. 안전진단 후 공사로 인해 발생한 파손 부분에 대해 공사하겠다고 하니 남에게 피해를 주고는 미안한 생각도 없냐며 준공 후엔 나 몰라라 할 게 뻔하니 빨리 공사나 하란다.
자신이 약속 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깨버렸으니 남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결국 준공 이후 옆집이 선정한 업체와 협의해서 전반적인 공사를 시행했다. 옆집은 그 이후 두 달 만에 또 공사 기간 동안의 청소비와 안전진단비를 요구했다. 나는 처음부터 안전진단 후 공사로 인한 피해 부분을 보수하겠다고 했으나 무조건 빠른 공사를 요구하길래 그것으로 마무리한 것이니, 내가 지불한 비용을 반환하면 안전진단 후 내 귀책이 있는 부분에 대해 다시 정산하겠다고 했다.
문자로 몇 마디 욕을 얻어먹고 그 여자와 마침표를 찍었다. 옆집은 여전히 자기 집 지하 카페 앞 골목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영업하며 때로는 지인들과 맘 놓고 동네 시끄럽게 수다를 즐긴다. 내 집 경계로 넘어온 발코니와 홈통에 대해서는 원래 그랬으니 모른다고 잡아뗐다. 민원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짧아질는지, 쌍욕을 하도 많이 먹고 인내하느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급으로 득도해서 수명이 더 늘어날는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었음을.
많은 훈계와 황당함을 시전했던 앞집1이 등장한다. 막가파형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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