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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요원이다. 사회복무요원. 눈이 안 좋아 사회복무 판정을 받았다(요즘은 공익이라고 안한다. 명칭 바뀌었다. 정식으로 요원이라 불러주라).

 

영어로 하면 Public agent로 어벤져스의 쉴드에 버금가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뭐,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공익을 위해 일하는 건 예전과 마찬가지다. 사회 인프라 곳곳에 투입되어 특수한 임무(메탈 기어 솔리드의 스네이크처럼 잠입하고 그런 거 같지만 현실은 SCV다)를 수행한다.

 

본인은 현재, 복지관에서 복무중으로, 매일 수많은 접수 문건과 발송 문건들을 민첩하게 점검하고 정리한다. 분리수거, 도시락 배달, 후원품 조달 창고 정리, 낙엽 청소, 눈 청소 등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들을 누구보다 잘 처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 하수도 청소와 축제 때 벼룩시장에서 물건도 판다. 딜러이자 탱커이자 힐러를 홀몸으로 완빵에 수행한다고 할까. 내가 없었으면 한국이란 나라의 거대한 한 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명감에, 이 모든 일을 감내하고 있다.   

 

무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바쁜 하루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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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딴지도 현역이 다수다 보니 사회복무 판정(신체검사 4급)을 받은 이들은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정보를 얻는다 해도 복무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들은 이야기가 나에게도 적용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옆 동네 강씨, 앞 동네 이씨, 엄마 친구 아들 춘식이 하는 말이 다르다. 분명 지금도 우리 예비 요원님들은 고구마에 계란 노른자를 으깨 먹은 듯 답답할 거다.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그랬다.

 

사회복무는 보편성을 띄지 않는다. 각종 지자체나 교육기관, 사회복지관, 지하철 등 커다란 카테고리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휴가일수도 다르다. 누구는 곰돌이 푸우가 안고 있는 꿀단지처럼 꿀내 풀풀 풍기며 복무하지만, 누군가는 지옥의 바닥에서 빌빌거릴 것이다. 꿀무지와 헬무지 사이의 간격은 진짜 하늘과 땅 차이. ‘사회복무생활은 어때요?’라고 누군가 물어볼 때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역 아니라고 막 주위에서 무시하고 쩌리 취급한다. 젠장, 그런데 흔들리면 안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에이전트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나인 투 식스의 출퇴근을 사명으로 스스로 잘 챙기고 빠삭해야 된다는 말이다.  

 

자, 우리 에이전트님들, 정신 바짝 차리자. 사회에선 나같은 흙수저에 병든(아, 병든은 아니다. 그냥 신체적 스펙이 아주 조금 딸리는 거지)소외계층을 챙겨주지 않으니 내가 느끼고 경험한 바를 몸소 딴지일보에 기고해 요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글 열심히 써도 다른 곳은 낼름 가져가는데 딴지는 양심적으루다가 고료를 챙겨준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 기고한 것도 있다.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이 재미없다고 계속 원고를 돌려보내든데 본인 흙수저 세대에 흙수저라 항상 돈이 궁하다. 그만 좀 돌려보내라... 이게 몇 번째 도전이냐...). 

 

뭐, 일단 다 아는 논산부터 시작해 보자. 

 

 

웰컴 투 훈련소

 

감히 예견컨대 예비 요원님들 걱정이 태산이리라. 훈련소에 4주 동안 갇혀 현역과 비슷한 훈련을 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현역, 예비역은 이 글을 보면서 에게~ 4주!? 하겠지만, 그러지 마라!! 우리는 대부분 4급 판정을 받은 몸이 아주 마이 편찮은 이들이란 말이다!!(앞서 말했지만 다같이 살자. 적어도 딴지에선 우리 막 무시하고 그러면 안된다. 불지를 거다)

 

이 글을 보는 에이전트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본인은 훈련소에서 힐링 많이 받았다. 규칙적인 생활에 꼬박꼬박 운동하고, 밥도 잘 먹어서 10kg 쪄서 나왔다(약간 사육 받는 기분 없지 않음). 훈련소 안에서는 뇌를 끄고 생활이 가능하기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특히 나같은 흙수저들은 돈을 안 벌어도 되니까 밖에서의 고민들이 괴롭히지 않으니 좋더라. 물론 중대와 소대마다 다를 테지만, 공통적인 훈련은 같기 때문에 건강캠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본 요원, 논산에 내려 담배 한 개비 핀 후 훈련소에 입소했다. 솔직히 흡연자 요원님들은 가능한 많은 연초를 태우고 입소하길 권장한다. 한동안 담배 생각에 미치니 말이다.

 

 

키로 나눈다 

소대를 나누는 기준은 키다. 본인은 키가 작다. ....... 젠장, 꼬꼬마 소대에 속하게 됐다. 소대를 나누고 비닐봉지에 담배나 라이터, 칼 등과 같은 소지금지 물건을 담는다(참고로 총 들고오면 안 된다). 돌아갈 때 돌려주지만 본인 이름 꼭 쓰는 게 좋다. 퇴소식 날 기나긴 금연에 지친 요원들의 러쉬에 담배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지품목을 수거한 이후, 개인 물품은 노란 비닐에 넣어 보관한다. 이때 훈련소 월급 받을 계좌를 적으라고 하는데, 굳이 신한 나라사랑카드 안 만들어도 된다(본 요원이 근무할 땐 신한 나라사랑카드 시절).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계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카드 만들 시간을 주는데, 굳이 만들 필요 없으니 어색한 환경에서 어리버리 그냥 따라가서 카드 만들지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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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에서의 생활

 

보통 요원 입소는 목요일이다. 들어가자마자 옷 받고, 신발 받고, 명찰 받고 이것저것 받다보면 하루 금방 지난다. 보통 요원들은 예비군 때 입을 피복 한 벌만 들고 가 다른 옷들은 대대로 물려 입는다. 여름에 가는 요원님들은 하복 냄새에 주의하시라(본인은 3월에 갔던 바 춘추 생활복과 막판에 잠깐 여름 생활복을 입어 괜찮았지만).

 

아, 생활복과 각종 피복이 몸에 안 맞을 때가 있는데 괜히 주변에서 찾지 말고 "전투력 회복실"이란 곳을 털어보자. 맞는 옷 하나 쯤은 꼭 있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쟁취하면 된다. 여기서부터 꼬이면 남은 생활이 힘들다. 참고로 생활화는 흰색을 추천한다.

 

솔직히 나갈 때 다 버린다고 하지만 흰색은 나와서도 신을 수 있는 디자인이다. 아디다스 안 부럽다. ... ... 아니, 우리 같은 흙수저는 부럽긴 하다.... 그러니까 챙기지, 젠장.  

 

 

훈련소의 하루 

 

훈련소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6시, 스피커에서 아침을 알리는 화이트 노이즈가 들리고 눈이 떠진다. 

 

생활관으로 들어온 분대장이 일어나라 소리친다. 무거운 몸을 모포에서 꺼낸다. 매트 접고, 모포를 접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포 접을 때 누구 한 명이 도와줘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가능하다. 

 

간단히 세안하고 아침점호를 나간다. 분대장 훈련병은 아픈 사람 없는지 체크한다. 슬리퍼에서 생활화로 갈아 신고, 아침점호를 하러 나간다.

 

아침은 중대장 얘기를 간단히 듣고 시작한다. 중대장은 좋은 사람 같지만 얘기할 때 3인칭을 쓰는 특징이 있다. (ex. 중대장은 여러분들이 항상 걱정입니다, 중대장은 오늘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중대장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대학 동기가 저런 말투를 쓰면 정색을 하겠지만, 중대장은 그러려니 하자. 여튼 덕후 외에 3인칭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사람은 처음봐서 조금 신기하다. 

 

아침조회는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군가, 도수체조 순으로 이어진다. 체조가 끝나면 1.5km 정도 구보한다. 말이 1.5km지, 평소 운동 안하다가 이런 거 하면 무지 힘들다. 다행히 몸이 안 좋은 이들은 열외되어 간단히 연병장을 걷거나 다른 체조를 하며 기다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후, 아침을 먹으러 간다. 분대장이 새로운 군가를 부른다. 아침부터 분대장은 큰소리로 군가를 선창하고 우리는 이를 따라 부르며 군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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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에선 분대 별로 줄을 선다. 오늘은 우리 분대가 먼저 먹는 날이다. 여기선 손을 정말 자주 씻게 하는데, 식당 앞 개수대에서 손을 씻은 뒤 입장한다. 소독제는 배식담당이 뿌려준다. 

 

포카락(군대에선 포크와 숟가락이 동시에 존재한다!)과 식판이 있는 살균 건조기와 마주한다. 여기에는 각자 번호의 포카락과 식판이 있다. 내 번호를 찾은 뒤 배식대를 한 바퀴 돌아 배식을 받는다. 밥을 먹고 나면 다른 분대원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돌아갈 때 다 같이 가야하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 하고, 식당 출구로 나왔다가 입구로 다시 들어와, 살균기에 식기를 넣어두고, 남은 분대원들을 기다린다(참고로 식당엔 화장실이 없다. 참아라).

 

아침을 먹으면 오늘의 훈련이 시작된다. 훈련하다 점심 먹고, 다시 훈련하다 6시에 저녁을 먹고 생활관으로 돌아온다. 훈련 직전 강당에서 교육을 받는데, 장난 아니게 졸리다. 군데군데 우리를 감시하던 분대장들이 와서 깨운다.

 

저녁을 먹으면 목욕시간이다. 목욕가방을 들고, 소대별, 분대별로 줄을 서서 목욕탕으로 향한다. 제한시간이 있다(분대장들이 시간을 잰다). 역시 다 씻어도 나 혼자 움직일 수 없고, 입구 앞에 모여 있다가 10명이 차면 생활관으로 돌아간다.

 

생활관으로 돌아가면 자유시간이다. 책을 읽거나, 혹은 다음날 훈련을 대비해 분대장들이 간단한 교육을 해준다. 밤 8시부터는 생활관 입구가 잠기기에 이 때 세탁실에서 빨래를 수거해 온다.

 

9시부터는 청소다. 입소 첫 주에 분대장들의 진행 아래 분대원들의 청소구역을 나누는데, 나는 가위바위보를 져서 화장실 청소 당번이 됐다. 청소를 다하면 분대장을 불러 확인 받는다. 통과하면 생활관으로 돌아가 저녁점호 전까지 독서를 즐긴다. 

 

저녁점호 때는 생활관 벽에 걸려있는 육군 복무신조와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외친다. 소대장님의 말씀이 이어지고,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으면 취침시간이다. 

 

점심 혹은 저녁을 먹고 생활관에 돌아올 때, 오늘의 불침번이 누군지 확인해둔다(첫 순서와 마지막 순서가 꿀이다). 보니까 내가 서는 날이다. 새벽에 서니 미리 군화를 생활관 신발 건조기에 넣어둔다. 자기 전 양말을 신고 잠시 누워있다 보면, 전임자가 와서 나를 깨울 것이다.

 

새벽 2시, 누군가 나를 깨운다. 군복으로 주섬주섬 갈아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와 건조기에서 군화를 꺼내 신는다.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당직 책상으로 걸어가 교대를 확인 받는다. 소대 내 총기수가 맞는지, 생활관 온도는 어떤지 표에 기록하고, 소변이 마려운 동기가 있으면 동행한다. 대체로 시간이 가지 않는다.

 

새벽 2시 55분, 다음 불침번을 깨운다. 손전등과 표를 주고, 당직 책상에 가 교대를 확인 받고 군복을 벗는다. 

 

아, 이제 좀 누워보자 싶으면 6시, 스피커가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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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팁 

 

훈련소 생활은 이것의 반복이다. 현역이나 예비역들은 뭐, 우리랑 별 다를 것 없네? 하고 느낄 건데 뭐 글타. 매일 달라지는 건 식단 메뉴와 훈련, 동기들과 나누는 대화 정도. 하루 일정이 빡빡하고 다이나믹하여 지루하지는 않다. 다만 빨리 흘러가는 하루에 비해 일주일은 잘 안가는 느낌. 특히 첫째 주와 둘째 주가 심하다. 셋째 주부터 마지막 주는 훈련이 많아 시간이 빨리 간다.

 

나름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 있는 훈련소 생활, 약간의 팁이 있다. 

 

- 편지: 매일 저녁점호 시간에 편지를 쓸 수 있다. 생각보다 편지 쓰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쓰고 받을 때 걸리는 시간은 요즘 느끼기 힘든 레트로한 감성을 준다. 근데 우표를 사가야 한다(본인은 다행히 좋은 형님을 만나 우표를 얻었다). 편지 가는 속도는 기대하지 마시라. 비싼 우표 샀다고 빨리 가는 거 아니고 누락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 인터넷 편지: 요원님들 대부분이 4주 뒤면 나온다는 생각에 주변에 갔다 온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또 인터넷 편지 그거 받아서 뭐하냐는 생각을 가지신 분도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편지는 소중하다. 갇혀있다보면 밖의 소식이라면 다 궁금하다. 심지어 뉴스가 와도 좋다. 4주는 생각보다 길고 논산의 시간은 더 길다. 엄청 심심할 테니 주변 사람들에게 챙겨달라고 꼭 부탁하자. 받을수록 좋고, 많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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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시간: 생활관 내 강의실에 설치된 전화기로 콜렉트콜로 외부인과 통화할 수 있다. 대부분 10분이나 15분, 통화시간을 정해준다. 기회가 매일 있는 게 아니라 다들 전화하고 싶어 한다. 미리 연락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번호를 수첩에 기록해두자. 본인은 친구들의 번호를 적어가지 않아 편지로 번호를 받아 전화했다. 적어도 부모님 번호들은 외웠을 테니 다들 한 번씩 전화를 드려보자. 걱정 속 안도의 한숨, 잠시 쉬실 수 있으시다. 

 

- 생필품: 우리 분대장 훈련병은 다정한 이였다. 그가 가족들에게 섬유유연제를 부탁했다. 덕분에 우리 분대는 빨래가 즐거웠다. 주변 전우들도 부모님께 샴푸와 섬유유연제, 책들을 받아 훈련소 생활에 생기를 더하였다. 과거에 군대에 다녀온 이들이 군대가서 부모님께 뭘 그런 것까지 부탁하냐, 라고 하지만 우리 세대 대부분은 대학 들어가자마자 알바에 알바를 거듭하며 등록금+부모님 효도에 매진했으므로 이 정도, 할 수 있다 본다.   

 

- 빨래: 일주일에 세 번 다 같이 모아서 가면 효율적이다. 보통 빨래는 점심 먹고 잠깐, 저녁 먹은 이후에 할 수 있다. 아, 훈련소 첫 날에 주는 빨래망에 꼭 이름 적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이 생긴 생활복에 내복, 양말, 팬티라 이름 안 적으면 뺏기거나 바뀔 수 있다. 조금 웃기게 들리겠지만 이게 엄청 크다. 4주를 팬티 두 장, 양말 4켤레, 수건 세 장으로 버텨야 하는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여러분의 고귀한 인간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목욕탕에서 팬티를 쌔비는 추악한 짓을 하거나 당할 수 있다. 뭐, 이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더라. 

 

- 목욕: 매일 줄서서 목욕탕에 데리고 간다. 제한시간은 15분, 면도는 불가하다. 면도는 허락 맡아야 할 수 있다. 면도기는 훈련소에서 주지만, 면도날은 한 번만 준다. 

 

- 분대원들과 역할분담을 한다: 분대원들과 합의 하에 빨래나 각종 보급품 조달 등을 조 짜서 해보시라. 빨래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나름 재밌다. 

 

- 습도 관리는 필수지만 셀프: (여름은 잘 모르겠지만) 봄, 가을, 겨울에 훈련소 생활을 하는 요원님들은 불침번 설 때 생활관 복도에 뜨거운 물을 뿌려주시라. 그곳의 습도는 사하라 사막과 흡사하다. 공기 중에 물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건조하다. 감기 환자들이 출몰하는데 건조하면 낫지않는 것은 물론, 어느 순간 나까지 걸려있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생활관의 습도를 조절하시라. 본 요원, 소대장이 소대원들을 모아두고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피드백이 '가습기라도 비치해달라'는 것이었다. 건조해서 살 수가 없다고 그랬다. 하지만 까였다. 여러분들의 습도는 직접 조절해야 한다.

 

본인 또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였지만, '불침번 설 때 뜨거운 물 뿌리기'가 가장 좋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뭐, 이건 1년 전에 군대 다녀온 사람이나 10년 전에 군대 다녀온 사람이나 30년 전에 군대 다녀온 사람이나 바뀐 게 없는 것 같더라... 가습기 좀 사줘...  

 

- 불침번: 조금 민감한 문제다. 누가 누구보다 더 섰다 덜 섰다 하는 걸로 얼굴 붉힐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행정병들이 하는 거고, 그 사람들 마음이니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 본인 아직도 입소 첫 날이 생각난다. 새벽 1시 갑자기 누군가 나를 깨웠다.

 

“17x번 불침번 서셔야 돼요”

“네?”

 

당혹스러움에 어리버리 전투복 갈아입고 손전등 들고 불침번을 선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 요원님들 도대체 여기까지 적들이 올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런 게 있나 의아해하실 수 있다. 하지만 불침번을 서는 건 밤중에 누가 아프거나 생활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뭐, 내 생각엔 누가 이상한 짓 할까봐 서로 경계하게 하는 게 주목적이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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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X: 얼마 전에 바뀐 거라 모르시는 경우가 많을 텐데, 무려 훈련소에서도 PX에 간다!! PX는 2주차에 한 번, 그리고 4주차에 한 번, 총 두 번 간다. 처음 PX를 가면 담배, 칼, 유리로 된 용기에 담긴 무언가, 그리고 라면, 냉동식품은 못 사게 한다(냉동식품은 사도 데워먹을 곳이 없다). 그럼 무엇을 살 수 있나? 캔 혹은 페트병에 담긴 음료수와 각종 과자들, 캔디류, 플라스틱에 담긴 화장품, 세면타올 등이다. 

 

오랜만에 과자를 봐서 다들 눈 돌아갈 거다. 하지만 다 못 먹는다. 왜냐? 한 소대씩, 한 분대씩, 돌아가면서 PX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강의실로 가는데, 먹을 것을 그 자리에서 다 없애지 않으면 생활관에 돌아갈 수 없다. 어차피 다 먹지 못하고 버린다. 몰래 갖고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거나 갖고 가면 골칫거리다. 갖고 가기 제일 좋은 항목은 젤리, 고구마 말랭이, 천하장사 소세지, 초코파이 정도(본인 아직도 불침번 설 때 관물대에서 몰래 꺼내 먹은 초코파이의 맛을 잊지 못한다). 

 

과자보다 더 중요한 건 샤워타올이다. 이거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또 달팽이 수분 크림이 있으면 건조한 생활관 생활을 조금 견딜 수 있다(분대에서 한 명만 사면 된다). 본인은 면도크림도 요긴하게 썼다. 세금을 매기지 않으니 다들 저렴하다.

 

아, 달팽이 수분 크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거 물건이니 집에 돌아갈 때 5개 씩 사서 가는 게 좋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돈은 지참하고 가면 된다. 찌질하게 밖에 좋은 거 많은데 왜 이런 거 사서가냐는 금수저가 시비 걸면 할 말 없다... 흙수저라 미안... 젠장. 

 

-식사&부식: 훈련소 밥은 생각보다 괜찮다(물론 개취에 따라 다르지만 못 먹을 건 아니란 말). 매주 수요일엔 빵이 나오는데 군대리아나 핫도그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최애 메뉴는 설렁탕이었다. 입소 첫 날 먹고 ‘어? 여기도 나름 괜찮은 곳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본인 훈련소에서 10kg 가량 쪄 나왔다(지금은 다시 빠졌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어 본 적이 없다. 현대인의 영양 상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리 없지. 제육볶음이나 불고기의 고기에선 확실히 고무맛이 난다. 돼지와 고무가 이종교배한 결과가 아닐까? 어쩌면 국방부가 생물과 무생물의 교배실험을 비밀리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 뭐, 분명 국가기밀일 테니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부식은 엄청 잘 챙겨준다. 동아 오츠카에서 많이 후원해 그런지 박카스랑 ‘마신다’ 생수를 많이 준다. 커피 마려운 이들을 위해 가끔 아메리카노도 준다. 건빵도 야채 건빵은 당연히 자주 주고, 핫브레이크나 크런키도 준다. 외부로 훈련 나갈 때는 컵라면도 주는데, 처음으로 신라면 블랙을 먹어봤다(말했잖아. 나 흙수저라고). 주먹밥이랑 소세지 빵도 같이 준다. 부식들을 먹다 보면 내 담뱃값이 다 일루 왔나보다 싶다.

 

그래도 이런 든든한 음식들이 눈으로 4급 받은 나를 명중률 75%(20발 중 15발)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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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식당번: 4주 동안 꼭 한 번 본인 소대가 배식을 한다. 어떻게든 당번을 피하길 권한다. 설거지 하다 허리 휜다. 짬통 버리다 허리 휜다. 허리가 최종병기 활이 된다. 그러니 누군가 배식을 하겠다고 손을 들면 잘해주자. 배식 주차에 분대 내 앓는 소리가 가득했다.

 

- 여가: 훈련소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바둑판을 나눠준다. 본인은 안에서 마피아, 알까기, 윷놀이 등등 다양하게 분대원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만 도박은 지양해야 한다. 분대원들과 점당 천원 걸고 스카치식 오목을 두다 바둑판을 뺏겼다. 안에서의 여가 생활, 여러분들이 만들어가는 거다. 갠적으론 마피아와 윷놀이를 강추한다. 매일 매일이 설날이다.

 

아, 분대원들 간에는 항상 친하게 지내자. 결국엔 이들 덕에 훈련소 버티는 거다.

 

뭐, 한국에서 제일 보수적인 곳이 군이다 보니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바뀌지 않은 게 더 많을 거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요즘 훈련소 생활에 대해 적어 보겠다. 나야 뭐 복무 중이지만 독자 중엔 자식들 군대 보내는 분들도 꽤 있을 터이니 댓글로 남겨주시면 성실하게 내용에 녹여내겠다(물론 본인은 군인 복무가 아니라 요원 복무라는 게 함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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