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 하나 해보자
아주 먼 옛날 무림강호(武林江湖) 시절에, 한 젊은 청년이 세상에 나아가 맹활약을 해보리라는 큰 뜻을 품고, 한때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으로 불리다가 은퇴 후 산속에서 유유자적하고 계신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검술(劍術)을 연마했다.
10년 동안 수련을 한 청년은 이제는 하산해서 무림으로 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허락을 받기 위해 스승을 찾아뵈었다. 스승은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참외를 드시고 계셨다.
“스승님, 이제 수련한지 10년이 지났으니 하산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스승이 들고 있던 참외를 벼락같이 청년에게 집어 던졌다.
※그림: 노미진
순간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참외였지만 청년은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온지라 당황하지 않고 검을 재빠르게 뽑아 날아온 참외를 정확히 두 동강 내어버렸다.
기습적인 공격에 흔들리지 않고 순간적으로 정확히 베어버렸으니 마땅히 통과한 것이란 생각에 청년은 자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멀었다! 더 해라!”
스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말씀하시고는 참외 먹기만 계속하셨다.
청년은 몇 년을 더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그리고 하산을 허락받으러 다시 스승을 찾아뵈었다. 스승께서는 지난번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참외를 집어 던지셨다.
※그림: 노미진
청년은 이번에 참외를 검으로 베지 않고 몸만 살짝 돌려 피했다. 그랬더니 참외는 한쪽에 나동그라지며 박살이 났다.
갑작스런 기습에 힘 하나 쓰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였으니 이제는 틀림없이 통과했으리라 믿으며 청년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스승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말씀하셨다.
“더욱 정진해라!”
청년은 또다시 몇 년을 더 수련했다. 그리고 다시 스승을 찾아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빠른 속도로 참외를 던지셨다.
※그림: 노미진
청년은 이번에는 날아오는 참외를 두 손으로 사뿐히 받아 다시 스승에게 가져다드렸다. 스승은 껄껄껄 웃으며 참외를 받아 반으로 쪼개시고는 그 반쪽을 제자에게 나누어 주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씀하셨다.
“그거 먹고 하산해라!”
고수의 사회를 희망한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무가(武家)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간단한 삼단전개지만 그 속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 있다.
세상에 나가 무림 최고의 검객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잘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적을 정확히 한 번에 깨끗이 베어서 완전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아주 뛰어난 경지다. 그러나 그것은 하수(下手)다.
그보다 더 뛰어난 것은 자신은 최대한 힘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적이 스스로 무너지게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중수(中手)다.
최고로 뛰어난 검술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애초에 싸움이 일지 않고, 싸움이 나지 않으면 서로가 편안하여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마치 검으로 베어지거나 박살이 나서 먹을 수 없게 된 참외보다 멀쩡한 참외를 둘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고수(高手)의 싸움법이다.
처음 무예 수련을 시작했을 땐 강해져서 남을 이기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좀 더 강하게, 좀 더 빠르게, 좀 더 뛰어난 기량과 힘을 갖기 위해 열심히 수련했다.
그러나 무예 수련이 조금 길어지면서 내가 실력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제압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아무리 기술이 출중해도 자기보다 힘이 훨씬 더 세거나 체격 조건이 월등한 큰 사람은 이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땐 상대의 힘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상대의 강한 힘과 큰 체격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필자도 나름 오랜 시간 무예를 수련하다 보니 절대강자는 아니지만, 이제는 제법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중수(中手)는 되는 셈이다.
이제는 고수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여러 상황에서 남은 배려하지 못하고 남보다 위에 서려고 잘난 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조그마한 일을 더 큰 싸움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별일이 아닌 일에 발끈하기도 한다. 고수의 싸움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싸움이 끝난 다음에야 깨닫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 국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맞고 있다. 다른 나라들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상황이 안 좋다 보니 경제적 이유로든 다른 이유로든 친구끼리, 직장 혹은 가정 등에서 예전보다 쉽게 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싸움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더욱 상처를 주기 위해 더욱 모진 말들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나선 나중에 사과의 말을 하기도 하지만, 뱉은 말에 의한 상처도 깨진 참외도 원상태로 회복할 순 없다. 그것이 하수의 싸움법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더 힘들겠지만, 그럴수록 모두가 서로 배려하며, 던져진 참외를 단칼에 싹둑 베지도, 부서지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으면 한다.
서로를 배려하며 참외를 던진 이도, 받는 이도 모두가 상생할 수 잇는 사회. 무예의 고수를 꿈꾸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다. 이런 고수의 싸움법으로, 우리끼리 더욱 똘똘 뭉쳐 코로나라는 이 난관을 잘 견뎌내기를 희망한다.
다음 편, 예고
무예를 수련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적은 강한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깨닫는다. 다음 편에서는 나 자신을 이기는 싸움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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