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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기자협회보의 7월 21일 기사, ’2020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은?’에서 공개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 1위에서 50위까지의 순위와 인용 횟수를 보여주고 있다(기사 링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했다고 하는데, 이런 통계 기사는 매우 환영이다. 특정 시기,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 이슈가 무엇이었는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인물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주는 참고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1. 국내 정치 관련 33명(66%)

 

문재인, 정세균, 이해찬, 황교안, 이인영, 박원순, 이재명, 김종인, 심재철, 김태년, 주호영, 강민석, 이낙연, 안철수, 추미애, 홍남기, 심상정, 김경수, 유승민, 홍준표, 김형오, 원유철, 강경화, 김두관, 장제원, 김현미, 유은혜, 김부겸, 송철호, 손학규, 윤미향, 조국, 윤석열,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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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국내 정치 관련 인물의 비중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각 지자체 단체장, 장관과 주요 공직자, 여당과 야당 주요 인사를 포함한다. (보건 당국 관계자 또한 현시점에서 주요 공직자라 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이슈 관련 인물로 따로 추렸다)

 

순위별로 보자면 문재인 대통령이 2위로 가장 높고,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뒤를 잇는다. 8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0대 국회에서 원내대표를 맡은 바 있기 때문에 여당 원내대표의 영향력이 나타난 순위라 볼 수 있겠다. 故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역단체의 장이자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가 반영되었다. 

 

국내 정치 관련 순위는 대체로 맡고 있는 직이 가진 영향력과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20년 상반기가 아니라 다른 시기였어도 비슷했을 거란 얘기다.

 

올해 상반기에 있었던 4.15 총선이 제법 굵직한 이슈였다. 29위에 오른 김형오 전 미래통합당 공관위원장과 33위 원유철 전 미래한국당 대표가 총선이라는 단기 이슈로 인용 기사의 대상이 되었다.

 

19위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말 그대로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신 전달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수많은 기사의 인용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2. 코로나19 관련 국내 보건 당국 관계자 4명(8%)

 

정은경, 권준욱, 박능후, 김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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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2020년 상반기 전세계 최대 이슈다. 기간을 한 100년 쯤으로 잡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지도 모를 만큼 파괴력이 크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해 국립보건연구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이름을 올렸다. 순위도 높아서 각각 3위, 7위, 13위, 22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경우 한국과 미국 대통령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의 발언이 국내 언론에서 세 번째로 많이 인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코로나19가 속히 종식되어서 향후에는 그 어떤 질병관리본부장의 이름도 이런 순위 안에 들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3. 국제 정치 관련 9명(18%)

 

도널드 트럼프, 아베 신조, 마이크 폼페이오, 보리스 존슨, 제롬 파월, 김여정, 앤서니 파우치, 김정은,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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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 관련 인사는 물론 전체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한국 사회에 미국이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보여준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기는 하다. 거기에 트럼프라는 ‘개인’이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탓이 있을 것이다.

 

그 외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까지 전체 9명 가운데 4명이 미국 인사다.

 

미국 인사를 제외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30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야 한일 관계의 특수성과 코로나19 관련 병크, 2020년 올림픽 연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순위라 볼 수 있겠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트럼프 못지 않은 트러블 메이커이자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뻘짓을 저지르고 있다. 몸소 확진자가 되기도 했으니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국의 영향력'을 드러낸 순위라기 보다는 총리 자신이 격하게 국제 뉴스 거리를 생산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시진핑의 순위 38위는 조금 의아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인용 횟수’의 순위표라는 걸 생각해보면 얼추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정 정치, 외교 사안과 관련한 시진핑의 직접 발언이 그만큼 제한적이라는 것. 시진핑은 트럼프처럼 사사건건 본인이 직접 마이크 앞에 나서거나 트윗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자 사실상 언론 통제국이니 주석께서 굳이 친히 나서서 인민들에게 뭘 설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중국처럼 크고 영향력이 강한 나라의 권력을 사실상 1인이 영구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의 말 한 마디가 갖는 힘은 대내외적으로 엄청나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나라의 대통령 트럼프는 재선 앞에 떨고 있을지 몰라도 시진핑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럴 일이 없다.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그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연초에 장기간 잠수 타시는 바람에 인용할 건덕지가 별로 없기도 했거니와 중국보다 더한 통제 국가인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동생 김여정 보다 순위가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김정은 기사는 쏟아졌는데 죄다 김정은이 보이지 않는다는 '김정은 없는' 김정은 기사였다.

 

반대로 김여정 북한 공산당 제1부부장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글빨, 말빨 다 세우더니 전체 3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4. 기타 3명(6%)

 

진중권, 이재용,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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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사 가운데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일하게 순위에 올랐다(45위).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이재용 부회장 개인이 법정 구속이 되니 마니 하는 상황이 더해진 결과다.

 

이재용 부회장 본인은 자신의 재판과 관련하여 직접 발언한 일이 거의 없었다. 끽해야 대국민 사과 정도? 그럼에도 인용 순위 50위 안에 들어간 것과 재판이 꽤나 상관 있어 보이는 건 왜일까.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이재용 부회장을 통해 드러내서, 결국 재판에도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건 왜일까. 할 말은 많으나 여기까지만 하겠다.

 

문화계 인사 중에는 유일하게 봉준호 감독이 46위를 차지했다. ‘<기생충>’ 이거 하나로 다 설명된다. 

 

그리고 18위를 차지한 사람, 진중권.

 

 

 

5. 50인 중 단 한 사람, 진중권

 

순위에 오른 50인 가운데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49인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기사에 인용된 본인의 발언과 본인이 앉은 자리(직책)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이슈나 논란의 당사자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당대표, 장관 등 국내 정치 관련 인사들의 발언은 모두 자신의 자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기반으로 기사에 인용된다. 

 

정은경 본부장을 비롯한 보건 당국 관계자 또한 마찬가지. 코로나19의 심각성이 엄중하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장으로서, 보건복지부장관, 차관으로서, 국립보건연구원장으로서 하는 그들의 말이 더욱 중요해졌고, 필요해졌다. 그 결과가 지금 보는 순위다. 

 

국제 정치 관련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재용 부회장과 봉준호 감독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 하고 있는 일이 이슈가 되어 인용 기사가 나온다.

 

그런데 50인 중 단 한 사람, 진중권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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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절반인 183일 동안, 무려 2093건에 달하는 기사에 인용된 진중권의 말과 글은 대부분 국내 정치, 시사 관련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룬 정치, 시사 관련 이슈 대부분은 본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로, 순위에 든 50인 가운데 유일하다. (순위도 18위로 꽤나 높은 편이다)

 

굳이 진중권을 나머지 49인이 가진 공통점의 영역에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시사 이슈를 평론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정치평론가이니, 진중권을 ‘정치평론가’라고 본다면 그의 말과 글이 자기 일과 아주 무관하다고는 볼 수는 없겠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그는 2020년 상반기에 기사에 가장 많이 인용된 사람 50인 가운데 유일한 정치평론가다. 정치평론가의 생각을 나타낸 말이나 글을 대한민국 언론이 183일 동안 무려 2093건의 기사에 인용했다. 하루에 열 건이 넘는 수치다. 기자협회보의 관련 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276건, 세계일보 236건, 중앙일보가 209건이다. 매일 1~2건의 기사를 냈다는 말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진중권을 인용한 기사의 90% 이상(추측이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이 그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분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다. 언젠가부터 ‘진중권 페이스북 발’ 기사가 심심치 않게 아니, 거의 매일 같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기사는 하나 같이 특정 정치 이슈에 대해 진중권 씨가 페이스북에서 이렇다 저렇다 했다는 내용이다. 기사 제목이 ‘진중권 + “~”’라고 되어 있으면 십중팔구 진중권 페이스북 인용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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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왜 유독 진중권인가. 진중권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통한 정치평론가라서? 대중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는 평론가라서? 

 

정치평론가의 발언에 따옴표만 붙인 기사를 내는데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그가 그렇게 독보적인 평론을 하기 때문에 유독 그의 글만 인용 보도를 하는 것인가?

 

인용 소스가 '페이스북'인 것도 그렇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같이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SNS가 기사에 인용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건수를 기록한 사람은 없다.

 

애초에 정치평론가의 평론이 필요하면 직접 인터뷰를 해서 묻거나 고료를 주고 칼럼을 받는 게 맞다. 언론사 기자가 진중권 페이스북 대변인도 아니고, 전국민을 진중권 페이스북의 강제 팔로워로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뭐냔 말이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하여 그의 페이스북 글을 기사로 인용하기를 즐겨하는 언론사들은 내부에 인재가 그렇게도 없는가. 진중권이라는 정치평론가 보다 식견과 혜안이 나은 사람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개인 페이스북에 수시로 올리는 글을 수시로 긁어와 기사로 내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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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라는 사람의 페이스북 내용이 '독자들의 클릭을 부를 만한 기사'에 부합하긴 할 거다. 자신들의 정파적 지향에 부합하는 말만 골라서 해주고 있는 데다 한 때는 반대 정파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던 인물이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해당 기사를 클릭하고, 그를 영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해당 기사를 클릭한다. 단순히 말해 진중권 페이스북이 '장사가 되니' 그런다는 것인데…

 

이쯤해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진중권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관심을 주지 마라’다.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이 글은 진중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열심히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자유를 빼앗을 권리가 나에겐 없다. 관심도 없고.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언론에 관심이 많다. 진중권 씨의 페이스북 글을 이토록 열성적으로 퍼나르는 언론에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언론사도 하나의 기업이고 수익이 중요하다고 해도, 대놓고 기사 장사했던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통계를 보고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유력 인사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일명 ‘따옴표 저널리즘’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 스스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축소하는 보도 행태이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휴대폰과 마이크를 들고 유력 인사 뒤에 우르르 따라 붙는 광경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말 한 마디만 따내서 그대로 받아적으면 기사가 되고, 남이 한 말이니 책임질 것도 없지만, 딱 그만큼이다. 말 한 마디 따내는 게 취재 능력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거기에 기자의 분석과 통찰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따옴표 기사의 효용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생각과 의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바로 그의 ‘말’에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정치평론가라는 사람의 페이스북 글을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가져와 기사를 내는 '따옴표 기사'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2020년 상반기 가장 많은 기사에 인용된 인물 순위표 대부분은 그래도 해당 인물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나타낸다고 평가할 만하다. 언론사의 정파성과 의도에 따라 더 자주 인용되거나 무시된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략 수긍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18위에 오른 진중권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언론이 자기 입맛에 따라 영향력을 만들어준 사례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 얘기했지만 그가 순위에서 유일한 정치평론가이며, 인용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많고, 인용 소스가 대부분 페이스북 게시글이라는 것이 근거다.

 

언론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하는 곳이지 국민이 알게 할 권리를 가진 곳이 아니다. 특정 정치평론가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매일 같이 기사로 옮기는 것 또한 보장 받아야 할 언론의 자유라 한다면, 그런 언론을 언론으로 보지 않는 것은 나의 자유다. 적당히 좀 하자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