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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박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래 잘 부르는 4명의 남자 가수들(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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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 못지않게 실력 있는 가수들이 있지만, 어쩌다 생긴 장난스런 호칭이 되려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어 마치 사실처럼 굳어지는 경우는 흔하다.

기량이 수치화되기 힘든 예술 영역에서는, 고정관념의 문제를 알지라도 이를 반박할 근거 또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한번 생긴 인식을 바꾸기 힘든 문제가 있다.

사설이 길었다. 오늘의 소재는 동영상 사이트인 중국의 ‘bilibili’에 올라온 ‘한국 여가수 라이브 가창력 랭킹 리스트’란 동영상으로, E급부터 최고 S급까지 근거 영상과 함께 랭킹을 매기고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accelostorder’란 제작자가 만든 이 리스트는 2015년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에 영향을 받아 가수 리스트와 코멘트를 보강하여 2017년 버전도 만들어졌다. 제작자는 서로 다르다.

만들어진 시기에 비하면 2015년 버전은 205.5만 뷰라는, 중국에서는 저조한(?) 조회수가 기록됐지만, 상대적으로 영상 댓글(영상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댓글)이 9.5만 개여서 시청자 반응이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영상 밑에 있는 텍스트 댓글은 5400여개다.



 

중국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이다.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면 영상 사이트로 이동될 것이다. 중국 사이트로 들어가 볼 분들은 댓글 자막이 자동으로 열리므로, 중국어 모르는 분들은 영상화면 바로 아래에 파란색으로 된 ‘彈’ 버튼을 눌러 영상 댓글을 비활성화시켜야 한다.

당연히 2017년 버전이 좀 더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으나 중국 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최초의 2015년 버전이다.

처음 우연히 이 영상을 접했던 2년 전쯤엔 재미있게 본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중국 사이트에서 한국 뮤지션에 대한 평가를 볼 때마다 2015년 버전의 코멘트가 유행어처럼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았고, 다소 진지하게 한국 가수에 대해 평론할 때에도 2015년 버전의 평가를 비교지점으로 삼는 경향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런 랭킹 리스트는 ‘김나박이’ 호칭처럼 재미로 넘겨야 한다. 그러나 한국 가수들 무대를 일일이 조사해 이 정도로 정성스럽게 만든 영상도 드문데다가, 그들을 직접적으로 접하기 힘든 중국 팬들로서는 랭킹에 반박할만한 증거를 마련하기도 힘들 것이다.

때문에 이 영상은 지금까지도 한국 가수와 가요계를 평가하는 대중적 지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나 요즘 추세와 다른 지점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상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탐구하게 되었고, 또 중국 대중음악계가 가진 문제도 짐작할 수 있어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랭킹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 이에 대한 나름의 해설을 덧붙이고자 한다.

미리 물음을 하나 던져보자. 영상에 소개된 여성가수의 수는 총 32명인데, 과연 최고의 여성가수는 누구였을까? 당신은 답을 맞힐 수 있을까?

32인의 가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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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봄, 옥주현, 인순이, 박기영, 정은지, 이영현, 태연, 이해리, 화요비, 서현, 거미, 장혜진, 임정희, 박정현, 이은미, 나윤선, 양파, 보아, 효린, 백지영, 서문탁, 아이유, 윤하, 소찬휘, 웅산, 이선희, 이수영, 린, 이효리, BMK, 에일리, 소향

 

 

E급- 금자탑의 밑변

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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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러운 라이브 실력. 발성이 괴이하고 음정이 갈 곳을 잃었다. 용기가 가상한 라이브 무대엔 포스트모던한 스타일로 충만하다.

화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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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에선 신급인데 라이브에선 귀신처럼 흉측하다. 그럼 문제는 하나다. 보정 잘하는 데가 어디지?

 

「악평밖에 없어서 비난으로 들리겠지만, 한때 실력이 있었으나 기량이 하락한 경우로 이해하면 된다. 댓글에서는 화요비의 성대결절 수술을 언급하며 변호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안타까워 하는 반응들이 있으나 수긍하는 분위기.」

 

 

D(-)급 – 노래방 실력자

이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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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댄싱 퀸’들의 보편적인 수준. 라이브에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으나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적이고 소리가 밍밍하다. 어차피 가창력으로 승부보는 유형이 아니므로, 안무와 라이브를 병행하며 음이탈 없다면 제몫하기에 충분.

백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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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의 레전드이고 CD 목소리는 매혹적이지만 라이브에선 조급하다. 공기를 많이 섞고 음정 불안도 보인다. 추억을 간직하려면 라이브 시청은 피할 것을 권함.

 

천하무적이효리’ ‘앞으로쓰나 거꾸로쓰나 이효리를 외치며 이딴 랭킹 상관없다는 식의 반응과 함께, 백지영 랭킹에 동의하지 못하는 반응이 꽤 있다. 제작자가 증거로 내세운 영상에선 문제가 보였지만, 백지영이 라이브를 회피하는 가수가 아닌데다 괜찮은 공연도 많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버전 제작자는 기본적으로 이 영상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약간 레벨을 올려주었는데, OST 곡의 음역대가 가수에게 맞춰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라이브와 녹음의 차이가 더 잘 느껴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D급 – 라이브 입문급

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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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기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가창력은 기본적으로 이 정도(대개 D-에서 D+ 사이)로, 아이돌이라고 하면 최소한 귀를 즐겁게 할만한 라이브 실력은 다들 갖추고 있다. 제대로 된 엔터테이너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시스템과 비교할 때, ‘얼굴만 되면 함부로 팔아대는’ 중국 음악계는 배울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 점점 왜곡돼가는 일본 음악계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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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한의학자(이세진이란 본명으로 농담). CD에 비해 라이브에선 중고음의 손실이 커서 미적 감각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랭킹을 인정하더라도 역시 근거로 든 무대가 제한적이라는 반박이 많다. 서현의 뮤지컬 무대를 무시했다는 지적도 있고, 린의 경우 창법 특성상 무대 음향기술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서현 코멘트에서 제작자의 비판의식이 엿보인다.

 

 

D(+)급 – 라이브에 좀더 노력이 필요한 가수

이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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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만 놓고 보면 가창력은 이미 합격선에 들고, 라이브가 안정적이어서 CD와 차이가 적다. 다만 영상의 다른 가수들과 비교할 때 그녀의 단일하게 가느다란 목소리와 빈약한 보컬기술은 수준이 떨어지는 창법이며, 음악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류의 가수들은 감성적인 이름을 붙여 부족한 기술을 은폐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에선 ‘小淸新’, 일본에선 치유계라 불린다.

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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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한국 여성그룹 가창력 1위로 공인하고 있고, 좀만 더하면 여가수 통틀어 1위로도 만들 태세다. 냉정하게 봐도 라이브 퍼포먼스가 아이돌 중에서는 우수한 수준이고, 성량이 풍부하며 노력하는 모습도 인정된다. 하지만 저음이 불안하고 고음이 허약하다는 문제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외부로부터의 압박을 무시하고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일 것이다.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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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3단 고음. (E5-F5-F#5) 그러나 창법은 굉장히 유아스럽다. 다행히 라이브가 꽤 안정적이며 발전 가능성도 많다. 아이돌의 길에서 생각없이 멍 때리지 않는다면, 미래에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코멘트에서 볼 수 있듯이 팬층이 어마어마하게 두터운 태연을 사실상 ‘저격’한, 가장 논란이 됐던 파트다. 게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팬층이 증가한 아이유가 랭킹에 같이 있어, 현재 시점까지 작성돼온 수많은 타임머신 댓글을 볼 수 있다. 대부분 ‘2020년 현재 실력이 훨씬 늘었다’는 식의 반응으로 태연과 아이유의 랭킹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C급 – 라이브 합격권 가수

이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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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예외를 빼면) 한국 여성그룹에선 최정상의 실력이다. 음정, 음역, 호흡, 리듬감, 감정, 발성 모든 영역에서 합격. 진정한 가수로 가는 문턱에 들어섰다고 본다. 성실하게 연마해 나가면 아이돌에서 가수로 나아가는 성공 사례를 이룰 것.
이 영역에 다다를 생각이 없는 가수들은 결국 새롭고 예쁜 얼굴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버려질 것이니, 이 점에서 모든 아이돌 가수들은 노력할 필요가 있다.


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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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력의 모든 면에서 합격이며 더 넘어서는 면모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아이돌스러운 의식과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가수로 가는 길이 아직은 멀다.

 

「이해리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효린의 경우 많이들 목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 이 영상 뿐만 아니라 한국 가수들에 대한 토론에서 발성법을 제대로 배운다는 칭찬을 많이 보았는데, 유독 효린의 창법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쉽게 목이 상한다는 지적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괜찮아졌다는 최근 댓글도 있다.」

 

 

B(-)급 – 준우수가수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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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약하여 국제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한국 가수 중 하나다. 일본 스타일이 강하다. 저음이 비교적 약하고 어떤 음정에서 힘없이 뜨는 경우도 있지만, 중고음에서는 일본 스타일의 전달력이 확실히 느껴진다. 조금만 보완하면 춤 없이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것이다.

옥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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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성그룹의 가창력 대표주자. 발성 기능이 꽤 괜찮고 고음의 폭발력이 강하며 기술적으로도 강점이 두드러진다. 부정적인 선입견이 따라 다니긴 하지만, 가창력만큼은 젊은 후배들이 배워야 할 모범답안임에 틀림없다.

 

「큰 이견은 없지만, 보아의 근거 영상을 일본어곡 ‘메리크리’로 넣는 바람에 옥주현의 ‘천일동안’ 영상과 부조화스런 느낌이었고, 그때문인지 몰라도 둘의 랭킹을 동일하게 부여한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핑클의 옥주현이 나왔다면 당연히 언급될 S.E.S의 바다가 랭킹에 없는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B급 – 우수가수

임정희,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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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라이브 실력이 합격선이라는 전제 하에, 각자의 특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목소리 자체가 좋으나 기교가 약한 편이고, 후자는 기술에서 우위이나 발성에서 트인 느낌이 부족하다. 만약 둘이 아이를 낳는다면 A등급…?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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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력에 있어 진정한 OST의 여왕이라 할만하다. 라이브 현장에서 스튜디오 녹음실의 목소리를 완벽히 재생해내며, 음색과 질감, 기본기가 충실하다. ‘고뇌파(苦惱派)’ 창법의 대표 가수라 할 수 있는데, 표정만 봐도 그렇다.

장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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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파의 달인. 목소리 속에 스토리텔링이 묻어나며, 라이브 현장에서 전달하는 기술도 훌륭하다. 최근 보이스 컨트롤이 다소 떨어져 보인다. 신의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멈춰 서 있는 문학청년.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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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여성그룹의 가창력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존재.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고, 발성이 트여있고 입체적이다. 가창력은 이미 충분히 우수하고 감정 전달에서만 향후 시간의 축적이 필요할 뿐. 노력이라는 두 글자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아이돌 가수로서, ‘아직 어리잖아’라는 말로 젊은 가수들의 실력 부족을 변명할 수 없다는 사례다.

 

「B등급 이후엔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에 출연했던 가수들이 좀더 조명을 받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여기부터는 랭킹에 대한 이견은 있어도 실력에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장혜진 영상 댓글에서, <복면가왕>에서 부른 ‘1월부터 6월까지’를 추천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다. 아이돌그룹 가수 중에서 노래 잘하기로는 태연과 은지가 가장 주목을 받아왔는데, 이 영상의 평가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아이돌 가창력 1인자로 정은지를 꼽는 경향이 강해졌다. 다른 토론에서 루나, 솔지 등이 언급되더라도 정은지의 지위를 위협하지는 못했다.」

 

본 필자는 위에서 번역한 중국에서 화제 중인 랭킹과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이 어느 때보다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이 커진 시점에서 위의 랭킹과 의견이 현재까지 한국 가요계를 평가하는 대중적 지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 중국인들의 인식과 문화로 한 발 들어가보고자 함이 주요 목표되겠다.  
 

일단 다음 편, <중국에서 보는 한국 여성 가수 랭킹2 : 숨겨진 최후의 보스는>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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