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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편에 이어 중국이 한국 가수와 가요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보는 두 번째 시간이다. 이름하여 '숨겨진 최후의 보스들'이다.  

 

A(-)급 – 준정상급 가수

 

에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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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가수 중에서 최정상급 가창력의 일인. 서구 디바 식의 창법과 분위기, 흑인 소울이 느껴진다. 만약 좀 더 빨리 ‘한국의 비욘세’ 같은 아류의식을 벗어버릴 수 있다면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믿는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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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최정상급 가창력의 또 다른 한 명. 외형과는 전혀 다른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소리가 트이고 테크닉에 힘이 있으며, 선천적 요소도 훌륭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몸이 작고 소리가 좋은 여성들이 따라 배울만한 귀감이다.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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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천년의 사랑’ 

 

이영현이 부른 ‘천년의 사랑’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번안곡인 ‘死了都要爱’까지 포함해 가장 전율적인 라이브 버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인후 아래의 강한 공명이 탄탄한 파워와 극강의 전달력을 가져오며, 최후엔 원곡보다 4키를 올리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입체적으로 꽉 찬 소리를 낸다. 여러 의미에서 ‘대형 가수’의 대표급이라고 본다.

 

소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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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TEARS’ 

 

정상급의 고음 가수로 고음의 안정성이 뛰어나다. 극강의 초고음에 비하면 중저음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상급 수준을 보여주지 못해 이 랭킹에 머물렀다. C6까지 올라간 활음(滑音) 애드립을 제외하면, 가사에서는 G5가 최고음인데 이는 황치산의 ‘等待’ 최고음과 같지만 이 노래가 훨씬 빠르다. 어느 게 더 어려울지는 스스로 생각해보자.

 

에일리를 제외하면 <나는 가수다>에서의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 황치산(黄绮珊)의 ‘等待’ 는 중국판 <나가수>에서 황치산의 인지도를 대폭 높인 노래로, 역시 고음으로 유명하다. 황치산 급의 중국 여가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이 랭킹에서 그녀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한국 정상급 가수들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코멘트 이후로 황치산을 비롯한 정상급 중국 여가수들이 한국의 어느 랭킹 수준인지 논쟁이 활성화되었다.

 

A급 – 정상급 가수 

 

박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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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허점이 없고 모든 방면에서 우위에 있으며, 곡 표현의 우수함은 이미 교과서급에 올랐다. 이 ‘눈의 꽃’ 영상에서 보여주는 강한 공명의 진성, 미성으로부터 눈꽃처럼 표현되는 가성 고음, 아프더라도 드러내지 않는 감정의 운용 등 모두가 젊은 후배들에게 라이브 퍼포먼스의 교범을 제공해주고 있다.

 

B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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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음악 선생님. 귀가 울리는 듯한 강한 성압을 지니고 있다. 학생들에게 각종 테크닉의 사용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주는 것 외에도,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이어트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모범적인 사례와 자기 위안을 전달해준다.

 

이전에도 있긴 했지만 이쯤부터 ‘이건 무슨 괴물이냐’ ‘듣자마자 일단 꿇었다’는 감탄형 코멘트가 늘어난다. 이전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A급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박기영과 BMK를 기점으로 입을 다물게 된다. 박기영의 나이(77년생)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BMK의 경우 이어폰으로 들었더니 실제로 귀가 울린다는 반응이 있다. 제작자가 나름 유머스러운 코멘트를 시도한 듯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니 좀 거슬린다.

 

A(+)급 – 특정 영역에서 극한에 오른 사람들

 

박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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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교파. 상심하다 미친 듯한 테크닉의 운용, 강한 폭발력과 함께 하늘을 휘젓는 듯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가느다란 목소리 스타일로 이루어낸 성과의 극치로, 소녀의 음성 속에 절세의 무당이 함께 한다.

 

서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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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락 보컬의 대표. 남성호르몬이 휘몰아치는 여성적 존재. 공포스러운 성압과 폭력적인 창법은 길거리 양아치들을 도로 밖으로 내몰아버리기에 충분하다. 한국에서 ‘누님이야말로 사나이십니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인물.

 

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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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재즈리스트. 숙성된 음색이 마치 그렇게 숙성된 듯한 와인을 연상시키며, 우수한 테크닉은 이를 한층 더 발효시켜, 기술 부족으로 그저 바의 배경음악으로 끝나버린 저급 와인들과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주의: 숙취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인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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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스케치북> ‘링딩동’

 

한국의 원로급 가수로, 목소리에 극강의 감정 전달력을 갖추었고 기술적으로도 우수한 공명과 강한 폭발력이 있다. 소리울림과 헤어스타일을 보면 출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데, 실제로 혼혈인이다. 

 

인순이는 2011년 50대에도 모든 안무를 소화하면서 D5까지 올라가는 가사를 부르고 E5에 이르는 최고음을 내어 몸소 후배들에게 가르치셨다. 춤은 가창력 부족의 방패가 될 수 없답니다.

 

박정현을 A(+)보다 위인 S급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고, 결국 제작자가 S급으로 수정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녀의 수많은 라이브 중에서 굳이 오래된 <윤도현의 러브레터> 레전드 무대를 찾아 올린, 제작자의 정성이 돋보인다. 위에 언급된 ‘소녀 음성의 절세 무당(少女音中絶世巫婆)’은 이후 박정현을 수식하는 단골 멘트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무협스러운 멘트의 최정점은 이름부터 강호대협인 서문탁(西門卓)으로, 이후 2017년 버전에서 ‘형님 오늘은 누굴 칠깝쇼’란 코멘트가 위의 ‘누님이야말로 사나이’ 표현보다 더 인기를 끌게 되었다. 때문에 서문탁 영상에선 빠지지 않고 ‘오늘은 어떤 놈을 담굴까요’라는 식의 밈을 볼 수 있으며, 이 영향으로 소찬휘에겐 둘째 형님(二哥)이란 별명이 붙었다. 인순이의 ‘아버지’는 가사를 모르는 중국인들도 눈물이 난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다.

 

S급 – 4인의 레전드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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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 중 하나. 30여 년 지나도 늙지 않는 목소리, 광활함의 극을 달리는 유연한 보이스라인과 음역 장악력을 지녔다. 각양각색의 서사 방식과 발성법을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걸어 다니는 인형이자 교과서. 

 

중국의 한국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선희의 인지도는 생각보다 크다. <왕의 남자>를 감명 깊게 본 중국인들이 많았고 때문에 ‘인연’은 꽤 유명한 노래였다. 그러다가 이선희의 라이브 무대 영상에서 CD를 훌쩍 뛰어넘는 가창력을 접하고, 이 곡의 작곡 작사도 이선희였다는 점, 여전히 인기 많은 이승기의 사부였다는 점,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인기 가수들이 이선희에게 보인 존경심, 듀엣을 하거나 커버곡을 불렀을 때 비교되는 내공, 64년생이라고는 짐작하기 힘든 외모와 자기관리 등등 숱한 감탄 어린 이유를 찾아내게 된다. 이선희는 데뷔 때부터 톱스타였기에 가창력이 부단히 발전되어 온 증거 영상을 찾기 쉬운 편이다(장국영과의 합동무대도 올라와 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실력이 진화해가며 존경받는 선배 가수는 중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선희를 중국의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가장 많이 본 코멘트는 ‘등려군이 살아있다면’였다. 늘 정장 스타일이라 ‘국어 선생님’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데, 그래서 ‘아름다운 강산’ 같은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곁들이면 ‘방과 후의 선생님’이란 코멘트가 달린다.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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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무한의 에너지를 지닌 한국 음악계의 대마왕. 흑인 같은 발성과 소울적인 해석, 야성적이면서도 감성 어린 목소리는 모래폭풍 같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와, 듣는 이들을 닥치고 압도하여, 가슴을 찢어발기고 심장에 못 박힌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상당한 인지도를 획득했고 압도된다는 느낌엔 모두가 동의하지만,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반응은 중국 팬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거친 목소리를 가진 여가수가 있더라도 중국식 대중가요를 부르면 그 특성이 퇴색하여 이은미처럼 소울을 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낯섬 때문인지 ‘애인 있어요’를 들어보라는 반응들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탄징(谭晶)이 열정적인 무대 매너 때문에 ‘대마왕’으로 불리는데, 음색은 전혀 다르다.

 

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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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고음 괴물. 보통의 가수들이 힘들게 D5, E5를 내려 애쓰고, 고음 가수가 F5, G5를 내며 기뻐하겠지만, 소향에게는 A5, B5도 장난에 불과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발성 기술과 기능적 한계에 거스르고, 고음 가수들이 갖기 힘든 감정선도 컨트롤해내는, 모든 걸 맘대로 할 수 있는 변태종.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소향은 여전히 국내보다 서구권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의 반응도 비슷해서, 고음 편향으로만 인식돼있는 점을 현지 팬들도 상당히 아쉬워한다. 한국 보컬에 대한 전문적인 토론에서 가장 높게 평가되는 여가수가 소향인데, 타고난 인재가 과학적인 발성법에 따라 수련하고 여기에 인생철학까지 확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귀감이 되는 사례로 꼽힌다. 중국에 고음 가수가 꽤 있는 편이지만 대개 민요풍이거나 자기 스타일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거기에 감정 전달력과 자기관리까지 감안하면, 전성기만 떼 놓으면 모를까 전반적으로 소향에 견줄 중국 여가수는 없다고 본다.

 

나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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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 최후의 히든 보스. 대중음악계를 떠난 실험 재즈 요괴. 노래와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이미 경지에 이르러, 노래하는 내내 ‘음악이란 거, 참 재미있군’ 식의 해탈한 마인드가 가득하다. 세간에서 무명인 이유는 진작부터 속세를 떠났기 때문이다.

 

‘히든 보스’로 소개하였기 때문에 다들 나윤선을 사실상의 SS급으로 본다. 독자 중에서도 나윤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하물며 중국에서 나윤선을 잘 알 리가 없다. 그래서 영상 제작자는 나윤선에게 세 편의 라이브 클립을 붙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앞의 두 노래에서 감정, 음색, 성량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마지막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던 부분에선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각종 예술적 실험을 보여준다. 기타 속주의 음정을 똑같이 끊어 부르는 부분이 압권이다. 음악 문외한인 나로선 정말 잘 모르겠는데, 저 정확한 음정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반응이 많다. 중국 뮤지션들이 많이들 댓글을 단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영상 이후 나윤선을 한국 최고의 여가수로 보는 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며, 코멘트에 달린 ‘음악이란 거 참 재미있군’이란 말은 나윤선에게 붙는 수식어가 됐지만 간혹 예술성 있는 영상에서도 이 말을 발견하게 된다. 나윤선을 검색해보다가 이런 문답을 발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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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나윤선의 가창력을 어떻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A :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평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랭킹 영상의 제작자 accelostorder는 2014년 일본 가수 랭킹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 바 있다. 그 뒤 2015년 한국 가수 랭킹을 제작했지만, 이후 중국어권 가수는 고음역/저음역 식으로 나누었을 뿐 랭킹을 매기지 않았다. 들이닥칠 댓글 여론이 아마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영상들에서 볼 수 있는, 코멘트와 근거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 형식, 그리고 전문용어를 피하면서도 보컬에 대한 소양을 보여주는 내용, 자국 연예계에 대한 풍자 등은 다른 랭킹 영상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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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버전과 2017년 버전의 비교. 이후 각양각색의 랭킹 영상에서도 비슷한 기본 구도를 볼 수 있다.

 

이후 다른 사람이 만든 2017년 버전에선 등급이 아니라 10점 만점으로 별을 매겼다. 활동이 뜸해진 몇몇 가수가 제외되고, 대신 젊은 가수들이 좀 더 언급되었으며 <신의 목소리> <판타스틱 듀오> 등 평가에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송지효나 이성경처럼 재미 삼아 언급된 배우들을 제외하면 랭킹은 다음과 같다.

 

1점 현아

2점 장재인

3점 수지, 케이

3.5점 이하이, 제시카

4점 아이유

4.5점 백지영

5점 루나, 태연, 린

5.5점 윤미래, 효린

6점 바다, 이해리, 제아, 솔지

7점 손승연, 정은지, 거미

7.5점 윤하

8점 에일리, 이소라, 소찬휘, 정인, 알리

9점 차지연, 웅산, 서문탁, 박기영

10점 박정현, 소향, 김윤아, 이은미, 이선희

권외 인순이, 윤복희, 패티김

 

다시금 환기를 해보자면, 위에서 소개한 랭킹들은 어떤 절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중국 팬들도 이견이 많았지만 ‘본국’인 우리로서는 TV 프로그램 이외의 많은 공연까지 접할 수 있으니, 영상으로만 가늠해 본 랭킹에 민감해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브를 볼 여건이 제한적이고, 한국 가수의 공연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운 중국 팬들에게, 이 랭킹은 어떤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나박이’의 4인이 남자 가수 최고인 게 맞다, 틀리다를 얘기하는 순간 우리는 ‘김나박이’의 고정관념을 은연중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이 랭킹 영상을 번역해온 의도는 여기에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소재로 하여, 중국인들이 한국에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읽어보자는 것, 그리고 여기에 영향을 미친 사회 배경에서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 내용은 다음에 이어보도록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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