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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 자세히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이 글을 권하지 않는다. 이 글은 여러분들의 생각을 삐딱하고 불순하게 오염시킬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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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가보지 않았던 분들도 '미국 레스토랑에서는 팁을 내야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시거나, 적어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미국에서는 음식값에 추가로 '세금'과 '봉사료(팁)'를 내야 한다. 이것은 패스트 푸드 가게를 제외한 모든 레스토랑에 적용되는 것으로, 문화의 한 부분으로 굳어졌다. 

 

 

'적당'한 팁

 

팁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음식값의 15%~20%로 알려져 있는데, 15%를 주면 아쉬워하는 눈치로, 서비스와 관계없이 20%는 줘야 무난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왔던 90년대 중반에는, 레스토랑의 적정 팁 비율은 15%이었다. ('레스토랑 팁'을 주제로 한 논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The Psychology of Restaurant Tipping(링크), Iowa State University "STAT 503 Case Study 1: Restaurant Tipping"(링크)).

 

그런데 웬걸, 25년 정도 지나니 이게 15-20%로 둔갑해있다. 듣자 하니 '훌륭한 서비스에는 25%를 팁으로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팁 비율이 평균적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다. 

 

예전에 비해 레스토랑 서버의 수입이 그만큼 늘어났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레스토랑 서버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그동안 고용주들이 서버들에게 주는 월급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이 있으니 절대적 액수는 25년 전보다 당연히 올랐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이 말은 손님들로부터 받는 팁 수입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엔 지난 4-50년 동안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꾸준히, 그리고 잔인하게 내려갔다는 속사정이 있다.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던 90년대 중반, 70년대 미국으로 유학오신 분들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내가 식당에서 접시를 닦아 가면서 공부했는데, 악착같이 아껴쓰니 졸업할 때 목돈이 좀 나오더라구." 

 

과장이 아니라 생각한다.

 

지금은 글쎄다. 세상에 바뀌어도 몇 번이 바뀌었다. 

 

90년대만 해도 "평균적인 미국인의 삶"은 좋은 것이고, 이보다 '못' 사는 사람도 비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된 지금, 가계 소득이 '평균소득(Median Household Income)' 수준이라면, 빈곤층으로 봐야 한다.

 

먹고 살만 하려면 "중산층 미국인(Middle-class Americans)"은 되어야 한다. 아니, '중산층 붕괴위험' 어쩌고 하는 요즘은 "상위 중산층 미국인(Upper middle-class Americans)" 정도는 되어야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삶(취미생활, 봉사활동도 하고, 자아 실현도 하는 그럴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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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소득불평등은 많은 이가 우려하는 문제지만,

딱히 대책이 없기도 하다

 

현재 미국 연방법상 시간 당 최저임금은 $7.25(2009년 이후 변동없음)로 $4.75이었던 1996년에 비해 약 50% 증가했다(각 주 법상의 최저임금이 그보다 높게 책정된 경우 사정이 낫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건 통과).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보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기본 식재료는 적게 잡아도 두 배는 올랐고, 대도시의 하우스 렌트 가격은 두 배 반에서 세 배는 올랐다. 의료비는 보험료를 포함해 네다섯 배는 올랐다. 대충 계산해도 최저임금으로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 

 

놀라운 것은 레스토랑 서버들은 'tipped workers(팁 받는 노동자)'로 분류되어, 최저임금 대상자가 아니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니들은 손님한테 팁 받는 걸로 먹고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손님으로부터 기를 쓰고 팁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

 

(손님이 하나도 없을 땐 고용주가 시간 당 $2.13를 주어야 한다(기름값 싼 미국에서 기름값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 문제지만). '팁을 더 해도 최저임금($7.25)에 못 미치는 경우 고용주가 최소한 그만큼을 더 줘야한다'는 법도 있지만, 주에 따라 다르고 계산법이 복잡하다. 계산이 있으니 통과하겠음)

 

 

 

왜 서비스 값만 비정찰제?

 

혹자는 "팁이 사회의 관습으로 정착되었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글쎄다. 내가 미국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딱 하나 적응 못한 게 팁 시스템이다.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팁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음식값은 주인에게, 팁은 서버에게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남들처럼 무념무탈하게 살'라는 말 많이 들었다. 미국 및 서구 국가들에서 팁 문화가 왜 정착이 되었는지, 장점 혹은 필요성에 대해서도 익히 들었다. 

 

하지만 팁이 존재하지 않는 방식에 상당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식당 주인은 음식값에 종업원 서비스 값까지 포함하고, 손님은 영수증에 적힌 만큼의 돈을 지불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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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 재료의 신선도, 식당의 청결도, 분위기, 종업원의 서비스 정신 등 식당의 퀄리티를 구성하는 요인은 많다. 그 중 '서비스'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확대경을 끼면서 오늘 서비스가 어땠으니 얼마, 매일 평가해야 하는 게 영 불편하다. '오늘 이 식당에 청소 상태가 불량한 관계로 기분이 좀 거시기해. 그러니까 음식값을 10% 빼서 지불할 거야' 보통 이렇게 안 하지 않는가. 다른 것은 다 정찰제인데 왜 서비스 값만 비정찰제냐 이거다. 

 

대학에서 성적내는 식으로 얘기해보자면, 서비스라는 것은 A, B, C 방식보다 P, F 방식(pass or fail)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면 지적을 해서 시정을 요구하던가 그게 안되면 다음에 안 가면 되는 것이다. 정말 만족스러웠다면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리뷰도 잘 쓰면 되지. 나머지는 그냥 'Pass'다.

 

오늘 나한테 얼마나 미소를 띄면서 얘기했는지, 물을 몇 번 갖다줬는지, 자주 와서 체크를 해주었는지 여하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그에 맞춰 팁을 줘야하는 시스템이 참 피곤하다. 웬만하면 후하게 주려고 하는데, 정찰제가 아닌 이상 '나는 후하게 준다고 생각하는데 저쪽에서는 짜게 군다고 생각'하는, 양쪽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서버들이 척박한 삶을 개척하고 싶어도 애로사항이 많다. 우선 '결집된' 목소리가 없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듯한데, 그들의 명목상 고용주는 식당주인이지만 실제 고용주(실제로 그들에게 돈을 내는 사람)는 손님이다. 따라서 이들은 손님과 쇼부를 보려고 한다. 

 

"최저임금도 간신히 될까 말까하는 이걸로는 정말 기본적인 의식주를 꾸려가기도 힘들어요. 우리는 팁으로만 먹고 사는데, 더불어 사는 세상, 인간의 탈을 쓰고, 설마 팁을 아끼는 만행을 저지르지 말아 주세요."라는 말을 쉽게 볼 수 있다. 나가는 손님을 불러서, "손님 팁 내고 가셔야지요(아니면, 팁을 이것만 내시면 어떡해요?)"라고 소리지르는 서버를 본 적도 있다. 

 

서버들이 reddit같은 포럼 등에 써놓는 글은 더 공격적이다.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고 빡쎄게 일해서 돈 몇 푼 벌지도 못하는데, 오늘 손놈들은 대부분 팁을 15%만 낼려고 하고, 멀쩡하게 생긴 놈들이 저질이네, 20% 팁 낼 마음이 없으면 아예 레스토랑에서 밥 먹을 생각도 하지마셈. 그리고 25% 낸다고 생색 좀 내지 마라. 그것도 우리에겐 턱없이 부족한 거라는 걸 알기나 하냐". 이건 뭔가 잘못됐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이건 손님이랑 아웅다웅할 문제가 아니고 주인이랑 쇼부를 봐야할 문제다", "그것도 안되면 뭉쳐서 목소리를 내던가, 정치인이나 영향력있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

 

미국 사람들(서버가 아닌)부터가 별로 좋게 받아들이질 않는다. 팁 자체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거나 팁 구조를 개혁하자는 의견을 내면 엄청 공격을 받는다. 대부분 서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손님들한테 팁을 뜯어내"라는 고용주의 방침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고, 대중들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팁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도 각자 다르다. 미국인 상당수는 서버를 직접 해보았거나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서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경험이 많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제각각 다른 데다가, 어떤 의견이 나올 때 자신 혹은 주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거라 예상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한다.

 

(물론 팁 개혁의 반대의 선봉에는 "팁을 잘 받는" 서버들이 굳건히 서있다. 이들은 평균 이상으로 팁 수입을 올리는 이들이고, 혹시라도 서비스정찰제/서버월급제 같은 개혁이 벌어진다면 자기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는 많은 서버들은 현재의 수입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자기도 이들처럼 팁 수입을 잘 올릴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거나, 정찰제/월급제같은 것이 시행된다면 고용주가 그걸 남용할 수 있다고 불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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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진보적인 레스토랑 주인들은 팁을 없애는 강수를 두었다. 메뉴가격을 조금씩 올리고, '우리는 종업원들에게 정당한 급료를 내어 줄테니 손님들은 팁에 신경쓰지 마시라. 물론, 혹시라도 불편한 문제가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얘기하시라'고 한다. 

 

반전은 용감한 시도를 했던 레스토랑 상당수가 몇 달 뒤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서버들이 손님에게 팁을 받는 기존 방식의 레스토랑으로 자꾸 옮겨갔기 때문이란다.

 

앞뒤가 안 맞는다. 한쪽에서는 팁에 목매고 살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데, 반대쪽에서는 서버들을 월급제로 전환해주니 그게 싫다고 나간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참 답이 없다. 

 

"원래 선진국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높게 쳐주고 서비스를 중요하게 인식한다. 그래서 팁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한국인들이 팁에 대해서 흔히 듣는 말이다. 아, 그것 참 개소리다. 그렇게 치면 서구문화의 발상지인 유럽이 미국보다 더 팁 구조가 더 많고 팁 문화도 발달되어 있겠네? 나도 한 때 순진하게 그렇게 생각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회사 출장 차 유럽을 가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최소한 레스토랑에서는 말이다). 

 

미국에서 했던 것처럼 팁을 주니 왜 이렇게 많이 주냐며 다들 놀란다. 그제야 미국에서 팁 문화가 가장 발전, 아니 가장 남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흑인 노예제도와도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팁 문화는 선진국의 관습이라기 보다는 전근대적 신분제도 노예제도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자본주의와 교묘하게 결합,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이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제도의 선봉에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미합중국이 있다. 

 

팁은 레스토랑 업주들은 뒤에서 슬그머니 자기들 부담을 줄이면서, 겉으로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서버들에게 '너희의 생존권은 손님들, 일반 대중에게 달려있다'고 캠페인을 벌이는 제도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 이런 현상이 더욱 더 심화된 듯하다.

 

 

 

그럼 레스토랑 안 가지

 

다른 한편에서는 "그럼 레스토랑 안 가지"라고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정식 레스토랑과 패스트 푸드 식당이 양분되어 있었다. 전자의 경우 자리에 앉아서 서버에게 주문하면, 서버가 음식을 갖다 주고, 다 먹은 뒤에는 계산만 하면 된다(서버가 뒷정리를 해주니까). 그에 반해 후자는, 맥도널드에서 하는 것 처럼, 카운터에서 주문한 뒤 음식이 나오면 직접 가져다 먹고, 나가면서 내가 그릇과 식판을 치운다.

 

기존에는 차분하게 앉아서 서비스를 받아가면서 제대로된 음식을 먹고자 할 때는 전자, 음식 질은 떨어지더라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치고자 할 때는 후자에 가는 형태였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패스트 푸드 음식점처럼 생겼는데 음식이 괜찮고 팁도 내지 않는, 가성비가 좋은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를 두고 흔히 '밀레니얼 세대의 변화된 취향을 반영한다'고 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2-30대가 되어 주 소비계층이 되었고, 과거 세대의 같은 연령층에 비해 재정적 안정도가 떨어지다 보니 생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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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부터 전통적인 레스토랑의 하향세가 시작되었다. 특히 두드러진 건 전통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아마 COVID19 사태가 터져서 이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다수의 일반적인 레스토랑들은 수 개월 내에 문을 닫을 확률이 크다.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이크아웃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 (패스트 푸드 식당은 늘 테이크아웃을 해왔으니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앞으로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모든 비즈니스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되었을 때, 살아남은 일부 소수의 레스토랑이 현재처럼 모순된 팁 구조를 그대로 가져갈 지 아닐 지가 궁금하다.

 

식당 업주 입장에서야 지금 이대로가 좋겠지만, 이미 대중들은 테이크아웃으로 팁을 안 내고 먹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 6개월, 1년 정도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 힘들 걸? "답이 없는" 모순된 미국의 레스토랑 팁 문화에 적지않은 변화가 올 것이다.

 

 

 

참고자료)

 

- state-by-state map for tip vs minimum wages (링크)

- 20% is the new standard (링크)

- 20% Is the New 15%: Tipping in the Age of Digital Payment (링크)

- Median Household Income (링크)

- income inequality (링크)

- Please, Tip 50 Percent (링크)

- The uncomfortable truth about tipping, explained with stick figures. (with tipping statistics) (링크)

- Dollars and sense: Why are millennials tipping less than older generations? (링크)

- Millennials are the worst tippers in the US, new survey finds (링크)

- The Case Against Tipping in America (링크)

- Have we reached the tipping point for restaurant tipping? (링크)

- How much do people tip? (2018; survey results with charts) (링크)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