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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님 심부름으로 친척 집에 전달해 줄 것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지하철 안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내릴 때가 되어 출입구 쪽으로 가서 미리 자리를 잡았다. 그때 바로 필자의 앞에서 어떤 사람이 옆에 있는 여자의 가방에서 손지갑을 꺼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소매치기라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아저씨가 필자 옆으로 몸을 바짝 붙여왔다. 그리고는 뭔가 딱딱하고 뾰족한 물체가 내 옆구리를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저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필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만있어, 안 그러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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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노미진

 

소매치기하는 사람 외에도 두서너 명의 남자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필자의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 필자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꼼짝하지 못한 채로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다. 

 

곧 지하철이 정차하고 지갑을 빼앗긴 여자를 포함한 소매치기 일당들이 우르르 내렸다. 필자는 너무 무서워 꼼짝할 수가 없어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차마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역 하나를 지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다시 지하철을 타기가 싫어서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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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노미진

 

‘아, 내가 이소룡이나 최배달처럼 엄청난 실력이 있었다면 그들을 한 번에 해치워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맞아 죽더라도 그때 소매치기라고 소리쳤어야 정말 무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내가 너무 비겁했던 거 아닌가?! 이런 겁쟁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정말 비참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필자는 중국무술 십팔기(十八技) 흑호관(黑虎館)이라는 도장에 다녔는데, 이소룡처럼 훌륭한 무술인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정말 열심히 무술을 수련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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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에 매료되어 열심히 쌍절곤을 돌리던 중학생 때의 필자 

 

그러나 막상 소매치기 일당의 협박에는 두려워서 꼼짝도 못 하고 떨기만 했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래서 그날의 일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서만 끙끙 앓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때의 공포가 트라우마로 남아 계속 머릿속을 맴돌며 비겁한 필자를 괴롭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우연히 흑호관의 관장님과 둘이서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필자는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관장님께 그날의 일을 말씀드렸다.

 

얘기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울먹이기 시작하더니, 얘기를 끝내고는 혼자의 설움에 복받쳐 어깨를 들썩이며 펑펑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런 필자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계시던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잘한 거야. 힘없는 용기는 객기야! 네가 그날 잘못했으면 괜히 해코지만 당했을걸! 강한 만큼 정의로울 수 있는 거란다.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수련해서 강한 사람이 되면 더욱 정의로워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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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수련에 열심이었던 학창 시절의 필자

 

그날의 사건이 어린 시절의 필자가 더욱 열심히 무예를 수련하는 계기가 된 것 중에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로는 다시 범죄 현장을 목격해 실력 발휘를 할 기회는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면 중학교 때의 어린 필자보다 훨씬 강해진 필자는 조금은 더 정의로울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지난 연재 2편에서 물리적으로 강력한 김두한보다 정신적으로 강한 안중근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무예 수련의 궁극적인 최종 목표가 정신적으로 높은 기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지 무예 수련에서 물리적인 힘과 기량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약한 것에 대한 동정심과 불의에 대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이 아무리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힘이 없으면 뜻을 이루기가 어려워진다. 힘이 없는 용기는 객기여서 오히려 자신의 몸을 해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강한 만큼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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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올바른 정신이 부재한 채 힘을 휘두르면 그것은 남을 괴롭히는 폭력이 되고 만다. 올바른 정신으로 강인한 힘과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무예 수련의 길이다. 

 

힘이 없는 용기는 객기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에 불과하다. 당신도 정의롭고 싶은가? 그러면 오늘부터 자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무예를 수련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 편, 예고 

 

강자의 너그러운 여유에 대해 다뤄보겠다. 약한 자는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를 받지만 강한 자는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여유를 지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