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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위쪽으로는 중국, 왼쪽으로는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나라의 위치 상 순탄치 않은 역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어.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 다낭의 바나 힐은 프랑스 식민지 역사의 흔적이야. 프랑스는 1883년부터 베트남에 빨대를 꽂고 그들의 고혈을 빨아먹었어.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공격을 당하며 베트남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지게 되었지. 

 

베트남 국민들은 기대에 부풀었지만, 프랑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찰나 또 다른 제국주의 일본이 1940년에 베트남에 꽈리를 틀었어.

 

다행히 일본의 패망으로 베트남은 마침내 독립을 맞이하는듯 했지. 하지만 기쁨도 잠시! 프랑스가 동네 건달과 같은 논리를 들고 베트남에 한 발을 다시 슬쩍 밀어 넣어. 

 

“베트남은 원래(?) 우리 땅이었는데 얍삽한 쪽XX, 즉 일본이 잠시 임대하였던 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우리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꿀꺽 삼킬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바입니다.”

 

베트남 국민들도 더는 참을 수 없었고, 위선으로 무장한 프랑스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났어. 이렇게 시작된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까지 무려 9년 가까이 이어졌어. 훗날 최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베트남 앞에서 프랑스는 두 손을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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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위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라졌어. 

 

우리나라의 38선을 떠올리게 하는 북위 17도를 경계로, 위쪽은 호찌민이 이끄는 독립정부가, 아래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이 되었어. 북베트남은 공산당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하나되는 베트남이었어.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통일을 위한 치열한 전쟁을 하기 시작했고, 북베트남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 미국은 속이 타기 시작했어.

 

“이러다 아시아가 빨갛게 물들겠어요! 소련, 중국, 북한에 이어 만일 베트남까지 공산정권의 손에 넘어간다면 세계 패권을 노리는 우리의 목표에 큰 차질이 생깁니다.”

“맞습니다. 위대한 아메리카의 번영을 위해서는 베트남에 우리 말을 잘 듣는 꼭두각시 정부가 반드시 들어서야 합니다. 군산복합업체의 로비와 압박도 상당합니다. 베트남은 출고를 기다리는 신형 무기를 쏟아붓기에 적당한 곳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명분이 없군요. 의회의 승인도 얻어야 하고 그 머 국민여론이란 것도 신경도 좀 써야 하지 않겠소?”

“적당한 명분을 만들면 여론도 따라올 겁니다.”

 

얼마 후인 1964년 8월, 미국이 그렇게 원하던 전쟁 참전의 명분이 될 사건이 발생했어. 

 

속보입니다. 북베트남의 통킹만에 주둔하고 있던 우리 미국의 함선이 2차례나 공격을 받았다는 펜타곤의 발표입니다. 정부는 베트남의 선제공격에 몹시 분개하고 있는데요, 향후 대책을 함께 들어보시죠.”

“우리 미국은 평화를 원하고 있으나, 빨갱이 북베트남의 선제공격에는 강력히 대응할 것입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미국에 대한 도발에 응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다툼이 발생했을 때도 양자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잖아. 북베트남의 이야기도 들어보자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미국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선제공격도 자기들이 해서 우리는 응전을 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2차 교전은 아예 있지도 않았는데, 미국의 저의가 궁금합니다.”

 

하지만 북베트남의 주장을 귀담아듣는 나라는 없었어. 그들의 주장은 음모론으로 치부되었고, 진상조사 따위는 필요 없었어. 미국이 베트남과의 전쟁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야.

 

미국 행정부는 곧이어 의회를 압박하였고, 5일 만에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켰어. 이후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고, 죄 없는 베트남 국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희생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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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6월 13일, 뉴욕 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라 불리는 1급 보안문서를 입수한 후 특종을 터트렸어. 신문을 본 미국 국민들과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어.

 

“뭐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거라고?”

 

'펜타곤 페이퍼'에 따르면 미국은 전쟁 전부터 이미 베트남의 내부정치에 깊숙이 개입했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가득한데도 미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아. 우리가 사랑하던 JFK를 포함해 무려 4명의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를 기만한 거야.

 

이 문서는 미국의 국방부 장관인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에 의해서 작성되었어. 그는 46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방부 장관으로 JFK정부에 입각했는데, 입각 1년 전 직업이 포드자동차 사장이야.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나온 그가 전쟁의 참혹성에 대해서 뭘 알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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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에서 '통킹만 사건'의 지점을 보여주고 있는 로버트 맥나마라

 

펜타곤 페이퍼는 2013년 미국 정부의 치부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같은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 

 

이 기밀문서에 <뉴욕 타임스> 기자 대니얼 엘스버그도 작성 작업에 참석했었어. 문서가 완성된 후 그는 양심의 가책과 생존의 위협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했지만, 그의 용기 덕분에 감춰진 전쟁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 거야.

 

충격에 빠진 당시 미국 대통령인 닉슨은 연방판사에게 조용히 전화를 걸었어.

 

“언론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어요.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이런 짓을 저질러야 되겠습니까? 벌써 3회 차 기사가 나갔습니다. 4회 차 기사가 나오는 꼴을 본인은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 판사님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재판이 끝나면 식사 한 번 합시다.”

 

닉슨은 사법농단을 시도했고 법원은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어. 

 

하지만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기레기가 아니었어. 자칫하면 신문사가 폐간될 수도 있고 기자들은 직업을 잃을 수도 있었어. 상대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인 미국의 대통령이야.

 

“어떡할까요? 끝까지 갑니까? 아니면 여기서 꺾을까요?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독이 바짝 오른 상태입니다.”

“끝까지 가야죠. 대법원까지 가봅시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훗날 우리의 후배와 국민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언론이 무너지면 누가 권력에 맞서겠습니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줍시다.” 

 

그들의 용기에, 다른 언론사들까지 뜻을 함께 하기로 했어.

 

뉴욕 타임즈의 첫 보도 이후 보름 여가 지난 1971년 6월 31일, 휴고 블랙 판사가 이렇게 선고해.

 

“최종결과는 6대3입니다. 헌법 수정 제1조는 언론이 우리 민주주의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보호를 명기했습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통치를 받는 이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한때 동경하던 진짜 미국의 모습이 아닐까? 반전운동은 더더욱 거세어졌고, 닉슨의 지지율도 당연히 하락했어. 이후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을 당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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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 베트남은 마침내 1976년 7월 2일 통일된 국가를 세우지.

 


 

 

편집부 주

 

 필자의 책 "찌라시 한국사"에 이어

드디어 "찌라시 세계사"도 출간됐다.

 

필자의 본업과 사연에 대해선

아래의 기사를 참고하시라.

 

 43년 차 좌천된 추심원과 4년 차 작가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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