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갑자기 깜짝 뉴스가 들려왔다.
"오늘부터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2020년 개정 미사일 지침'을 새롭게 채택하게 됩니다. (중략)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과 연구소, 개인들은 기존의 액체연료뿐만 아니라 고체연료와 하이브리드형 등 다양한 형태의 우주발사체를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하고 생산․보유할 수 있습니다."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 관한 브리핑을 하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 연합뉴스
청와대에서 발표한 이 내용은 항공우주와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겐 정말 오랜 소망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하루쯤 지나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고체연료 로켓을 가지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더라?'
현재로선 딱히 정답을 말하기 어렵다. 제대로 판단하려면 고체연료 로켓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고체 부스터는 또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액체연료 로켓과 고체연료 로켓, 뭐가 다른가?
로켓의 사전적 정의는 작용과 반작용 원리를 이용한 추진기관으로 비행하는 비행체다. 간단히 말해 몸통 안의 연료를 태워서 그 힘으로 날아가는 물체를 뜻한다. 몸통 외부에서 연료를 폭발시켜 날리는 것은 흔히 총이나 대포라고 부른다.
로켓 연료가 액상 형태라면 액체연료 로켓, 고형이라면 고체연료 로켓이다. 당연히 출렁거리고 질질 새기 쉬운 액체보다 고체가 운반이나 보관이 간편하다. 이동과 은닉, 즉시 발사가 용이한 고체연료 로켓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고체연료 부스터는 몸통 안에 연료를 붓고 그대로 굳혀 제작한다. ⓒ NASA
일반론으로 설명하자면, 액체연료 로켓은 가격이 비싸지만, 효율이 좋다. 가격이 비싸다는 말은 개발과 제작이 어렵고 취급하기 나쁘다는 뜻도 된다. 반면에 고체연료 로켓은 몸통 자체가 연료통이자 엔진이라서 구조적으로 간단하고 큰 추력을 쉽게 낼 수 있는 대신, 연료 특성상 연소 효율이 조금 떨어진다. 문제는 이게 케바케라는 것.
미국과 러시아는 이랬다
액체연료 로켓은 군사용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우주발사체나 ICBM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액체연료 로켓이다. 지난해 전 세계 우주발사체 발사 건수 중에서 순수한 고체연료 로켓과 고체 부스터를 사용한 비율은 30%가 채 안 된다. 그마저도 소형 로켓이 대부분이었다.
▲구소련의 SS-18 ICBM, 일명 '사탄'은 전형적인 액체연료 로켓이다. ⓒ Roscosmos
"액체연료 ICBM이라 전술적으로 불리하다고? 그럼 더 많이, 더 크게 만들면 될 것 아닌가?"
(밀덕이 아닌 분들은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액체연료 로켓은 효율은 좋지만, 이동에 있어 어려움이 크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일로(미사일 발사 장치를 넣어 두기 위한 지하 설비)에만 넣어두는데, 그러면 표적이 되어서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소련 시절 ICBM 사일로를 잔뜩 만들었다. '100개 중 90개가 파괴되더라도 10개만으로 공격해서 박살 내버리겠다!' 이것이 러시아식 발상이다. 미사일의 개발 사상이 서방과는 전혀 다르다.)
로켓 강국인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액체연료 로켓을 선호했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지만, 아무래도 액체연료 로켓 기술에 익숙했으니 그런듯싶다. 우주발사체는 무조건 액체연료를 사용하고, 사일로에 고이 모셔둔 ICBM조차 대부분 액체연료 방식이었다. 야전에서 끌고 다녀야 할 미사일 정도나 고체연료를 썼다. 지금도 러시아와 중국의 우주발사체는 액체연료 방식이 주를 이룬다.
▲냉전 말기 미국의 피스키퍼 ICBM. 고체연료 로켓은 연기가 잔뜩 나는 게 특징. ⓒ USAF
그러나 미국은 조금 달랐다. 우주발사체는 효율을 극대화한 액체연료 로켓 엔진을 사용하되, 그로 인해 부족한 추력은 고체연료 방식의 부스터로 보충하기도 했다. 미국의 설계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과 일본도 고체 부스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사례 1) 소극적인 고체 부스터 사용
한때 미국을 대표하던 우주발사체는 록히드마틴의 아틀라스와 보잉의 델타 시리즈였다. 오랜 개발 끝에 미국이 정한 방향은 고성능 액체연료 로켓에 여러 개의 고체 부스터를 사용해서 발사 중량을 조절하는 것이다.
▲아틀라스-V는 고체 부스터를 0~5개 사용한다. ⓒ ULA
아틀라스-V 로켓을 예로 들면, 고체 부스터를 제외한 발사 비용은 약 1억 2,000만 달러 정도다. 이렇게 8톤 무게의 화물을 우주로 보낼 수 있다. 여기에 개당 500만 달러짜리 고체 부스터를 부착하면 2톤씩 운반 능력이 늘어난다. 최대 5개의 고체 부스터를 사용할 경우에는 18톤가량을 1억 5,500만 달러에 운반할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계산이 안 맞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는데, 고체 부스터를 부착하면 운반중량이 늘어나니까 페어링, 부착지지대 등도 함께 커진다. 그런 부가적인 가격도 반영을 한 것이다.)
고체 부스터가 없으면 운반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데 의외로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다. 왜 가성비 좋은 고체 부스터를 옵션으로 사용했을까. 이유는 화물 무게를 항상 최대 운반 능력에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틀라스-V는 18톤까지 운반할 능력을 지녔지만, 화물을 18톤보다 적게 보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18톤보다 적은 화물을 보낼 때는 고체 부스터 숫자를 줄여서 조금이나마 가격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액체연료 부스터를 사용하는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과 중국의 창정 5호. 두 나라는 전 세계 발사체 시장을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다. ⓒ Roscosmos / CNSA
비슷한 형태의 로켓으로는 미국의 델타-IV, 일본의 H-2A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도 부스터 개수를 조절하는 로켓이 있지만, 액체연료 부스터를 사용한다.
사례 2) 적극적인 고체 부스터 사용
앞서 소개한 방식은 어디까지나 고체 부스터를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 사례다. 그런데 고체 부스터를 메인 엔진처럼 쓰는 때도 있다.
발사 중량이 무려 2천 톤이었던 우주왕복선은 2개의 '고체연료부스터(SRB)'로 이륙 시 추력의 70%를 냈다. 개당 590톤이었던 역사상 최대 크기의 고체 부스터는 낙하산으로 회수하고, 값비싼 고성능 메인 엔진은 우주왕복선과 함께 착륙시켜 재사용했다.
▲우주왕복선과 아리안 5 ⓒ NASA / ESA
유럽의 아리안 5도 거대한 SRB가 추력의 80%를 낸다. 앞서 설명한 아틀라스-V의 고체 부스터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이렇게 큰 SRB는 제작비가 매우 비싼 편이다.
우주왕복선과 아리안 5의 공통점은 메인 엔진 연료로 액체수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액체수소 엔진은 연소 효율이 좋아도 추력을 높이기가 어렵다. 고성능 초고가 엔진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오랫동안 연소하는 게 이득이다. 그래서 이륙 초반에는 스스로 상승하지도 못할 만큼 연료를 잔뜩 탑재한다. 그 부족한 추력을 보충하는 것이 거대한 고체 부스터의 역할이었다.
사례 3) 완전한 고체연료 로켓
우주발사체를 고체연료 방식으로만 만들 수도 있다. 액체연료와 고체연료 혼합이 아닌, 순수한 고체연료 로켓은 장단점이 극명하다. 아까 케바케라고 했는데 고체연료 로켓을 부스터로 사용하면 가격상 메리트가 있으나, 정작 발사체 자체로 쓰는 경우에는 가격이 치솟는다.
▲각국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왼쪽부터) 유럽의 베가, 일본의 엡실론, 미국의 미노타우르, 미노타우르는 ICBM을 개조한 로켓이다. ⓒ ESA / JAXA / USAF
다시 말하지만, 고체연료 로켓의 최대 단점은 연소 효율이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위성궤도까지 가려면 큰 차이가 난다. 고체 부스터는 1단 구조만 사용하므로 비교적 만들기가 쉽다. 그러나 순수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는 4단 로켓인 경우가 많다. 액체연료 방식은 3단으로도 충분하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은 즉시 발사성이나 여러 가지 장점 때문에 고체연료 방식의 소형 우주발사체를 꾸준히 개발 중이다. 이 고체연료 발사체에 만약 폭탄을 탑재한다면, 그것이 바로 ICBM이 된다. 이제는 핵탄두가 작아지면서 수십 톤 무게의 ICBM으로도 충분히 지구 반대편까지 날릴 수 있다. 참고로 현존하는 미국의 전략 ICBM인 미니트맨-III가 36톤, 러시아의 토폴-M이 43톤 남짓이다.
왜 스페이스X는 액체연료 로켓을 사용할까?
뉴스페이스 열풍이 불면서 스페이스X를 비롯한 여러 민간 우주 기업이 새로운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액체연료 로켓 엔진을 개발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나마 쉬운 고체연료 방식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특히 중국의 몇몇 스타트업은 군부의 지원 아래 고체연료 미사일을 개조한 발사체를 개발 중이다.
▲스페이스X의 팰컨 헤비와 1단 부스터 재착륙 모습. ⓒ SpaceX
그런데 최근 대세는 '재사용 로켓'이다. 값비싼 액체연료 로켓을 역추진 착륙시키면 간단하게 연료만 다시 채워 재사용할 수 있다. 추력 조절과 재점화가 불가능한 고체연료 로켓은 낙하산으로나 회수해야 하고, 설령 재사용하려 해도 연료를 충전하는 작업이 복잡해서 경제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나을 지경.
스페이스X는 액체연료 로켓의 부족한 추력을 다수의 저렴한 엔진을 묶어서 해결했다. 엔진을 수백 개씩 찍어내다 보니 대량생산과 원가절감이라는 규모의 경제를 이뤘다. 반면 고체연료 로켓은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원가 비중이 커서 가격에 별반 차이가 없다. 우주발사체 분야에서 고체연료 로켓, 고체 부스터의 활용성이 점차 줄어드는 이유다.
다음 편, 예고
이번 편은 고체연료 로켓의 특징을 설명하는 코너였다. 다음 편에서는 '고체연료 사용 제한 해제'라는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의 의미와 우리가 고체연료를 어느 정도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을지 진단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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