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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고체연료 로켓과 부스터를 간략히 소개했다. 이번 편에선 고체연료의 허용으로 과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단해보자.

 

 

'발사체'란 무엇인가?

 

한미 미사일 지침이 맺어진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탄도미사일 기술의 확산을 막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주발사체는 태생적으로 탄도미사일 기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주발사체를 독자 개발할 실력이면 장거리 미사일이나 ICBM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우주발사체 개발에 스스로 제약이 있었고, 경계심을 떨쳐내기 위해 '평화 목적'을 강조해야만 했다. 사실 '한국형발사체(KSLV)'를 개발하고 있는 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얼마 전까지 우주발사체를 '발사체'라고 불렀다. 로켓이란 단어가 갖는 불순한 의미를 희석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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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탄도미사일은 슬그머니 '미상의 발사체'로 명칭이 바뀌었다. ⓒ 조선중앙통신

 

그런데 북한이 계속 탄도미사일과 우주 로켓을 쏴대면서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불식시키고자 언제부터인가 국방부가 슬쩍 끼어들어 "북한이 미상의 발사체를 발사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항우연이 '발사체'란 단어를 평화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면, 국방부는 여기에 무임승차하여 북한의 발사체가 위협적이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한 셈이다.

 

그렇다면 발사체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발사체(launch vehicle)'란 탑재물을 지구 표면에서 우주로 옮기는 데 사용되는 로켓을 뜻한다. 이것은 인공위성 운반용 로켓과 ICBM 등을 모두 포괄한다. 더 넓은 의미로는 탄도미사일이 포함되기도 한다. 굳이 구별하고 싶었던 기관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군사용이 아닌 우주 로켓은 '우주발사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솔직히 우주발사체 중에서 군사용 위성을 실어나르지 않는 로켓을 찾기 어렵다. 더 나아가 군사용과 민간용 구분이 애매해진 실정이다. 그저 폭탄을 탑재했느냐, 아니냐로 구별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고체연료 로켓 사용 허용의 의미 1 : 항우연과 국과연

 

항우연이 개발 중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연료로 사용한다. 최초의 ICBM이자 우주발사체였던 구소련의 'R-7'도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사용했다. 액체산소는 극저온 저장성 산화제라서 ICBM용으로는 다소 불리하다. 중국이나 북한은 상온 저장이 가능한 유독성 연료 조합의 발사체를 사용하고 있다.

 

만약 항우연 기술진에게 "한국형발사체는 ICBM 개발과도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다. 절대 평화 목적이고, 그래야 한다. 그것이 미국 영향권에 있는 동맹국의 숙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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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누리호의 엔진시험발사체 발사 장면. ⓒ KARI

 

미국이라고 바보는 아니다. 이미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민주주의 산업국가가 과학, 상업 목적으로 우주발사체를 독자 개발하려는 것을 계속 막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온 절충점이 군사용으로 사용하기 애매한 액체연료 로켓 개발을 용인한 것이다. 물론 기술 개발에 도움이라곤 한 톨 안 주면서 시시콜콜 참견했다. 오죽하면 한국형발사체 초기 개발진의 회고록에서 "개발하다 보니 반미주의자가 안 된 연구원이 없더라"라는 투정까지 나왔을 지경이다.

 

우리나라에 로켓 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다. 항우연과 국과연은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다. 양측 연구진 간에 교류도 있을 테고,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다.

 

그동안 항우연은 액체연료 방식의 발사체 개발에 매진했고, 국과연은 당장 군사용으로 쓸 수 있는 고체연료 발사체 개발에 집중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될수록 우리나라의 고체연료 탄도미사일 개발 범위는 차츰 넓어졌으며, 지금은 중거리 미사일을 독자 개발할 단계까지 왔다. 물론 미국이 무제한 허용한다면 바로 장거리 미사일도 개발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평화 목적의 우주발사체와 ICBM 기술은 동전의 앞뒷면과도 비슷하다. 북한은 ICBM 개발을 위해 테스트베드로 우주발사체인 '은하 3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역순이 될 전망이다. 우주발사체를 먼저 개발하고, ICBM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든 다양한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역량까지 보유할 수 있다.

 

 

고체연료 로켓 사용 허용의 의미 2 : 외교안보적 시각

 

지금부터는 사견을 곁들이려 한다. 이번에 미사일 지침 개정을 발표한 사람이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과학 분야 발표라면 과기정통부, 혹은 과학기술보좌관 명의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국가안보실에서 발표했다.

 

발표 직후 여러 매체에서 우주발사체 개발에 청신호라며 엉뚱하게 군사위성 발사체라든지, 소형 군집 정찰위성 계획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금껏 항우연이 한국형발사체 개발을 해왔던 사실과도 배치된다. 이는 국과연 주도로 군사용 우주발사체, 또는 고체연료 로켓 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큰 그림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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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우리나라가 고체연료를 사용한 장거리 투사수단을 보유하게 된다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국가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북한 따윈 이미 발라버리고도 남을 만큼 미사일이 넘쳐난다는 일부 유튜버들의 주장을 인용하면 그렇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상치 않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에게 "소국이 대국을 거스르면 되겠느냐"라며 한 방 먹었던 우리로서는 미국의 전략 무기를 직접 도입하는 것이 크게 부담된다. 그러나 한국형발사체 개발이나 민간 기업의 시도로 기술을 축적한다면 중국도 나설 명분이 없다. 미국은 이 점을 철저하게 이용한 듯싶다. 물론 한국도 숙원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다.

 

"고체연료 로켓 개발은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외교안보 카드가 된다."

 

미국이 미사일 지침 개정을 허용한 것은 중국에 보내는 외교적 압박카드가 된다. 그로 인해 중국이 우리나라를 또다시 겁박할지, 아니면 최대한 실리를 살릴 수 있을지는 고스란히 정부의 몫이다.

 

 

한국형발사체에 고체 부스터의 채용 가능성은?

 

청와대 발표 직후, 한국형발사체 개발의 핵심 기술진은 "고체 부스터 허용이 당장 한국형발사체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 같다. 지금 설계로는 부스터 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은 분명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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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발사체 로드맵. 고체 부스터 사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절의 발상이다.  ⓒ KARI

 

새로운 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과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미국의 아틀라스-V처럼 고체 부스터 옵션을 처음부터 반영한 로켓이라면 모를까,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당장 부스터를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사용하려면 설계를 다시 해야 하고, 개발 일정이 적어도 수년은 더 지체될 것이다. (첫 번째 누리호 발사 일정은 예상치 못한 기술적 난제로 내년 초에서 연기된 상태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본다면 차기 한국형발사체에 맞게 고체 부스터를 따로 개발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보유한 가장 큰 고체연료 로켓은 '현무-4', 이륙 중량이 10톤 미만으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다. 그런데 200톤 무게의 한국형발사체에 적당한 고체 부스터라면 적어도 20~30톤은 될 것이다. 그걸 화물 중량에 맞춰 2~4개 정도 부착하면 된다.

 

순전히 기술적 측면으로는 액체연료 로켓에 고체 부스터 옵션을 추가해서 운반 중량을 2배까지 무난하게 늘릴 수 있다. 누리호는 최대 1.5톤 무게의 극궤도 위성을 띄울 수 있는 성능이다. 현재 군 당국이 '425사업'으로 배치를 추진 중인 정찰위성은 1톤이 채 안 돼서 지금 누리호로도 충분히 발사 가능하다. 하지만 달이나 화성 탐사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순수 과학 목적의 탐사선을 독자 로켓으로 발사하기 위해선 고체 부스터를 채용한 누리호-II의 개발은 거의 필수적이다.

 

425사업 : 대한민국이 킬 체인을 위해 5대의 군사용 정찰위성을 발사하는 사업.

킬 체인(Kill Chain) : 한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해 KAMD와 더불어 2023년까지 구축하기로 한 한미연합 선제타격 체제로 30분 안에 목표물을 타격한다는 개념.

 

아예 순수한 고체연료 로켓을 개발하는 방안도 있다. 이미 그러한 카드까지 염두에 둔 추측성 기사들이 나왔다. 일본의 엡실론 로켓을 두고 사실상 ICBM이라며 경계의 눈길을 보냈던 우리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이번 발표 이후에 아직 아무런 방침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사용으로 사용될 가능성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정말 다양한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다. 공군의 경우, 독자적인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보유하고 싶어 한다. F-15K 전투기가 성층권까지 치솟으며 초소형 위성을 발사하면 어떨까? 이런 구상은 미국에서도 나왔다. 긴급 상황에서 즉시 위성을 띄워 통신 중계나 감시 활동을 한다는 것은 군 당국 입장에선 환상적인 그림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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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SAR 정찰위성 탑재 예시도. 발사체로 누리호를 예상한 듯 20개의 위성이 탑재되어 있다. ⓒ 국방과학연구소

 

새로운 고체연료 발사체로 무게 66kg 이하의 초소형 SAR 위성을 동시에 여러 대 띄운다는 발상이 어느새 퍼진 것 같다. 이것도 솔직히 미지수다. 위성 무게가 66kg이라면 ICBM으로 전용할 시에 100kg이 넘는 탄두를 실을 수 있다. 만약 10대의 초소형 SAR 위성을 운반하는 고체연료 로켓이라면 ICBM이나 마찬가지다. 대충 계산해보면 러시아의 토폴-M과 비슷한 수준의 고체연료 다단 로켓이 된다. 주변국들이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향은 항우연이나 국과연, 또는 방산기업을 통해서 진짜로 고체 부스터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다. 누리호는 초소형 SAR 위성을 한 번에 20대가량, 고체 부스터까지 장착하면 40대는 무난할 것 같다. 일설에는 동시에 64대를 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도 한다. 그럼 부스터가 예상보다 더 커야 한다. 대형 부스터를 개발하면 훗날 1톤 이상 운반 중량의 고체연료 로켓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앞서 설명했듯 고체연료 로켓은 고체 부스터와 달리 가격이 비싸다. 굳이 운반능력이 떨어지면서 가격만 비싼 고체연료 로켓을 개발하느니, 누리호를 개선한 후속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활용성도 높은 편이다. 비록 개발 비용만 해도 수천억 이상 들어갈 수 있지만, 고체연료 발사체와 이원화 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단 낫다.

 

 

민간 용도로 활용 가능성

 

또 다른 가능성은 청와대 발표문에서도 언급했듯, 민간 기업이 고체연료 방식의 로켓 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스타트업 중에는 액체연료 로켓을 개발 중이거나, 하이브리드(고체연료 + 액체 산화제) 방식을 개발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발사체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독자 발사체 개발에 나선 기업의 90%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현실일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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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엑스페이스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콰이저우(快舟)-1A호' 발사 장면. 엑스페이스(ExPace)는 국영 발사체 기업인 중국항공우주과학산업공사(CASIC)가 전액 출자한 상업용 로켓 부문 자회사다. ⓒ CASIC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부가 발사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면 어려운 액체연료 방식보다는 고체연료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도는 방산 분야와도 관련이 깊다. 여러 민간 기업이 고체연료 로켓 기술을 보유한다면 훗날 고체연료 ICBM을 개발하는 데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표면상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 고체연료 로켓을 마음껏 개발해도 된다고 발표했지만, 마땅히 발사할 장소조차 없는 현실이다. 작은 연구용 로켓이라도 허가 없이 쐈다간 한미연합군의 레이더망에 걸려 난리가 난다.

 

우리나라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초보나 다름없다. 아직 한국형발사체를 성공하지 못했고, 국민적 관심도 저조한 것이 현실. 그러나 시작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해외의 저가 발사체들이 인기를 끄는 시점에서 굳이 한국형발사체가 왜 필요하냐면,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유지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포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발사체는 개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꾸준히 발사해서 기술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주 탐사나 정찰위성 발사는 그 명분이 된다. 기술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우는 큰 차이가 난다. 그럴진대 고체연료의 자유로운 이용은 가능성을 넓혀서 관련 분야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는 호재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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