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8.목요일
아홉친구
참회합니다.
저는 딴지일보에 글 몇 개를 송고했읍니다. 한때 직원만 40명이 넘었다며 설레발치던 때도 있었으나, 몇번 삽질을 하더니 어느덧 듣보잡으로 치닫던 매체인지라, 자애로운 마음으로 초고급 정보로 무장된 문장 몇 개 떨구어주었읍니다. 글을 받던 그들의 눈망울은 얼마나 초롱초롱하였는지 모릅니다. 오랜 몰락으로 이제 비굴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감히 비교조차 되지 못하겠으나 이 그릇된 사회 전체를 정화시킨 누군가의 은혜를 떠올리면 이들쯤이야 미약한 저의 힘으로도 능히 감화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읍니다.
하지만 아니었읍니다. 이들의 비굴함은 중딩쯤이면 다들 아는 국공합작의 전초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때를 기다렸던 것뿐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았읍니다. 지금 수많은 찌질이들이 몰려들고 있읍니다. 아마도 노란 티셔츠를 입고 노란 국물을 토해내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딴지가 다시 고기를 굽고 있는 냄새를 맡은 듯 합니다. 누군가는 소재조차 심히 불쾌하실 지 모르나, 감히 말씀드리면 불교 설화 중에 거지가 쥐고기를 구워 파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장자(長者)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읍니다.
생긴 모양이 쥐고기 장수라 해도 어울릴 총수란 자는 요즘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불온한 냄새를 풍기고 있사온데, 말끝마다 쥐를 들먹이니 이 어찌 쥐고기 구워 부자 되려는 심보와 다르겠읍니까. 늘 조선일보를 즐겨 읽는 저로선 대체 왜 그가 쥐쥐 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제가 쥐띠인지라 쥐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얘기가 결코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피아노 소리로 들리지 않았읍니다. 이들이 쥐쥐 거리며 쥐새끼를 욕하는 짓은 어떤 속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한때 쥐 잡자고 설치던 때가 있었으나 이는 보릿고개가 만연하던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지만 저들을 감화시키기 전에 저부터 참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스스로가 쥐를 험하게 들먹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입니다. 어느 신문에서 재벌들의 역정을 다룬 기사를 엮어 책으로 낸 것을 보았읍니다. 저는 그중 어느 인물을 인상 깊게 보았읍니다만 순간 쥐새끼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읍니다. 그리곤 별 생각 없이 누가 쥐를 닮았더라고 혀를 놀렸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그가 누구인지는 청문회에 온양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순전히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었을 뿐 쥐가 창고를 아작낸다거나 남이 애써 쌓아놓은 곡식을 말아먹는다는 행태에서 그를 판단한 건 아니었읍니다. 물론 인상에서 곧 행동을 읽을 수 있다는 이들도 있으며 쥐들이 제 가진 것을 능력없는 쥐들에게 베풀어 환원시킨다고 하는 자들도 있읍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근거없는 얘기를 전혀 믿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진정 무지몽매한 이들이 많아 그런 말을 믿고 있읍니다.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사람으로 변해 주위를 속인다는 옛 이야기를 아십니까.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입니까. 손톱 먹고 쥐가 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둘째치고 쥐가 어떻게 감히 사람의 행동을 따라한단 말입니까. 쥐가 영특하다 한들 사람에게 비할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쥐가 무슨 변화를 부려도 쥐새끼는 쥐새끼이니 아무리 쥐가 쥐새끼가 아닌 쥐인간이 된다 할지라도 종내는 쥐새끼처럼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본분이 쥐새끼이며 겉만 사람 행세를 하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쥐새끼짓을 하는 쥐새끼를 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쥐를 쥐라 보지 못하는 정신 없는 작자들을 망신주기 위함이 아니겠읍니까. 진짜 죄는 쥐에게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섣불리 쥐를 욕한 자들은 마땅히 참회해야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시도는 일찍부터 시작되었읍니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 이게 무슨 어이없는 노래인가요.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을 일요일 저녁에 케이블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틀어대던 노래였읍니다. 왜 개도 소도 참새도 아니고 하다못해 파리도 아닌 쥐란 말입니까. 쥐를 잡아야 할 아무런 근거와 명분이 없음에도 한 마리! 세 마리! 내뱉으며 킬킬대는 꼬락서니란 오직 쥐를 욕보이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이겠읍니까. 다행히 그 프로그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읍니다. 예전 아이템을 반복적으로 삶아먹기 즐기는 방송들이 이상하게도 이 짓만은 재활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쥐를 험히 들먹여선 안된다는 참회가 결코 제 고독한 작업만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날 참회라면 시작도 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어느날 저는 길거리를 걷다 무진장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백주대낮에 어린 여자애들이 소리 높여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노노노노노~
너무 깜짝깜짝 놀란 나는 오오오오오~
너무 짜릿짜릿 몸이 떨려 쥐쥐쥐쥐쥐~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이때 새삼스럽게 깨달았읍니다. 겉으로는 말랑말랑한 언사만 일삼다가 카메라만 꺼지면 선동을 일삼던 롹커들을 내친 것은 진실로 혜안이었던 것입니다. 뜻도 모르고 쥐새끼만 나불거리던 이들은 언감생심 짐작도 못하였겠으나, 일찍이 목자득국요(木子得國謠)라 하여 이씨가 왕이 된다는 고려말의 참요(讖謠)가 바로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음흉한 이들은 어쩌면 먼 훗날 국어교과서 고문학 파트에서 이런 말을 덧붙여 참고서로 팔아먹을지 모릅니다.
“…화자가 ‘반짝반짝 눈이 부셔’하는 이유는 그 다음에 이어진 ‘노’로 설명할 수 있다. 화자는 ‘노’를 다섯 번이나 반복하면서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는데, 이는 앞에 붙은 ‘너무 반짝반짝’과 호응하여 독자 혹은 청자로 하여금 일종의 긍정적 흥분 상태를 야기시킨다. ‘노’는 얼핏 영어No의 의미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이 경우 부정의 의미가 생기기 때문에 ‘눈이 부시다’는 상태와 호응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참요가 불렸던 당시에는 ‘노’란 단어로 연상할 수 있는 어떤 긍정적 의미가 따로 있었다고 해석된다.
화자의 흥분 상태는 다시 2행에서 ‘너무 깜짝깜짝’으로 형용되고, 여기에 ‘오오오오오’란 전세계 공통의 감탄사를 활용해 그 감정을 일반화시킨다. 그런데 이 흥분은 갑자기 3행에 이르러 급격하게 ‘공포’로 돌변한다. 화자는 ‘쥐’를 다섯 번이나 강조하며 ‘짜릿짜릿 몸이 떨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여기서의 몸이 떨리는 상태 역시 긍정적인 오버라고 해석하지만, 그렇다면 ‘쥐쥐쥐쥐쥐’가 아니라 ‘돈돈돈돈돈’이나 소녀들에게 특화한 ‘옷옷옷옷옷’이라 불렸을 것이다. 따라서 이 참요는2행의 ‘오오오오오’를 사이에 놓고 1행의 ‘노노노노노’와 3행의 ‘쥐쥐쥐쥐쥐’가 각기 긍정적 흥분과 부정적 공포의 대립적 구성을 이룬다. 다만 현재로서는 ‘쥐’의 부정적 공포는 짐작 가능한 데 비하여 ‘노’의 긍정적 의미는 다각도로 해석되고 있다.”
참고할 시각자료
노래를 부른 소녀들의 신원은 오늘날 확인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헐벗은 상태임을 지적하며 당시 백성들의 헐벗고 굶주린 참상을 비꼬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
이렇게 쥐를 근거없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노래임에도,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들을 사탕발림으로 꼬드겨 널리 퍼뜨린 자들은 사디즘인지 마조히즘인지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노래를 막지 못하였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생각없이 ‘쥐쥐쥐쥐 베베베베베베’ 흥얼거리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쥐를 베라니, 한 마리 무릎꿇은 소도 감히 병들었다 해선 안될 시대에 이 무슨 생명경시란 말입니까. 미디어의 세뇌란 실로 무섭습니다.
참회가 단순한 돌이킴이라면 의미가 없는 법. 저는 이제 그 대안을 말하려 합니다. 쥐를 들먹이는 자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쥐에게 그 책임이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미디어법을 만들어 이들의 쥐놀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당장 저 요사스럽게 쥐쥐거리는 아이들의 입을 막아야 합니다. 수많은 오덕들이 들고 날뛰며 키보드워리어를 자처하겠으나 곧 한듣보나 방과후에 정신이 팔릴 자들이니 신경 꺼도 됩니다. 그들 대부분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무슨 노래인지 몰라도, ‘소라 소라 (***) 소라’로 바꿔 쓰면 빈칸의 말을 대번에 알아채 서커스를 불러제낄 자들이라 incoming 폴더의 7년치 동영상을 쉬 찾아내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케이블 TV에서 한갓 게임 중계를 한다며 ‘쥐쥐’를 외치는 이들이 있읍니다. 쥐를 패배의 상징으로 만든 근거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인데도 말입니다. 당장 블리자드에 공식 항의하여 gg GG zz 지지 쥐쥐 ㅎㅎ 등의 단어를 금칙어로 만들고, 경기 패배 선언은 ‘제가 졌습니다’로 또박또박 쓰게 하여 a하나로 세팅박에 몰수패를 주었듯 얄짤없이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철모르는 십대들이 채팅 창에 ‘그렇쥐’ ‘아니쥐’ ‘하든쥐 말든쥐’ 등의 언사를 쓰는 것도 좋은말 고운말 쓰기로 유도하여야 하겠읍니다. 이런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해선 촘촘한 필터가 필요합니다. IT 테크놀로지는 경제 발전을 좀먹는 환상이니 우리들로선 이해도 못할 소프트웨어 기반 랭귀지 필터링 솔루션 따위는 무시하고, 상징적 의미에서 공사판에서 쓰는 최고 품질의 시멘트 필터를 각 컴퓨터에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참회와 대안은 결코 무지막지한 일방적 강행도, 다양성의 희생도 의도하지 않습니다. 표준어가 합헌이라는 판결이 있음에도 오늘날 사회는 점차 사투리 역시 우리말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읍니다. 그것이 독재 체제와는 다른 다양성이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이는 이미 각하께서 몸소 두 차례에 걸쳐 실천하신 바이며,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저 또한 어린 시절 철석같이 배운 문법대로 이 글에서 썼을 뿐입니다.

무지한 이들이 이를 조롱하는 줄로 압니다. 그들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없지도 않지만, 사투리와 표준어의 경계가 불명확하다면 구시대의 문법이 굳이 잘못이라 지적받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각하께서 공적인 방명록에 글을 남기신 건 시대를 아울러 우리말은 다 우리말이라는 높은 뜻이 있어서입니다. 이를 모르고 비난을 일삼는 짓이야말로 획일화의 오류를 따르는 게 아닙니까. 딴지 같은 철모르는 매체에서 각하를 가카라고 연음화시켜 부르더라도 너그러이 용서받는 뜻을 아직 세상 사람들은 모르고 있읍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 마무리짓자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이 있읍니다. 한자에 약한 아해들을 위해 풀이하자면, 대단한 일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 것 아니었단 뜻입니다. 그러나 상황을 보면 쥐 한 마리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여 모두를 몰아내더라는 뜻도 되겠읍니다.
호랑이도 늑대도 공주도 시민도 아무 대꾸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쫓겨나는 꼴을 떠올려 보십시오. 제가 쥐띠라서가 아니라 쥐 자체가 아주 위대한 동물인 것입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염치로 쥐를 망령되이 욕한단 말입니까. 이에 한점 부끄럼 없이 제 스스로 거듭 참회하며,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상식이 있다면 이제 뱀 혓바닥처럼 간교히 쥐새끼 놀리는 짓은 그만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어서, 어서 참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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