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27.수요일
아홉친구
지난 12월 29일,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그러나 前회장이라곤 누구도 믿지 않겠지)이 특별 사면복권됐다. IOC위원으로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건희 전 회장은 2009년 8월에 징역 3년, 집유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바 있었다. 공식석상에 모습 보이기를 꺼리는 그도, 지난 16일에 청와대에서 있었던, 유치 성공을 다짐하는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는 모처럼 얼굴을 보였다.

사진 왼쪽의 한승수 전 총리는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오른쪽은 한덕수 현 총리. 좌우로 전현직 총리가 있어도 꿀리지 않는 포스다.
그러나 압권은 셋을 한꺼번에 꼬나보는 언니…
그러나 이 글은, 기업가에게 관대함이 지나쳐 원칙 이고 뭐고 없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다. 필자는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 복권 조짐이 보였을 때, 김진선 강원 도지사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찬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갈등 비슷하겠지만. 그런 마음이 든 원인은, 필자가 강원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지역이기주의의 소산.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1시간 반 걸린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영서와 영동으로 나뉘는데, 영동은 강릉 속초 동해 등지이고, 춘천이나 원주는 영서에 속한다. 영서 지역은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인지 사투리가 거의 없다. 가끔 희화화되는 강원도 사투리는 영동 지역과 철원 양구처럼 북에 가까운 지역에서 쓰지만, 그것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사투리로 강원도의 지역색을 드러내기엔 해당 지역이나 인구수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절대수를 따져도 그렇다. 필자가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원주 인구가 17만이란 얘기를 했었다. 그땐 원주시와 원성군이 따로 분리돼 있던 시절이다. 2009년 현재, 원주시 인구는 30만이 조금 넘으며, 예전 원주시 지역만 따지면 25만이 좀 안된다. 비율로 따지면 대폭 상승이지만, 절대수치상으론 20년 동안 늘어난 인구가 채 10만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 원주시가 강원도에선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다. 겨우 30만이.
| 세대수 | 인구수 |
강원도 | 606.950 | 1.521.467 |
시지역 | 429.205 | 1.095.310 |
춘천시 원주시 강릉시 동해시 태백시 속초시 삼척시 | 101.758 116.514 86.939 37.512 21.131 35.645 29.736 | 264.557 306.350 220.097 96.241 51.285 85.349 71.431 |
군지역 (홍천,횡성,영월,평창 등) | 177.746 | 426.157 |
강원도청 강원통계정보, 2008년
예전엔 강원도 인구가 200만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오히려 줄어든 모양이다.
원주의 경우 1군 사령부가 위치해 있고, 또한 그 예하 부대들이 시의 상당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육군본부에 가면 대령이 커피 타고 소령이 빗자루 든다는 얘기가 있는데, 1군 사령부도 중장이 사령관이라 위상이 만만치 않다. 또 1군 사령부 바로 맞은 편에 캠프 롱(Long)이, 거기서 횡성 방향으로 10분쯤 가면 공군부대인 캠프 이글(Eagle)이 있다. 미군 부대가 두 개나 들어와 있는, 인구 30만의 도시가 또 있는지 궁금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군 부대의 위상이 높았고 지역 사회에 끼치는 경제적 효과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군 부대의 제약 때문에 기업의 설립이나 투자가 제한되는 악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가령 원주에 있는 군수사령부는 그 특성상 철도가 연결돼 있어 기차에서 바로 군수물품을 하역할 수 있는데, 일반 도로가 군 부대 내부를 지나갈 수 없기 때문에 철도 반대편으로 가는 교통로는 모조리 우회로가 돼버렸다. 그래서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군수사령부 뒤쪽의 땅은 거리상으론 시내 중심부와 가깝지만 여전히 농사나 짓고 있다. 그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고 건물을 지으려 해도 군사상 고도제한이 걸린다고 들었다.
원주의 경우 군사시설 때문에 그렇지만, 필자는 이런 상황이 강원도 전체와 맞닿아 있다고 여겨진다. 수자원 오염 때문에, 자연환경 보전 때문에 등의 갖가지 이유로 강원도의 상당수 지역은 자체적인 개발이 막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강원도 지역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공부를 하든 취업을 하든 아님 깡패짓을 하든, 고등학교 정도 마치면 대개 타지로 떠난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강원도에는 온갖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언제나 그랬다. 강원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경상도가 대접받고 전라도가 푸대접 받는다면, 강원도는 무대접이라고. 관심조차 없다는 소리다. 선거 때 감언이설을 떨다가 모른 체 하는 건 어느 정권이고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강원도에는 새바람이 잘 분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경상도 정권이 있고, 민주당으로 통칭되는 전라도파가 있다면, 충청도랑 한묶음으로 뭔가 세를 형성해보자는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JP가 출범시킨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그랬다. 그 전에는 고 정주영씨가 그랬다. 정주영은 강원도 출신이었으니 더더욱 믿음이 갔다. 정주영의 국민당은 아주 쉽게 강원도를 휩쓸었었다.
하지만 휩쓸어봤자 대구 하나보다도 표가 적다, 강원도는. 결론은 뻔한 거다.
출처/ 부산일보 (링크)
그러니 힘 있어 보이는 쪽에 빌붙는 현상이 당연시된다. 지금 강원도는 한나라당 텃밭처럼 여겨진다. 따지고 보면 강원도 사람들이 한나라당 좋아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확률상 이쪽에서 얻어먹을 콩고물이 좀더 많고, 개발 잇권 하나라도 더 챙겨올 수 있을지 모른다. 강원도의 국회의원치고 이런 ‘지역 일꾼’의 의무를 지지 않은 자는 없다. 말이 좋아 지역 일꾼이지, 앞잡이짓 해서라도 먹을 거 얻어오란 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강원도민은 뚝심 있는 감자바우가 아니다. 오히려 눈앞의 이익에 혹하는 쪽에 가깝다. 어느 누구든지 투자해주고 개발 여건을 개선시킨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이다. 긴 안목으로 시대의 사명을 보고, 이성적으로 시비를 가리고, 좌우와 지역갈등 해소에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런 따위는 강원도민에게 사치다. 강원도 어느 도시도 경제적 기반이 충실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민들은 다들 일자리 찾아 큰 도시로 떠나야 하는 판국에, 그따우 소리는 먹고 살만한 경상도 전라도에서나 하는 얘기로 들리는 게다.
작년엔 이런 일이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첨단의료복합도시 선정과 관련해 원주시는 막판에 충북 오송에 밀려 탈락했다. 당시의 반응은 이랬다.
“강원도 무대접” 중앙 정부 성토
11일 열린 도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책협의회에서는 중앙정부의 ‘강원도 무대접’에 대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김진선 지사는 모두 및 마무리 발언을 통해 “11년간 지사를 하면서 힘있고 목소리가 큰 지역에 비해 강원도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전제한 뒤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경우, 가장 중요시 고려돼야 할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당위성이 배제돼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또 “경제자유구역의 경우, 대구?구미 등 영남지역은 내륙지방까지 지정해 주는 반면 동해안에 대한 배려는 미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KTX 교통망이 구축된 영호남권과는 달리 원주∼강릉 철도는 설계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은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는 등 중앙정부가 강원도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첨복단지 평가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던 이계진 국회의원(원주)은 “양심에 구멍난 정치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더욱 거세게 한나라당 지도부를 몰아세웠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대형국책사업의 최종후보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공정성도 확보하지 못하는 정부를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지역의 처절한 현실은 외면한 채 반영해 주지도 않을 예산만을 논의하는 등 실효성 없는 정책협의회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뒤 “수도권은 지하 50m까지 도로를 만들어주면서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숙원사업인 원주∼강릉 철도는 단선으로 축소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강한 어조로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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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하나다. 강원도에 표가 적기 때문. 이념하곤 아무 상관 없다. 힘 있는 자에게 빌붙는 속물 근성이 강원도에 있다는 거,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필자가 이계진 의원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간 보여준 행태론 비난할 게 더 많지만, 저 심정은 충분히 공감한다. 집권당이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저런 상황은 결국 마찬가지가 아니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필자는 부인하지 못할 거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보수 세뇌교육 받았던 기억은 필자에게도 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논리는 간단했다. 전라도 애들 밀어주면 자기 것 챙기기 바쁠 거라고, 새로 생기는 사업은 전부 전라도에 몰아줄 거라고 말이다. 동의할 순 없었지만, 이해는 됐다. 옛날 어른들이 다들 그렇듯이, 자기 경험 말고는 아무것도 믿으려 들지 않았던 아버지는 전라도 기반 정권이 어떻게 정책을 취할 지 경험한 바가 없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다음엔 조중동을 근거 삼아 날파리 정치꾼들이 으시대고 다닌다며 한탄했다. 사실상의 정권교체론 처음이었으니, 강원 지역의 야당 인사들이 그간 주류 정치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날파리’로 여겨졌겠거니 생각했지만. 또한 다들 그러듯이, 필자도 아버지의 고집스런 생각을 바꾸진 못했다.
그러나 실익을 좇는 강원도민의 정서가 아버지의 생각에 묻어있듯이, 필자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을 한편 기대했던 게다. 딴지에 글 쓰는 놈이 이런 생각한다는 거, 이율배반이다. 그래서 좀 괴롭다.
필자가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웃사이더에겐 아웃사이더의 역할이 있다는 거다. 현재의 도시 문명이 지속되는 한, 강원도는 결코 대구보다 표가 많을 수 없을 것이며, 현실 정치판에서 충청도처럼 캐스팅보트 따위를 쥘 수가 없다. 대선 때 춘천 원주 강릉을 돌며 표를 호소하느니 서울 신림동 가는 편이 훨씬 낫다. 수혜 인구의 차이가 명백하니 SOC 사업의 우선순위는 늘 남에게 밀릴 것이다.
강원도는 결코 주류에 설 수 없다. 누가 애써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한, 아웃사이더는 늘 잠자코 있어야 한다. 이 순간 강호동 옆에 얌전히 서 있는 김C가 생각나는 건 우연인가.
때문에 아웃사이더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인가, 왜 여기 있는가라고. 그 물음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아웃사이더임을 자각하지 못하면, 존재 이유를 잃고 남에게 기생하는 운명을 면할 수가 없다. 사회 주류 인물로 입신양명하는 게 아니라, 아웃사이더로서 홀로 서야 한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법도 원칙도 없는 사면 복권을 보면서 환영하다니. 아직도 입신양명의 마음이 남은 겐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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