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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수요일


딴지담임목사 미쉬파트


 







편집자 주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미쉬파트'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임하시어 충용무쌍, 불기둥 등의 타락한 필진들을 계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미쉬파트입니다. 지난 번 [헌금]에 관련된 글([종교]기독교의 헌금이 문제가 되는 근본적 이유 )이 메인이 올라온 후에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달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만큼 기독교에 대한 반응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뜨겁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쪽 분이시든 나름대로 할말이 많았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기독교(구체적으로는 개신교)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신자에게든 비신자에게든 나름대로 이것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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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음 글은 [교회의 직분 제도]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댓글을 달아 주신 분들이나 게시판에 저에게 질문 하신 분들 가운데 [기독교의 구원]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고 또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여기에 관련된 글을 먼저 써보려고 합니다. 성경이야기도 나오고 이런 거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 역시 어떻게 보면 교회개혁과 일정부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특히 예수천국=불신지옥 이라는 슬로건과 많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폐해를 주장하시는 분들 가운데 성경 자체가 이미 틀려먹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특히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다 죽이라고 하고 있고 심지어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 도시 자체를 쓸어 버려라하는 명령까지 나오며 이스라엘이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살인과 약탈은 기독교의 신인 여호와 자체가 이미 틀려먹은 신이기 때문인데 그까짓 것을 믿어서 당췌 무슨 좋은 게 있겠냐는 것이죠.


 


또한 이런 신앙때문에 끊임없이 다른 종교와 쌈질하고 죽이는 것은 기독교 자체가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있어 십계명에서조차도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고 할 정도로 편협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런 잡신을 믿는 것은 미친 짓이며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성경 자체가 이미 틀려먹었으므로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일정 부분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실제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는 기독교 분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본주의자라고 하는데요. 성경에 이런 말이 있으니까 그대로 따지지 말고 다 해야 한다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믿지 않으면 사탄이고 그들은 개종하든지 죽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예전에 십자군 운동을 주장했던 이들과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서 악과의 전쟁을 해야 한다는 부시같은 사람들이 이런 근본주의자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 분명 있고, 이로 인한 피해로 인해 기독교는 많은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 전에 성경 자체에 대한 오해를 좀 짚고 가려고 합니다. 성경=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공식은 이미 보편적인 것이 되었습니다만 성경=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책 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더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가리키는 말인 바이블(bible)의 어원인 헬라어 비블로스는 말 그대로 [책]이라는 뜻입니다. 책이라는 것은 저자가 있는 법이고 책이 쓰이는 이유는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책 역시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하늘에서 내리신 것이 아니라면 분명 인간이 쓴 것이고 그것도 단일저자가 아닌 오랜 세월동안 편집되고 정리된 내용도 꽤 많습니다.  즉, 성경(책)은 하나님이 직접 인간과 접촉해 주신 말씀(계시)들에 대해 인간들이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신약은 예수님이 그 정점에 있습니다. 책 자체가 신령하거나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이 책들의 저자들이(정경은 모두 66권의 각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성경해석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후로 이 성경해석의 대세는 [묻지 마 신앙]이었습니다. 의심하는 것은 불신앙이고 무조건 있는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라는 것이 한국교회의 일반적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경 저자들의 해석과 주석, 설명과 가르침까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를 성경해석에서는 내러티브(설화구조)와 디스커스(강화 혹은 주석)부분으로 구분합니다. 이게 가장 기초적인 작업입니다. 쉽게 말해 어디까지가 계시고 어디까지가 계시에 대한 해석인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2대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문법적 구조가 한글과 매우 다릅니다. 각 언어의 구조를 충실히 반영해서 해석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글 성경 하나만 가지고 성경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해석을 낳기 일쑤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유다에게 [친구여]라는 호칭을 합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유다마저도 사랑으로 포용하셨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흔합니다만 실제 본문에서 [친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타이토스는 당시 극단적 바리새파들을 꼬집는 은유적인 용어였습니다. 즉, 이 구절은 유다에게 너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느냐는 예수님의


질책이 담긴 말이며 더 나아가 마태복음을 읽는 유대인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정치적 편협성을 일깨우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문에 대한 해석이 기존의 것과 전혀 달라지게 되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설교는 고사하고 성경을 기본적으로 문맥에 맞춰 정확히 해독해 내는 것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복잡하고 힘든 것보다는 그저 성경에 있는 좋은 이야기들(특히 축복이나 천국에 관한 말)만 하려는 목회자들이 늘어났고 또한 그것들을 좋아라고 받아들이는 성도들로 인해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날 상당부분 왜곡되고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이로인해 일어난 가장 큰 폐단은 믿음=쉬운 것(easy)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뭘해도 상관없다 그저 예수믿으면 천국가고 이 땅에서 좋은 일이 있을거라는 것이 되어 버렸고 한국사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한다는 희안한 교리까지 생겨버렸습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교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교회의 신학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신학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국이 보장되고 이 땅에서도 항상 좋은일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신학]으로 변했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는 한국에도 그대로 전해져(한국은 무엇이든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질 못합니다) 삼중축복, 생각대로 무엇이든 된다. (응? 어디 광고에서 본 듯한...)는 4차원의 영성을 강조하는 순복음교회가 공전의 대히트를 치게 된 것입니다. 잘 되고 복받고 무슨 일이든 형통한다는데 그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게다가 죽어서 천국간다는 옵션까지 있는데...


 


이로 인해 성경의 구원관과 내세관은 미국과 한국교회에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슬로건은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교회다녀야 할 이유가 오직 이거 하나가 되어 버린 겁니다. 이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은 죽어서 지옥안가고 천국가야 한다는 일종의 보험성 마케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신앙생활은 죽어서 천국가고 천국가서 많은 상급을 받기 위해 사는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죠. 이로 인해 죽자살자 교회에서 봉사해서 천국에서 많은 상급받자는 이론이 힘을 얻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하면 가장 큰 상급을 준다는 말에 교회의 절박한 대명제는 한명이라도 더 교회에 데리고 와야 된다는 것이 되었죠. 이것이 공격적 선교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마태복음 28장의 말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인용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책입니다. 유대인이었다가 개종했던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택한 이스라엘의 백성인데 왜 굳이 땅끝(다른 나라)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제 구원은 유대인들 것만의 전유물이 아니며(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할 소식이라고요. 그러나 오늘날 이 본문은 그저 세상 구석구석까지 가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믿게 해라 라는 말로 전락 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크게 잘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극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구원의 길이 되셨다 누구에게나 그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이 예수 안믿으면 이교도고 사탄이고 죽여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다른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친 교계의 지도자들과 그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성도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저는 목사의 입장에서 목회자의 잘못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다른 분이 질문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수=천국 이 아닌 예수=구원입니다. 같은 소리인데 말장난 하냐구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천국과 구원은 사실 다른 개념입니다. 구원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신약에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과 성경에서, 특히 복음서에서 나타난 천국은 상당히 그 기조가 다릅니다.


 



 


긴 설명은 지루하실테니 요점만 정리하자면 신구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구원은 인간의 내면에 관련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와 이로 인한 고통의 문제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게 구약에서는 제사제도로 나타났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대속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납니다. 즉, 성경에서의 구원은 인간의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오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는 이 개념이 매우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교회 다니고 계신 분들에게는 꼭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좀 다릅니다. 일단 구약은 내세의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에게는 살아 생전의 삶이 중요하지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장수가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욥기서 같은 경우의 천상의 회의 같은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언급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 천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입니다.


 


오늘날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개념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의미보다는 세상에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미가 훨씬 강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대강령이라고 불리는 산상수훈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에서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집대성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구약의 율법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고(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섬기는) 삶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이 부분에서 동일합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율법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나타납니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이래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나라는 세상의 기준으로 사는데 천국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부자가 존경받는 세상인데 천국은 강자가 약자를 섬기고 가난한 자가 위로받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실체입니다.


 


성경에서 천국은 이런 세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더러 주여주여 한다고 아무나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는다는 말이 오늘날 참 쉬운 말로 변질되었습니다만 원래 믿음은 삶이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분명한 것과 쉬운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이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법칙대로 살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고 천국(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칙은 늘 경쟁과 투쟁의 삶인데 천국의 삶은 섬김과 나눔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버림받고 능력있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가져 가는 곳인데 천국은 거져 받고 거져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는 곳입니다.


 


살아서도 이러한 삶을 사는 이에게는 내세 역시 이러한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반면에 살아서도 남의 것을 뺏고 탐욕하고 남을 밟고 사는 사람은 내세에서도 이러한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고통이 불구덩이만 하겠습니까? 저는 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삶은 인간의 본성을 극복한 구원받은 이에게만 가능하고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구원의 길이라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구요.


저마다 세상에는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다양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고 저는 이 길이 옳다고 믿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받아 들이지 않을 권한도 역시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교회는 이 천국을 이 땅에서 실현하고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나중에 죽어서 뭔가 받으려는 목적때문이 아니고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이미 행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바라고(대가를 기대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자세입니다. 물론 오늘날 한국교회를 비롯한 교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 전체를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그러나 저부터 깨달은 대로 알고 있는대로 올바르게 살다보면 적어도 이곳에서라도 작게나마 천국의 삶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되겠지요. 사실 그렇게 사시는 교회 공동체도 소수이지만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이 더 많아지고 늘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내부에 있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그렇게 변화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일깨우는 사람들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오직 죽어서 천당에 가고 불구덩이 타는 지옥에 가지 않아서라면 이것은 성경의 구원관을 매우 왜곡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자비도 없고 예수 안믿는 사람은 몽땅 불구덩이 지옥에 던져버리는 새디스트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이 말한대로 심판은 모두가 행한대로 받습니다. 또한 누구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어떻게 살았든 어느 누구에게든 나는 잘못한 것 하나도 없고 정말 완전하게 선한 삶을 살았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고 불만을 제기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그 사람 본인만이 알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들을 선하다고 혹은 악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준이고 우리의 잣대입니다. 저조차도 거기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는 못합니다만 인간이 인간을 심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말이지요) 물론 하나님 따위가 뭔데 나를, 혹은 인간을 심판하냐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분들께는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분들의 신념까지 제게 꺾을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각자 옳은대로 믿고 살면 될 것입니다. 제가 현실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부분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군요.


 


짧은 글에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어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성경의 구원관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의 구원관과 현대 개신교회의 구원관의 차이에 대해 한번 비교해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만 될 수 있어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