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1.월요일
그냥불패 미쉬파트
안녕하세요. 저번에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던 미쉬파트 목사입니다. 졸필임에도 불구하고 의도를 잘 이해해주시고 조언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회의 규모]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마 한국교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 가운데 하나라고 보이는데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교회에 대한 시각이 아닌 내부에서 비판하는 교회에 대한 시각에 대해 많은 분들과 의견을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인 자료에 의하면 세계 10대 대형교회 중 7개의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이는 매우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세계최대의 기독교 국가인 미국도 기독교의 본고장(?)인 유럽도 아닌 동아시아의 쬐끄만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이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예배
과연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나라에 왕창 부어져서 있는 일일까요?
우리나라의 개신교 인구는 솔직히 말이 천만이지 실제 통계로는 7백만이 채 되지 않습니다. 가톨릭 인구를 빼야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기독교인구가 12억이 넘는데 불과 7백만에 불과한 개신교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이 현상은 분명 특별한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메가처치(Mega Church)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대형교회를 넘어서는 초대형교회를 지칭하는 용어인데요. 사전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보통 메가처치는 수만명 이상의 교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교회들을 일컫고 있습니다. 이 메가처지는 20세기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21세기에 들어서는 하나의 교회 트랜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의 지향점이 된 것입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이상향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교회나 가 보십시오. 기도 제목 가운데 빠지지 않고 나오는 제목이 우리교회가 성장하여 더 큰 교회가 되게 해 주시고 더 큰 건물 짓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솔직히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의 마이클 호튼 교수가 저술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라는 책과 우리나라의 신광은 목사가 저술한 [메가처치 논박]이라는 책에 상당한 정보가 있습니다. 혹시 신자분들 중에서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독하시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메가처치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갑론을박은 인터넷에 보면 수 없이 많은데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옹호하는 입장은 교회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교회가 클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은 문제가 이니며 이는 단지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일부 배아픈 사람들의 질투에 찬 악의적 공격이다라고 대형교회를 옹호하는 이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에 대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 대형교회(메가처치)는 무슨일을 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교회를 다니고 계신 분들은 이 부분을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선 교회는 "무슨 일"을 하기 위한 단체가 아닙니다.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가 주창한 [목적이 이끄는 교회] 라는 슬로건은 이미 교회의 진리(?)와도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주창되기 시작한 교회성장학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습니다. 즉, 교회 성장은 성경의 명령이며 이 명령은 이제 전략적인 목표아래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대형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대 명제입니다. 또한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중소형교회들의 강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진짜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날 교회의 존립의 이유는 [복음전파]가 되어버렸습니다.(이 때문에 공격적 선교가 정당성을 띱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교회 규모에 대한 부분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근거는 마태복음 28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소위 [지상대명령]인 "너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라는 말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성경본문에 대한 몰이해라고 저는 봅니다. 마태복음 28장의 선교명령은 사실 개종시키라는 명령이 아닌 "너희는 가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라는 말씀이 주된 내용입니다.
즉, 삶의 태도와 실천적 행동에 대한 것입니다. 전도는 삶을 통한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교회의 전략적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올바르게 살기만 하면" 됩니다. 개종이 교회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나타나듯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예배의 2대 주제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삶 가운데 드려지는 예배의 개념에서 이는 잘 나타납니다. 삶이 뒷받침 되지 않는 모든 종교행위는 다 의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헌금많이 내면 천국갈까요? 상급받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은 사실 미친듯이 다니며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친 책이 아닙니다. 신약의 첫번째 책인 마태복음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집대성 가운데 하나인 산상수훈(5-7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긴 강론입니다. 그리고 7장 후반부에 "나더러 주여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하나님을 지칭) 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갈 것이다"라고 마무리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과연 교회의 지향점이 선교라고 열을 올리는 오늘날의 교회의 주장과 동일한 것일까요?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 더 나아가 신약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제시된 것이 십자가의 삶이며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 우리도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는 삶입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건물 크게 짓고 전략적인 목표아래 일사불란하게 효율적으로 일해라 하는 말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규모에 대한 가장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에 오늘날 교회는 죽어라고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라는 일은 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규모가 커져야 더 많은 하나님의 사업(-_-)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무슨 사업체입니까....)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규모는 아무런 존재의의가 없습니다.
실제 요한계시록을 보면 규모가 컸던 에베소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혹독한 꾸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작고 볼품 없었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의 대상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대기업 회장님이 아닙니다. 체인점들이 실적 못 올리면 닥달하고 갈구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건 다 현대교회가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대형교회는 인간들의 욕심의 산물입니다. 실제로 대형교회 목사들과 그 성도들은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교회 총회에 가보면 대형교회의 위세는 하늘을 찌릅니다. 가난하고 작은 교회들은 발언권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저 대형교회 목사들의 들러리 서다가 오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크고 힘있는 교회들이 선망받는 것...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인데 교회의 현실은 세상의 현실과 똑같습니다. 크고 강한 자가 약하고 힘없는 자를 압제하는 것... 이러고도 교회가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 가난하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이를 악물수 밖에 없습니다. 두고보자 내 꼭 이 수모를 갚아주겠다.... 뭐 이렇게 되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억울하면 출세해라]라는 법칙이 교회 내에서도 똑같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것은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더욱 아니라고 봅니다. 세상과 교회가 똑같으면 뭐하러 교회 나옵니까? 이런 잘못된 세속적 교회관을 바로잡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또한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대형교회 다니면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으쓱합니다. 작은 교회 다니는 신자들에게 마치 부자가 가난뱅이 보듯히 대합니다. 니네 아직도 지하에 있냐? 쯧쯧... 우리 교회는 최신 시설에 뭐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고.... 교회가 최신 시설이 있으면 뭐할거고 많은 편의시설이 있으면 뭐할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느냐 하는 것이죠.
또한 대형교회 신자들의 대부분은 정말 신앙이 좋아서 나간다기 보다는 [편해서]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구 하나 귀찮게 하지 않고 의무도 부과되지 않고 적당히 해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나 큰 교회나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거의 비슷하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 이러한 점 역시 현대교회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제가 저번 글에 건축헌금의 비성경성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오늘날 교회건축은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교회내부에서는 이러한 말이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공한 목회를 했다는 오직 하나의 증거가 그 교회 규모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과 교회 신자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목사들끼리의 인사 첫마디가 "목사님네 교회 이제 몇평이에요?" 혹은 "신자들이 몇명 출석합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걸로 서로 그동안의 사업평가(?)를 하는 것이지요. 이 인식이 바로 오늘날의 메가처치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또한 메가처치가 되고 난 후는 더욱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체제는 끊임없는 증식욕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교회건축을 한 교회는 더 큰 교회를 지으려고 또 건축헌금을 걷습니다. 더 많은 성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별별 이벤트를 다 기획합니다. 그리고 더 커지면 다음엔 더 큰 교회를 세우기 위해 땅을 물색하고 다닙니다...

이 순환은 인간의 탐욕의 고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교회의 진짜 중요한 일은 다 내팽겨치고 오직 더 크고 좋은 교회와 시설, 더 럭셔리하고 편리한 시설들을 짓는데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받는 길이라고 계속해서 신자들을 선동합니다. 이것을 과연 성경적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대안이 없다면 저 역시 비판을 위한 비판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전 대안이 있다고 봅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성경교육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현대교회는 이제 케리그마(선포)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서 마감된 것입니다.
이제 목사는 제사장도, 사도도 아닙니다. 이제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의 이유는 디다케(교육)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후대에 정확하게 전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게 하면 복받고 잘 산다는 것만을 가르치는 매우 이상한 종교로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기 싫은 것은 다 빼버리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희안한 변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개혁할 사람들이 바로 깨어있는 신자들입니다.
신자들부터 "하나님의 사업"운운하는 모든 기존의 일들을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행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무조건 갖다 바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교회의 타락은 목회자 뿐만 아니라 그에 동조하는 신자들의 태도도 큰 몫을 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묻지마 신앙]은 [묻지마 투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는 교회의 개혁은 외부에서 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여론은 조성할 수 있겠지만 내부에서의 변화가 없다면 교회는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교회에 다니시고 있는 분들의 책임은 그야말로 큽니다.

한 교회매매 사이트의 매물정보
초대교회에서 수만명의 신자를 거느렸던 예루살렘교회는 결국 가톨릭으로 변질되고 타락했지만 소수에 불과한 안디옥 교회(이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들었습니다)와 시리아 교회는 적은 숫자와 작은 규모로도 훌륭히 선교와 구제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교회를 도왔던 것이 안디옥교회입니다. 사람 숫자와 재정의 규모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원래 구제는 부자들이 하지 않습니다. 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의 대부분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십시일반으로 모금되는 것이 세상에서도 통용되는 이치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은 더욱 그러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교회는 모든 물량중심의 교회관을 포기해야 합니다. 돈 가지고 사람 숫자 가지고 교회의 규모와 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재량하는 어리석은 짓도 관둬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더하지도 말고 빼지고 말고 있는 그대로만 살아도 예전에 어느 분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아닙니다. 권력과 물질을 움직이는 기득권 세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적 교회관이 아닙니다. 물량과 규모를 자랑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되지도 않는 성경 구절 갖다 붙여서 억지로 정당화하지 말고 성도도, 목회자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됩니다.
혹시라도 이에 반대하거나 반론이 있으신 신자분들은 말씀해 주시면 성경적 근거를 통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또한 비신자분들 가운데에서도 좋은 개선의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목회하면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부터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아무에게도 강요할 수 없겠죠.
긴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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