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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제일교회를 위시한 개신교 교회가 당국의 집합 금지 명령을 어기고 대면 예배를 강행해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문재인은 빨갱이고 공산당이며 김정은의 꼭두각시여서 대한민국을 북괴에 갖다 바치려 하니,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는 목사들의 주장이 연일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내 어린 시절 교회와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 인생 최초로 강렬한 기억을 남긴 교회는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 우리 동네에 들어선 <잘되는 교회>였다.

 

당시의 어린 나에게 ‘교회’란, 예수라는 이름의 초능력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었다. 섹스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고추를 문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알았던 시기였다. ‘동정녀’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감에서 어렴풋이 성적 코드를 느꼈고 강한 끌림이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듯이 우연히 국어사전에서 ‘씹두덩’이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괜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리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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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간을 실제로 본 적 없는 나는 ‘참 아늑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 아이는 느닷없이 자라서 느닷없이 슈퍼파워를 갖게 됐고 물 위를 걷거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쁜 놈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해서는 악당들에게 복수할 줄 알았는데 그냥 집에 갔다고 한다. 대단히 쿨했다.

 

그런 쿨한 히어로를 모시는 사당이라면 뭔가 거룩하고 숭고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잘되는 교회>는 코찔찔이인 내가 보기에도 지극히 세속적이고 속물적이었다. ‘기복신앙’이라는 말을 알 턱이 없었던 나에게 그러한 네이밍 센스는 왠지 모를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러한 거부감은 동네 아이들에게 교회에서 제공한 초코파이로 인해 친밀한 호감으로 바뀌었고 자연스레 여름방학 주말성경학교로 이어졌다.

 

두 번짼가 세 번째 출석하던 날, 어여쁘고 상냥한 성경학교 선생님은 우리 부모님의 직업과 나이를 물어봤고 교회에 모시고 오라고 권했다. 초코파이와 함께 내 손에 무슨 크래커도 덤으로 쥐여준 것 같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 최초로 부모님을 상대로 ‘영업’을 했고 부모님은 인자한 미소를 띠며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나는 굴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우리 주말학교 선생님이 얼마나 예쁘고 좋은 분인지 어필했고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예배를 보게 되었다.

 

엄마가 불교신자여서 그랬는지 부자가 교회에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그날 저녁 아부지를 잔혹하게 뚜까팼고 나 또한 당장 교회에 발길을 끊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타 종교 간의 적대감을 처음 체험한 날이었다.

 

그렇게 대략 2~3년이 지나고 <잘되는 교회>는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는지 어느 날 갑작스레 폐업하고 당구장으로 바뀌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내가 고딩이 됐을 때, 우리 집 길 건너 서대문구에 사는 친구 놈 집 앞 대형교회는 성서에서 증거 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었다. 넉살이 좋고 번듯하게 생긴 친구는 그 교회에 다니는 여학생들과 어울렸고 나에게 몇 번의 소개팅도 주선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낮엔 교회, 저녁엔 카페, 새벽엔 독서실에서 뜨거운 청춘을 불태웠다. 뜨거워봤자 키스가 고작이었지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이 좋았다.

 

이성을 만날 기회가 수월한 곳은 교회와 롤라장이었다. 당시엔 그랬다. 그리고 어느 날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

 

옆 동네 다른 대형교회에 다니던 친구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이 교제하던 여자친구를 교회 청년부 회장에게 빼앗겼다는 충격적이고도 선데이서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련복을 걸치고 담배를 꼬나물고는 당구장에서 죽 때리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에게 이 사건은 무척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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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여자를 가로채다니, 그것도 청년부 회장새끼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징해야 한다”라는 엄숙한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옆 동네 교회를 접수한다’는, 지극히 무협지스럽고 야만스러운 차원의 흥분이었다. 무슨 바이킹도 아니고 그 교회 여학생들이 일종의 전리품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바이킹 아니, 십자군 셋은 당장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디스코 청바지와 고래구두, 청카바 또는 자주색 자켓에 무스를 발라 라밤바 머리를 하고 해당 교회로 들이닥쳤다. 우리 뒤엔 예수님에 계셨다. 십계명에도 버젓이 있지 않은가. 남의 마누라랑 간음하지 말라고! 종교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우리의 완벽한 승리였다. 지하에 위치한 청년부 회의실로 곧장 내려간 우리는 다짜고짜 거칠게 문을 열어제꼈다.

 

대여섯 명의 남녀 무리가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친구의 여자친구는 우리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앞으로 나서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청년부 회장이 누굽니까?”

 

여유롭고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존댓말과 함께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지만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뉘앙스를 넌지시 비추기 위해 ‘회장님’이 아닌 ‘회장’이란 호칭을 썼다. 나의 치밀한 계산이 먹혔는지 좌중은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그때 정적을 깨고 친구의 여자친구가 짜증 난 목소리로 내 친구에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어느 비쩍 마른 새끼 하나가 그 여자애를 제지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회장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단호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그 새끼가 고래구두나 기지바지, 청카바나 하늘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면, 아니 어깨가 드러나는 나시를 걸쳤거나 하다못해 귀걸이나 팔찌라도 하고 있었다면 단언컨대 그 새끼는 내 주먹에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새끼는 너무 전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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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 뿔테에 이마를 덮은 얌전한 생머리, 체크무늬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아아...검정색 아빠 양말에 랜드로바 캐쥬얼 슈즈.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금테 안경을 추어 올리고 다른 손으론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 좌우로 까닥까닥 흔들며 “그런 식의 대화는 불쾌하군뇨.”라고 말하는 청년부 회장의 얼굴에 손을 대는 건 인천중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몸에 손을 대는 것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그런 애들 있잖아. 평소엔 말 한마디 섞지 않다가 꼭 체육 시간에 줄 세우거나 수업 끝나고 청소할 때 담임선생 대신 잔소리하면서 “너, 지구가 몇 초만에 생긴 줄 알아?”라고 따박따박 대드는 아이 말야. “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해”라고 외치는 이 구역의 건전왕.

 

내가 움찔하며 밀리자 바이...아니, 십자군 전체는 급격히 기세가 꺾이며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이때 여자친구가 홱 하니 나서서 친구 팔목을 낚아채고는 밖으로 끌고 나갔고 뻘쭘해진 나와 또 다른 친구는 만화 주인공 같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예수님을 모시고 황급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친구 커플이 그날 밖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끔 옛 추억이 술안주로 올라오면 그 여자애 이름을 얘기하며 친구는 껄껄 웃는다. 하지만 우리 셋 어느 누구도 당시 청년부 회장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시간은 또 야속하게 흘러 내가 마포 근처에서 자취를 할 당시, 급히 이사를 갈 사정이 생겨 가로수니 벼룩시장이니 바닥에 잔뜩 깔아놓고 집을 알아보다가 매매 코너에서 “교회 팝니다. 신도 수 2천”이란 문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은 작은 에필로그로 남긴다.

 

지면 관계상, 크리스마스이브에 신촌 모텔촌을 전전한 얘기와 휴거에 대비하겠다며 가출해서 교회에 살고 있던 친구 사촌동생을 빼내온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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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