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0.02.01.월요일


알려지지않은주시자



0. It"s a small world - 속 좁은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 버튼을 누질러놓구 기사를 읽자



말고사 덕에 면컴참선을 하다가 겨우 대충 마무리가 되어서 사바세계로 돌아와 보니, 이건 또 무슨... ㅡㅡ; 대략 어이를 상실하고 싶은 시츄에이션들이 난무하고 있구만.  그래,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말이지. 한 번 놀아보자.



1. How do you do? - 니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1) 숙명여대 이야기


 



 


상아탑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 정체가 우골탑인지 뭔지는 제쳐 두더라도, 21세기의 한국 대학에 지나친 고아함이나 고상함을 바랄 정도로 나도 순진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학문의 자유나 기본적인 인권이나 뭐 그런거 이전에, 학교라서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등록금을 주고받아 학적을 유지한다라는 계약관계를 맺은 당사자 입장에서 이런 처사는 좀 어이없지 않나?


 


기사링크  


 


개인적으로 숙대에 빚 준 것도 없고 빚 받은 것도 없다만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친하게 지낸는 친구랑 후배가 이 대학에 좀 많아서 대놓고 까대긴 좀 미안하다만) 댁들이 그러고도 '대학이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나? 배우러 온 애들 개인정보 이런식으로 관리해 놓고?


 



(2) 돌고래를 아시나요


 


http://www.ddanzi.com/news/8789.html
http://www.ddanzi.com/news/8935.html


 



 


부활한 딴지의 기린아 죽지않는 돌고래(님은 생략)가 이너뷰 하나 다녀온 뒤 욕을 먹었다. 누구에게? 딴지독자들에게.


 


글쎄다... 이 이야긴 있다가 좀 자세하게 할 거지만, 간단하게 물어보자. 그게 돌고래 잘못일까? 하고싶은 말이 있는 사람 찾아가서 이야기 듣고 온 건데. 


아, 참고로 난 돌고래완 아직 일면식도 없고, 이 분 또한 돈을 꾸어준 일도 빌린 일도 없으니 애써 편들 필요는 없는 사이이다. 

 
(3) 탑을 정치적으로 쌓아보자


 


http://www.ddanzi.com/news/9073.html


http://www.ddanzi.com/news/9127.html


 


남대문을 태워먹은 염치에 라면박스로 첨성대 쌓는걸 정치적이라고 한단 말이지(해외 사는지라 선덕여왕을 못 본 관계로 첨성대가 정치적 상징물이 된 현실 자체가 좀 놀랍다만). 시멘트로 황룡사를 재건하면 정치적이지 않게 되겠군. 아니면 명박산성에 대한 오마쥬로 그냥 직사각형으로 올리면 될려나?


 


이건 거의 웃자고 하는 이야기 같은데...



정리하자. 이게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현실이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면 다른 곳도 아니고 자신이 다니는 대학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를 한다(그나마 그것도 대충 관리한다. 그거 세절기 넣어 버리는게 그렇게 힘이 드나? 행정병 이병 말호봉도 이런 실수는 안한다). 무슨 쿠데타 모의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이런 여론조사를 받았다'라는 말을 하는데 첩보영화 찍듯 몸을 사리고 피해다녀야 한다. 라면 박스 쌓아 올리려고 하면 국정원에서 친히 납셔주신다. 


 


재미있는 세상이지?


 



2.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쯤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게 지난 몇 년간 너무 어이없이 짓밟혀서 이젠 거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니, 한 번쯤 원론적인 문제로 되돌아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거다.


 


질문! 언론의 자유/표현의 자유는 얼마나 보장이 되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100% 보장되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라는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명확하게 해주는 게 형법이다. 즉,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사람은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거짓말로 남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혹은 사실이라 할 지라도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녀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 이상, 처벌은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저런 일이라도 벌이지 않는 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주장할 권리가 있다. 안 그러면 병 난다. 


 



 


그러니까 위의 예시들을 돌아보자면, 남들 지나가는 대로변에 길을 떡하니 막고 마치 명박산성처럼 탑을 쌓지 않는 이상 라면박스로 탑을 쌓던 쥐약 상자로 탑을 쌓던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난 이런 여론조사를 받았는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았다'라고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서 시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본인에게 확인도 안 하고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 자격은 대학이 아니라 대학 할아버지라도 없다는 거지.


 


그게 정상적인 거다.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바꿔야지.



지금부터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3. 선을 긋다
 
슬램덩크를 아직 아니 본 아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걷지말고 뛰어가라. 일단 대부분의 독자제위가 이 만화를 안다는 전제 하에서 글을 쓴다. 다만 요번엔 한글판도 일본어판도 수중에 없으니 진짜 기억에만 의존해서 써보겠다. 세부적인 사항이 다소 사실과 다르더라도 양해해 주시길.


 




북산과 능남의 마지막 시합. 이긴쪽이 전국대회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 능남의 센터 변덕규는 시합이 아직 중반인 시점에서 4번째 반칙을 범해 버린다. 농구는 한 시합에서 반칙 5개를 하면 퇴장인 관계로, 이런 상황에선 중요한 선수는 일단 벤치로 내려야 한다(변덕규도 교체됐다). 덕분에 북산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시합의 주도권을 쥐고 점수차를 머얼리 벌려버린다.


 


이대로 가면 전국대회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변덕규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다시 시합에 투입된다. 


 


그리고 갑자기 꽤나 과격하게 상대편 센터(채치수)에게 부딪쳐 들어가는 플레이를 보인다. 


 


당근 북산 선수고 능남 선수고 능남 감독이고 모두다 깜짝 놀란다. 파울 하나만 더하면 퇴장인데 코트로 돌아오자 마자 몸으로 부딪쳐 들어가다니. 시합을 포기한 건가? 그때, 이미 전국대회 진출을 결정지어 놓고 시합을 관전하던 해남의 정환이 형아가 폼잡으며 한 마디 한다.


 


'들어오자 마자 파울로 퇴장당할 넘이면 능남 4번의 자격이 없지. 저건 선을 그은거다. 지금 플레이에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어. 파울이 아니라는 말이지. 다시말해 저 정도 플레이라면 앞으로도 파울을 불지 않을 거야. 이번 플레이에 파울 판정을 안했으니까.


 


변덕규는 지금 플레이로 파울의 경계선을 그은거다'.



살짝 힌트가 될 것 같지 않나?


 



4. 돌고래 예비역 병장 구하기


 


우리가 누려야할 언론의 자유를 100 이라고 한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보장되고 있는 언론의 자유는 많이 양보해서 70 정도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멀쩡해야 할 일간지가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하고 토론방송 사회자가 대통령 말을 끊는 사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저 30은 우리가 선거로 내어 줬으니, 남을 탓할 계제는 아니다. 


 


문제는, 현실의 70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100을 돌려받을 것인가. 여기게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난 지난 돌고래와 이너뷰이 사태를 보면서 좀 다른 인상을 받았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주장이다. 


 


내 생각에 돌고래와 이너뷰이의 대화는 위험도 면에선 65 나 66 정도 였다(이너뷰를 폄하할 의도는 정말 병아리 눈물 만큼도 없다. 돌고래는 내가 좋아하는 기자기이도 하고, 용기를 내어주신 이너뷰이께도 거듭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 다만, 발언의 '위험도'면에서 그렇게 폭탄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네자릿수 사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상자 한 명이 이너넷에 '이런 이런 조사를 받았다. 이건 어이없지 않나?'라고 한 마디 한거다. 개인정보? 사는곳 어렴풋이, 군과 대학, 직장도 대충 이러이러하다. 이 정도였다. 쿠데타 모의 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을 드러내 놓고 씹어댄 것도 아니다. 


 


물론 이너뷰에 응해주신 분의 용기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돌고래가 접촉한 많은 분들이 (이 분들을 비난할 의사도 없다만) 이너뷰를 승낙하지 않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근데 말이다, '왜 보호해야 할 이너뷰이를 보호하지 않았는가. 돌고래 잘못이다. 니가 책임 질래?'라는 반응은 솔직히 좀 아니라고 본다. 


 



첫 번째로, 이 정도는 국정원이 찾아오거나 수사기관에서 전화가 올 만한 일은 아니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그냥 밥 한 끼 먹으면서 '내가 여론조사를 받았는데, 질문이 황당하더라'라고 한마디 한 거다. 게다가 이 이너뷰이께선 메일로 이너뷰에 대한 동의도 하신 상태였고. 


 


그런데 '잡혀가면 책임질래'라는 말이 반복 재생산 되는건, 오히려 역효과다. 간단히 말해서 70이 허용된 상태에서 100을 찾으러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끼리 오히려 스스로 보더라인을 낮춰 65 즈음에서 놀고있는 거다. 돌고래와 이너뷰이가 66 정도의 발언을 하자, 남도 아닌 우리가 '야!! 65 넘어가면 큰일나!! 코로 육개장 먹어볼래?!'라는 식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힘들어 진다. 


 


쫄면 지는거다. 막연한 공포의 확대 재생산. 그것이야 말로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쉬운 길이니까.


 


우린 지금 100을 찾아나서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이너뷰이가 존재하지도 않은 여론조사를 말 그대로 조작해서 유언비어를 유포했거나, 정부를 전복할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이상, 얼굴사진까지 떡하니 찍혀서 '이딴 여론조사 님이나 하셈'이라고 말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이 우리의 목표인 거다. 근데, 지금 사회 돌아가는 꼴이 100은 커녕 70밖에 보장이 안된 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70 마저 버리고 65로 후퇴하면, 앞으로 오백년이 지나도 언론의 자유는 꿈도 꿀 수 없다. 


 



두 번째로, 이게 왜 돌고래 탓인가 ㅡㅡ;.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우리 모두의 탓이고, 정확히는 '저들' 탓이지.


억의 하나,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되지만, 만약에 이너뷰이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치자. 돌고래 탓인가?


천만에. 이 정도 이너뷰로 불이익을 준 직장이 잘못 된 거다. 그런 상황이라면 소송을 거는 게 적절한 대응이겠지.



지하철 치한이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 몸을 함부로 만지다가 용기있는 시민에게 붙잡혔다. 근데 그 치한이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들이 남자 마음을 자극하는게 잘못된 거다. 난 잘못 없다'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정신 차릴 때 까지 패 주고 싶지 않나? 그 소리 듣고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피해 여성에게 '니가 행실이 그러니 이런 일을 당하지'라고 호통을 치고, 그 말을 들은 피해자가 '미니스커트 입은 내 잘못이구나. 앞으로 얌전한 옷 입어야지'라고 반성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할 말이 없어진다. 비근한 예지만 이와 상황은 비슷하다. (다행히도 이너뷰이께서 댓글을 통해 당당히 대응해 주셔서 당사자도 아닌 내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혹은 비슷한 피해자인 주변을 자학하는 것 만큼 잘못된 것도 없다. 스스로 반성해야하는 건 가해자다. 미니 스커트를 입던 뭘 입던 남의 몸은 만져도 된다는 허락 없인 만져선 안된다. 만지면 그 넘이 치한인 거다.


 


똑같은 논리로, 민주사회의 시민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직장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상황에서 업무상의 불이익을 받거나, 혹은 수사기관에 의해 인권이 제한되면, 그건 그런식으로 불이익을 준 넘들이 잘못된 거다. 소송으로 대응하는게 바람직할 것이고, 그 상황 어디에도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한 자신과 그것을 언론을 통해 표현해 준 프리랜서 기자를 탓할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고? 우린 원래 '100'이라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 아닌가?
 


 


5. 시사 위클리


 


이쯤에서 잠깐 쉬어가자. 아직 유투브 조회수가 200 전후 인게 믿겨지지 않는 재기 발랄하고 센스 만연한 방송을 하나 소개한다.


 


시사위클리 블로그



1화 (1) 동영상 


1화 (2) 동영상 


1화 (3) 동영상 


1화 (4) 동영상 


2화 동영상



유머 센스란게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난 진짜 이거 보다가 배 잡고 굴렀다. 다들 응원 메시지도 좀 남겨주고 그러시라.
그리고, 내 눈엔 이 분들의 방송이 훨 위험해 보였다 ㅡㅡ;. 깡다구 대박이군. 얼굴 드러내고 방송하잖아?



 
 6. 대응책 강구


 


애들 눈싸움이나 국가대표급 스포츠 시합이나 정치가들의 파워게임이나 혹은 전쟁이나, 모든 싸움에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룰이 있고 기본적인 전략과 전술이란 것도 존재한다. 지금부턴 내가 생각하는 '100을 찾는 모험'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다. 언론의 자유가 100 만큼 보장된 상태를 추구하고 싶은데, 현실은 70 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68과 69를 연타해야 한다. 심한 말로, 깐죽거려 봐야 한다는 거다. 시사 위클리의 재기 발랄한 두 분 처럼(파이팅!!! 3화 기대하고 있습니다!! ^^).


 


70 만큼 보장된 상황에서 우리가 쫄아서 65로 내려온다 치자. 싸움엔 기세란게 있다. 65 만큼 내려가면 저쪽은 '어? 밟으니까 밟히네?' 그러고 하한선을 65로 조절할 뿐이다. 다시 우리는 60으로 후퇴하고, 하한선은 더 내려간다. 남는 건 조선시대로 가는 길 밖에 없다. 상소장 올릴려면 내 목 베기 편하시라고 도끼나 갈아두는 거지.


 


70 경계선에서 알짱거려야 한다는 거다. 모든 자극엔 면역이란게 있다. 69가 많아지면, 일일이 커트치기 힘들어 진다. 그래서 69 정도는 당연해 졌을때, 용기있는 자가 71까지 넘어가는 거다. 이게 경계선을 짓밟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기검열이 들어오면 또 곤란해 진다. 아까부터 강조하지 않았나. 우린 지금 100을 찾고 있다고. 71도 사실 한 참 먼 거다. 그래도 일단은 이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 자랑이 아니라 내가 글쓰는 매체 자랑이니 조금만 자랑을 한다면, 딴지는 지난 세월 종종 이 역할을 자임해 왔다. 사회가 70을 허용할때 71이나 72까지 가 보는 거지.


 


여기서 반응이 괜찮으면, 즉 탄압이 들어오지 않으면 그걸로 하한선이 상향조정 된거다. 선구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71까지 말할 자유가 생긴다. 그 다음엔? 당연히 이걸 반복하는 거지. 71이 75가 되고 80이 될 때 까지.


 


내 개인적인 분석으론 이번 탑 쌓기는 저쪽 입장에선 75 나 76 정도였던 거 같다. 그러니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 원래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선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이 저들의 잣대로 압력을 받는 상황이라는 걸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는 거다. 


 


어이없는 여론조사에 대한 이너뷰를 할때 이너뷰이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너뷰이가 많이 등장하는 거다. 우리가 다들 69정도는 때려줄 각오를 하는 거지. 한 3-50명 얼굴찍힌 사진으로 '그건 여론조사가 아니라 애들 장난이다'라고 하면, 싸그리 잡아 넣을 배짱이 있을까? 이런 현상이 '당연한' 일이 되어야, 저쪽도 반응을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를 조금씩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 방에 90 까지 찾아내는 치트키도 있다. 그게 뭐게?


 


선거 잘 하는거다. 말하자니 입 아프군.


 



7. 용기


 


내가 참 좋아하는 웹툰 작가 중에 불량만화가 서상훈님이라고 계신다. 요샌 홈피는(아, 들어가지 말것. 포르노 사이트에 해킹당했더라) 접으시고 야후에서 블로그 하시던데, 딴지에서도 노셨던 분이니 기억하시는 독자제위도 많으실 거다. (여친 생기니까 좋으십니까? 예? 좋으세요?)


 


서상훈님의 '키보드 워리어' 연재 중에, 내가 참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었다.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만화는 안 가져오고 대사만 빌려 쓰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악플러가 가장 증오하는 작가는 나다. 혹시 악플러가 죽인다는 협박성 리플을 달더라도 걱정하지 말라. 걔들이 누굴 죽일 각오를 했다면 첫 대상은 나 일거다. 내가 죽었다는 신문기사 읽기 전엔 걱정할 거 없다'.


 



 


비슷한 이야기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솔직히, 총수나 편집장님, 혹은 요 전 기사에서 대놓고 국정원에 시비를 건 파토님이 잡혀가기 전에 다른 누가 먼저 잡혀갈 일은 만무하다. 아직은 그렇게 위축되어 후퇴할 걱정부터 할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이 '잡혀간다'라는 말이 무슨 호환, 마마, 전쟁처럼 어린애 어르는 데 쓰이는 막연한 대사로 확대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다. '막연한 공포'만큼 사람 바보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언론의 자유를 지켰을때, 하고 싶은 말을 꺼리낌 없이 했을때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피해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받는 거다. 잡혀가서 살해당하거나, 고문을 받거나, 징역을 먹거나. 이건 좀 과대망상의 영역이고, 두번째인 '벌금 먹이기, 직장에서 불이익 주기, 인사고과에 영향주기'정도가 현실적이지. 요즘 우리가 자주 보는 시츄에이션이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바보상 선정도 하는 거고 말이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되, 피해는 입고 싶지 않다. 그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희망이다. 아까 위에서 좀 삐딱하게 글을 썼는데, 돌고래에게 메일 보낸 독자제위도 사실 이너뷰이가 걱정이 되니까 저런 말들을 하신 거겠지. 바른 말을 한다고 피해 입는 세상도 참 가당찮은 거고. 근데 말이다.



언론의 자유란게 원래 그런거다.


 




아까부터 '100만큼, 완벽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글을 쓰긴 썼는데, 나라고 그게 진짜 이루어 지리라 믿는 이상론자인건 아니다. 85나 90이면 아주 충분한 거고, 우린 다행히 지난 시절 잠깐이나마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봤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란 건 탄압을 받아 왔다. 하고 싶은 말을 할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시대이건. 그리고 그 용기는 '피해가 생길 가능성을 감수하는 용기' 뿐만이 아니라, 때론 '실제로 탄압을 받았을 때 맞서 싸울 용기' 까지도 포함한다.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보자. 현재 상황을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바꿀려면 우선 그게 필요하다. 용기를 내어 68과 69에서 깐죽거리자. 그리고 누가 더 큰 용기를 내어 71을 행하면, 비록 먼저 행하진 못했더라도 따라가서 도와주자. 그러다 보면 조금은 숨쉬기 편한 상황이 마련되겠지. 


 


그리고 이런 자잘한 노력이 귀찮은 사람이라면, 제발 부탁이니 5년치 노력을 반감이 아니라 80퍼센트 정도 줄일 수 있는 단 하루의 노력을 아쉬워 하지 말자. 선거 말이다. 


 


글이 길어졌군. 담엔 좀 짤막한 글로 찾아뵙겠다. 늘 건강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