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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화요일


그냥불패 메리메리


 


1.


 


옛날에 책 읽고 떠드는 모임 하나가 있었어. 그 날 같이 이야기했던 책은 '아주 작은 차이'(알리스 슈바이처. 이프).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한 꽤 유명한 책인데 독일 여성들이 겪은 생활 속의 편견이나 부당함 등을 인터뷰 등을 통해 엮고 이에 관한 해설을 담아놓은 거야.


 


그 날 대화는 대체로 아 씨바 더럽게 속상해, 울화통, 이런 거.


보통 요런 류의 책을 읽고 나면 (게다가 그 날처럼 맥주 한 잔 마셔가며 썰 풀다 보면) 어느새 이성과 예의는 국말아 먹고 에이 니미 니들도 군대 가 봐, 애새끼는 니가 까지를 거야 기역니은디귿…….. 까진 아녀도 -,.- 괜히 날들이 서기 쉬울 법도 한데 이 책을 읽고 하던 그 날 토론은 그러지 않았어.


그 책 속에 그려진 그 여자들이 고대로 우리 '엄마'였거던.


 


우리는 책을 읽고 엄마 생각이 얼마나 났는지 많이 많이 얘기하며 그렇게 효자토크를 이어나갔다. 수 십 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 그 책 속의 수 십 년 전 엄마들이 겪었던 일을 지금 내 엄마도 겪고 있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 통증에서 안전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 채.


 




 


2.


 


또 하나 옛날 일.


 


대학 입학 바로 직후 신입생 환영회 차원에서 조를 짜서 토론이나 이야기 등등을 했는데 우리 국문과 여학생회 활동이 활발해서 여성문제에 관해 같이 이야기 해볼 기회들이 나름 있었던 것 같아. 한 토론 순서로, 각자 우리 생활 속의 성차별에 관해 얘기해 봅시다, 하는 주제를 받아 들었는데 (아 이 어색한 멍석;;) 나온 이야기들은 뭐, 가사일을 분담해야해욤, 지하철 성추행 당하는 당신들 불땅해염 (나는 절대 안 해욤!), 우리 여고 앞에는 변태가 많았어욤, 우리 고등학굔 남녀공학인데 무용이 수업 때 생리하는 애 손들라 그랬어욤 여자가 아주 더해요, 정도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중 제일 많이 나온 이야기는 요즘 사회에 그런 게 남아있다곤 해도 나는 할 말 없는데 난 당한 적(한 적) 없으니깐. 이었다.


 


이제 대학 붙어서 버스, 지하철 타고 대낮에 처음 세상으로 기어나왔으니 판 깔아준다고 줄줄이 얘기 나와줄 정도로 멀 그리 많이 알 수 있었을까 생각은 들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그 때 우리가 활발히 토론하지 못했던 것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부분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싶더라고.


 


3.


 


고런 얘길 해보게. 성 지위, 역할, 배려, 문화 같은 주제를 얼마나 우리가 생활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또 문제의식을 어느 수준으로 가지고 사는 것이 옳을까. 상대방 성에 대해 (남성 여성 모두) 어떤 내용의 배려를 해야 하는가.



 


뭐 육아문제 때문에 여성들의 사회 진출, 혹은 사회적 지위 유지가 힘들다거나 가사 노동을 일방적으로 분담하는 여성들의 자존감이 어쩌구 저쩌구..까지 얘기해 보려는 건 아냐.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기 보단 내가 그런 커다란 썰을 풀어낼 재간은 없어.


 


대신 생활 속에 아주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달까.


너무 습관이 되고 평범해져서 그것이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어떤 어떤 것들. 고런 작은 부분, 섬세한 자세 다듬기를 하다 보면 큰 문제를 해결하는 괜찮은 초석을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도 들고.


 


우선 내가 여자니깐 여성이 남성들에게 성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존중받고 있을까, 하는 얘기를 써볼께. 반대 얘기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럴 뿐이니깐 여자들만 뭐 져 터지고 불쌍하냐고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의 말씀은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겠음..


 


4.


 


여긴 딴지니까 딴지 얘기부터.


 


딴지는 마초적인 공간이라고 스스로 그러고, 독자들도 그러잖아.


하지만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바로 그 마초는 아니라고 느껴.


이곳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진 놈이 더 가지거나 누군가 불공평하게 지배하지, 지배당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 기본적인 평등, 존중을 누리기바라고 있으니깐.


 


제왕적 대통령의 횡포에 성질을 내고 세금내지 않는 부자 기독교(탈을 쓴) 기업들을 비난하면서 삼양라면 박스쌓기 운동이나 웰던 프로젝트 같은 걸 존중하는 기사가 실리는 걸 보면 내 판단이 크게 틀린 건 아니겠지?


이런 곳이니 딴지의 마초는 여성의 성적 지위를 짓누르고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마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이쁜 여자 보면서 기뻐하고 원나잇에 적극적 선호를 지니고 (혹은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이제는 딸을 고만 쳐야지, 하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공감하며 킥킥대며 하는 것은 마초성이 아니라 성적으로 자유로운 농담이다. 또 성에 대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여유, 자유에 가깝다. 성적 이야기 중 남자들의 판타지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남자들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여자보다 더 즐기거나 편안해 한다는 점, 딴지에 여자보다 남자가 좀 더 많다는(맞나?) 점 때문인 듯 하고. 하지만 그 뿐. 그 이야기들이 여성들에게 위협이나 불쾌감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폭력적일 것 없는, 농담들이니까.


 



농담,ok


 


5.


 


그런데 요즘은 여기서의 글 몇 개를 보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맞는가 회의가 들었어.


 


그 중 하나.


 


알몸투시기 도입을 지지한다,는 실제적 반대 기사를 재밌게(?) 기술하면서, '여성들은 가려야 할 은밀한 부위가 남성보다 하나 더 있기도 하고하는 표현이 적혔더라고. 뭐 예민한 것인지 모르지만 수치와 괴로움을 느끼는 일은 남 녀를 떠나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어느 부분을 어떤 식으로 대접받는 게 개인적으로 어떤 느낌이다,식의 단언이 반복되고 그게 일반화되면 그 합의 안에 속하지 못하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욕을 느낄 수 있는 여지는 보호받고 존중될 가능성을 상실한다. 따라서 이런 식의 단언은 위험하다. 게다가 여자에겐 여기, 여기가 수치스럽지? 라고 찍어주는 건 그 자체가 상대 성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킨 표현 아님?


 



 


주제와 상관없는 표현 하나에 딴지를 거는 것이 후진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이런 내용의 말을 농담으로 건넸다는 것은 본인이 하는 농담의 소재와 내용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데 더해 그것을 읽는 사람 대부분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 믿음이 필자에게 있다는 뜻일 거야. 다시 말하면 딴지일보 자체와 이곳을 들르는 사람 대부분은 여성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낄 부위를 직접 (혹은 직접에 가깝게) 지목하며 그것을 즐겁게 여길 것이다라는 것. '농담'이란 건 듣는 상대가 편안해 할 소재, 내용이란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니깐. (불편하면 웃지 못한다) 내가 굳이 꼬투리 잡는 이유는 그것이 비단 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상대 성에 대해 배려가 부족한 표현이 모두에게 편안할 것이라는 그 자신감이 무얼 상징할 것이냐. 그건 이곳 딴지, 혹은 세상 사람들이 여성에 대한 표현에 얼만큼 배려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지 그 일반적인 정도, 합의를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6.


 


고 농담 한 문장에 불편함을 느꼈다는데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음. 다른 예로 비슷한 얘길 해볼께.


 


옛날에 먼 영화사에서 일 할 때였어. 감독 하나가 있었는데 회식자리 갈 때마다 열라 내 손 잡고 주무르고 심하면 빨고 (썅) 그랬어.


내가 너무 싫어하고 힘들어하자 회사 사내들은 감독님 뒤에서 나를 열심히 달랬지.


'맘 많이 상했지? 화 풀어. 다음엔 감독님이 못 그러시게 할께'


.....는 개뿔


'감독님 기분 좀 맞춰드려, 너 이뻐서 그러시는 건데. 술도 좀 따라드리고 볼에 뽀뽀도 좀 해드리고 하면 오죽 좋아? 알았지, 응?'


 


나는 결국 그들이 원하는대로 '적응'했어.


뽀뽀까지는 토나와서 못했지만 그냥 그럭 저럭 우리 아빠려니 생각하고 손 잡혀주고, 빨면 욕 한 번 하고 지나가 주고 술도 열심히 따라주고 야한 농담 해도 웃어 넘겨주고. 돌아서 집에 갈 땐 쌍시옷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감독님 앞에서 적어도 티는 안 낼 수 있게 된 거지.


그러니깐 남자 동료들이 그랬어.


'어이구 메리메리씨, 달라졌네. 이러니까 훨씬 이쁘다!'


 


한 집단에서는 구성원이 받아들여야 할 스킨십 정도와 섹스에 대한 대화 수준이 정해져 있다.


그 수준을 정하는 것은 성적 표현이나 행위에 자유로운 남성들이다. (왜 자유롭고 당당한가는 뒤에) 그들이 만든 합의는 성에 대한 배려나 존중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문제제기 가능성이 있는가 (그럴만한 개인이 집단에 존재하는가), 혹은 나를 문제에 휘말리게 할 집단내 제도가 존재하는가,를 기준으로 한다. 고 기준들을 통해 대부분 집단, 직장에서는 경찰에 찔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선에서 남자들이 여직원들을 상대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최대치,로 성적 표현과 행위 정도가 합의되기 쉽다. 불공정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그 합의 정도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 상대가 그것에 관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싹도 터보지 못하고 거세된다. 그 이후엔 안 망가져 있던 성문화는 보호장치를 잃어버리고, 망가졌던 부분은 치료받을 기회가 영원히 없어진다.


 


이건 비단 여성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사회가, 세상이, 인류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아끼는가, 공존할 준비가 됐는가,에 관한 문제다. 사회의 평균적 인격, 교양의 문제다. 더불어 갈 준비, 장치가 얼마나 마련됐는가 하는 문제다. 공존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늘어나면 사회는 지속이 힘들어진다. 위기에 처한다.


 


7.


 


그럼 역시 한 사회 공동체인 여자는 머했냐.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자신이 수치감을 느끼거나 불쾌하지 않은 내용의 성문화를 만드는 걸 좀 힘들게 했던 장치 몇 가지를 얘기해 볼께.


 


머 또 두 가지의, 경험했던 일 이야기 ~_~


 


처음에 말한 그 책 토론회서 있었던 일이야.


고 책에 보면 여자들은 클리토리스로만 쾌감을 얻을 수 있고 질을 통해선 거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기술돼 있거든? (나중에 더 공부해보니 그게 과학적 사실이다라는 데는 좀 회의적이지만.. -.-)


근데 그걸 읽고 토론에 참가한 남자들은 충격에 휩싸여 질문을 쏟아냈어.


진짜야?! 삽입을 통해선 여자들이 정말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거였어?! 정말이야?


 


그들의 표정이나 목소리는, 이런 표현하기 좀 미안하지만, 좀 많이 절박했어.


남자들은 자신이 쾌감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겠지. (그것을 자신의 성적 능력,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근데 자신이 가장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여자에겐 아무 것도 느끼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남자들에게 무척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마구 마구 질문한 거지. 진짜야, 응? 정말 그런 거야? 이러고.


 


그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졸라 활발한 토론을 했어. 그런데 갑자기 그 질문 이후에 아주 조용해지더구만. 아니, 정확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여자들'이 조용해 진 것이었어.


뭐 뻔하게도(?) 여자들이 자신의 성적 경험을 오프라인에서 얼굴 내놓고 당당히 말하기 힘들었던 게지. 꽤 편견 없고 마음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던 거야.


 


남자들이라고 모이는 자리에서, 공개적 자리에서 내 섹스파트너의 허리 사이즈는... 같은 이야기를 무분별하게 해대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구체적 성경험의 내용이 공개됐을 때 여자들이 더 부당한 평가를 받는듯 해. 성경험 사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행위가 그 여성의 성격, 인격, 삶을 무분별하고 수치심이 없다는 식의 내용으로 평가할 근거(!)로 악용되는 거지. 심지어 성적 경험이 아닌, 어디서 듣고 알게 된 성적 지식을 말하는 여자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쟤 대놓고 저런 말을 할 정도면, 혹은 저렇게 많이 알고 있을 거 같으면 성적으로 개방적이다, 문란한 쪽에 가깝다, 그러니 섹스도 많이 해봤을 거다, 따라서 저 여자는 무분별하고 수치심이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장치. '성적 내용을 발언하는 것은 그 여성이 부당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


 


두 번째는 여기 딴지에서 올라온 기사 하나를 두고 말해 볼란다.


12월 정도에 '크리스마스 선물-야생녀 길들이기' 란 '야설'하나가 올라왔어. 솔직히 존나 쇼크 먹었다. 이런 글이 존재한단 자체가 아니라 (예전에 궁금해서 한 묶음 꿴 적 있으니 낯설 건 없음..) 이런 대놓고 대문에 올렸다는 것 땜에. 위에 적었지만 딴지가 여성에게 배려없는 마초성(정서적 폭력성)을 지닌 곳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착각이었을까.


이 글의 기사화는 여성에 대한 지독한 몰매너였어.


 


이를 테면 이런 거지. 영등포구에서 회식자리에서 이번 뉴타운 지역 선정을 위해 경쟁구인 성북구에 똥비둘기를 날려주자는 결의를 하고 자기들끼리 낄낄댔다고 치자. 혹은 요즘 문제 많은 대학 선거판에서 1번 후보 진영이 자기들 사기 진전 차원에서 2번 후보가 어제 술을 먹다가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1번후보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선거를 포기했다,는 소설을 써서 지들끼리 돌려봤다고. 아니면 버섯게임 제작 회사에서 경쟁사인 계란게임 제작 회사를 누르자는 의미로 계란을 열 판 사서 벽에 던지기 행사를 가졌다거나.


 


문제는 영등포구가 그 농담 내용이 성북구 홈페이지에 올라갔을 때 생긴다. 1번 후보 진영이 지들끼리 보려고 쓴 작품을 유출해서 유권자나 2번 진영에게 의도적으로 알리거나 버섯게임 회사 직원이 그 계란을 계란게임 회사 직원에게 갖다 날리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 쪽에서 다른 쪽에 대해 뭐 좀 빈정대거나 놀리거나 왜곡한 이미지를 만들어 지들끼리 즐기거나 '내가 더 쎄다'는 허풍을 떨거나 하는 정도의 문화야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상대 집단을 향해 (그것도 의도적으로) 들이미는 것은 순하게 말하면 예의가 아닌 거고 독하게 말하면 노골적인 모욕, 또는 공격의사랄까.


(게다가 기사의 글쓴이는 부제를 누구 길들이기라고 하면서 그 글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따스하게 대해준 사람에게 마음을 연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어불성설.)


 


어쨋든 기사 자체에 대한 비난보다는 (요 말만 하려면 예전에 했겠지)


그 밑에 달린 꼬리들을 보고는 이 기사를 딴지가 올렸다는 자체만큼이나 속이 쓰리더구만.


이런 글이 공개적인 장소에 올라왔다는 것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보다 기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건 말 할 것도 없고, '꼴페미들의 개떼드립이 예상됩니다.' 같은 이야기에 동의를 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 발언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는 거지.


 


꼴페미들의 개떼드립이 예상된다.


 


이게 두 번째 장치일 것이다. 자신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고 사람들은 아 존나 페미니스트...하면서 얼굴을 찌푸릴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 좀 다르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을 질기고 드센 사람으로 낙인찍으면서 '이성에게 사랑받기 힘든 타입'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리는 것.


 



 


첫 번째 장치(성적 이야기를 할 때 여자는 보다 부당한 평가를 받는다)와 더불어 이 두 번째 장치(자신의 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요구하는 여자들은 여성적 매력이 적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정말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여자들의 두려움땜에 더 강화돼 온 것 같어. (혼자 싸우다가 걸레로 찍히고 사랑받을 자격까지 박탈당하는 건 넘 무서웁잖아? -,.-;;)


 


이런 장치가 있단 얘길 하는 건 뭐 또 뻔하지만, 사회 내에서 성을 대하는 문화를 개선하는데는 한 쪽의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같이 배려하고 존중하잔 거.


 


8.


 


머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바꾸자기 보다는 뜬금없지만 이렇게 종종 같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치 않겠나, 차원에서 이런 저런 소리를 해 봤어. 명박이나 정부한테 바래야 할 건 사실 작은 정책 하나를 바꾸는 것보다는 국정 운영을 하는 전체적인 철학을 바꾸는 것 아니겠어? (불가능해보여서 괴롭기도 하고 또 작은 정책 하나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원칙을 얘기하자면.) 생리통 겪는 여친의 짜증을 참아주거나 회사에서 여직원 출산 휴가 일수를 늘려주는 식의 물리적 배려, 보상, 처우 개선 같은 것도 중요하겠지만 남녀를 떠나 상대 성을 존중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의 빈도, 정도가 근본적으론 필요할 것 같다는 거얌.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고민, 배려를 생활로 체화하는 거지. 우선 피부로 느끼기 쉬워야 할 것 같아서 가깝고 작은 이야기들을 아주 조큼 했는데 가까운 이야기들을 더 많이 했음 좋았겠건만 내 한계가 -_-;


 


내가 여자기 때문에 우선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존중의 방법, 마인드에 대해 공감하고 나면 남,녀의 경우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도 상대의 상황에 맞게 배려, 존중하는 방법을 찾고 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해.


 


잘먹고 잘 사는 놈만 계속 해먹지 말고 전국민 전국토가 고르게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정부에 자리잡으면 세종시나 제2의 쌍용사태, 제2의 용산사태를 하나 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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