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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 요약

 

지난 편을 제대로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의사파업 이야기 2: 극우 의사의 탄생 배경 링크>를 보고 오길 추천한다. 그럴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요약으로 대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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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코로나 국면 대규모 진료거부 사태 속, 의사집단 내 수구강경우파의 존재(그것도 주류로, 대량으로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② 계기는 '의약분업 사태(2000년)' 다. 당시, 의사들은 한 해에 5차례 진료거부를 하며 투쟁한다. 긴 투쟁 끝, 정부와 합의했다.

 

③ 의약분업이 시행된 법적 근거는 1994년 개정된 「약사법」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한약분쟁)이 「약사법」 개정에 영향을 미쳐, 의약분업으로까지 연쇄작용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④ 의약분업 시행에는 다른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결정적 이유

 

한약분쟁과는 별개로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서, 이런 흐름도 있었다. 

 

1989년에 전 국민 건강보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보장성이 워낙 낮았다. 그래서 의료보험 확대를 주장하면서 노동조합을 포함한 범시민단체들이 모여 의료보험 통합 연대회의를 만들었다. 이들이 논의 끝에 제시한 개혁방안 중 대표적인 3가지는 이렇다.

 

① 의료보험 확대 

② 지역조합과 직장조합을 합쳐서 건강보험과 사회보험으로의 개편 

③ 의약분업 

 

김대중 정부 이전에 이미 이 개혁과제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고 공론화되고, 제시되었다. 김대중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하고, 다음으로 의약분업을 하며, 이 중 2번째, 3번째 개혁과제를 이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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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말했듯이 이미 90년대 초반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논리는 많이 퍼져 있었고, 사회적으로 당시 선진 의료시스템이던 의약분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흐름이 있었다. 

 

경제 성장과 사회제도의 선진화 그리고 시민의식이 성숙함에 따라 이러한 흐름이 나타났고, 이 흐름 속에서 의료보험 통합 연대회의가 개혁방안들을 제시했으며, 의약분업에 다가가고 있었다. 한약분쟁보다도 이 시대적 흐름이 의약분업에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이 기사에서는 시기적으로 하필 1994년 개정 「약사법」에서 의약분업의 구체적인 시행이 명시된 부분에서 한약분쟁이 나름의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일부 전문가는 한약분쟁이 영향은 있었지만, 본 기사에서 다뤄지는 것보다 영향은 미미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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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한약분쟁 당시, <洋醫(양의).한방 이원화하고 의약분업해야>라는 제목으로 양의와 한방은 분리되어야 하며, 의약분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 내용 링크 

 

 

한약분쟁과 의약분업은 성격이 다르다

 

의약분업은 의약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당시 선진국의 5~7배에 이르는 국내 약물 오남용을 예방하여 국민 건강 증진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시행이 된 제도이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깜깜이로 약을 써왔다. 의사들이 약을 쓰면서 제대로 기록하지 않거나 덜 주고도 더 준 것으로 기록하고, 필요 이상의 약가마진을 남기는 일들이 허다했다. 약사들에 의한 약물의 오용도 문제였다.

 

의약분업은 약에 대한 양쪽(의사, 약사)의 무차별적 접근성을 정리하여, 이런 문제들을 개선한 것이기 때문에 의약분업 자체는 보다 접근성 높은 의료서비스와 국민건강에 기여했다.

 

한약분쟁의약분업은 성격이 다르다. 

 

의약분업은 개혁과제 그 자체였던 것이고, 한약분쟁은 밥그릇 싸움이었다. 한약분쟁과 비슷한 성격은 의약분업 과정 속에서의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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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17일, 서울 여의도 문화광장을 가득 메운 의사와 그 가족 3만7000여 명이 정부의 의약분업 실행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의약분업이 이루어지기 이전, 정부는 의사, 약사들과 함께 몇 년에 걸쳐 공론화랑 정책 방향을 마련했고, 합의를 봤다. 허나, 바로 다음 날, 전국 병원장 800명이 반발했고, 의사들은 투쟁을 했다. 

 

온갖 명분을 갖다 대지만, 이 투쟁의 실제 이유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높은 기준에 비해 약가마진이 너무 많이 빠지는 것 같으니 반발한 것이다. 

 

 

극우 의사의 탄생

 

의약분업 사태는 정부, 의협, 약사회가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2000년 12월에 끝났는데, 이 합의안의 내용 중에는 보험수가를 올려주기로 한 것이 있었다. 정부는 수가를 올려줬고, 몇 년 뒤에 다시 그 수가를 내렸다

 

의사들은 의약분업 때 자신들의 이권을 많이 빼앗기고, 수가 부분에서도 정부에게 배신을 당했다며, 그 후 20여 년 동안 자신들의 논리를 퍼뜨렸다.

 

(의사들이 수가 부분에서 정부에게 배신당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의협과 올려준다고 합의했고, 올라간 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파탄 위기가 오자 수가를 다시 내린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룬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자비한 정부에 의해 2000년에 탄압당했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보수적 성향에 정부, 특히 민주당 정권에 대한 증오까지 겹쳐 현재 의사단체 지도부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의 극우적 마인드가 형성되었다. 

 

정부, 또 특히 민주당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생겨났다. 이때의 패배(?)를 교훈 삼아 정부와의 투쟁에 있어서는 더욱 강경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의료복지 확장에 대해서는 색깔론을 펴며 사회주의적 정책이라 공격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집요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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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메디칼타임즈>

 

그전에도 그런 의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구강경우파적 성향을 가진 의사들의 대량 생산은 이 때가 기점이었다. 이들의 후배들은 이들에게 교육받으며 이들의 생각, 가치관, 태도 등을 물려받았다. 

 

지난 9월 4일 공개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와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의 대화를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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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어준 총수(이하 ‘총’)정형준 정책위원장(이하 ‘정’)의 대화이다(텍스트로 보기 편하도록 문장을 약간 편집하였다. 내용은 같다)

 

총: 왜 의사단체 지도부들이 한결같이 거의 극우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정: 의사들이 다들 먹고 살 만하거든요. 더 결정적인 이유는 2000년에 의사폐업을 했었거든요. 그때 거의 진료 거부하고, 응급실도 폐쇄하고 그랬어요. 당시에도 색깔론이라던가 극우강성 발언들이 계속 그 안에서 재생산이 되었거든요. 그때 만들어진 분들인 거에요. 

 

최대집 회장님도 어디 언론에다가 말씀하셨어요. “내가 이렇게 애국 청년이 된 이유는 2000년 의사 폐업을 경험하면서 사회주의 의료를 까부셔야겠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라고

 

총: 그것이 의사사회에서 하나의 우경화의 계기가 되었다?

 

정: 네, 그런 강성 우익들이 의사협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게인 2000년. 또 한 번 크게 하자! 끝까지 가보자! ..... 이 강성우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료적인 쟁점이 아니에요.....

 

이어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이번 진료거부 사태에서도 의협이 정부와 합의하는 방향 쪽으로 가려고 하니 수구강경우파들은 대전협의 강경우파라인들을 동원해서 선동했다고 하였으며, 의사집단 내의 강경우파들은 “정부 말은 못 믿는다.”고 말한다 하였다. 그래서 그 의미 없는 명문화, 명문화를 그렇게 외쳤댔다. 

 

이번 진료거부 사태에서 볼 수 있었던 의사집단 내의 주류 수구강경우파 세력의 탄생 배경이다. 

 

그들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집요하게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최대집 현 의협 회장뿐 아니라 뒤에 숨어 실질적으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 같은 인물도 그때 각성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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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 전 의협 회장

 

 

극우 의사와 의협 회장 사이 

 

의사집단 내의 주류 수구강경우파 세력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여태까지의 내용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현 의협 회장인 최대집 회장은 수구강경우파이다. 의사집단 내의 다수와 주류도 수구강경우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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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젯밤, 의협 내에서 최대집 회장의 불신임안(탄핵안)이 상정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부분은 원래 [의사파업 시리즈]에서 다루려고 한 내용은 아니었는데, 최 회장의 불신임안(탄핵안) 상정이라는 사안이 생긴만큼 탄핵안이 상정된 배경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다루게 되었다. 

 

현재 알져진 정보는 의협(대한의사협회)에서 최대집 회장과 집행부 임원 7명에 대한 불신임안(탄핵안)이 올라와 27일 그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대의원회가 개최한 27일 임시총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려면,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불신임안에 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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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매일경제>

 

‘회원들의 동의 없이 정부·여당과의 합의문에 졸속으로 서명한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탄핵 심판대에 오른 만큼, 탄핵이 통과된다면 최 회장을 포함한 현 집행부가 전원 교체됨에 따라 현 집행부가 정부와 합의한 의정합의서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코로나 국면 진료거부 사태가 정확히 어떻게 흘러갈지는 27일 탄핵안 가결 여부를 봐야할 것이다.

 

최 회장의 불신임안이 상정될 수 있다는 예측은 의협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었다. 의협의 역사에서 제아무리 강경파라도 한 이익집단을 대표하는 단체의 대표가 되면 정부와 협상에 있어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타협의 자세 없이 강경하게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자신들의 건강을 볼모로 붙잡힌 국민들의 여론은 떠나갈 것이고, 정부는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며, 그 정부에게는 사안을 강제적으로 해결할 권력이 있다. 적당한 지점에서 지킬 수 있는 이권은 지키면서 타협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 단체의 대표를 하다 보면, 그것도 의협 같은 큰 단체의 대표를 하다 보면, 이것을 모를 수가 없다.

 

의협의 과거 역사에서도 회장이 정부와 합의를 하고 오면, 항상 내부 강경파의 반발이 많았다. 같은 의사라도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등 서로 간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의협 회장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항상 내부 반발이 있었다. 또 의협이 정치화되면서,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발판을 만들고 싶은 세력이 현 회장을 흔들기 위한 ‘반대를 위한 반대’로서 반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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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무진 전 의협 회장

 

최 회장의 전임 회장이었던 추무진 전 의협 회장에 대해서도 두 번 불신임안이 상정되었었는데, 그 불신임을 주도한 인물이 최 회장이었다. 당시 전의총(전국의사총연합) 대표였던 최 회장은 2017년 9월 열린 의협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추 (당시)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단상에 머리를 박는 등 극단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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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투쟁의 경력을 가진 의사가 회장이 되고, 회장이 된 후, 사안이 생겼을 때, 결국 정부와 합의를 하게 되고, 그 후에 의협 내부에서 반발이 생기는 과정은 계속 반복이 되어왔던 역사이다.

 

이런 이유로 불신임안이 통과될지까지 외부에서의 예측은 힘들어도, 최 회장의 불신임안이 상정될 수 있다는 예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된 회장도 부결된 회장도 있었다. 의협 내부도 많이 정치화되었고, 정치는 생물인지라 27일 전까지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는 단정할 수 없다. 의정합의가 어떻게 될지는 일단은 불신임안 통과여부를 지켜봐야할 것이다.  

 

 

변명, 계획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최대집 회장의 탄핵안이 상정되었다는 보도를 봤다. 급하게 그것에 관한 부분을 썼다. 깊은 내용은 아니나, 다행히 의사 집단에 대한 조사들을 하며 알게 된 정보들로 최 회장의 탄핵안이 상정된 배경에 대해 약간의 해설은 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문제는 그 부분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면서 기사가 더 길어졌다. 기사가 길어지면, 독자들은 지루해할 것이고 잘 읽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도 그러니깐. 고민해본 결과, 기사의 진도가 좀 더디게 나갈지라도 끊어서 가는 것이 전달력 면에서 더 좋다고 판단을 했다. 

 

이번 편에서 <의사집단 내 수구강경우파 탄생 배경>에 대해 마무리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젊은 수구강경우파 의사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의사집단 내 논리의 모순성

-2000년 개정된 의료법, 그 이후 의사들의 절대면허와 의약분업에서 탄생한 의사집단 내 수구강경우파들의 활약(?) 

 

을 다룰 것이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 할 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틀만 말하고, 다음 편에서 어디까지 다루겠다고 단정 짓지 않겠다. 암튼 뭐 그렇다. 안녕!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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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