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中>

1. 변호사 3만 명 시대의 학교폭력 전문가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만여 명이었던 변호사 수는 사법고시의 폐지 및 로스쿨의 영향으로 3만 명 변호사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10년 전 2.73건을 기록했던 1인당 사건 수임 건수는 19년도에는 1.2건으로 떨어졌습니다. 수년간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누렸던 변호사라는 직업군에 새로운 위기가 다가온 것이죠.

변호사의 수가 늘어나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의 법률적 서비스의 영역도 점차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 특허 관련 전문 변호사, 형사 소송 전문 변호사 등으로 말입니다.

아들의 폭행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CCTV 동영상) 한 후 보다 전문적인 법률적 조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변호사를 찾아보았습니다.

늘어나는 학교 폭력으로 인하여, 학교 폭력 전문 로펌이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학교 폭력이라고 검색을 하면, 수십 명의 전문 변호사와 로펌이 검색되고, 모두가 높은 승소율을 자랑하는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 발생되는 학교 폭력은 새로운 변호사 시장을 형성하고, 그만큼 수주 경쟁이 치열합니다.

저 또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했고, 해당 지역의 학교 폭력 전문 로펌을 수배한 후, 상담을 받으러 갑니다.

총 5군데의 로펌 및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아들의 학교 폭력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향후 소송 진행 사항에 대하여 상담받았습니다. 공통적으로 저에게 얘기했던 부분들은, 가해 학생들이 중학생이기 때문에 법률적 처벌이 생각보다 못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사 소송일 경우, 소년 법원에서 진행이 될 것이고, 중학생이고 초범이기 때문에 처벌의 수위는 고작 보호 관찰 정도 일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민사 소송일 경우, 손해 배상액 자체도 현실적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금액 자체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 폭력 피해 가족들이 소송 자체를 꺼려 한다고 하더군요. 긴 소송으로 인하여 정신적 피해와 비용만큼의 효과가 크지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고 적당히 합의하는 피해 가족들이 많다고 합니다. 소송의 시간과 가해 학생의 미약한 처벌 수위는 어쩔 수 없이 합의를 종용하는 분위기로 만듭니다.

일단 소송의 결과에 대해서 저는 사전에 인지하였던 부분들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소송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로펌이 자신들의 소송 승소율을 얘기합니다. 본인들은 의뢰인에 따라 가해 학생들에게는 낮은 처벌 수위를 받을 수 있도록, 피해 학생들에게는 가해 학생들이 높은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당연한 얘기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은 남아 있었습니다.

2. 우울한 경제적 현실과 아내의 조언     

변호사의 수임 비용은 보통 400~900만 원(부가세별도)였습니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 같은 경우에는 비용은 다소 낮고, 로펌이나, 퇴직한지 얼마 안 된 전관 변호사 같은 경우는 다소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평균 500만 원의 변호사 선임 비용은 일반 가정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상담을 받고, 가장 중요한 수임료의 얘기를 듣고 나서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합니다. 당연히 아들의 폭행 사건을 보다 현명하게 처리하려면,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사실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제가 의뢰하고 싶었던 로펌의 수임 비용은 900만원(부가세 별도)이었고, 그 비용을 감수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적 고민은, 제 자신에 대한 우울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상황을 결국에는 아빠의 경제적 현실 때문에 그 억울함을 어쩌면 풀어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제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우울감이 와이프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전달이 되었나 봅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이런저런 일정을 정리하던 중에, 와이프가 급작스레 방문하여 제 옆자리에 앉습니다. 오늘 있었던 로펌 상담에 대한 부분들을 얘기했고, 조심스레 수임 비용에 대해서도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저의 한숨이 와이프에게 전달이 됩니다.

얘기를 듣고, 와이프가 의외의 말을 합니다.

“난 오히려 변호사 없이, 당신이 혼자 진행했으면 좋겠어. 당신은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어, 누구보다 언변도 좋고, 누구보다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잖아, 개별적으로 물어볼 것이 있으면, 변호사에게 조언을 받더라도, 당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을 해보는 건 어때? 어차피 형사 사건으로 넘어간 이상, 이 사건은 결론은 비슷할 거야,

당신이 말했잖아, 결과를 보지 말고 과정에 더 집중하자고, 아빠가 이만큼 아들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 그러면서, 당신도 알아가는 거잖아

우리에게 중요한 건, 가해자들이 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들이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아빠의 노력이 아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당신이 지금처럼 우울해하거나, 자괴감에 빠져 버리면, 모든 가족이 다 그렇게 돼,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당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사항들을 맞추고, 준비하고 진행하면, 그 어떤 고액의 로펌 변호사 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설사 그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 과정만큼은 당신에게 학습되어, 아들에게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당신은 그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어, 우울해하지도 자괴감 갖지도 마.”

3. 그래, 우선 변호사 없이 간다 

생각해보니, 사건의 쟁점이 불분명하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변호사의 조력이 분명 필요합니다. 또한 그러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아들의 사건은, 이미 경찰서에 입건되어 사실적 증거를 토대로 수사가 진행중이기에 법리적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단계는 변호사 선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을 어떻게 확대해서 해석하느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사건에 대해서 이미 저는 여러 가지 실체적 진실들을 퍼즐 맞추듯이 조합하여 완성하였고, 그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재의 시점에 더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수임료는 경제적 부담이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빚을 내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사건을 변호사에 맡겨 진행하는 것보다, 제가 모든 사건 처리 과정에 관여하여 진행하는 것이 아들에게는 더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와이프의 말에 저는 일정 부분 공감하였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얻었던 법률적 지식, 기획서를 만들 때 구성했던 논리적인 흐름, 상대방을 압도했었던 협상의 잔기술, 허점이 발견되면 집요하게 공격했던 집요함.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그렇게 저는 시작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시작한 제 길만이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뚜벅뚜벅, 이 결과물을 여러분과 공유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