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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패미컴을 살까? 아니면 메가드라이브를 살까?”

“플스를 살까? 새턴을 살까?”

 

필자가 이런 종류의 질문을 들었던 것만 최소 100번일 것이다(어쩌면 네 자리 수 일지도 모르고). 그 이전 패미컴과 삼성 겜보이 중에서 뭘 살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던 건, 필자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패미컴의 압승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콘솔 게이머들에게 있어서, "어떤 콘솔게임기(이하 콘솔)을 살 것인가"는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둘 다 사라’가 정답이겠지만,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보겠는가? 둘 다 살 수 있을 환경이라면 애초에 이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30년 전, 힘든 결정 끝에 부모님 몰래 슈퍼패미컴(드물게는 메가드라이브)을 구입하고선 친구한테 빌려온 거라고 거짓말하던 올드 게이머들은, 유부남이 된 지금도 새로운 콘솔이 나올 때마다 어떤 콘솔을 사면 좋을지 고민하곤 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그 고민을 필자에게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건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다음으로 어려운 문제다. 콘솔 선택에 대한 문제가 ‘짜장면-짬뽕' 난제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이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남에게 물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반면, 어떤 콘솔을 살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은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짜장vs짬뽕은, 그냥 그 순간 먹고 싶은 걸 선택하면 되는 일이다(막상 짜장면을 선택하고 나면, 먹지 못한 짬뽕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음엔 꼭 짬뽕을 먹겠다고 다짐하겠지만). 이렇듯 언제라도 또 먹으면 되는 짜장면-짬뽕과는 달리, 콘솔은 몇 년에 한 번, 몇 십 만 원이라는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콘솔을 살 것인가'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짜장면-짬뽕 난제에 대한 대답과 별로 다르지 않다. 즉,

 

"사고 싶은 것을 사면 된다."

 

물론 이렇게 끝내면 어그로를 끄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는 플레이스테이션5(Playstation5. 이하 플스5)와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Xbox series X. 이하 엑시엑)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비교하도록 하겠다. 콘솔 구입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 엑시엑과 플스5의 스펙 (XSX vs P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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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따지기 좋아하는 코어 게이머들이라면 이미 다 외우고 있을 도표지만, 시험 볼 것도 아닌데 우리가 이걸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쓸데없는 이야기를 생략하고 위 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SSD의 속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기성능은 엑시엑 쪽이 더 좋다. 엑시엑의 CPU와 GPU(그래픽 처리장치) 성능이 더 좋은 것은 물론이고,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며, 가격마저도 더 저렴하다(국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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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SIE)를 비롯하여 많은 플스5쪽 개발사들이 플스5의 성능을 칭찬할 때 대부분 SSD 속도를 언급한다. 그런데 이는 뒤집어서 생각하면 SSD 속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엑시엑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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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스스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했던 패드의 진동기능을 발전시켜, 적응형 트리거, 햅틱 피드백 등의 이름을 붙여가며 강점으로 내세운다. 또 Tempest 3D audioTech'라는 거창한 이름의 오디오 기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미 완숙단계에 다다른 엑스박스의 컨트롤러 기술과 충분히 검증된 돌비 기술들에 비해서 어떤 차별화를 보여줄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우리의 선택은 엑시엑으로 결정된 것일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몇십 년간 지속되어온 콘솔전쟁 역사에서, 더 좋은 성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 패배했던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콘솔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닌텐도 스위치만 생각해봐도 타사의 경쟁기기에 비해 성능이 훨씬 떨어진다. 

 

콘솔시장에서 스펙은 숫자에 불과하다. 성능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콘솔 게임기는 결국 게임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결국 '콘솔로 어떤 게임을 즐길 수 있는가'가 선택의 핵심이 된다. 

 

 

2. 전통적인 게이머들을 위한 안방마님, 플레이스테이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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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권 게이머들과 달리, 국내의 콘솔 게이머들은 지난 2-30년 간 플레이해왔던 일본 게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몬스터 헌터, 파이널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여신전생, 페르소나 시리즈와 같은 대작게임을 비롯해서, 용과같이, 이스, 영웅전설, 테일즈, 아틀리에 시리즈 등 크고 작은 일본 제작사들의 게임들이 대부분 플스진영을 메인으로 해서 발매되어 왔다. 

 

이 흐름은 플스5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많은 일본 게임이 엑스박스 쪽으로도 출시되긴 하지만, 플스 진영보다 늦게 출시되거나 한글화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엑시엑보다 플스5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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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스5에 서양권 게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소니의 라이센스 덕분에 확실한 독점적 위치에 있는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와 소울 시리즈의 원조인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 등의 게임들이 런칭 타이틀로 준비되어 있으며,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 라쳇앤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그란투리스모7 등 굵직한 독점 게임들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플스5를 선택한다면, 지갑사정을 걱정할지언정 할 게임이 없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3. 조금은 부족한 독점 런칭 타이틀, 멀티 타이틀과 게임패스로 무장한 엑스박스 시리즈 엑스

 

플스5와 비교해보면, 엑시엑의 런칭 타이틀은 조금 아쉽다. '대작'이라고 할 만한 독점게임이라고 해봐야 기어스 택틱스 정도인데, 이미 PC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주류 장르에 해당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기어스 택틱스를 '런칭 대작 타이틀'이라고 내세우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엑시엑의 런칭 후 할 만한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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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은 아니지만, 와치독스 리전, 어쌔신크리드 발할라,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 콜드 워, 사이버펑크 2077 등 많은 AAA급 멀티 플랫폼 게임이 엑시엑의 발매를 전후하여 출시될 예정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엑시엑의 성능이 플스5에 비해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같은 게임이라도 더 좋은 그래픽으로 즐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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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 독점 타이틀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내년 이후에 발매될 독점 타이틀은 결코 플스5에 뒤지지 않는다. 포르자 모터 스포츠를 비롯해서 헤일로 인피니트, 페이블, 스테이트 오브 디케이3, 헬블레이드2 등 다양한 장르의 많은 게임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엑스박스 진영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히는 ‘게임패스’까지 준비되어 있다. ‘게임패스’는 매월 약 17000원의 비용으로 100여 개가 넘는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로, 방금 이야기한 독점 타이틀의 대부분을 출시와 동시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약간의 편법을 이용하면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게임패스 얼티밋도 이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엑스박스원용 게임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게임패스 얼티밋으로 PC용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올해 연말부터는 EA play이 포함될 예정이며,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인 엑스클라우드(Xcloud)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게임계의 넷플릭스와도 같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다. 

 

 

4. SKT와 엑스박스 올 엑세스, 5GX와 엑스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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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엑의 출시를 앞두고 나온 발표 중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SKT와 함께 진행된 엑스박스 올 엑세스(Xbox All Access) 서비스다.

 

엑스박스 올 엑세스는 엑스박스와 게임패스 얼티밋을 하나로 묶은 24개월 약정형 렌탈 서비스로, '렌탈'이라고는 하지만, 24개월 이용 후 콘솔은 유저의 소유가 된다. 사실상 24개월 무이자 할부인 셈이다. 60만 원 정도의 초기 콘솔 구입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과 게임패스를 이용하면 추가 비용 없이도 상당 수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유저들에게 매력적이다. 

 

SKT와 마이크로 소프트가 손잡고 진행하는 올 엑세스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SKT의 경우 LTE보다 훨씬 빠른 5G를 내놓았지만, 정작 5G의 속도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만한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고화질 동영상을 보는 건 LTE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LTE보다 비싼 5G를 사용하던 고객들에게 5G의 장점을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5G만의 장점을 보여줄 서비스가 필요한 SKT에게 있어, 엑스박스 게임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제공하는 엑스클라우드는 최적화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과 달리 게임 스트리밍은 더욱 빠른 속도와 데이터 전송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SKT가 5GX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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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입장에서도 콘솔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있어서 SKT는 최고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기성능 면에서 결코 플레이스테이션에 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콘솔 시장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엑스박스 쪽의 마케팅 능력 부족이 큰 이유였다. SKT와의 협업은 소니에 비해서 한참 뒤쳐졌던 판매망의 차이를 한번에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엑스박스 올 엑세스의 경우, 아직까지는 해외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가격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차후 SKT의 모바일 상품과 결합된 형태의 다양한 요금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체적인 콘솔유저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올엑세스 서비스를 시행하는 점과 엑시엑의 기기 가격 및 올엑세스의 국내가격이 미국보다도 저렴하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엑시엑은 국내 시장에서 지금까지의 엑스박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5. 그래서, 뭘 사면 되나요? 

 

이제 마지막 대답을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사고 싶을 걸 사면 된다.”

 

과연 어떤 결론이 나올지 기대하며 한참을 읽어 내려온 독자들에겐 뒤통수를 치는 듯한 대답일지도 모르지만, 단언컨대 이 답 외에는 없다. 플스5와 엑시엑은 모두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방향성 또한 다르다. 

 

전통적인 콘솔게임기로써의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플스5는 국내 한정으로는 엑스박스에 비해서 많은 유저 수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를 얻거나, 같이 게임을 즐길 사람을 찾기도 더 쉬울지 모른다. 

 

주변에 내 말을 잘 듣는 순진한 친구가 많다면, 다 같이 엑시엑을 사는 것 역시 괜찮은 선택이다. 저녁마다 친구들과 온라인에 모여서 총질을 할 수도 있고, 몬스터를 잡으러 다닐 수도 있다.

 

혹은, 나보다 더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구입하는 콘솔을 따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가는데, 콘솔 하나 구입 못하겠는가? 

 

몇 만원 정도 더 비싸고 싼 차이가 있고, 세세한 성능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게임을 즐기는 순간에는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곳에 재미있는 게임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함께 즐길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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