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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이 쏘아올린 멘붕의 골짜기 

 

전광훈이 촉발시킨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의 유탄은 예비 신랑신부를 멘붕의 골짜기로 밀어 넣었다. 코로나가 바꾼 수많은 것들 중 ‘결혼식’도 포함될 거 같다.

 

결혼식을 치러야 할 예비부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때문에 50인 이하로 제한받자 예식장 측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를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저희가 답례품을 증정하겠습니다.”

 

답례품이라고 내민 건 최고급 와인. 계약 당시 책정한 식대는 1인당 5만 원이었고, 300인을 잡았다. 말도 안 되는 ‘최소 보증 인원’ 조항 때문에 이걸 해결해야 하는 거다. 예식장에서 내놓은 와인 가격을 확인해보니 8천 원짜리다. 남자친구는 화를 냈다.

 

“결혼식장 뷔페 원가가 1만 원이 안 되는 건가요? 지금 이걸로 하자는 건 뷔페 원가가 1만 원이 안 된다는 걸 시인하시는 거잖아요?”

 

예식장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예식장도 먹고살아야 하니 ‘밥’을 팔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 보증 인원을 요구한다. 몇 사람 올지, 그거만큼은 너희들이 돈을 내라는 거다. 그 밥값도 비싸다. 하긴 결혼식에 들어가는 모든 게 다 비싸다. 가뜩이나 결혼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결혼식 문화의 민낯이 샅샅이 드러나는 거 같았다.

 

문제는 이런 천재지변 앞에서 이 ‘밥값’을 누가 책임지느냐가 핵심 쟁점이 된 거다. 예비부부 입장에서는,

 

“우린 300명 이상 데려오고 싶은데, 나라에서 정한 거 아니냐? 그럼 50인 분만 내겠다!”

 

(이것도 어폐가 있는 게, 50인에 웨딩홀 직원도 포함돼 있다는 거다. 최대 10명은 제외하면, 양가 합해서 40명 정도의 하객만 모을 수 있다는 거다)

 

이에 대한 예식장의 논리는 다르다.

 

“너희가 300인으로 계약하지 않았나? 우리도 사업적으로 돌아가려면 최소한의 수익은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도 나라 시책이 그러니 우리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다른 방안을 찾아보겠다. 식을 연기하는 방법도 있고, 홀을 쪼개는 방법도 있다. 식사를 하지 말고, 답례품을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이 와중에 나온 게 8천 원짜리 최고급 와인이다. 알아보니 다른 예식장들도 답례품 수준이란 게 더 거기서 거기이다. 예식장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피해를 모두 예비부부에게 떠넘기는 거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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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시스>

위약금  

 

이 와중에 첫 번째 주말. 예비 신혼부부 단톡방에 톡이 떴다.

 

“결혼식 미루세요.”

 

50인 이하로 제한된 상황에서 강행한 결혼식, 신부가 피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친인척들만 모아서 정말 작은 결혼식을 했는데, 모두 마스크를 쓴 채로 멀찍이 떨어져 식을 진행했단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식을 미루란 말이 계속 들려왔다. “사람이 적어서 대접하는 분위기는 난다.”라는 말이 나왔지만... 이건 누가 봐도 정신승리다. 다들 공무원이 왔다 갔는지를 말하는데, 주요한 몇 군데는 공무원이 왔지만, 안 온 곳도 있는 거 같았다. 다들 예민하게 지금 사태 추이를 바라보는 중이다. 결혼식을 강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해서 다들 머리가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쟁점은 역시 ‘돈’이다.

 

“위약금을 누가 책임 지나?”

 

난 결혼식을 포기할 마음도 있다. 그렇다고 혼자만 살겠다는 건 아니다. 걸어놓은 계약금은 예식장이 가져가도 좋다고 본다. 고통분담 차원으로.

 

문제는 위약금이다. 위약금까지 떠안고 싶지는 않다. 이미 소소하게 계약해 놓은 것들(드레스, 웨딩촬영, 4중주, 축가, 폐백 등등)을 취소하다 보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거 다 포기하겠다. 그런데, 밥값까지 떠안을 수는 없다. 예식장이 위약금을 포기한다면, 나도 깨끗하게 계약금을 포기할 생각이다.

 

이미 단톡방에서는 ‘법적 조치’에 대한 비장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그쪽에서 민사 걸어도 난 위약금 안 낼 거다. 계약금 날린 걸로 퉁 치자. 천재지변이라고 하더라도 이걸 왜 우리가 다 떠안아야 하는가?”

 

몇몇 비장한 신랑들은 예식장의 행태에 분개하며 민사 소송이 들어와도 위약금을 내지 않겠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법적으로 가도 예비부부에 유리한 게 있다곤 말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몇몇 예식장 예약자들은 발 빠르게 모임을 만들고 이미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이다.

 

여기까지 오면 주변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있다.

 

“이 시국에 꼭 결혼식을 해야겠어?”

 

아는 지인들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서럽다. 우리가 지금 영화표 예매한 거 취소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결혼식은 최소 반년 정도 전부터 준비해 온 거다. 결혼식을 준비해 봤으면 다들 알 것이다. 그걸 아는 지인들이 이시국 씨를 등판시킬 때는 참 서러웠다.

 

“니네들도 시집장가 다 가봤지 않았나? 이게 한두 달 전에 결정한 게 아니잖아?”

 

결혼식을 미룬 이들에겐 더 큰 문제다. 연기를 한 번 하고 난 상황에서 다시 미룰 수 있을까? 나 역시도 결혼을 준비한 지 꽤 오래됐다. 그 사이 집도 구하고, 세간도 장만하고 ‘결혼 매뉴얼’에 나와 있는 것들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우리가 준비한 스케줄이란 것도 있다. 나 역시 결혼이 중요한 게 결혼하자마자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국가에서는 난임부부 중 만 44세 이하 여성에게만 지원을 한다. 이런 사정이 나만 있는 걸까?

 

당연히 우리 모두는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거나 배려 해야할 부분이 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니 말이다. 천재지변이니 우리가 조금 손해를 봐도, 그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들이 한 발 양보했다면, 공동체도 한 발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300인 이상으로 준비를 한 경우에 251인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금액은 예비부부들이 떠  안아야 하는 걸까? 답례품으로 퉁 친다고 하지만, 가장 흔하게 나오는 출처불명의 그 와인을 돌릴 수 있을까?

 

결국은 돌고 돌아 돈 문제로 귀결된다. 예식장 역시 살아야 하니 최대한 손해 안 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거다. 솔직히 그 심정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살아야 하니까. 그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도 피해자다. 둘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건으로 여러 청원이 올라온 걸로 알고 있다. 내게도 청원에 동참해 달라 수차례 톡이 날아왔지만, 별생각이 없다. 3단계 거리두기에 들어간다면, 결혼식을 연기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그럴 경우 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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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결혼식이란 허상  

 

코로나 사태 한가운데서 결혼을 준비하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이거 안 해도 되는 거구나.”

 

결혼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결혼식이란 게 하는 사람도, 축하해 주는 사람도 과히 좋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결혼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일 수 있겠지만, 변질된 ‘잔치 문화’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뿌린 축의금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있다. 허나 코로나 결혼식을 준비하며 ‘포기할 수 있다’까지 생각을 다 잡았다. 그 돈 회수하겠다고 식을 올려야 한다? 조금 씁쓸했다. 내 ‘상대’는 팀원이 좀 많아 축의금이나 부조금이 상당하다고 하는데... 내 ‘상대’를 잘 설득했다.

 

“그 돈 없어도 우리 잘 살 수 있잖아?”

 

물론, 잘 살지 못 살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사태 한가운데서 돈 때문에 식을 올리네 마네,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계속 고민하는 내가 문득 좀 없어 보였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전까지 흔히 해봤을 생각. 허나 부모님이나 각종 사회적 관계와 체면, 실리적 문제 때문에 결국 실현되지 못한 그 생각이 드디어 실체화될지 모르겠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돈을 걷고, 밥을 먹이는 것. 이게 결혼식일까?" 

 

몇 사람이 오고, 얼마나 걷었는지 확인하는 이 문화가 내게는 맞지 않는 거 같다. 아마, 코로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이번에 결혼을 준비하는 와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우리나라 잔치 문화를 바꾸겠구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관성’에 이끌려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렇게 안 해도 살 수 있다는 게 증명되는 요즘이다(물론 적자에서 흑자로 들어서는 기업은 관성으로 쓰는 돈을 안 써도 되는 걸 깨달아 사람을 무지 자르기 시작하는 악의 미학도 등장하지만).

 

부르는 사람도, 불러서 가는 사람도 부담이 된다는 것. 그것이 그냥 관성이라는 것. 그동안 축의금 때문에 걍 퉁쳤지만, 이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정말 ‘큰 돈’이 오간다는 것.

 

비용을 확인하게 됐다는 건 크다. '축의금을 안내도 되는 상황'이 강제적으로 터져버렸고, 지인의 결혼식인데, 코로나 때문에 안 가도 되고, 축의금을 정당하게 안내도 되는 사회 분위기라면? 이건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주말마다 결혼식 불려가는 게 얼마나 낭비인가? 시간 낭비, 돈 낭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다. 결혼식 문화가 바뀌어야 할 타이밍인 건 맞는 거 같다. 이 타이밍에 귀신같이 코로나가 찾아온 거고 말이다)

 

가뜩이나 결혼을 기피하는 세상인데, 결혼식 자체도 작아진다면 웨딩 업계가 살아갈 길은 더 험난해질 거 같다. 하긴, 그동안 유지된 게 이상할 정도다.

 

어느 세대든 누리는 것이 있다면 희생도 있다. 지금, 코로나 결혼 세대는 결혼식 때문에 말도 못할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 축의금도 제대로 못 받을 거다. 허나, 이 지긋지긋한 문화가 바뀔 수 있다면 어쩌면 나의 스트레스와 못 땡기게 된 축의금(?)이 사회적 비용으로 환원되어, 적어도 한국의 잔치문화가 확 나아지는,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 소소한 깨달음이 내가 멘붕의 골짜기에서 꺼낸, 결혼식이라는 허상에 대한 생각이다.

 

아, 그렇다고 전광훈 너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니까 또 이런 걸로 어디 설교 써먹고 나 댈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코로나 결혼식 준비하는 분들, 모두 힘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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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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