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4.목요일
작지아나
암(癌) 이남이
이놈이 저 죽는 줄 모르고 나를 죽이네
...고인이 남겼던 한 줄 시를 접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폐암으로 극한의 고통에 시달렸을 터인데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태도치곤 너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죽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불완전하게 죽는다. 두려움과 공포, 회한과 원망, 지나온 삶에 대한 많은 찌꺼기와 미련들 때문에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 한다. 죽는 자가 자신의 의지로 죽음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지 못해 죽음에 끌려간다. 최후의 순간임에도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살고싶다는 욕망으로 강렬한 저항을 하는 것이다. 그런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지만. 이런 완전치 못한 죽음은 다음생을 낳는 원인이 된다. 다시 탄생이 일어나고 삶은 또 시작된다...(짤라냄)
어린 시절 그가 TV에 어리숙한 모습으로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벙거지 모자에 콧수염을 기르고 바보같이 웃음짓던, 촌스런 몸짓과 말투가 영 맘에 들지 않았었다. 그의 대표곡 울고 싶어라는 또 어떤가. 축축 처지는 타령조에 비통한 목소리, 어찌 보면 술에 취해 울분을 쥐어 짜내는 (울동네 망나니 아저씨 술취해 고래고래 노래할 때랑 똑같았다)소리가 고통 같아 더 싫었는지 모른다. 뭔 저 따구 노래가 다 있어! 어린 시절의 나에겐 딱 그랬다. 왜 그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왜 저런 처절하고 늘어지는 노래가 인기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시대를 모르고 이남이를 모르고 어른들의 삶을 모르니 당연했다.
훗날 그가 철가방프로젝트라는 것을 만들어 다시 공연을 시작할 때는 밝고 경쾌한 곡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들이 배달한 노래들 속에는 풋풋한 봄내음, 여름계곡의 시원함, 따뜻한 인간미와 재미, 삶에 대한 긍정과 해학등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들의 노래를 배달해 먹으면 나는 정서의 포만감으로 배가 터졌다. 하지만 그때도 이남이는 나에겐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저 아저씨가 젊은 밴드에 왜 껴? 그림이 안 나오잖아. 늙어서 뭔 추태야. 그를 쏙 빼닮은 딸 이단비는 좋아라 하면서 그녀의 아비에겐 언제나 인색한 점수를 주곤 했다.
세월이 한 참 흐르고... 장외인간(이외수 소설)이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 강원도 여행중 화천에 들른 일이 있었다. 우연찮게 선생과 얽혀서 끼니도 잊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남이에 대한 편견도 거기서 다 깨졌다. 보기와 달리 이남이는 서울 토박이 였고, 그가 속한 밴드(사랑과 평화-이남이가 제안한 팀명)가 미8군 오디션 역사상 최고 등급인 Special AA를 받은 국내 유일의 밴드였다고 한다. 그는 당대의 대가였다.
그는 어느 날 자취를 감춘다. 인기에 대한 무상함이었는지 세상에 대한 환멸이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대중의 시야를 벗어나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격외옹(이외수)의 말에 따르면 중광스님과 함께 전국을 떠돌면서 명상수행등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한다. 그 깐깐한 미치광이 스님 밑에서 8년이나 버티었다고 하니 이남이의 품성이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스님들은 깐깐하기가 정말 좆같다^^. 이건 비하가 아니다. 난 그 깐깐함을 사랑한다. 경험해 본 사람은 이해할 터...) 걸레스님으로 부터 하산해서 만든게 철가방 프로젝트였다.
"사람 좋아, 아주 좋아. 도(道)가 나보다 훨 뛰어나".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의형제지만 아우 이남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대단했었다. 되살아난 기억에 비추어 보니 그가 남긴 짧은 시가 한 층 더 선명해 진다. 빈소를 찾은 선생의 비통한 모습을 보니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아우를 향한 마음이 추모시에 고스란히 찍혀 있다.
그래,
잘 가시게
오늘부로 세상은
다시 텅 비어 버렸고
나도
자네도
인생을
평생삼재로 알고
살아온 놈이고
지금은 우리
뼈저리게 외롭고
동서남북
사방팔방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 그토록 많아도
정작 이럴 때는 내 곁에 아무도 없고
우리 인생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이제 저승 가는 자네도
이승에 남은 나도
술은 마시지 않을 거고
제기럴,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웃으면서 작별해야지
어쩌겠어
그래,
잘 가시게
'오늘부로 세상은 다시 텅 비어 버렸고'
-아우가 빠져나간 빈자리가 너무 커.
'나도 자네도 인생을 평생삼재로 알고 살아온 놈이고'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겐 삼재가 의미없다. 삶 자체가 삼재라고 미리 전제를 깔고 사는데 뭐가 두려우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 우린 그렇게 험하게 살았다.
'우리 인생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삶이 그런 줄 자네나 나나 다 알고 있듯이 별거 없지.
'이제 저승가는 자네도 이승에 남은 나도 술은 마시지 않을 거고'
-자네가 빠지니 그 맛있는 술도 안 마실거야, 맛이 없어졌거든. 자네도 나없인 술 안 마시잖아.
'제기럴, 훌훌 털고 일어나야지 웃으면서 작별해야지'
-삼재와 같은 삶에서 자네는 내게 선물이었지. 자네 때문에 얼마나 행복했던지 몰라 그러니 웃으면서 작별해야 도리겠지, 그런데도 자꾸, 가는 자네를 잡고만 싶단 말이지.
'어쩌겠어'
-........자네를,,, 보내야,,, 겠지.
고인은 암과 사투를 벌이면서 사람들에게 담배 끊기를 간곡하게 권했다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예 담배를 배우지 말것을 호소했고. 코미디언 이주일과 아주 비슷한 말년이었다. 격외옹도 알아주는 골초였다. 내가 만났을 때만 해도 줄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방은 금방 안개의 도시 춘천으로 변했다. 연기가 창문을 열어 놓아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아, 여기가 선계인가하는 농담이 절로 나온다. 많게 하루 3갑씩 피웠던 내가 금연했다는 걸 말하니 놀라시더라. 금연약이나 침을 맞았냐고 하시길래 그냥 끊었다고 했다. 단지 담배 피우고 싶은 욕구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어리숙한 나의 표현(금연방법)을 선생답게 잘 이해하셨다.
고인이 살았던 시대보다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졌다. 정말 '울고 싶어라'다. 삼재같은 삶을 뒤로 한 채 그는 저승에서 천상병 시인과 걸레스님을 만나 반가운 해후를 즐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외수 선생은 자기만 빼고 지들끼리 논다고 너무 섭섭해 하시는데 쪼잖하게 그러지 말기입니다. 고인이 마지막에 선생의 손을 잡고 뭐라뭐라 많은 말을 했지만 아무 말도 못 알아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거 별거 아닙니다.
저승 통신원에 따르면 "지금 세상살이에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형님이 내 대신 삶이 고달픈 자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배달해 달라. 내 자식과도 같은 철.프하고 함께, 하늘에서도 형님을 잊지 않고 살피겠다. 잘 살다 잘 가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다시 만날테니까"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외수 선생도 어여 기운 차리시지 말입니다.
....
오늘도 태양은 떠오르겠지
오늘도 세상은 복잡하겠지
나는야 철가방 배달의 기수
부르기만 하시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면발이 길까요 인생이 길까요
일단은 살아봐야 아는 거지요
번개가 빠를까요 철가방이 빠를까요
일단은 주문부터 해 보시지요
나이는 묻지말고 사랑만 해주세요
사는 일이 괴롭고 짜증나시면
신나는 노래도 배달해 드립니다....
노래 '철가방을 위하여' 일부
안개중독자 / 철가방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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