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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세계관이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필자의 경우, LA에서 연수한 경험과 도쿄 직장생활이 그 예다. 

 

LA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세계관은 상당 부분 무너져내렸다. 한국을 중심으로 바라본 세상과 미국을 중심으로 바라본 세상이 달랐다. 세계관을 재건축했던 경험은 손에 꼽히는 경험 중 하나가 되었고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 후, 나는 서양이 아닌 동양에서 바라본 세상과 한국에 호기심이 생겼고 다시 한번 세계관을 깨보고 싶어졌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세상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다. 일본 역시 배울 것이 많았다. 허나, 2년간의 직장생활 후 더 이상 일본에서 살 필요까지는 없겠다고 판단했다. 성장동력이 떨어진 일본은 19세기와 20세기에 만들어놓은 관성으로 굴러가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어떤 특성들이 과거의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특성들은 지금의 일본에 약이 되는지 독이 되는지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지금부터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그런 개인적인 결과물이다. 

 

첫 번째로 지금의 일본을 만든 특성 중 하나인 '개인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개인주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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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악수하는

축구선수 티에리 앙리(오른쪽)

 

개인의 행복을 위한 도구인 집단이 거꾸로 개인의 행복의 잣대가 되어버리는 순간, 집단이라는 리바이어던은 바다 괴물로 돌아가 개인을 삼킨다. 집단내에서의 서열, 타인과의 비교가 행복의 기준인 사회에서는 개인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예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다리 위로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때가 되면 무덤으로 떨어질 뿐이다. 행복의 주어가 잘못 쓰여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中 -

 

현대에 개인주의를 가치로 했던 나라들에서 철학과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창조물과 기술과 이념이 발명 혹은 개발됐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인주의는 중요한 가치관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한 사람의 잠재력을 끝까지 발휘하는 데에 개인주의는 중요하며, 평등을 중요시하는 민주주의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개인주의의 가치는 유효하다.

 

일본은 어떨까?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기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는 각 나라의 개인주의 지수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개인주의 지수는 91점, 프랑스 71점, 영국 89점이었다. 일본은 46점이고 한국은 18점이 나왔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개인주의 정도가 강함을 나타낸다.

 

2010년 인제대학교 디자인대학 연명흠 교수는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한국의 개인주의 감성 비교' 연구에서 각 나라의 개인주의 지수를 조사했다. 결과는 네덜란드(2.98)와 일본(2.94)이 거의 동일한 점수로 개인주의 지수가 가장 높게 나왔고, 그다음 중국(2.82) 한국(2.37) 순이었다. 괄호의 숫자는 각 나라의 개인주의 지수이며 만점인 4점에 가까울수록 개인주의가 강한 걸 의미한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일본은 오리지널 G5로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과 함께 20세기를 선도했다. 일본은 구미 선진국과는 또 다른 개인주의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에는 없는 개인주의 문화가 있다. 일본식 개인주의의 근원과 특성 그리고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의 일본식 개인주의의 의미를 이야기해보자.

 

2. 일본 개인주의 문화의 근원

 

1) 섬나라의 계급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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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의 각 지방에는 다이묘(大名, 일본 지방영주)들이 있었다. 이들은 중앙정부의 쇼군에게는 절대충성하지만 자신의 지역에서는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다이묘는 사무라이를 고용했다. 과거 제도가 없었던 일본에서 사무라이들은 문관과 무관의 역할을 겸했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백성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려도 죄가 되지 않았다. 사무라이 문화 속에서 일반 백성들은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툼이 생기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한 것은 일본이 섬나라인 것과도 관계가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갈등이 생기면 떠날 곳이 없다. 더불어, 실질적인 최고 통치자였던 쇼군과 다이묘는 백성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다이묘가 지배하는 번(藩, 일본의 옛 행정구역으로 미국의 주보다 자치개념이 훨씬 강한 준국가의 개념)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섬나라에서, 사무라이들의 지배 하에, 제한된 지역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과 갈등을 최소화해야 했다. 타인이 내 영역에 들어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자신도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했다.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상존하는 긴장감 속에서 개인과 개인은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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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존재도 일본식 개인주의의 한 원인이다. 일본의 천황은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권없는 상징임에도 일본인들은 천황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연도를 이야기할 때도 '서기'보다 '연호'를 쓴다. '2020년'이라고 하지 않고, 지난해(2019년) 5월 1일 새로운 천황의 즉위를 기준으로 '레이와(令和)2년'이라고 한다. 외국인 입장에서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나 과거 기록을 찾아볼 때 번거롭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은 휴일이 아니지만 역사 속 여러 천황의 생일은 휴일이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최고권력자였던 쇼군을 폐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권력관계를 재정리하였다. 신분제를 폐지하면서 새로운 지배질서를 위해 천황에 신화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사실, 대외적으론 신분제 폐지였지만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이 신분제를 재정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메이지유신 이래로 고대 제정일치 사회처럼 천황은 종교와 정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게 오죽 전근대적이면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항복선언서에 '천황은 (신이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다'라는 문구를 넣었을까? 아래에 더 이야기하겠지만 한국보다 일본은 인간관계가 개인주의적이며 수평적인데, 그 원인 중 하나가 천황이다. 천황이 위에 있기 때문에 천황과 총리로 상징되는 소수 귀족을 제외한 국민들은 모두 동등한 피지배층인 것이다.

 

2) 일본의 개인주의는 '고립주의'다

 

'모든 것을 일정한 장소에 둔다' 이것은 일본의 좌우명이다.

- <국화와 칼> 中 -

 

개인주의를 '이익과 의지 개인주의'와 '타인무관심 개인주의'로 나눈 연구가 있다. 이익과 의지 개인주의의 예는 네덜란드고, 타인무관심 개인주의의 예는 일본이다. 네덜란드 같은 경우, 개인주의 속에서도 노동조합에 관한 의식과 제도나 타인들을 돕는 기부문화에 있어 한국, 중국, 일본보다 앞서 있다. 자신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인권이나 권리도 존중한다.

 

한편 일본은 타인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데에 있어서 최고점을 기록한다. 일본의 전철과 버스는 무척 조용하다.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다. 조용한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나도 당신에게 피해를 안 줄 테니, 당신도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게 일본식 개인주의다. 관련한 사회현상에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무연사회(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사회를 뜻하는 일본 신조어), 고독사 등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메커니즘을 의미한다면 도쿄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를 섬세하게 튜닝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도쿄에선 모든 것이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고 주의깊게 조절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모든 사물이 마치 행성들이 제 궤도를 따라 공전하듯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 <김영하 여행자 도쿄> 中 -

 

일본은 위에도 말했듯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계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이나 프랑스처럼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경험하지 않은 일본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일정한 장소에 둔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가치관과도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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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메이지 유신 당시 지배층은 불교를 배격하고 '국가신도(国家神道, State Shinto)'라 불리는 일본종교를 재정립했다. 천황을 숭배와 존경의 위치에 두는 가운데, '모든 것을 일정한 장소에 둔다'는 생각을 국민 개개인의 머리에 심어두었다.

 

거기서 나온 것이 일본의 질서의식이고 '대동아공영권'이다. 즉, '아시아 각국은 일본 아래에 있어야 하며, 서구세력에 대항하여 우리 일본이 너희들 각자의 위치를 지켜주겠다'는 것이 일본의 가치관이다. 이것은 그들의 허울뿐인 명분이 아니라 뿌리 깊은 사고의 반영인 것이다.

 

일상에 긴장감을 유지한 채, 타인에게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특성을 가진 개인주의가 형성된 데에는 자연재해가 많은 것도 영향을 주었다. 도쿄의 회사에 다닐 때 일이다. 3월의 어느 날 소나기가 내렸다. 그냥 소나기인가 보다 했는데 바람이 정말 매서웠다. 태풍도 아니다. 그냥 부는 바람이 매서워서 길에 우산이 날아다녔다. 왜 일본인들 집에 그렇게 투명우산이 많이 있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일본에선 장마도 보통 한 달 반에서 두 달이다. 태풍도 빈번하다. 지진도 많다. 그렇게 자연재해를 몇 번 느끼다 보니, 무언가에 항상 조아리면서 어느 정도는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겠다 생각했다. 자연재해는 대책이 없다.

 

일본의 역사깊은 계층구조, 섬나라적 특성, 자연환경이 결합하여 개개인들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살게 되었고, 그 긴장감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타인들이 자신을 도와줬을 때에도 고맙다는 말을 하는 대신 '스미마셍(죄송합니다)'이라고 한다. '당신이 날 도움으로써 당신에게 폐를 끼쳤다'는 것이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도 '스미마셍'이라 한다. 사람 간 교류의 다양한 측면이 그들에게는 '상대방에게 폐를 끼친 것'이 된다. 이렇게 그들은 일상 속에 긴장감을 유지한 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각자의 위치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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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어에 나타나는 호칭문화와 나이에 대한 인식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번째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sess a second soul)"

- 샤를마뉴 대제

 

코네티컷대, 영국 랭캐스터대, 버클리대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쓰는 언어에 따라 태도와 성격이 달라진다. 실제로 내 경우에도 그랬다. 영어를 쓰는 미국에선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했다. 나는 'I'이고 상대방 한 명, 한 명은 전부 'You'일 뿐이었다. 나이가 많아도 적어도, 개개인은 이름으로 불리는 동등한 인격체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였다.

 

2년 동안 일본 사회에서 일본어를 사용할 때도 그랬다.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관계성 그리고 일본어가 내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영어나 한국어와는 또 다르게 일본어에 나타난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를 인식했다.

 

한국에서는 사회활동에서 누군가를 부를 때, 김 회장, 이 의원, 박 대리, 최 변호사 등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직위를 이름 뒤에 붙인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손흥민 선수'라고 부른다. 한 코미디언이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불렀다가 논쟁이 일었던 적도 있다.

 

직위나 신분으로 상대방을 지칭하면, 지칭하는 쪽도 지칭된 쪽도 조직 내의 직위 혹은 사회적 신분을 다시 한 번 각인한다. 그것이 수직관계를 상기시키며 권위를 상기시킨다. 수직관계나 권위주의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자 최근 들어서는 카카오나 왓챠, 크래프톤을 비롯한 회사들에서는 직위 대신 영어이름을 지어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구미와 같이 회사에서도 이름을 부른다. 차이라고 한다면 보통 '상(さん, 우리나라의 '씨'에 해당)'을 붙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상(李さん, 이さん)'이라고 불리거나 이 씨인 다른 한국인과 구분하기 위해 민우상('ミヌさん', '민우 씨')이라고 불리웠다. 카쵸(과장), 부쵸(부장), 샤쵸(사장)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총리도 보통 'ㅇㅇ상'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관계에서도 일본은 한 살이든 다섯 살이든 나이 차이가 나도 한국처럼 형, 누나, 언니라고 하지 않고, 이름에 '상(さん)'을 붙여 부른다. 한국처럼 수직관계에 소속된 '나'를 인식하기보다 수평관계 속에서의 '나'를 인식할 수 있는 언어 활동이 많다.

 

만 나이가 아닌 한국과 같은 '세는 나이' 문화는 일본도 중국도 존재했지만, 20세기에 모두 사라졌다. 일본은 1902년, 만 나이를 공식 적용한 뒤 1950년 법적으로 '세는 나이'를 못 쓰게 했고, 중국은 1966~1976년 10년 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세는 나이를 쓰지 않고 있다. 베트남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서도 1980년대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있을 때 가끔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Korean age'(한국식 나이)와 'International age'(국제 나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가며 한국식 나이를 설명했던 게 떠오른다)

 

일본은 다섯 살, 열 살이 차이 나도 보통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한국어의 반말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구조를 쓴다. 일본에서 존댓말/반말은 나이 차이보다 '공식성'과 '비공식성'으로 가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보통 사적인 관계에서는 서로를 수평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나이 차이로 인한 호칭정리나 수직관계 없이 개인과 개인이 만날 수 있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프로세스 하나가 더 있고 없고는 다양한 파급을 준다. '빠른 생일' 문제나 선배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은 후배 같은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나이와 관련하여 일본 생활 초기에 의식적으로 적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한국과 다른 존댓말과 반말 활용이다. 필자는 한국에서 상대방이 동갑이든, 나이가 내 위든, 아래든 우선 존댓말을 고수한다. 나이가 나보다 위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나이가 적은 친구들에게는 나이로 인한 불필요한 수직관계를 피하고 수평적 의사소통을 하려고 그랬다. 존댓말을 하면서도 충분히 친하게 지내며 농담도 할 수 있는 톤과 매너를 지니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존댓말을 계속 쓰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종종 섭섭해했다. 본인은 반말을 하며 가까운 사이임을 표시하는데 나는 계속 존댓말을 하니, 친해지기 싫은가 보다 느꼈다는 것이다. 일본에 지낼 때 한두 번 들은게 아니다. '일본은 나이로 인한 인간관계 특성이 한국과 다르고 그와 관계된 언어활동도 다르구나'라고 느낀 뒤에는 나이 많은 일본인 친구들에게 적절한 타이밍부터 반말을 의도적으로 쓰려고 했다.

 

3. 밖으로 끄집어내는 집단주의, 안으로 넣는 집단주의

 

일본의 개인주의에 초점을 두고 썼지만 사실 일본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일본은 서양과도 다른 개인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국과 다른 집단주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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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같은 경우, 내향적인 개개인이 사회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룰만 지키면 집단에서 놓아둔다. 반면, 한국 같은 경우 내향적인 사람들도 집단의 일원으로서 외향성을 지니도록 하는 공기가 있다. 원하지 않아도 회식을 해야 하며 노래방에 간다. 신입사원은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개인의 영역을 침입하는 집단주의가 한국이라면 개인을 방치하거나 고립시키는 집단주의는 일본이다. 일본적 집단주의의 예로는 이지메(いじめ, 왕따), 무라하치부(村八分) 등이 있다. 무라하치부는 지극히 일본스러운 풍습이다. 마을에서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8가지 중요한 일, 즉 성인식, 결혼식, 출산, 간병, 집의 증개축, 수해방지, 제사, 여행 등에서 마을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누군가와 교류할 수도 없다(단, 시신수습과 화재는 도와준다. 이 두 가지는 도와주지 않으면 마을에도 피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가족 전체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완전한 집단 따돌림으로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2차 세계대전 때 버렸어야 했는데 '모든 것을 일정한 장소에 둔다'는 일본정신으로 인해 여전히 못 버린 모양새다. 여기엔 당시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 중국을 견제하며 동아시아 관리를 하기 위해 사실상 최고전범인 천황을 살려둠으로써 일본이 죄값에 비해 어설프게 처벌받은 것도 한 몫했다.

 

군국주의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한 여러 전쟁에서 승리를 경험했다.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등 일본은 계속해서 승리를 학습했다. 천황이 생존한 세계대전 이후에 일본은 경제면에서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의 특수를 누렸다. 80년대 후반에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를 안긴 미국의 경제를 위협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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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국가주의, 민족주의)을 버리지 못한 가운데, 백 년 가까이 단 한 차례를 빼고 거듭 승리를 학습한 것이다. 제조업 중심 시대에 고립된 개인을 만드는 개인주의와 내셔널리즘을 이용한 지배층의 지배와 관리 속에서 개인은 과로사를 할 때까지 묵묵히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일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은 그런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천황을 중심으로 한 질서체계' 아래에서 잘 관리하고 통제했다.

 

4. 세상은 21세기가 되었지만 일본은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은 본디, 위에 올라가면 내려오는 게 힘들다. 지금 일본이 그렇다. 잘나가던 20세기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처럼 외부로부터 두 번째 패배를 맛봐야 반성하고 변혁을 할까.

 

코로나19로 미뤄지기 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해 'again 1964'(부흥기의 도쿄올림픽을 생각하며 재도약) 분위기가 있었다. 백 년 동안 승리한 기억 때문인지 1990년부터의 30년 침체는 여전히 짧은 모양인 듯하다. 과거의 영광에 젖어 한국과 중국의 상승이 아니꼽고 불안하고 당황스럽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긴 관성이 있기 때문에 일본의 현재 지위가 당분간은 유지되겠지만,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

 

천천히 쇠락하는 나라를 우리는 보고 있다. 이웃 나라가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경제적으로도 잘 돼야 한국에도 좋다. 그렇지만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고립주의적 개인주의와 국가주의적 집단주의가 국제무대에서 일본사회도(ex, 재팬패씽), 일본사회에서 개개인도 고립시킴(ex, 이지메)으로써 일본을 쇠락의 흐름에 안착시켰다.

 

속도의 시대 21세기에는 쌍방향 소통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은 사무실을 무지하게 넓게 지어 팀원들이 자주 교류하며 창의력을 발현하기 쉽게 환경을 조성한다. 화장실도 다른 부서 멤버 간에 '우연한 마주침'이 자주 발생할 수 있도록 동선을 감안해서 배치한다.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며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역량을 가진 다양한 팀원과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그게 서툰 것처럼 보인다.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서는 장인정신이 뛰어난 개인도 많고 오타쿠도 많다. 그러나 빠르게 소통하며 즉각즉각 변화를 주며 일하는 것에는 약하다. 제조업 시대에 흔히 하듯 위에서 아래로 명령하고 맡은 분야에서 정확하고 정교하게 일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쌍방향 소통에는 약하다. 개개인은 위에 말했듯이 수평적 관계이지만 서로 의견을 표현하고 교환하는 것에는 낯설다. 오히려 외향성을 강제하는 한국의 집단주의가 단점은 많아도 여기서 이점이 있다.

 

또한 한국의 집단주의는 나라가 어렵거나 지도자가 어리석을 때 국민들을 뭉치게 한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지도자가 어리석을 때 뭉치지 않고 지도자가 뭉치라고 해야 뭉치는 듯한 인상이다.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매뉴얼에 묶인 개개인이다. 일본식 개인주의는 과거 제조업시대에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식 개인주의는 변화하는 시대에 지금의 일본을 쇠락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다음편에는 '한국보다 빨리 도입된 일본의 민주주의'를 다뤄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책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 이승철 지음. 행성B

책 <일본인 이야기> 김시덕 지음. 메디치

책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문학동네

책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을유문화사

책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 이누야마 요시유키 지음. 솔과학

책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호사카 유지 지음. 김영사

책 <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지음. 아트북스

책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 이광훈 지음. for book

 

논문

연명흠 ( Myeong Heum Yeoun ). 2010.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한국의 개인주의 감성 비교. 감성과학, 13(1): 79-90

 

기사와 그 밖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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