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8.월요일
Samuelseong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중앙일간지에 광고 한 번 못 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 인터넷 서점에선 종합 신간 1위,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선 책이 없어서 못판다고 하고 있습니다. 뭐 바로 어느 책을 말하는 건지 짐작 하실 겝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이 책이 나왔던 무렵. 트위터판에서 작은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모 기업의 보안교육에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험담이 나오자, 그걸 참지 못했던 까칠한 트위터 한 분이 그 사실을 트위터로 이야기했고, 한 나절 동안 무한 RT가 되어가면서 이게 삼성 관계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죠. 황당해졌던 건, 이 분들이 최초 발설자를 찾겠다고 나섰다는 겁니다. 삼성과 껄끄러운 시사IN의 한 기자가 이 사실을 쫓아가기 시작하자 없었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 삼성그룹 홍보실은 이 책의 광고집행과 관련해 어떤 압력도 넣은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뭐 이미 아이폰 출시 당시 '아이폰까고 옴니아 띄우기'에 맹렬하게 나섰던 한국 언론사들을 이미 겪었던 사람들에게, 더군다나 트위터 사용자의 상당수가 스마트폰 사용자인 판이라 삼성측의 해명은 더 불을 지르는 효과만 발휘했습니다.
트위터로 자발적인 홍보들이 이어지고,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책 광고(사실 광고 카피는 좀 후졌습니다)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인터넷 서점들의 종합 신간 1위를 단숨에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도 있었던 것이죠.
여튼, 이틀만에 책을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하던 중에... 가끔 한 마디 하셔서 사람들 당황하게 만드시는 가카의 한 마디가 생각나더군요. "우리도 아이폰 같은 거 만들면 안되나"
이 책을 읽고 나니 삼성과 같은 재벌들이 지금과 같은 비즈니스 관례들을 계속 가져간다면 '우린 영원히 못 만든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폰에 환호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분명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앱스토어'가 완전한 하나의 생태계를 가지고 있어서 대단히 독창적인 앱들이 나와 명실상부한 휴대용 컴퓨터로 아이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설계할 당시의 철학' 자체가 남달랐던 거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재벌회사들은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이 신기술을 개발해서 독립적 시장 개척이 가능하지 않도록 회사를 압박하며, 무엇보다 실제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들보다 비자금 기술자를 더 중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반도체 기술자와 휴대폰 기술자들보다 이들이 중용되는 현실에서 창의적이고 개발자들과 '공존하는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생각이 나올리가 없지요. 휴대폰 개발을 비정규직들이 하고, 비자금 기술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판 아닙니까.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로열 페밀리의 행각들에 대해선, 뭐... 솔직히 별 감흥없습니다. 정말 돈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봤던 적이 있어서요. 문제는 다른 것에 있지요.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흉흉한 말이 나오는 조직은 조직원의 충성도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사회공헌활동과 관련된 비용들도 꽤 발생하게 되죠.
문제는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삼성의 경우, 조직운용 비용이 엄청나게 나가는 형태로 조직을 운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업의 사회적 활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이건희 전 회장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부러워한다고 하더군요. 인도의 타타그룹도 발렌베리 가문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이들 가문은 해당 국가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삼성그룹이 사회공헌활동을 하기 위해 쓰는 돈이 이 기업들보다 많다는 겁니다.
내부 혁신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비자금 관리에 더 신경을 쓰는 기업은, 그리고 기업 내에서의 이견조절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통제를 가하여 엄청난 비용을 지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기업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어야 할 사람들은 그 회사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뭐 그럴 가능성은 무척 낮아보입니다만.
더불어 조금 우울했던 것은... 참여정부 조차도 삼성이 양성한 장학생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들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어울려 다닌다는 것이야 당시에도 꽤 자주 언급되던 사실이죠. 한미FTA의 경우에도 삼성경제연구소가 써준 것이 거의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되면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구요. 정권 교체만으로 더 나은 세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참여정부였습니다. 대통령만 고립된 상태나 다름 없는 삼성왕국에서 정권교체만으로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분명한 현실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책값 2만2천원. 쫌 쎕니다. 하지만 그만큼 돈값은 합니다. ㅋ
제가 가장 공감했던 김 변호사의 이야기 한 구절만 올려놓습니다.
"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책 p386)
작년 겨울, 한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봤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에서 사람들에게 촛불을 나눠주는 소녀에게 물었답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느냐?"고... 그 소녀는 이렇게 답했답니다. "큰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그 그림의 픽셀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문제를 지적하고 해법을 찾아가자는 이야기는 삼성을 반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재벌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렸습니다.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돈'으로 발라버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이 사는 길 좀 찾아보자는 이야기입니다.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살 수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물이 지금처럼 썩어 있어도 고기는 살 수 없습니다.
저처럼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작은 픽셀 하나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픽셀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국회의원이 다섯인 한 정당의 서버를 경찰이 해킹하고 압수수색하는 황당한 나라 꼴은 바뀌지 않겠어요? 책 읽고 많은 이들과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twitter: @ravenclaw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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