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8.월요일
충용무쌍









이상 보도사진
일단 낚시라서 죄송하다. 현장취재는 무슨...센스 있는 딴지스들이라면 제목만 보고도 떡밥의 향기를 맡으셨겠지만 본지 기자들에게 허락된 현장취재는 단 두 가지. 먼저 죽지 않는 돌고래가 보여준 것처럼 기자가 사비를 들여 뛰는 자력취재가 있고, 소액의 판공비가 지원되지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야하는 차력취재가 있다. 아, 우리에게도 총수가 쏴주는 항공권과 법인카드가 있었더라면! 단지 그러기 위해선 독자제위께서 열심히 슛도 쏴주시고, 기사 밑에 점수도 쏴주시고, 가카도 쏴주셔야....실언이다. 마지막 말은 취소다. 아무튼 판공비 받으며 해외로 현장 취재 뛰는 그 날까지는 일단 골방취재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골방취재 시작이다.
보도사진을 봐주시라. '대륙의 레이싱걸' 같은 우스개를 익히 접해온 독자들은 짐짓 놀라셨을지도 모르겠다. 쇼걸(Show Girl : 우리가 흔히 레이싱걸, 컴패니언이라 부르는 행사도우미를 중화권에선 칭하는 말)들의 늘씬한 몸매와 화사한 이목구비는 더 이상 '대륙의 무엇' 이라 놀리기 망설여진다. 이것이 지난여름 15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는 중국 최대의 게임쇼, 차이나조이(China Joy)의 일면이다. 2009년 7월23일부터 26일까지, 50여 개국 200여 업체 참가, 총 전시부스 약 150개!

중국국제뭐시기.....이건 아홉친구님께 부탁드려야....
지난 11월말 있었던 국내 최대의 게임쇼 지스타(G-Star)가 부럽지 않은 규모다. 이 정도라면 IT강국임을 자랑하며 문화 컨텐츠 강국으로의 비상을 꿈꾸는 국내 관계자들의 간담이 서늘해 질 법도 하다. 선발주자 일본을 따라잡기도 전에 후발주자 중국이 이렇게나 따라붙었단 말인가? 하지만 혹자는 그럴듯한 수치로 포장된 차이나조이의 속살을 까보면 '그래봤자 마데 인 차이나' 일 뿐이니 걱정말라한다. 물량공세와 매력적인 쇼걸로 포장된 차이나조이의 속살은 결국 조잡한 아류작과 노골적인 표절작으로 채워져 있을 뿐,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차이나조이에서 공개된 신작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속칭 'Mu(웹젠)짭퉁' 으로 통하는 MuX(The9) 트레일러

던젼 앤 파이터(넥슨)? 아니죠! 명장삼국(The 9)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몬스터헌터(CAPCOM)을 빼다박은 헌터블레이드(JOYCHINA)
도우미들은 벗기고, 출품작은 베껴낸 외화내빈(外華內貧)의 행사. 이쯤 되면 '대륙의 게임쇼' 역시 다른 대륙 시리즈와 마찬 가지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가 되어야할 게임은 뒷전이고 어떻게든 시선 끄는 데 급급해 물불가리지 않는 업체들의 행태는 이미 도를 넘어서 있었다. 짧은 치마와 몸에 달라붙는 유니폼은 양반이었고 아예 란제리 차림으로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쇼걸들부터 기린게임의 부스 앞에서는 스트립 바에서나 볼 수 있는 '봉춤' 까지 펼쳐졌다고 한다. 낯 뜨겁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법이다.

게임쇼가 맞습니다..맞고요...
그리고 정확히 넉달 뒤인 2009년 11월 27일.
국내 최대의 게임쇼라는 지스타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낯뜨거운 경험을 했다.

[지스타2009] 얼마나 야했길래 '레드카드' 받았나? (조선일보)
지스타를 걸음마부터 지켜 봤던 사람으로서 이 소식을 전해 듣는 심정은 참담했다. 지스타가 나를 낯 뜨겁게 했던 것은 비단 이번일로 처음이 아니었던 탓이다. 2009년 지스타가 저러했다면, 2007년의 지스타는 이러했고
막내린 ‘지스타2007’, 미래는 있는가? (게임동아)
2006년의 지스타는 이 모양 이었다.

그러나 단지 '벗겨서' 낯 뜨거웠던 게 아니다. G스타의 G가 Game의G가 아니라 Girl의 G라는 비아냥에 낯 뜨거워졌다면 이 충용무쌍, 애초에 행동하는 음심이라 불리지도 않았으리니. 정말로 나를 낯 뜨겁게 했던 것은 2005년에 있었던 제 1회 지스타의 탄생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보려면 시계를 조금 뒤로 돌려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5년전, 2005년 3월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러니까 옛날 옛날에..
당시 마비노기, 카트라이더로 연이어 대박 행진을 펼치던 굴지의 게임업체 넥슨에서 게임업계 간담회가 열렸다. 뭐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넥슨의 끗발이 어느 정도 였는 지 짐작케하는 일화다. 간담회라고 끼리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노가리 까는 그런 행사가 아니었던 거라.
한국 소프트웨어 진흥원 원장, 한국 게임 산업 협회 회장, 거기에 진대제 당시 정부통신부 장관을 비롯한 굵직한 정부 관계자, 산하기관장들이 대거 참석한 모임이었던 것이다. 간담회에 앞서 진장관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은 넥슨을 탐방, 개발현황과 사업계획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던 걸로 보아 넥슨이 업계 대표하는 1빠따, 모범케이스로, 마치 교장 선생님 앞에서 똘망똘망한 선수 대표 어린이가 뽑혀 나와 선서 하는 것 마냥 '국내 게임 산업이 지금 이렇게 잘나가고 있습니다. 한번 어여쁘게 봐주시고 앞으로도 팍팍 밀어주십시오 꾸벅' 하는 그런 분위기의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선수대표 넥슨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게임이 무엇이더냐?
서비스 개시 3개월만에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며 월매출 50억을 올리고 있던 국민게임,.......카트라이더였다.

카트라이더 (넥슨, 2004)
카트라이더(이하 카트). 인기와 매출 그 어느 것을 놓고봐도 장관앞에서 자랑 할 만한 게임이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코 자랑해서는 안 될 게임이기도 했다. 넥슨은 카트에 대해서 앞서 서비스를 시작한 자매작 크레이지아케이드(이하 크아)의 외전격으로, 크아의 세계관을 이식한 자동차 경주 게임이라고 설명했지만, 게임의 뼈대를 12년전에 닌텐도에서 출시한 마리오카트에서 그대로 들고 온 '아류작' 임은 말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파고들면 카트의 전신격인 크아도 실은 봄버맨시리즈(허드슨)에서 캐릭터만 빼고 그대로 들고 온 게임이었다. 아니 캐릭터마저 거의 똑같다고 봐야한다. 2등신의 SD캐릭터들이 복면을 뒤집어 쓰고 까만 눈동자만 드러낸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다오나 봄버맨이나 멀어봤자 사촌지간임이 분명해진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넥슨, 2001)와 봄버맨(허드슨, 1986)
하지만 슬프게도 장관님 보시기에는 꽤 마음에 들었나보다. 진대제 장관은 그날 간담회에서 '카트라이더를 배우고 싶다' '기회가 닿으면 정동채(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장관과 카트라이더로 한판 겨뤄보자' 등등의 주옥같은 애드립을 날리며 카트와 크아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게임의 주무부처를 다투는 두 장관이, 표절작이나 다름없는 게임을 가지고, IT강국이자 컨텐츠 강국임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모습을 눈감고 그려보자. 어지러워진다.
진대제 정통, 정동채 문화에 '카트라이더 선전포고?' (아이뉴스24)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진장관의 도발에 점점 살이 붙어 가는데, 거진 보름 뒤인 4월 14일 열린 'e스포츠&게임산업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 참여한 정동채 장관이 '게임 산업의 주무부처 장관을 너무 만만히 보는게 아니냐, 그 도전 받아주겠다' 며 익살스럽게 진장관의 도발에 응수한 것이다. 말은 말을 낳았고 5월쯤 되자 어느 케이블 게임 채널에서는 세기의 빅 매치가 성사되면 중계와 스폰서쉽을 지원하겠다면 나섰고 언론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수년 전 까지만 해도 게임이라 하면 '애들장난' 으로 여겼던 나라에서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기고 장관둘이 공개적으로 '게임 대결' 을 펼친다니 굉장한 기사거리가 되지 않겠나. 하지만 6월쯤 열릴 것 같았더 이 대결은 갑자기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흥미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불편하다'며 정동채 장관측이 난색을 표함에 따라 일단 물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
장관대결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2005년 겨울,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아래서 처음으로 열리는 게임쇼, 지스타2005에서 결국 두 장관이 맞붙기로 여름쯤 결론이 난 것이다. E3와 동경 어뮤즈먼트 쇼에 버금갈 국제행사로 키우겠다는데, 그럼 월간 패미통 기자나 닌텐도 관계자 같은 이들이 초청받아 와서 "나...난다코레?! 고레와..닌텐도카토라이다 아니데스까?! " 라고 외치는 그림이 그려졌고 나는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지스타 2005가 시작됐다.

그날 진장관은 하얗게 불태웠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의 현란한 컨트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능숙한 솜씨다..이 남자..진심이었어..." 하며 경악했을 정도
여기서 한 가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체 "영감님" 들이 무슨 바람이 불어 게임 판을 벌였나 하는 것이다. 내일모레 환갑을 바라보던 문화부 장관의 핏속에 잠재된 덕후 기질 같은 건 없었던 걸로 보인다. 모든 것은 진장관의 시나리오였다고 봐야한다.
당시 게임의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였고 그로 인해 예산집행을 비롯한 각종 정부지원을 받고 있었다. 게임은 문화콘텐츠 이기도 하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IT산업으로 볼 수 도 있는 법. 따라서 정보통신부 측에서는 이게 상당히 배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 진대제 장관은 이걸 노리고 처음부터 문화부에 기 싸움을 걸었던 것이다. 최종 목표는 주무부처 이관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문화부와 파이를 나눠 먹는 것 이었을 터. 어떻게든 화제를 만들어내고 그 중심에 정보통신부를 내세우려 했던 게 진장관의 의도였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수성전이 된 정동채 장관의 태도는 뜨듯 미지근했고 공성전을 펼치는 진장관의 자세가 더욱 적극적 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먼저 대결을 제안하고 반년 넘게 기다려서 그 날의 대결을 압승으로 이끈 것은 진대제 장관이었다. 하지만 2010년 오늘까지 게임 산업의 주무부처는 계속 문화부다.
'이 지스타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오늘 장관이 두 명이나 이 자리에 참석한 걸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라는 진대제 장관의 개회사가 아련히 들려온다. 아아.. 이제 모든 게 끝이야 라고 생각할 찰나, 다행히 그 날 대결종목은 예견된 카트가 아닌 파란의 프리스타일로 변경되어 있었다. 처음 이야기가 오가고부터 지스타가 열릴 때 까지 카트이 인기가 다한 건지, 아니면 중간에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손을 쓴 것인지, 파란측의 로비가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낯 뜨거울 뻔 한 장관대결은 다행스럽게도 조용히 끝났다. 이것이 지스타의 창세기다.
때는 2005년, 허드슨의 봄버맨과 닌텐도의 마리오카트를 짜깁기한 게임이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문을 들은 한 장관은, 주무부처의 이권을 을 노리고 경쟁부처의 장관에게 도발을 걸어 게임쇼에서 맞붙었으니, 그 게임쇼의 이름을 게임의 별, G★(지-스타)라 한다. 이후 정부의 지원속에 지스타는 해마다 꼬박꼬박 열리게 되었는데 참가 업체들은 자사 홍보에만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그 풍토가 갈수록 각박해졌다. 도우미들은 벗기고, 게임은 베껴서 내놓으면서 '걸스타' 라는 비아냥을 들어오길 5년. 그 사이 비키니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춤 춰야했던 도우미도 있었다. 음모를 드러내놓고 활보하던 코스튬플레이어도 있었다.
-지스타 실록, 3장 16절
다음시간에는 표절과 모방, 인용, 그리고 창작의 징검다리 위에서 갈팡질팡해온 국산 게임의 흑역사를 본격적으로 디벼팝니다, 똥꼬 깊수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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