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확진자.jpg

프랑스 코로나 확진자 추이(2020.09.28)

출처: coronaboard.fr

 

코로나를 상대로 첫 번째 승리를 외쳤던 프랑스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프랑스는 유럽에서 스페인 다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나라다. 지난 토요일 프랑스의 코로나바이러스 일일 확진자 수는 11,123명. 1만5천명을 넘나들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감소세가 보여 다행이라는 평이다. 누적감염자는 54만 명에 가깝다.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참 이해하기가 어렵다. 2020년 1월 기준, 프랑스 본토의 인구는 약 6천 5백만 명으로(스페인은 약 4천 6백만), 미국이나 인도처럼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은 나라가 아니다. 약 5천 2백만 명인 우리나라 인구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약 6개월 동안 대도시 하나의 인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셈이다. (초등학교 사회에서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를 대도시라고 배운다고 한다)

 

오늘은 코로나 시대를 파리에서 보내면서 직접 경험한 면면을 가지고 프랑스의 두 번째 대유행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프랑스 병원의 코로나 관리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던 8월 중순, 장염 증상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코로나를 의심하며 PCR 검사를 제안했다. 호흡기 증상, 감각상실은 없었지만, 미열과 설사, 오심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2차병원 정도 되는 규모인데, 졸지에 코로나 의심 환자가 된 나를 두고 당황한 건 나 하나뿐이었다. 의사도 직원도 나를 일반 환자와 똑같이 대했다. 선별진료소나 격리된 공간은 없었다. 자가격리를 하라는 지침도 없었고,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접촉자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말라는 답을 받았다. 심지어 KF94 마스크를 낀 나에 반해 의사는 덴탈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감염관리 방식이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이튿날, 검사를 위한 처방전을 들고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알았다. 원무과에 앉아있던 그 많은 사람이 다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검사실 역시 병원 제일 위층에(모든 환자가 같은 통로로 오간다. 여전히 믿을 수 없다) 마련된 작은 방에서 N95와 페이스쉴드를 쓴 의사가 진행했다. 사방이 막혀있는 작은 방에서 마스크를 내리려니 오히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답게 진료 후 철저하게 자가격리를 했지만, 검사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내게 격리를 하라는 안내를 주지 않았다.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당일 저녁에 나왔다(프랑스 행정을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 다행히 음성이었다.

 

그날 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져 119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을 갔다. 여기서 두 번 충격을 받았는데, 첫 번째는 소방서에 전화하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약 45분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그 45분 동안 내 증상과 코로나 여부를 3번 정도 물어봤는데, 만약 검사결과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두 번째 충격은 대학병원 응급실에도 선별진료소가 없다는 점이다.

 

여차여차 응급실에 가서도 앞에서 30분을 대기했는데 코로나 관련 사항을 체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검사지의 가호로 빠르게 진행되어 30분 만에 들어간 응급실은 1인실 개념으로 꾸려져 있었다. 다만, 진료를 본 후에는 공동공간으로 나가서 대기했다. 코로나 검사를 안 했다면 얼마나 시간이 소요됐을지 코로나 의심 환자가 오더라도 1인실 안에만 있을 뿐인 건지 의문이 생겼다.

 

며칠에 걸친 코로나 검사와 응급실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프랑스 병원의 코로나 관리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괜히 K-방역, K-방역,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방역방식을 많이 접해온 나로서는 (프랑스의) 환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건지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전문가의 영역이기에 함부로 평가하기 조심스럽지만,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확진자가 급증한 지금은 PCR 검사와 결과를 받기 위한 대기시간이 수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코로나 증상이 있으나 검사를 할 수 없어 여러 병원에 문의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왕왕 듣고 있다.

 

 

2차 대유행은 우연이 아니야

 

7월과 8월은 길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바캉스 기간이다. 사실 10월까지도 바캉스를 가는 경우들이 많아 아직도 바캉스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로 경기침체가 심화된 시점에도 과연 바캉스를 떠날지 참 궁금했는데,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여행가ㅡㅇ.jpg

프랑스 입국 가능한 국가(2020.08.08 기준)

출처: vie-publique.fr

 

사실 이 시즌을 겨냥해 유럽연합 국가들은 6월과 7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국경을 개방해왔다. 관광산업이 유럽 각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중추인 데다 여름은 상반기 이동제한조치로 무너져 내린 경제를 살릴 큰 디딤돌이 될 시기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올여름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프랑스 지역을 여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국을 여행하는 것도 가능했다. 타국의 여행객이 프랑스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7월에 입국 제한대상에서 해제되어 마음만 먹는다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비자로 프랑스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해제대상 국가가 아니더라도, 72시간 이내의 PCR 검사 음성 결과지가 있다면, 혹은 입국 직후 PCR 검사를 시행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입국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장기체류비자 등 적합한 비자를 소지해야 한다.

 

자가격리 기간도 없다. 덕분에 예년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이지만 파리지앵이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는 유럽인을 중심으로 관광객이 소소하게 자리했다. 유학생들이 돌아온 8월 말부터는 도시 곳곳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바캉스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해외로 떠났던 외국인들이 왕왕 돌아온 8월 중순부터가 2차 대유행의 시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열린 국경으로 바이러스가 들어오고, 사람이 움직이는 만큼 바이러스가 움직였을 뿐이다.

 

 

경각심이 부족한 시민 그리고 정부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이 그리울 지경이다. 앞선 브리핑에서 다룬 것처럼 1차 대유행 당시의 강력한 이동제한조치는 정부와 의료시스템이 감염세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선택했던 고육지책이다. 이후 병상확보, 중환자 관리 등 관리역량은 확보했지만, 이외의 대민정책은 다소 안일하다 할 만큼 상황과 여론의 눈치를 봐가며 늦게 내놓는 모양새다.

 

마스크.jpg

파리의 마스크 착용 캠페인

 

2차 대유행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인 8월 중순 이전까지, 프랑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대중교통 등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 등의 정책을 펼쳐왔다. 회사와 상점에서는 대체로 잘 따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마스크를 착용만 하라고 할 뿐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는 홍보하지 않는다. 야외에서는 놀랄 만큼 누구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대형 행사를 불허하는 등 기본적인 제스쳐 이외의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의무화한 것은 오히려 각 지방정부의 결정이었다. 이마저도 8월 말, 2차 대유행이 진행된 이후였다.

 

판테옹.jpg

파리 판테옹 광장에 모여있는 사람들

 

시민들은 경각심이 없는 듯 행동했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들과는 사실상 거리를 두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 특별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 경증일 경우 입원은 물론이고 특별한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무심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이유다.

 

여전히 볼을 맞대는 인사인 '비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택근무를 하지만 동시에 식당이나 카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주말 저녁에는 수와레(집에서 여는 저녁 파티)로 시끌벅적하고, 여름에는 각 단체들이 도심지에서 각종 파티를 열곤 했다. 학교가 시작된 9월부터는 학생들의 파티로 동네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당연히 거리두기나 마스크 쓰기가 실행될 리가 없다.

 

그러던 중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이 등장했다. 확진자의 자가격리 기간이 7일로 줄어든 것이다. 확진자의 동거인이나 접촉자의 경우 자가격리 의무가 없어졌다. 2차 대유행이 이미 진행된 시점이었다. 14일이 너무 길다는 정부의 판단이라는데, 14일로 지정해도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것이라는 게 뒤에 깔린 의중이라는 게 대중의 평가다. 전문가 집단에서 반발한 것은 당연하지만 이 지침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모든 건 “엿장수 마음대로”

 

내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두루 살펴봤을 때 내린 결론은 “엿장수 마음대로”다. 프랑스에 사는 한인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어인 "Ça dépend(싸 데뻥,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의 가장 적합한 번역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내 동료는 여자친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의사소견으로 무려 5주의 격리 기간을 가졌다. 이 동료의 경우 최종 음성판정을 받았다. 반면, 샹젤리제의 한 대형상점의 식료품 코너에서 2주 전 확진자가 발생해 하루 동안 문을 닫고 청소와 소독작업을 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일했던 직원 중 약간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다음날 바로 운영을 재개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직원들끼리 모여 회식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학교는 한 교실에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그 반의 전원이 검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afp.jpg

마르세이유에서 시위하는 식당 및 바 종사자

출처: 르 몽드

 

확산 상황이 심각한 마르세이유 지역은 2주 간 식당과 바의 문을 닫도록 하는 지침이 나왔다. 지역 병원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유다. 이번엔 해당 지역의 상인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며 지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1차 대유행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파리 지역은 28일 월요일부터 밤 10시 이후의 식당과 바의 영업을 제한한다고 한다. 파리 지역의 반응은 어떨지 지켜봐야 할 문제다.

 

프랑스의 2차 대유행은 확실히 양상이 다르다. 1차 대유행 때는 무방비 상태로 바이러스에게 당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면, 2차 대유행은 춤추는 바이러스를 그대로 두고 보는 느낌이랄까. 정부는 오히려 바이러스와 국민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그래서 당분간은 개개인에 따라 경험하는 코로나 시대가 완전히 다를 것만 같다. 정말이지 Ça dépend(싸 데뻥)이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