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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덕후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딴지에 문화재 발굴과 관련된 기사를 다뤄왔다. 먼저, ‘개발과 문화재 : 그 일과 thㅏ랑 같은 관계’에서는 춘천의 중도 레고랜드 개발 중 발굴된 삼국시대 유적 이슈와 함께, 문화재 개발과 관련된 첨예한 논점을 어설프게나마 정리한 바 있다. 여러분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세 줄 요약을 해 보면,

 

1.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각종 개발사업으로 갑툭튀하는 것이 다수

2. 그런데 문화재가 발견될 경우, 공사는 올스톱되고 발굴비용도 기업이 부담한다는 것

3. 문화재를 아끼고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선 정부가 적극적인 발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만, 문화재청이 각종 개발사업의 뒷처리반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4편에 걸쳐,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 가야사’라는 시리즈(링크)로 가야사 발굴의 성과와 전망을 정리해보는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 기사 시리즈는 각 유물 유적의 의미를 많이 찾아내지 못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가야사가 탄탄한 철학과 먼 미래를 내다본 큰 그림 위에서 기획되었으며, 임기 내 이뤄지고 있는 발굴들이 얼마나 활발한지에 대해 다뤘다.

 

갑자기 왜 지난 기사들을 되팔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최근 학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이슈가 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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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때 번성했던 삼국시대 대도시…터널 공사로 증발하나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검토회의는 이 일대를 ‘국내 최대 규모의 삼국시대 덧널무덤군’이자 ‘삶과 죽음의 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된 국내 최대의 삼국시대 복합유적군’으로 결론 내렸다. 또 “중심구역에 대한 보존 방안을 검토하여 추진하기 바람”이라며 유적 보존 방안을 제시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쪽은 “제2안민터널 건설은 도시계획에 따른 사업으로, 여기에 맞춰 관련 도로들이 건설됐거나 건설되고 있다. 게다가 제2안민터널 건설 사업에 이미 600억 원 이상 투입됐다.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개통일을 예정된 2023년 3월보다 앞당기기는 어렵게 됐지만, 그렇다고 문화재를 피하려고 제2안민터널 선형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 오늘의 이슈는, 바로 창원 제2 안민터널 유적 발굴 소식이다. 평소 본 필자, 술에 물 탄 듯한 결론을 내는 쫄보로 지인들에게 악명이 높지만, 이번만큼은 강력한 역덕의 주장을 하려 한다.

 

제2 안민터널, 진짜배기 교통의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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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고 창원시가 보조하는 제2 안민터널 사업은 2016년 착공돼 2023년 개통을 목표로 총사업비 1655억 원(국비 1,250억, 시비 405억)이 투입되는 큰 프로젝트이다. 창원 시내의 위성도시 역할을 담당하게 된 진해구의 인구가 17만이 넘어가자, 창원 성산구와 진해구를 잇는 요충지인 제1 안민터널에 헬게이트가 오픈되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한참을 삥 돌아야 하는 우회로 또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택하거나, 아니면 출퇴근마다 제1 안민터널에서 벌어지는 헬게이트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다. 90년대에 완공된 제1 안민터널의 경우, 경상남도에서 두 번째 유료도로로 개통되었을 정도다. (지금은 무료다) 성산구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진해구로서는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이 많아진 곳에는 언제나 정치인이 움직인다. 2015년부터 본격적인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안상수 창원시장 (연평도에서 보온병 드립을 치고 행방불명으로 수배까지 떨어진 군 면제 사유를 가진 그 상수형 맞다) 시기에는 토지 보상 문제로 공사가 영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현임 허성무 창원시장(더불어민주당, 초선)이 당선 공약으로 ‘제2 안민터널 조기 개통’을 내세우고, 당선 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역 민심에 지역 정치가 응하여 대규모 SOC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마! 무역왕 가야 모르나!

 

가야는 비록 연맹 단체였지만, 국제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무역 중심 국가였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몇 없는 삼국시대 관련 문헌에서 가야의 특징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고고학적 근거도 충분히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진해 ~ 김해에 이르는 남해안 지역은 ‘교역국가 가야’를 설명하기 위해 더욱 중요한 지역이다. 즉, 기원후 1세기, 가락국 중심의 연맹 체제가 바로 이 지역을 통하여 바다로 나갔고, 남해 – 서해안 연안 루트를 통해 낙랑, 멀게는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진행했다. 또한, 동해안을 통해 신라와 그 위의 소국들과 교역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낙랑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왜 와도 매우 적극적인 교류를 펼쳤다. 즉, 현대 한국의 인천항 또는 부산항과 같은 중요도를 띄었던 지역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가야 관련 소식은 아무리 뉴스가 뜨고 국정과제로 밀어붙여도 그 중요성이 좀처럼 대두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택하지 않았으면, 수십 년이 지나도 발굴하지 못했을 사업지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 중요성은 학계와 지역민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좀처럼 원활한 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 문화는 경주가 캐리하고, 백제 문화는 공주와 부여가 캐리한다. 비록 지금은 갈 수 없지만, 고구려는 평양이 캐리한다. 그런데 가야는 없다. 일단 가야가 삼국의 레벨에 닿지 못했던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통일된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멸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얄궂게도, 이러한 특징은 현대에 들어서도 반복되고 있다. 각 소국의 비정지로 추정되는 지자체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규모나 중요성으로 봤을 때는 비슷한 수준의 유적이 매우 많은 지자체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발굴 사업도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야 문화권 지자체 연합’을 결성했으나, 중앙 정치와 지역 정치의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가야 문화권 발굴 프로젝트는 항상 뒤편으로 밀려났다. 또한, 발굴되고, 박물관을 짓고, 유적지를 만들어 자기네 동네가 ‘오리지널 가야’라고 은근히 주장하는데, 이 역시 다 비슷비슷해서 오히려 한반도 역사에서 가야사가 점하는 중요도를 퇴색시키기까지 한다. 여길 봐도 중요하다 하고, 저길 봐도 중요하다 하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깊이 인식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에 이르는 진보 정권이었다. ‘부울경’, ‘대구경북’으로 압축되는 역사, 정치, 문화 공동체처럼, 전라도의 서쪽 지역에서부터 부산에 이르는 가야 문화권을 결성해 ‘소외된 지역에 대한 배려’와 ‘동서 화합’을 이룩하자는 현실적 목표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2047년까지 계획된 문재인 정부의 가야 프로젝트는 앞으로 몇 번의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원안대로만 추진해줘도, 필자 나이가 50대에 접어들 즈음 그 큰 그림이 현실로 이뤄진 광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역사’는 ‘좋은 콘텐츠’로 담아내야 비로소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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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커뮤니티에서는 ‘후삼국 시대’를 주목하고 있다. 역사 책에 짧게 서술된 역사적 인물들의 생애를 추적하고, 실로 바늘 조각과도 같은 근거로 어떻게든 스토리텔링을 해내려고 한다. 왜일까? 후삼국 시대의 짧지만 강렬했던 좌충우돌은 우리가 위촉오의 아웅다웅을 기록한 삼국지(三國志)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라는 신빙성도 있고 비교적 매우 상세히 기록된 텍스트 덕분에, 어떻게든 삼국지 드립을 한반도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 괜히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동남풍 드립을 친 게 아니다.

 

사람들은 삼국지에 왜 열광할까? 수많은 인물의 매력적인 서사, 매우 정교하게 전개되었던 정치적 갈등, 아주 높은 수준의 전략과 전술이 이뤄졌던 전쟁 이야기, 그리고 황건적이나 도교, 서주대학살과 같은 민중의 이야기가 매우 밀도 높게 서술되어있는 사료와 소설 덕분이다. 탄탄하게 작성된 사료, 그리고 흥미롭게 스토리 텔링을 한 소설 덕분에 삼국지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묶어내는 하나의 당당한 축으로 자리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 한반도에는 이러한 사료가 없다. 삼국지처럼, 220년에서 280년에 이르는 반세기 정도 동안 수많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 각각의 역사에 입각한 스토리 텔링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조선 시대, 아무리 잘 쳐줘도 고려 시대에나 가능하다. (솔직히 고려 시대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중국과 일본의 사료를 제외하면 가야사는 설화 모음집 정도로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지를 읽고 뽕에 취한 한국인은 같은 시기의 한반도사를 돌이켜보며 아쉬움에 젖을 수밖에 없다. ‘고구려에도 쬬가, 백제에도 귀 큰 놈이, 신라에도 손제리가 있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갈망했던 한국인은 기어코 한 줌의 증거를 통해 그것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환빠스틱’이었다. 물론, 삼국지와는 좀 결이 다르다. 매력적인 영웅 서사를 갈망했던 것과는 달리, 크고 아름다운 것에 취해 써내기 시작한 스토리텔링이다. 그런데 ‘환빠’라고 해서 지구촌의 지배자 환국, 우주대강국 백제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에 KBS 역사스페셜이 다뤘던 가야 관련 방송을 보면, ‘가야인은 어디서 왔는가’, ‘가야에도 여전사가 있었다’, ‘가야의 수수께끼’와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로 환빠 직전 단계까지의 아슬아슬한 선에 닿다가, 실제로 방송을 보면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근거에 기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완전히 나쁜 것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적어도, 사람들이 가야에 대해 가지는 관심이 낮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관심은 높은데, 기록은 없다. 또한, 기록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가야를 비롯한 삼국시대를 다룬 대부분의 창작물이 환빠스틱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라는 게 원래 아예 근거가 없으면 까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토리텔링에 대한 갈망은 있으니, 모래알 하나로 성을 짓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누구의 특정한 잘못이 아닌, 그저 안타까운 일이다.

 

‘좋은’, 그리고 ‘돈이 되는’ 콘텐츠의 사례

 

서론이 좀 길었다. 정리하자면, 취약한 기록을 메우기 위해 고고학적 근거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현재로 돌아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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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역덕후들은 일본의 요시노가리 유적과도 같은 프로젝트가 한국에도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다. 요시노가리는 일본 최대급 규모의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도시 유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 유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곳이 부러운 이유는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이곳을 전면 복원하여 매우 훌륭한 관광지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이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던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많은 유물과 유적, 그중에서도 건물이 비록 적게나마 일본에는 남아 있다. 이것은 삼국시대 건물이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은 한반도의 후손으로서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제2 안민터널, 과거 춘천의 중도와 같은 삼국시대 유적지가 발굴되면, 늘 “요시노가리처럼 만들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규모와 퀄리티로 복원을 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왜 그럴까? 간단하게 말하면 개발 논리에 밀리는 것이다. 좀 더 엄격히 보면, 복원 이후의 관광 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원안대로 개발 사업을 진행한 후의 경제적 가치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돈이 덜 된다는 얘기다. 필자 또한 지난 ‘개발과 문화재 : 그 일과 thㅏ랑 같은 관계’ 기사를 쓸 때만 해도,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대박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국민속촌’을 오래 지켜보고 나서. 201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민속촌은 노잼 소풍지였다. 거미줄이 주렁주렁 달린 텅 빈 건물들을 발바닥이 아프도록 쓱 돌아보면 끝나는 하나의 유령도시였다. 그런데 SNS 시대가 되자, 한국민속촌은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온갖 기상천외하고 창조적인 컨텐츠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2002년에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한국민속촌에서의 전통혼례 재연을 보고 “시뮬라시옹(simulacre : 실재하지 않으나,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것)”이라 했지만, 한국민속촌은 오히려 더 적극적인 시뮬라시옹을 펼친 것이다. 물론 지금은 몇 년 전보다는 조금 덜 핫 하지만, 여전히 한국민속촌은 그 자체로 거대한 스토리 텔링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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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2 안민터널에서 발견된 대규모 가야 유적은, 요시노가리 + 한국민속촌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이다.

 

가야도 ‘좋은 컨텐츠’가 될 수 있다

 

창원시민, 특히 진해구민 입장에서 제2 안민터널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은 공감한다. 교통체증 문제도 그렇고, 지속해서 침체하고 있는 창원지역 경기에도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업 주체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나 창원시가 “이미 600억 원 이상 투입되었고, 다른 도로 계획도 제2 안민터널에 맞춰 설계되었기 때문에, 기존 계획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못 박는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미안하지만, 제2 안민터널은 대규모 가야 유적지로 복원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가야 주거지는 ‘집 복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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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삼국시대의 건축물이 현존하지 않는 것은 뼈아픈 바로, 심지어 그림도 남아 있지 않다. 필자는 중도의 삼국시대 유적, 그리고 고향 충주의 삼국시대 유적을 요시노가리 유적처럼 원형 복원하자고 주장하지 못했다. 건물을 복원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경주의 월정교 복원이 대차게 까이는 것은, 창조적 복원을 하는 것도 좋은데, 그래도 너무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야 시대의 주거 유적은 집 복원이 가능하다. 다양한 형태의 ‘집 모양 토기’가 출토됐기 때문이다. 이는 요시노가리 유적처럼, 마을 전체를 조사한 집터에 맞춰서 ‘원형’에 가깝게 발굴할 수 있다.

 

2.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앞서 가야의 복원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고만고만한 유적이 많은 지자체에 산재해 있기 때문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제2 안민터널 유적을 가야 시대의 건물과 생활 양식이 살아 숨쉬는 ‘원형 보존’한다면, 무덤과 무너진 성터만 즐비한 가야 문화재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가야사 뿐 아니라, 기록이 절망적으로 부족한 고대사 복원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3. 사업 주체가 정부이다.

 

민간 기업 주체의 사업에서 문화재가 발굴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원안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사유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발굴비용을 사기업을 부담하고 공사 중단으로 인한 손실도 사기업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2 안민터널의 경우, 물론 지자체지만 정부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원형 보존의 명분이 충분하다. 물론 이미 투입된 금액도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다. 소중한 국민의 세금이 사용됐고, 앞으로도 더 많이 사용될 예정의 프로젝트라면 더 꼼꼼하게 타당성을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4. 돈이 될 수 있다.

 

일단 이렇게 복원이 된다고 하면,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다. 한국민속촌의 사례가 있다. 적절한 운영을 통해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비록 그것이 시뮬레시옹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스토리 텔링의 장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요시노가리 유적처럼, 원형 보존을 통해 좋은 소스를 갖춘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다. 한국민속촌과는 달리, 유적지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드라마 태조 왕건 세트장은 드라마가 빵 뜬 이유도 있지만, 문경새재라는 역사적 현장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더 전국적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프로젝트는 도로를 새로 내는 것보다 더 큰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경주, 공주, 서울, 평양과 같은 역사 캐리 도시이면서, 용인과 같은 테마 캐리 도시 창원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산이라는 대도시와 멀지 않은 입지조건도 딱 좋지 않은가.

 

5. 오직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을 실현할 수 있는 시기가 딱 지금뿐이다. 앞으로 이 보다 더 큰 가야 유적이 발굴되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정부가 무려 국정과제로 가야사 프로젝트를 시동한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다른 정부, 정권이었다면 이미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 사업을 수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라면, 2047년까지 예정된 프로젝트를 수정해서라도, 지금 제2 안민터널 유적을 원형 보존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차 얘기했듯, 가야사 프로젝트가 그저 지역 주민의 인심을 얻기 위한 선심성 사업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탄탄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려낸 큰 그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상황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 철학을 더 빨리, 그리고 더 훌륭하게 완성할 수단이 생겼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원형 보존과 도로 설계 수정, 그리고 뒤따르는 각 사업의 예산 지원까지, 문재인 정부의 임기 종료까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미안하다. 정부에 요구만 해서)

 

이미 문화재청과 국토부, 창원시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에, 결국엔 중앙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이런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야사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필자 나이 50대의 이야기도 아니다. 5년 이내에 가능한 이야기다. 가야 문화권 프로젝트가 허무맹랑한, 그저 지자체의 이합집산으로 지리멸렬해버리는 그저 그런 사업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의 문화권으로서 자리할 수 있는 이 기회,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사료가 없어 삼국지 같은 소설은 못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간극을 고고학적 근거로 훌륭하게 메울 수 있다. 가야, 그리고 삼국 시대의 진짜 모습을 제공하는 소스로 제2 안민터널 가야 유적이 자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늘 목말라하는 고대사에 있어 새로운 스토리 텔링의 장으로 기능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바란다.

 

뱀발-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도 역사라는 소스로 꽤 괜찮은 스토리 텔링을 했다는 평이 자자하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단다. 한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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