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9.화요일
산하
인내란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라 했던가.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던가. 인내는 쓰나 그 결과는 달다고 했던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자보다 낫다고 했던가.
그럴 지도 모른다. 아니 지당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MBC에서 적을 두고 일하는 자칭 노동자라면, 그가 PD이든 카메라 감독이든, 일반직 사원이든 인내에 대한 모든 격언을 잠시 지하창고에 가두고 철문을 내려야 한다.
참지 말아야 할 것을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굴욕일 뿐이다.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자 앞에서 참을 인 자를 되뇌는 것은 지혜가 아닌 아둔함에 지나지 않으며, 달콤한 결과만을 바라고 쓰디쓴 굴욕을 참는 자는 비겁한 자이며, 노해야 할 때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자는 커녕, 시궁쥐만도 못한 미물에 불과하리라.
MBC 노동자 여러분. “우주에서 제일 좋은 직장”의 정규직 여러분. “대기업보다는 훨씬 많은” 처우를 받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의 보호 안에서 빼어난 복리 후생을 누리며 구조조정의 위협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왔던 MBC 노동자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시샘 받으며 누려왔고, 부러움을 사며 일궈온 여러분의 권리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 보일 때다. 지금이 아니라면 대체 언제 여러분의 가치를 입증해 보일 것인가? 여러분의 수장의 의사가 무뢰한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벙거지들을 여러분의 상전으로 들어앉히려는 지금이 아니고서야 도시 어느 제에 여러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영방송’의 기치를 세울 수 있으랴.
상대가 권력이든 자본이든 나름 짖는 법을 배웠다 자부하던 개들이 꼬리를 사타구니에 감추고 헥헥거리는 꼬락서니는 이미 KBS에서 진물나게 보았다. 낙하산 사장을 물리치겠다고 결기 드높이던 것들이 되레 그 낙하산을 이불 삼아 쌔근쌔근 잠을 청하는 자들의 몰골도 이제는 쳐다보기도 귀찮다.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결국 제 밥그릇을 튼튼히 할 자유였고, 함께 공(共)자를 쓰는 공영방송은 결국 공염불에 불과하였으며, 그래 놓고도 자기네 철밥통은 시청료 인상이라는 초합금으로 보장해 보겠다는 파렴치가 넘친다. MBC 여러분. 여러분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여러분이야 시청료를 받지 않으니 국으로 가만히 있어도 KBS보다는 낫겠는가.
MBC 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껏 따먹어 온 과실은 여러분의 땀방울만으로 영근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레 내미는 작품 목록들은 MBC 정규직들만의 힘으로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권과 자본의 칼날으로부터 여러분의 목덜미를 보호하는 갑옷은 여러분, MBC 노동조합원의 손으로만 짠 것이 아니다. 여러분과 같은 노동을 하였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댓가에 만족해야 했던 사람들, 여러분의 임금 보전을 위해 피눈물나는 제작비 삭감을 감수해야 했던 이들, 여러분이 수상 트로피 쥐고 소감 발표할 때 그 시상식에 참여한 연예인들에게 인터뷰 하나 따고자 손금이 닳는 군상들의 노력과 경험과 성원도 엄연히 그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 과실과 성과와 갑옷을 독점 내지 과점해 온 MBC 여러분. 그래도 당신들을 인정한다. 하루 아침에 나무로 깎은 목각인형이 되어 버린 KBS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 역시 당신들이 목 놓아 지키는 공영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고, 적어도 여러분은 그 가치의 빛을 더한 적이 있었기, 아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이름값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얄밉고 야속해도 그 정을 거둘 수 없는 존재임을 여러분이 증명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퍼즐을 위해서는 아직 한 조각의 퍼즐이 남아 있다. 거사적으로 하나 되어 들어 올렸던 공영방송의 깃발 속에 당신들의 이기주의를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이제 퍼즐을 완성할 때다. 조각에 싸인 의문들을 털어버리고 자신 있게 공영방송의 퍼즐판을 깔끔하게 결말지어라. 이럴 때 나서라고, 이런 때 주먹을 휘두르려고 내가 지금까지 체급을 키워 왔다고 선언하라. 지금이 80년대 전두환 소장이 설칠 때도 아닌데 언론을 자기 입맛대로 지지고 볶고 끓이고 튀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 시대착오자들에게 두들겨 맞을지언정 이 정도는 거뜬히 버틸 맷집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공영방송의 소중함을 논했노라고 만인에게 외쳐라. 처음엔 목청 높이다가 뒷구멍으로 뱀처럼 배 땅에 기고 기어다녔던 KBS의 잘난 노조 꼴을 따르려면 그냥 초저녁에 백기 들고 지금보다 더 월등한 호의호식이나 추구하라. 괜히 사람들 헛갈리게 만들지 말고.
MBC랑은 일점 인연도 없고, 아는 사람도 몇 안되는 판에 이렇게 열 내는 것이 이상한가? 하지만 나는 적어도 MBC 노조원이라면, MBC라는 테두리 내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보다 백 배 천 배는 열통을 터뜨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정권의 하수인들이 몰려와서 제 맘대로 조직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갈아치고 후려치는 이 아사리판에서 자존심이 허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인(鐵人)일까 철인(哲人)일까 아니면 천치일까. 여러분의 뉴스데스크에 “내 귀에 ‘공정방송’ (또는 MBC 개혁)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천둥벌거숭이가 뛰어들어 앵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생방송 중이다. 참을 인자 셋을 되뇔 것인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인가. 달콤한 결과를 꿈꾸며 참을 것인가. 그래도 참아야 하느니라 참선에 들 것인가. 당신들은 지금 참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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