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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죽어도 그만일 거 같은데 참 쉽게 안 죽는 죽지않는돌고래라는 포유류로부터 이세돌과 커제가 이슈니 함 찾아보라는 문자가 왔다. 투덜거리며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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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vs 커제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5번기에서 2 : 3. 이세돌 패.


이슈, 될 만하다.




1.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 바둑기사는?


글쎄. 장소를 ‘우리나라’로 한정하고 ‘유명한’이라는 말뜻을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 머릿수로 이해한다면야 2016년을 막 열어 재낀 현재 최택 6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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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에서 나라 걱정에 잠시 눈을 감고 의자에 파묻혀 구국 명상을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 있는 와이프가 감히 큰 소리로 필자를 소환하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응답하라 1988>이 방영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최택 6단이 한 세계 바둑 대회에서 마지막 판을 두고 있었는데, 화면은 그 대국의 결과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주위 사람의 모습만 계속 비춰줄 뿐 정작 결과에 대하여는 뜸을 들이는 중이었다. 그 새를 못 참고 결과를 알려 달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챙겨보지는 않지만 최택 6단이라는 인물이 이창호 국수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쯤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 쉽다.


“이겨.”


왜? 이창호를 모델로 하고 있다며? 굳이 드라마의 장면이 한·중·일 세 나라가 참가하는 국가대항전이며 연승제 방식인 2005년 농심신라면배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해도 최택 6단 정도의 젊은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는 지지 않았다. 단판 승부가 아닌 3번기, 5번기에서는. 특히 국가대항전 방식 기전에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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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창호, 그리고 또 한 명의 천재기사가 등장한다


필자가 자주 가는 모 야구사이트가 있다. 그 사이트의 게시판을 읽다 보면 “선동렬이 잘할까요? 류현진이 잘할까요?” “야수 중 이종범 vs 강정호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같은 제목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질문 자체에 웃음이 나기는 하나 뭐 좋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확인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글의 댓글을 보면 당연하게 각각의 생각이 다르다. 분명 기록이 있지만 팬심도 일정 부분 작용할 것이고 그 기록을 읽어내는 관점도 다를 테니 말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야구뿐 만 일까? 세계 3대 기타리스트를 뽑아 보자. 아니면 세계 3대 피아니스트도 좋다. 메시가 볼을 더 잘 찰까? 호날두의 발이 한 수 위일까?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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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창호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흔한 표현대로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 또는 ‘끝내기에서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사람’ 등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바둑을 둘 줄 알아야 이해가 된다. 바둑에 무관심한, 바둑을 만화 <고스트 바둑왕>이나 <미생>,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로나 접한 사람에게 이런 설명은 친절한지 못하다.


그럼 어떻게 설명해볼까? 어떤 한 분야에서 십여 년 동안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 모두 일치하여 인정한, 어떠한 논란 없이 여기 최고가 누구냐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사람, 그게 이창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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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생각해 보시라. 이와 비슷한 사람을 당신은 몇이나 떠올릴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이 주저함 없이 여기서는 ‘그’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20세기 이후로 모든 분야를 통틀어 몇이나 될까? 마이클 조던 정도? 문외해서 그런지 정말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응답하라 1988>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 속의 장면이 묘사하고 있는 대회는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이다. 이 기전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 5명을 뽑은 다음, 순서대로 한 기사가 질 때까지 다른 나라 기사와 대국을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 번째 출전한 사람이 10연승을 해버리면 그 나라가 우승하는 방식인 것이다. 사기업이 스폰서를 맡고 있기는 하나 대회의 성격상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이 대회의 결과에 따라 동아시아 3국의 서열이 결정된다. 참가한 세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대회는 1999년에 시작해서 2015년으로 16회를 맞이하고 있는데 개최한 기업이 한국 기업인 ‘농심’이고 그 시작이 1999년이라는 것에 주목해보자. 제법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랜 시간 동안 바둑으로 치자면 일본, 중국에 비해 변방 취급을 받았던 우리나라의 기업이 3국이 모여 맞짱을 뜨는 대회를 후원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 전성기의 이창호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까지 16번 이 대회가 열릴 동안 한국이 11번 우승을 했고 중국이 4번, 일본이 1번 우승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장면은 2006년 대회의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창호가 막판 주장으로 등장하여 5연승으로 우승해버리는 장면이다. 실제인 것이다. 한국 대표로 5명이 출전하여 앞선 4명이 단 1승만 거두고 탈락, 중국, 일본 기사 5명이 남은 상황에서 이창호가 홀로 스윕을 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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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가운데서도 ·· 삼국에서 주로 두어지는 바둑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대바둑의 시스템은 상당 부분 일본에 빚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남철 9단을 시작으로 이창호의 스승인 조훈현까지, 모두 일본에 유학 가서 바둑을 배워온 사람이었다. 이창호 등장 전까지는 당연히 일본이 현대 바둑의 종주국 역할을 했고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던 조치훈이 일본에서 활약했던 이유다.


그러나 이창호가 등장하면서 판세는 크게 흔들린다. 천재 한 명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세계의 모든 기사들이 이창호가 둔 바둑기보를 보고 공부를 하는 판에 일본에 바둑 유학 갈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한국에 최고의 기사가 있는 것이다.


이즈음에도 일본의 기성전, 명인전, 본인방 같은 이틀에 걸쳐 바둑을 두는 방식의 3대 기전에 대한 일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어디 자부심만 대단했겠는가? 상금규모도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애써 이창호를 외면했다. 세계 최고인 이창호가 일본기전에 참가하겠다고 했을 때도 일본바둑계는 묵묵부답했고 그들만의 리그를 고집했다. 그 대가인지 모르겠으나 그즈음부터 일본 바둑계는 쇠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회복불능의 상태 가까이 간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중국은 절치부심하기 시작했다.


한국 바둑을 이기기 위하여 즉 ‘이창호’를 이기기 위하여 집단 연구를 시작하고 바둑을 정책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한다. 대륙의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축구와 바둑이라고 한다. 이 즈음부터 사실상 중국의 바둑은 한국을 넘어서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창호 한 명을 꺾는 데 실패한다.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권좌에 오르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창호를 꺾은 것은 중국 프로기사도 아니고 한국 프로기사도 아니었다. 한판의 바둑을 두는 데 제한 시간이 있는 현대 바둑에서 이창호를 꺾은 기사는 제한시간을 무제한으로 쓰는 ‘세월’이라는 기사였다. 이창호가 세월이라는 강자에게 점차 밀리고 중국이 드디어 명실상부한 최고가 되려는 찰라 한국에 또 한 명의 천재 기사가 등장한다.


바로 ‘이세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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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를 이기기 위하여 이창호의 바둑을 모방했고 그 방식으로는 이창호를 결코 넘기 힘들었던 수많은 후배기사와는 다르게 이세돌은 상반된 기풍을 가지고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다. 이창호의 바둑이 범인은 상상하기 힘든 계산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도 이기는, 때리는 상대방이 때리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다소 방어적인 방식이었다면 이세돌은 상대방의 싸움을 결코 피하지 않는 화려하고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마추어들이 열광하는 방식이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뭐라고 표현을 해야 이해할지 고민스럽지만, 복싱으로 치면 레너드라고 할까? 화려하고 강력했다.



바둑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룰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간단하다. 가로세로 19줄 361개의 바둑판 점 위에 흑백의 바둑돌을 서로 번갈아 놓으면 된다. 이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식이 역설적이게도 바둑을 새롭게 배우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너무 간단해서 무엇을 할지 모르게 되는 상태, 바둑을 처음 배우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과 공부를 필요로 한다. 핸드폰에 게임 앱을 설치하여 실행시키고 아니다 싶으면 삭제하는 데까지 1분이 걸리지 않는 시대에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특히 헬조선이라 불리는 요즘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더욱.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새로 바둑을 배우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가 줄면서 각종 국내 기전이 축소 폐지되어 어렵고 척박한 상황에서 이창호 다음으로 이세돌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엄청난 투자와 국가가 정책적으로 바둑을 키워 세계 최강의 바둑을 노렸던 중국은 이창호에 이어 이세돌에게 막히게 된다. 이제 거의 극복했다고,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 한국바둑을 아직 완전히 넘지 못한 채 다시 기회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바둑으로서는 천운이었고 중국으로서는 불운이었다.




3. 이세돌의 패배 그리고 박정환과 김지석


작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난 뒤 열린 <프리미어 12>에서 한국이 일본과 미국을 꺾고 우승을 하였다. 그럼 다시 필자가 자주 간다던 야구사이트 식의 질문을 한번 해보자.


“우리나라 야구가 일본보다 강할까요?”


“아몰랑. 중요한 건 이겼잖아!” 가 개인적인 답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일본은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을 3~4팀, 미국은 십 수개 정도 만들 수 있다고 하며 우리는 딱 한 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답은 너무 뻔하다.


한국 바둑이 이와 비슷하다.


TV 해설하는 프로기사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를 두며 상대방을 케이오로 이기던 쎈돌 이세돌도 세월이라는 제한시간 앞에서 점점 지는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이미 이세돌은 국내 랭킹에서도 후배들에게 밀려 2016년 1월 현재,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천재 후배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정환 9단과 김지석 9단 같은 기사 역시 수십 년에 한 번 나오기 힘든 기재를 가진 천재로 평가된다. 문제는 그 정도 수준의 천재는 당연히 인구수 대비하면 한반도보다 대륙에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바둑을 대하는 태도, 정책, 저변 등, 이미 우리나라와 중국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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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좌) / 김지석 (우)


바둑을 두는 사람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고수와 하수.


필자는 과거 국내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5단, 6단을 겨우겨우 버텼었고, 20대 중반 한참 바둑을 열심히 둘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모 프로 사범님에게 4점 바둑으로 한 수 배운 걸 가문의 영광으로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하수이다. 보통 프로 기사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하수이다. 고수(高手)라는 명칭은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기사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바둑은 극히 한두 명의 고수에 의지하여 중국의 추격을 뿌리쳐왔다. 이세돌 이후 박정환 9단과 김지석 9단은 그런 의미에서 아직 고수라고 하기는 부족하다.




4. 이세돌과 커제 2 : 3의 의미


이세돌이 이번 대회에서 커제와 다시 대국하기 전까지 무려 5연패를 했다 한다. 천하의 이세돌이 한 기사에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것은 일개 바둑팬으로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바둑팬도 세계 최고수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입었을 상처는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절치부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졌다.


대국의 과정만 보면 2 : 3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음에 이세돌이 커제를 만나면 충분히 이길 가능성도 있다. 이세돌의 시대가 갔다고 누구도 감히 말하기 힘들다.


문제는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시간이 바로 앞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를 막을 고수가 뚜렷하게 없다는 것이다. 바둑은 외면당하고 있고 시스템은 열악하다. 중국은 이세돌을 이긴 커제급 기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반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이창호 이세돌만 한 새로운 어린 기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현재까진 말이다.

 

 

 

 

 

 

 

 

옥상땐스

트위터 : @oksangddance



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