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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한 번도 안 해본 놈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놈'은 없다 했지요.

소아비만 출신이 어쩌다 '마른' 몸과 주변의 변화를 맛 보았습니다.

거참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체질이 다시 곰돌이 푸우로 돌려놓으려고 했고,

만족을 모르는 얘는 한 번 말라봤다고

누구보다 마름을 추구하기 시작했답니다. 

 

제일 사랑하는 건 뼈 위에 거죽만 올라가는 것.

이를 위해 난데없이 굶어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의 진가는 옷이 얇아지는 순간 나타난다고 했다(아님). 옷이 크고 두꺼운 겨우내까지는 몰랐다쳐도,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니 드러나는 살갗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살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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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옷이 찐 줄 알았는데 그냥 '살찐'이었던 것이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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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하루이틀 굶어본 적이 있는 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저런 플랜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 아닌 누군가-그것도 복수로 보이는- 이미 실행해 왔다는 말 아닌가? 나라고 못할 리 없었다. (다만 근본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독일어, 크로스핏을 한 달만에 때려친 전력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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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X4.1kg) : 물만 먹기

 

첫째 날은 '존나게 굶는' 날이다. 가능한 건 오직 물로, 배가 고프든 기력이 없든 물과 물과 물을 주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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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으로 시리얼을 대박 먹은 게 거짓말이라는 듯 아침부터 굶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시리얼을 말로 먹는 낙으로 살지만 첫날부터 플랜을 말아먹을 수 없으니 그저 굶는다. 

 

보통은 7시에서 7시 반에 일어나지만, 어떻게든 개기고 개겨서 8시 넘어서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봤자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질 뿐이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조상님들의 말을 가슴에 새겨 최선을 다해 침대에 질척거린다.

 

아니, 거짓말이다. 침대에서 질척거릴 '수밖에' 없다. 물 빼고 아무 것도 먹지 않아 기력이 0에 수렴해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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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1: 이상징후, 급격한 신체나이 상승

 

일어나면 머리부터 핑 돈다. 원래 기립성 저혈압에 빈혈을 안고 사는 몸이라면 더 한데, 눈도 잠깐 안 보인다(괜히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생각나서 혼자 쫄았음). 몇 년 전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 지하철 역사에 쓸쓸하게 누워있던 기억(하필 밤이어서 취객 취급 당함)이 머리를 스치며, 얌전히 다시 누웠다. 이 때 무리해서 움직이면 땅바닥과 뽀뽀하게 된다는 걸 머리보다 몸이 잘 안다.

 

체온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지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한다. 가끔 식은땀도 난다. 이런 상태에서 움직이려고 하니 구토감이 올라올 수밖에. 다행인 건 토해도 나올 게 없다는 것이요, 안 다행인 건 그것 빼고 전부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건 덤이다. 열에, 현기증에,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 마당에 관절까지 삐걱거리면 어떤 사단이 나느냐? 

 

물 먹으러 간다고 움직이다가 여기저기 부딪쳐서(내가 걷는 게 걷는 게 아님) 시퍼렇게 멍이 든다. 멀쩡한 부모님을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면 굶으면 된다. 그럼 주변 사람들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집에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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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을 위해 털은 가림

 

참고로 굶은지 하루도 안 됐다. 환경은 극한이 아닌데, 몸만 혼자 극한이다. 

 

 

증상2: 난데없는 철학적 고찰

 

끝나지 않는 '물 마시기 -> 화장실 -> 물 마시기 -> (현기증) -> 화장실'의 굴레를 겪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식욕만 해결되면 지구도 정복할 수 있겠다고. 

 

우선 속 하나 비었을 뿐인데 더럽게 시간이 안 간다. 굶주림에 지쳐서 시계를 보면 오전 10시. 또 한 번 진득하게 굶주렸다 생각해 시계를 보면 10시 20분. 교장선생님과 단둘이 얘기를 해도 이것보단 시간이 빨리가겠다. 하루가 길어도 이렇게 길 수 있을까? 운동할 때 갯수 세는 것보다 더 느린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엔 헬스 트레이너의 '하나, 둘, 셋' 보다 더 느린 게 있다. 

 

시간의 흐름을 잊기 위해 별 것을 다 해봤다. 게임을 종류별, 기기별(스마트폰, 휴대용게임기, PC)로 하고, BL(Boys Love, '잘생긴' 남자 둘이 사랑을 나누는 컨텐츠)도 종류별(소설, 만화)로 봤다. 코로나19 이후로 마련한 '집에서 혼자놀기 세트'도 펼쳤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하나 같이 일상을 망칠 만큼 열중했던 것들이건만, 지난한 공복 아래선 아빠의 개그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시간이 더디다는 걸 잊게 하기는커녕 '이렇게까지 하는데 시간이 더럽게 안 간단 말이야?'를 실감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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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이 재미없다니 인생 다 살았다

 

이쯤 되니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은 식욕 뿐이라는 것을. '성무선악설(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을 주장하던 고자가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본성이다(食色性也)”라고 했지만, 여러분 이건 다 거짓말이다.

 

굶어보면 안다. 인간의 본성은 그저 식욕이다. 먹지 못한 상태에선 몸 좋은 남자 둘이 뽀뽀를 해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평상시라면 손녀딸을 안고 펄쩍펄쩍 뛰었을 텐데, 쫄쫄 굶으니 달에서 남자끼리 떡을 찧든, 방앗간에서 절구를 돌리든, 관심이 생기질 않았다. 그저 시계만 쳐다볼 뿐...

 

 

 

둘째 날(X2.7kg) : 액체 250Kcal 섭취 가능

 

전날 물만 5L를 마신 덕인지 1.4kg이 줄어있었다. 물론 근육만 빠졌겠지만 배는 쏙 들어갔다. 누우면 갈비뼈도 느껴지는 게(원래 갈비뼈가 튀어나온 체형임) 고생한 보람이 손톱 만큼 있었다. 

 

하지만 '기쁨' 단계까지 가진 않았다. 액체 250kcal까지는 섭취가 가능한 날이지만, 여전히 굶어야 하는 날이라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30초 만에 물을 1L 정도 섭취해야 하는 것도 어제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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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고난의 행군을 통해 배운 바는 쓸 데 없이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점심까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화가 나서 푸우 인형도 두 대 정도 때렸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잠에 들어있었다. 성인 권장 수면시간인 8시간을 이미 지켰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잠에 든 것이다. 

 

눈을 떴을 땐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간만에 칼로리(선식을 먹기로 함)를 입에 대기 위해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 다가 다시 누웠다. 급하게 몸을 일으킨 탓에 현기증이 났기 때문이다. 어제 일어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겪었으면서 고새 그걸 까먹고 같은 짓을 반복했던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 배움이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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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선식을 먹자마자 바로 또 침대에 누웠다. 밥 먹고 누우면 체한다지만, 선식은 들어가자마자 소화되기 때문에(그렇지 않으면 먹은지 5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꼬르륵 소리가 날 리 없음) 바로 누워도 체할 일이 없다.

 

누웠으니 또 잠에 든다. 오늘은 처제랑 바람 피우고 내일은 처남이랑 바람 피우는 아침드라마처럼, 저번엔 옆으로 누워 잠들고, 이번엔 똑바로 누워 잠들고, 다음엔 엎드려 누워 잠에 든다. 꿈이 돈 많은 백수가 되어서 먹고 자기만 하는 건데, 이렇게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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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신생아의 삶

 

밤이 되도 기력 없는 것은 똑같아서인지 다행히 밤잠을 설칠 일은 일은 없다. 수면가루라도 뿌린 듯 누워만 있으면 잠이 온다.

 

다만 가족 눈에는 기절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몸이 칼로리 섭취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건강 망치는 소리가 십 리 밖에서부터 들리지만 일단 모른 척 한다.

 

 

 

셋째 날(X2.1kg) : 점심에 어떤 것이든 다섯 입 / 저녁은 과일 혹은 야채 다섯 입

 

예로부터 '작심삼일'이라고 하는 건 3일 째가 가장 뭣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셋째 날은 눈 뜨는 순간부터 주옥 같다. 입 열면 육두문자만 나온다. 어쩜 그리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짜증나는지 푸우를 깨물어도 분노가 사그러들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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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다간 행군이 실패하고 끝나버릴 것이다. 이런 마음이라면 초코케익을 하나 다 먹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은근슬쩍 그만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동네방네 '굶겠다'고 입을 털어놓았고, "네가 뺄 게 어디있다고"라는 말에 "아니야~"라고 대답하며 입꼬리를 올린 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짜부러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예로부터 고통을 나누면 반이라고 했다. 주옥같음을 느끼는 다른 이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분명 일주일이나 버티는 사람이 있으니까 플랜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두 모델 혹은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이 있단 게 아니라면 노하우나 견디는 방법이 있을 터였다. 

 

SNS에 다이어트, 굶기, 단식 등 단어로 검색했다. SNS가 아무말대잔치 판인 건 지나가던 개미도 안다. 프로 다이어터도 있을 것이고, 다이어트에 맨날 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3일 만에 쌍시옷을 입에 답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굶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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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계정 아님. 키도 160 안됨)

 

그들은 자신들을 '프로아나'라고 칭하며, '#프로아나'라는 해시태그로 기록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게 뭐람? 여러 의미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에 계속)

 

 

 

 

*물을 잘 마시는 팁

 

물을 5L 쯤 먹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토할 것 같다...'

 

맹물도 많이 마시면 역하다. 지독한 배고픔을 눈속임을 해줄 건 물 밖에 없는데 속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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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쓸 수 있는 게 물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물 맛 보조제(?)다. 칼로리는 없(거나 없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데 꼭 탄산음료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차와 같은 개념이지만 종류가 좀 더 다양하고 맛도 진한 느낌).

 

제로콜라처럼 화학물질의 발달이 이뤄낸 발전으로 보이는데, 화학물질이라 되레 건강을 해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굶는 행동 자체로 건강을 깎아먹고 있는데 화학물질 조금 더 섭취한다고 얼마나 더 살 수 있겠냐고 대답할 것이다. 고조선 때부터 건강은 조지고 갔다.

 

물론 '맛'이 있어 물 자체를 먹기 쉽게 해주지만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것은 아니니 이것만 믿고 갔다간 어지럼증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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