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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화요일

로그스




신인 아이돌 그룹 씨앤블루의 히트곡 "외톨이"가 인디밴드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번지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의 고발과 이를 보도한 기사로 촉발된 이번 표절 논란은 순간 떠들썩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여느 논란과는 달리 아이돌 대 인디라는 독특한 구도와 RATM의 영국 크리스마스 1위 점령(http://www.ddanzi.com/news/7253.html)에서 영감을 받은 "파랑새"를 1위로 만들기 캠페인(http://www.ddanzi.com/board/9564.html)까지 겹치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양상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완벽한 결론을 내도록하겠다는 건 구라고, 내 생각을 조목조목 밝혀보도록 하겠다.


1. "외톨이"는 표절곡 인가?

인디와 메인스트림이 엮이면서 여러가지 주장(함부로 인디를 들먹이지 말라!)과 반박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에는 이 질문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씨앤블루의 "외톨이"가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한 거냐?

 





필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논란을 잠재울만한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다: 아무도 모른다. 허무하냐? 허무한데 이거 가지고 왜 싸우고 있나?

다시 한 번, 음악에서의 표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표절이 뭐냐? 남의 노래를 베끼는 거다. 졸라 간단하다. 그러나 이 원칙이 실제로 적용되기 전까지는 무수한 걸림돌이 있다.

먼저 어느 정도 베겨야 베낀거냐는 '내용'의 문제가 있다: 4소절 멜로디를 베껴야 베낀 거냐? 코드 진행을 베껴야 베낀 거냐? 리듬을 베껴야 베낀거냐? 아니면 곡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비슷하면 베낀 거냐? 그럼 곡의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건 누가 판단하나? 네티즌 수사대? 판사? 아니면 가카? 이 각각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거다.

여기에 알고 베낀 것이냐는 '의도'의 문제가 끼어든다: 만약 곡을 만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베끼지 않고 무의식 속에 예전에 들었던 곡이나 멜로디가 튀어나온 거라면 어떻게 되나? 몇몇 관계자들이 "오직 곡을 만든 사람만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작곡가가 의도적으로 베낀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저 말을 한 사람들은 의도적 표절의 가능성을 높게 보는 걸거다), 예전에 들었던 멜로디가 무의식 속에 있다가 튀어나온 거라면 정말로 자기 자신조차 그 답을 모를 수도 있다. 내가 언제 무슨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지 어떻게 아나?

이처럼 표절은 결코 판단하기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작곡가가 의식적으로 표절을 했고, 그걸 고백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이번 사건도 법정에 가서 표절문제를 판결받을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판사가 음악에 대해서 뭘 알겠냐? 그들의 음악에 대한 감각은 평균적인 리스너들보다 그리 뛰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판사가 무죄를 선고한다고 표절이 아닌 것도 아니고, 유죄를 선고한다고 표절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거, 절대로 결론 안난다.

아래 클립을 보자. 첫 번째로 나오는 음악은 2000년대를 풍미한 2인조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의 "Fell in Love with a Girl"이고 다음에 나오는 곡은 올해 슈퍼볼 중간에 나온 미 공군의 광고 음악이다:







뭐, 이건 졸라 똑같다. 그냥 모르고 들으면 화이트 스트라입스에게 광고음악 라이센싱을 받은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런데 아니다. 저 곡을 만든 사람은 자기가 만들었댄다. 자기는 화이트 스트라입스라는 애들을 들어본 적도 없댄다.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2000년대를 풍미한 탑 20 아티스트에 무조건 들어가는 밴드다) 물론 필자는 이게 표절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의도적으로 표절을 한 게 아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화이트 스트라입스에게 음악 사용료를 물어줄 것 같기는 하지만.

물론 이 곡이 비슷하다, 비슷하지 않다, 표절이다, 아니다에 대해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또한 필요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이 문제가 다수결이나 법적인 판결로도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일이다. 이를 잊어버리고 코드 진행과 멜로디 하나하나에 음악적 이론을 들이대며 표절이다, 표절이 아니다로 싸우는 건 재미는 있지만, 동시에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다.

이쯤에서, "파랑새"와 "외톨이야"를 다시 한 번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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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다. 그렇지만 이게 표절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이에 대응하여 억한 심정에 "파랑새"의 멜로디와 비슷한 모든 노래를 찾아낸 김도훈 작곡가의 역작을 들어보면 그 점은 더욱 명확해 진다:



  
뭐, 저렇게 편집해 놓으니까 좀 웃기긴 하다만(김도훈씨는 저런 거 더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나름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까 표절이다, 아니다에 너무 죽네, 사네 매달리지 말자.







2. 표절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어차피 결론이 안나니까 그냥 냅두자는 건가? 그런 건 아니다.

 

지난 지 드래곤의 표절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음악평론가 김봉현씨는 표절 논란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하고 표절의 프레임을 못된 음악의 프레임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 드래곤 노래, 표절인가 '못된 음악'인가?) 한 번 일독을 해보길 권하지만, 졸라 바쁘니까 니가 한 번 읊어봐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간단히 정리하자면: 표절 논란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청자들이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살린 '좋은 음악'과 남의 스타일의 흉내내기에 급급한 '못된 음악'을 감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못된 음악을 퇴출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외톨이야"를 비판해야하는 이유는 이 곡이 표절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곡이 이전에 있었던 곡과 비슷하기 때문에 별로 좋은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듣지 않고, 사주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외톨이야"가 엄청난 히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스터리다), 어쨌든 그 곡이 못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너네는 그러라는 거다. 그리고 "아, 이 노래 너무 뻔한 곡이다"라고 떠들 수 있겠지.

소위 '표절 작곡가'라는 비꼼을 당하고 있는 김도훈 작곡가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그가 표절을 일삼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 마땅한 것이 아니라, 그가 독창적인 노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독창적이고 멋진 팝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러한 그의 약점은 특히 두드러진다.


3. 인터넷 시대,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들어 표절문제가 자주 제기되는 것은 분명히 인터넷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거의 모든 노래가 존재하며, 따라서 어디서 들어봤다는 의심이 들거나 유사한 노래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나 그런 노래를 찾아볼 수 있다. 표절이나 비슷한 곡은 더 이상 어물쩡 넘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히 긍정적이다. 표절 의혹 제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작곡가들이 더욱 창작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게 되고, 너무 유사한 노래가 나오지 않도록 자신의 스타일을 다듬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오로지 비슷한 곡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보는 용도로만 사용된다면, 그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사건의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노래가 반복 생산되는 가요시장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럼 그걸 바꾸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단순히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돌 팬들을 멍청하다고 무시하지만, 그들의 정말 훌륭한 점은 자신들이 (어떤 이유로든) 좋아하는 가수를 제대로 서포트한다는 점이다. 음반을 사고, 공연장을 찾아가고, 커뮤니티를 이룬다. 그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더 유명해지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활동한다. 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똑같은 아이돌 문화만 판치고 있다고, 비슷비슷한 노래 밖에 없다고 불평만 하는가?

인터넷은 어떤 음악이 이 곡과 유사한지를 찾아내는 도구가 되기 보다는, 이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멋진 음악을 찾아내고 그걸 공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블로그, 커뮤니티, 마이스페이스을 돌아다니며 멋진 음악을 찾아봐라. 많이 듣고, 즐겨라.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으면 찾았다고 떠벌려라. 음원을 구매하고 공연장에 찾아감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아티스트를 접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하라. 팬이 되라. 티셔츠와 포스터를 사라. 관심을 가져라.

인터넷에서 최근 히트곡과 유사한 노래를 찾았다고, 혹여 그 곡이 법정에서 표절로 판명됐다고 해서 바뀌는 건 별로 없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멋지고 다양한 음악을 찾고, 알리고, 그러한 음악을 스스로 서포트 할 때 비로소 변화는 일어난다.

p.s.) 그런 음악을 어디서 찾는지 잘 모르겠다면, 여기 곧 웹진으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스캐터;브레인(http://www.scatterbrain.co.kr)이 있다.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