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게으른수다쟁이 추천0 비추천0

2010.02.16.수요일


게으른수다쟁이


 


원래는 요즘 출전이 뜸한 박지성선수와 한국으로 돌아온 설기현선수에게 쓰는 글로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지난 주말 두 쇼트트랙 선수들의 충돌이 있은 후, 예전부터 쓰고 싶던 글에 대한 생각이 미치게 되었고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써본다.


 


필자는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필독님은 주로 보는 것을 좋아하고 난 몸으로 때우는 것을 좋아하니나름 괜찮은 궁합이다. ㅎㅎ) 고등학교 때에는 학교에서 난다 긴다는 애들을 모아(물론 축구부는 제외하고) 지역 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몇 만원 빵 축구시합을 휩쓸기도 했고 예전 모뎀통신시절에는 당시 4대 통신리그를 평정하던 유니텔 내에 한 축구클럽에서 주축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참 잘 했을 때는 우승은 그냥 하는 거고, 과연 무실점 우승이 가능한 가가 주된 관심사였다. 뭐 그랬다. 사실 나도 내 자랑 좀 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저질체력의 만성 복근관리 부족에 시달리는 상상만 호날두인 평범한 30대 후반 직장인일 뿐이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돌아 다니던, 어느 날 아침, 고려대 운동장에서 당시, 차두리와 이천수가 소속된 축구부의 오전 연습장면을 보게 된다. 서로 하프 코트 되는 거리에 골대 대신 축구공 3~4개를 주르르 놓구서는 그걸 맞추면 득점이 되는 놀이 같은 연습경기 였는 데, 실로 저게 인간들의 축구인가 싶을 정도로 빨랐다. 거기에 차두리이천수라니 말은 다한 거다. 50미터 남짓한 거리를 무슨 로봇들이 뛰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 너머를 뛰는 데, 눈이 공을 쫓기에도 급급했을 정도로 온갖 페인트모션과 패스와 기교가 난무하며 1분 사이에 몇 번을 왕복하는 지 세어보지도 못했다.


 



축구를 넘어서 춤구를 한다.


 


시바 실제로 경기장에 가보기도 했지만 어차피 선수와 선수들이 맞부딛히니 별로 느껴지지 않던 속도감이 바로 옆에서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그 날 이후로 난 운동선수들이 어떠한 경기를 하든지 간에 아쉬워는 할 망정 욕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탈 인간이 되기 위해 쏟았을 땀방울은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한나라를 대표하는 선수가 된다는 것, 우리가 쉽게 이러저러하다고 딱 잘라 씨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회에 나와서 알게 된 ‘all or nothing’의 경쟁규칙을 그들은 벌써 몸으로 체득한 그들이 보여주는 맹렬함을 어떻게 한칼에 규정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그들이 직업적인 선수가 되는 순간부터 약 십 수년간의 시간 속에 잠깐의 기복이 있고, 전성기가 지나고 한다고 한들 우리는 그들에게 옷을 벗으라는 이야기나 딴 곳을 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거다.


 


박찬호의 대한민국과 그 이후


 



 


박찬호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등판을 하고 첫 승을 하고부터 우리가 그에게 올려놓은 짐을 생각해보자.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당시의 박찬호는 결코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한민국을 던진다는 박찬호는 게임이 안 되는 날이든 되는 날이든 늘 자신의 게임보다는 대한민국의 상처를 더 걱정해야 했던 거 같다.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난 후 그가 트레이드 되고 부상과 슬럼프에 빠져 있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에게 우리가 던진 대한민국의 온갖 비웃음과 조롱은 기억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작년 대한민국이 아닌 자신을 위한 도전을 선언하고 난 후, 그가 보여준 구위과 성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보여진다. 아마 어쩌면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비로소 이기적인 야구를 하기 시작했고, 또한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를 하고 있진 않을까? 올 시즌 여전히 둥지를 찾기 힘들어 하지만, 어느 곳 가든 그 스스로 가장 즐겁게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만땅이다.


 


박지성은 스스로에게 도전 중


 



 


아직도 수줍게 보이는 이 청년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된다. 혹자는 맨유보다는 중위권 팀에서 주전으로 뛰라고 하지만, 그건 그냥 욕심인 것 같다. 박지성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것일 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이다. 그것이 없다면 현재의 박지성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으며, 챔스리그까지 섭렵한 그가 돈이나 명예의 문제는 아닐테고, 아마도 자신의 한계보다 더 나아가려는 욕심이 맨유에 남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 축구는 인생이고 (모든 축구선수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성취이고 목표 그 자체 일 것.


 


그에게 이 욕심을 접으라고 하는 것은 그냥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모르나,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등은 아직도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축구와 인생의 목표를 위해 달리고 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마치 청교도적인 직업관처럼 축구 이외의 일에 대해 눈 돌렸다는 기사를 본적이 없다


 


일단 특별히 경기를 할 때. 큰 홈 구장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내가 뛰고 있는 팀을 응원해주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저로써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자랑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 후에 그가 했던 토탈사커와의 독점 인터뷰 중 가장 감동스러운 것자신이 자랑스러울 때에 대한 질문의 대답이다. 뭐 인터뷰에서 늘 하는 정답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후반부에 이야기가 박지성이 축구를 바라보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 인거 같다.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적이 없다.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도전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봅슬레이 그리고 국가대표 스키점프단의 즐거움


 



 


박찬호의 사명감과 박지성의 도전을 넘어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메달의 개수나 색깔, 그리고 명성과 돈이 아닌 도전과 경쟁, 그를 통한 발전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비단, 동계스포츠의 영역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사회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우리가 무한도전을 통해 알기 훨씬 전부터 강광배 감독의 봅슬레이팀은 변변한 연습시설도 없는 국내에서 그렇게 뛰어 왔던 것이고, 국가대표 스키점프단은 겨우 작년에서야 전원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실업팀 소속이 된다.


 


그런 환경에서도 지금의 완성도나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건 즐거움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아니면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 일에 대한 즐거움사랑이 없다면 이거 벌써 접었을 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다. 이런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거, 이거 굉장히 큰 변화다.


 


김연아와 박태환, 올림픽 후 은퇴설


 



 


김연아의 연기, 아니 그녀가 예술적인 차원으로 올려 놓은 퍼포먼스를 보는 것은 정녕 엄청난 행운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재작년인가? 고양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를 했을 때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이 더욱 감동이었다. 그 엄청난 중압감과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2위에 머물렀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김연아는처음 가진 한국 경기는 어려운 경험이었다. 실수도 했고 1위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며 팬들의 성원을 고마워했다. 한국에서 팬들에게 잘 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조금 아쉽지만 한국에서 메달을 따게 돼 기쁘다


 


김연아는 이미 정신적인 완성도에서도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기를 원하지만 다른 색깔의 메달에 머문다 하더라도 이미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 2년 전에 완성된 챔피언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올림픽 메달이란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스케이팅의 차원을 넓혀가는 모습을 좀 더 길게 보고 싶은 건 나만의 욕심은 아닐 꺼다.


 


박태환이 올림픽에서 성공 이후, 그가 쉬고 싶은 것은 인지 상정일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딱 한번의 부진이 있자, ‘돈 벌더니부터 시작해서 별별 이야기가 횡행한다. 실패가 새로운 배움이 될 수 있음이나 또 다른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란 이야기는 그냥 교과서 속에서 나온 이야기 일 뿐이다. 난 이런 실패 없는 성공을 강요하는 스트레스가 그에게서 수영의 즐거움을 뺏어 가는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였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 다음 번에는 박수칠 때 떠나야지란 생각 일꺼다.


 


연아의 올림픽 후 은퇴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실패를, 실수를 용인하지 못하는 순간 현실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른다. 설사 올림픽에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찾아올 기록이나 성적의 하향길에서 우리의 손가락질을 그들이 견딜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쇼트트랙을 위한 변명


 



 


안다. 파벌도 있고, 그래서 대표 선발전에 견제도 심하고 말도 많은 것. 뭐 그건 일단 논외로 치자. 그런 파벌이나 악감정으로 올림픽이란 무대를 망칠 선수는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아무도 없다.


 


설날 아침에 본 우리 선수들의 충돌이 괴롭고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사이 좋게 금,은,동을 나눠 먹었으면 대한민국 만만쉐에 새뱃돈도 좀 올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뭐 글타치고, 사실 이호석 선수가 보여주는 인사이드 파고 들기 우리나라 선수들의 전매특허 기술이다. 유일하게 거기에서 좀 자연스러운 사람이 안현수이긴 했다. 그 경이적인 아웃코스로 상대방을 제껴버리는 폭발력은 아직도 내가 본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사실 이 아웃코스 제끼기도, 한국선수들의 인코스 낚아채기를 워낙 견제하며 안쪽은 무슨 수를 쓰던지 막는 경쟁자들에 의해 발전된 면도 있어 보인다.)


 


거기에 선 3명의 선수, 올림픽이 우리에겐 국가대항전 같은 것 이겠지만 그들 개개인에게는 자신이 가진 과거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도전을 하는 곳일 것이다. 그 순간에 좀 더 하려는 욕심이 없었다면 아마 올림픽 출전보다 국내 대표선발이 더 힘들다는 쇼트트랙 종목에서 그 자리에 서기도 힘들지도 모른다.


 


두 선수가 넘어지는 순간, 내가 걱정한 것은 딱 2가지이다. 첫 번째는 넘어져 미끄러지는 순간 스케이트 날들이 엇갈리면서 보여준 부상에 대한 공포였고, 두번째는 트라우마에 대한 걱정이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 사소한 접촉사고가 일어 났을 때도 시간이 좀 지나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많을 꺼다. 거기에 자신의 과실이 많아지고 금전적, 신체적인 손해가 커지면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가 겁이 난다.


 


이호석선수도 그렇고 같이 넘어진 성시백선수도 이번 상황에서 받은 트라우마로 인해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과감한 경기운영을 하지 못하게 될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최상의 경기력으로 도전을 하는 선수들에게서 즐거움을 가지고, 그들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이 부담없이 경기에 쏟아 부어지고 거기에서 나온 성과가 바로 그 도전에 매달리는 목적일 것이다. 아직도 경기 중이고 도전중인 선수에게 니 죄가 매우 크니 씨바 다 때려치우고 넌 오면 죽었어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기회에 집중해달라고, 모두가 승리자로서 돌아와 달라고 이야기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난 여전히 그들이 보여주는 시원한 스케이팅과 짜릿한 승부의 세계가 연출되어 나에게 최상의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니까


 


1등에게도 도전하는 즐거움을 남겨주자.


 


직업병이다. 미안타. 꼭 이런 이야기가 들어가야 내가 쓴 글 같다.


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된다는 것, 그것이 세계에서든 국내에서든 일단 경쟁자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2등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의 경쟁자를 2등으로 규정하는 순간 1등은 수세적인 운영을 할 수 밖에 없고, 결론은 수비만 하다 어느새 잡힌 꼬투리로 2, 3등으로 추락하게 된다.


 


그래서 ‘1위의 경쟁자는 과거의 자신이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과거의 자신이란 자기들이 구축해놓은 과거의 이미지, 성과, 자산을 말한다. 그것을 깰 수 있다면 또 다른 차원의 퍼포먼스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것에 안주한다면, 언제가 추락을 할 준비를 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마, 박찬호선수의 경쟁자는 박지성선수의 경쟁자는 김연아 선수의 경쟁자는 5선발을 놓구 각축을 벌이는 다른 선수가 아니라, 나니가 아니라, 아사다 마오가 아니라 과거의 자신들 일꺼다. 이호석 선수의 경쟁자는 스스로가 만들어버린 트라우마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경쟁자는 오노가 아니라 중국이 아니라 과거의 그들이 만들어 온 바로 자신들일꺼다.


 



 


덧붙여 이호석 선수가 대한민국 금은동의 흐믓한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그동안 피땀을 흘린 것이 아니라,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고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쇼트트랙에서 자리 싸움을 하다가 선수들이 서로 걸려 넘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지 않았냐며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마치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이 찬 공에 맞아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것과 같은 허용된 피해, 혹은 운나쁜 돌발상황이라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갑론을박을 떠나 지금은 모든 선수들이 더 나은 도전에 즐겁게 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경기를 시청하는 바로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우선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