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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부터 두 달 동안 프랑스는 락다운 상태에 들어갔다. 국경은 봉쇄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거주지에 갇혔다. 그로 인해 프랑스 경제는 곤두박질쳤지만, 정부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마스크도 없었고,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프랑스 사회는 두 달이라는 시간을 벌었고, 5월 락다운 해제 이후 다시 점차 프랑스는 정상화되어 가려 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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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

 

하지만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일일 확진자 수가 만 명을 넘는가 싶더니 2020년 10월 25일에는 5만 2천 명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이날로부터 일주일 전인 10월 17일에는 파리와 수도권을 포함한 코로나 위험 지역에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이후 10월 24일에 통금 실시 지역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였다. 언론에서는 현 상황이 ‘통제 불능’임을 강조하였고, 점차 2차 락다운 가능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가 ‘더 이상의 락다운은 없다’ 고 단언한지 불과 6개월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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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8일 저녁 8시, 마크롱 대통령은 특별연설을 통하여 2차 락다운이 실시될 것임을 선언했다. 이제 또다시 프랑스 사회는 시험대에 오를 예정이다. 문제는, 지난 3월, 그러니까 첫 락다운이 시작되던 당시와 지금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프랑스 사회는 락다운이 개개인의 삶에, 경제와 안전에, 또한 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똑똑히 목격하고 경험하였다. 10월 27일 BFMTV 보도에 따르면 약 70%의 프랑스인은 락다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88%의 프랑스인이 락 다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대답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 프랑스는 이제 당분간 락다운 상태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러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프랑스 정부는 그렇게까지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락다운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컴퓨터나 모니터 등 재택근무에 필수적인 정보기기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여러 상점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미용실에는 예약을 문의하는 손님들의 전화로 벨이 멈추지 않고 울려댔다. 언론에서 마크롱의 발표가 있기 며칠 전부터, 특히 하루 전부터는 아주 적극적으로 2차 락다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시민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시키는 매트리스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33.jpg2차 락다운 실시 전날 프랑스 낭시. 아침부터 미용실 앞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

 

그런데 이는 마크롱 정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0월 14일에 있었던 야간통행금지 조치 발표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당일 프랑스의 뉴스 채널 LCI에서 한 기사가 발표된다. 기사에서 인용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3%의 프랑스인이 통금 조치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 조치에 개인의 자유를 그 무엇보다 강조하는 대다수의 프랑스인이 찬성했다는 결과는 사실 주목할 만 하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야간통금 조치가 발표되기 며칠 전부터 언론은 야간통행금지 조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정부에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나, 모든 언론에서는 통금 조치가 실시되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다룸으로써 프랑스인들은 심리적으로 추후에 발생할 일들에 대비하게 된 것이다. 단순노출 효과. 단지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으로, 1968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자이언스 (Robert Zajonc)의 실험으로 증명된 심리 법칙이다. 이는 에펠 탑 효과라고도 불리는데, 1889년 완공 당시만 해도 혐오의 대상이었던 에펠 탑이 점차 파리의 상징이 되는 과정이 이 심리 법칙이 발현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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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사 중인 에펠탑. 당시까지만 해도 이 건축물에 대한 에밀 졸라나 모파상을 위시한 프랑스 사회의 반대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클레망 빅토로비츠 (Clément Viktorovitch) 기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비 효과를 언급하였다. 빅토로비츠 기자는 통금 조치 실시 직후 카날플뤼스에 출연하여 정부 발표 전 48시간 동안 언론이 이 주제에 과도하게 집중하였음을 지적한 바 있다. 대비 효과란 어떤 판단을 내리는 데에 있어 비교할 다른 대상이 있는 경우, 이를 기준으로 삼게 되는 심리 법칙을 일컫는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 이후 단지 날이 갠 것만으로도 날씨가 좋다고 느끼게 되는 식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때는 자신보다 잘나 보이는 친구들을 대동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언급되는 심리 법칙이다.

 

실제로 야간통금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직전인 10월 12일, 장 카스텍스 국무총리는 TV 뉴스에 출연하여 락다운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때는 락다운을 다시 실시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은 아니고, 이 역시 정부의 선택지에 놓여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이제부터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들은 지난 3월에서 5월까지 이어진 락 다운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락다운 재개가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야간통행금지 조치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납득할만한 결정으로 간주된다.

 

다시 10월 14일 야간통금 조치 발표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이미 판은 준비되었고, TV에 출연한 마크롱의 입에서는 ‘야간통금’의 ‘야’ 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조치가 결정되었음은 마크롱을 인터뷰한 앵커의 입에서 공식화되었다. 10월 28일 락 다운 발표 때는 중대한 조치인 만큼 마크롱이 직접 이를 선언하기는 하였으나, 이미 락다운 재개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심리적 준비는 10월 초부터 시작되었으며, 발표 며칠 전부터 여러 의료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모아 락다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언론을 통하여 노출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에도 해당 전략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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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TF1 인터뷰 장면. 야간통금 조치를 언급한 것은 마크롱이 아닌 오른쪽의 질 불로 (Gilles Bouleau) 기자였다.

 

어쨌거나 프랑스는 10월 30일 자정을 기해 락다운으로 들어간다. 이는 지난 5월 락다운 해제 이후 정부가 취한 모든 정책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프랑스로서는 락다운 말고는 더이상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뜻한다. 즉, 마크롱 정부의 완벽한 실책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불구, 프랑스 사회는 다시 한번 마크롱의 리더십에 기대를 건다. 이 현 상황 뒤에는 이와 같은 전략이 있었다. 이번 락다운 후에도 프랑스의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또 어떤 전략으로 실책을 감추게 될까. 물론,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주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