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충용무쌍 추천0 비추천0

2010.02.22.월요일


충용무쌍


 


 




관련기사[현장출동] 중국 최대의 게임쇼, China Joy를 가다!  




 


 

시발(始發)


 



ㅅㅣ-ㅂㅏㄹ(始發) 자동차, 1955년


 


대한한국 최초의 자동차 ㅅㅣ-ㅂㅏㄹ(이하 시발)은 미군 차량의 부품들을 재조립해서 태어났다. 사실 외형부터 미군 지프를 빼다 박은 시발을 자랑스러운 국산 1호차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발은 단종직전까지도 몇몇 핵심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지 못한 어정쩡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시발의 시발을 시발스럽다고 무작정 매도하기도 어렵다. 기술, 자본, 인력 그 어느 것 하나 남아있지 않던 전후 대한민국에서 모방은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마저 시발스럽게 느껴진다면 '엄마,아빠'를 따라하며 처음 말을 배우는 젖먹이도, 명화를 모사하며 붓질을 익히는 미술학도도 시발스러울 것이다. 표절과 모방, 인용, 그리고 창작이 뒤엉킨 이야기에 앞서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모방은, 죄가 아니다. 더 나아가서 모방은 때로 '창조의 일환'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양식이다. 사실 인류라는 종이 그렇다. 우리모두 눈을 감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 과정을 생각해보자.


 


.


.


.


'엄마가 하는 말을 따라 해 봐'


'자, 선생님을 보고 따라 해 봐'


'그림의 설명을 따라할 것 '


'책을 읽고 활동을 따라해 보자'


.


.


.


 


 


인류는 본래 따라 쟁이다. 인류가 지식을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킨 과정에서 모방은 가장 기초적이며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따라서 필연적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괴물들(흔히 우리가 天才라고들 부르는 이 부류들은 분명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다)을 제외하면 인류는 따라 쟁이 가 맞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예술작품 같은 유형의 증거들부터 종교와 신화와 같은 무형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범하고 영향을 주고받아 온 증거들을 일일이 나열했다간 지면만 부족해질 것이다. 단지 지금 확실히 해둘 말은 표절을 논하는 데 있어서 모방여부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랬다간 세상 사람들 모두 "지적부채" 의 덫에 걸려 옴쭉 달싹 못 했을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어디선가 받은 영향의 결과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또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거라 누가 보증할 수 있을까. 이렇게, 종종, 문장의 호흡과 상관없이, 쉼표를 찍는 내 습관도, 심심하다 싶으면  '~하시라'로 끝을 맺는 만연체마무리도, 옛적부터 딴지일보를 탐독하며 얻은 일종의 지적부채다. 


 


만약 총수가 이걸 문제 삼아 본 기자를 사옥 지하실에 거꾸로 매달아 코로 김치찌개를 먹인다면 세상 무서워서 어찌 살겠나. 결국 표절을 논할 때 우리의 관심은, 단순히 모방여부, 그 자체가 아닌 "어떻게 모방했느냐"에 맞춰야 할 것이다. 


 


이 '어떻게 모방했느냐'에 대한 판단기준은, 다소 고답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예의에 있다. 대체 예와 무례의 기준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나 궁금하신 분은 똑같이 모방이라는 방법을 취했지만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 가지 사례를 번갈아 봐주시라.


 



언터쳐블스(The Untouchables)中, 기차역의 총격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갱스터 영화 언터쳐블스의 한 장면. 재판의 열쇠를 쥔 중요한 증인을 두고 주인공 엘리엇과 알 카포네 일당이 총격전을 펼친다. 터덜터덜 계단에서 떨어져나가는 유모차, 천진난만한 아기의 얼굴, 절규하는 어머니, 총성과 선혈, 그리고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으로 극대화되는 이 찰나의 아비규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선 에이젠슈타인의 고전, 전함포템킨 속의 <오뎃사 계단>이 겹쳐지고 후배가 선구자에게 바치는 찬사를 읽는다. 우리는 이런 모방을 흔히 오마쥬라 부른다.


 



이말년 시리즈 1화, 불타는 버스中


 


 


이제 대형 포탈에 자리 잡은 이말년의 출세작, 불타는 버스. 버스에 불이 나자 대뜸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고 결연히 외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실미도의 그것이다. 본래 비장미가 철철 넘치는 장면이건만 여기선 오히려 실소를 자아낸다. 우리를 이런 모방을 패러디라 부른다.


 


 



화면제공 : SBS


 


치기어린 청년이 무대 위에서 흥얼거리고 있다.


"나도 어디선 꼴리진 않아 아직 쓸 만한 걸 죽었어 너 하나 때문에 망가진 몸"


플로라이다(Flo-Rida)나 오아시스(Oasis)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단지 직접 작곡하고 작업했다는 노래를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이럴 때 비로소 표절이라는 말을 쓴다.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똑같이 모방을 선택한 오마쥬와 패러디. 의도는 서로 다르지만 둘 다 수용자들이 모방임을 알아차리게 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영리를 취할 목적으로 자행된 파렴치한 모방은 모방임을 알리길 스스로 거부하며 최대한 그 사실을 숨기려든다. 그래서 표절은 다른 모방들과 다른 '무례한 모방' 인 것이다. 예의바른 인용이나 의도된 모방, 그것을 토대로 한 2차 창작도 아닌 도용이다. 그것이 무례한 모방, 표절이다.


 


지금부터 이야기 할 것은'무례한 것들' 의 역사다.


 


암흑과 중흥기


 


 



MSX용으로 1989년 출시된 재미나의 슈퍼보이2, 민망하다.


 


'무례한 것들의 역사'는 의외로 유구하다. 8비트 컴퓨터 애플과 MSX가 국내에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됐으니 20년이 훨씬 넘어간다. 당시 게임 유통사라고 하기엔 민망하고 제작사라고 하기엔 더더욱 민망한 업체로 아프로만과 재미나가 있었는데 이들은 코나미의 왕가의 계곡,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등을 MSX용으로 컨버젼 해 국내에 유통시켰다. 컨버젼이라 표현하니 원 제작사에 로열티를 지불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그냥 일본 게임을 무단으로 가져다 로고만 덧씌워 판매한 수준이다.


 


아직 저작권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했고 일본문화(그것도 청소년 탈선의 대표주자로 손가락질 받던 전자오락!)에 대해 맹목적인 반감이 존재했던 시절이라 이런 행태에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때부터 개발과 유통을 비롯한 국내 게임시장 전반에 거대한 모럴해저드가 형성된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제작에 있어선 '네 것 내 것 따로 있나, 베끼든 개발하든 결국 팔아서 돈 벌면 끝이지' 라고 식으로 최대한 싸게, 많은 게임들이 '복제' 되었다. 소비자대로는 게임이란 도서나 음반과 같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상품이 아닌 해적판으로 싸게 복제해서 즐기는 물건으로 생각했다. 결국 이때 시작된 악습이 강산이 바뀐 지금까지도 고질병처럼 남아있다.


 



"불법복사의 죄를 벌하여 주십시오"


신검의 전설2에서 한 NPC와 대화중에 등장하는 선택지


남인환옹도 한이 많이 맺혔던 듯 싶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이러한 국내 게임 제작(유통)사들의 만행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다. 시발 택시처럼 발전과 도약을 위한 고육책도 아니었고 훗날 한국 게임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된 필요악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그렇게 돈을 벌었고 수 십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악습을 낳았다.


 


그러나 8비트 시절의 이 암흑기는 16비트 IBM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여명으로 바뀐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 게임(정확히 말하자면 팩키지 게임)산업은 다시 없을 중흥기를 맞은 것이다. 여전히 만연한 불법복제와 한탕주의에편승한 아류작의 범람과 같은 병폐가 남아있었지만, 개당 3~5만원 가량 하는 정품게임들이 많게는 10만장 이상씩 팔리기도 했고 점잖은 인용을 바탕에둔 참신한 발상의 신작들도 많았다. 


 


- 당시 게임들의 정가는 부가세 10%를 따로 붙여 3만3천원, 4만4천원, 4만9천5백원 하는 식으로 산정되었다. 중간 마진을 줄인 실제 소매가는 이보다 내려가기도 했지만 역시 싼 가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분기별 흥행작은 3~5만장, 창세기전3와 같은 히트작은 최대 14만장 까지도 팔렸다. 물론 제작사측의 홍보 자료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정품 게임이 나와 봐야 몇 천장 팔릴까 말까 하는 지금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았다 -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나 신검의 전설2가 각각 출시 되었을 때는 이제 일본산 RPG와 미국산 RPG에 대한 답습이 끝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망국전기나 머털도사 시리즈 처럼 D&D를 따르지 않는 한국적 세계관이 등장하기도 했고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C&C와 워크래프트2가 각축전을 벌이며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이 시장을 장악했을 때는 임진록, 쥬라기 원시전, 거울전쟁과 같이 '아류라고 얕잡아 보기엔 녹록찮은' 국산 게임들이 빛을 발했다. 당시의 RTS붐을 반짝 인기에 편승한 아류작의 범람이라 걱정한 이들도 있었지만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 이전에 인구와 식량 개념, 영웅 유닛의 육성과 성장등의 다채로운 요소가 국산 RTS게임들 속에서 시도된 점을 매우 높이 기려야한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들이 만든 게임의 아류 취급당한 이 게임들의 장점을 요소요소 취합하여 블리자드는 다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로 발전시킨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 짧았던 호시절 속에도 지우기 힘든 어두운 역사는 존재한다.


 


 


명작의 치부


 



창세기전2 눈물의 엔딩.


불세출의 영웅 흑태자, 폭풍도에서 연인의 칼에 지다.


 


게임도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장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등장인물의 설정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과 세계관을 포괄하는 시나리오가 준비되어야한다. 이것을 장르에 맞게 기술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프로그래밍 작업이 있고 때에 따라선 아예 물리엔진부터 개발하기도 한다. 거기에 음향효과와 배경음악도 생각해야 하고, 음성 지원되는 게임이라면 애니메이션이나 외화 더빙과 같은 업무까지 추가된다. 이렇듯 게임은 복합적인 요소를 갖춘 매체인 만큼 표절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도 무궁무진(?)하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원화를 도용해 캐릭터 외형 따위를 베끼는 1차원적인 것부터 똑같은 게임 엔진을 가지고 진행방식이며 사용자 인터페이스까지 통째로 베끼는 3차원적 표절까지 표절 방식도 다양해진다. 단지 기술적 표절만 표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비극은 국산 롤플레잉의 역사를 논할 때 항시 빠지지 않는 기념비적인 작품, 창세기전 시리즈에서 일어났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최대 장점으로 내세워 팬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특히 그중에서도 2편과 서풍의 광시곡은 게임플레이가 아닌 거의 한편의 비쥬얼 노블을 읽는 것과 같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자타가 시나리오를 칭찬해 왔었다. 그런데 그 둘의 플롯이 창작이 아닌 도용으로 밝혀진 것이다.


 


구체적인 플롯의 비교는 다음의 링크에 있다. 여기선 스크롤이 지나치게 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결론부터 말하겠다. 창세기전2는 서효원 작가의 대설을, 서풍의 광시곡은 용대운 작가의 탈명검의 플롯을 들고 왔다.


 




창세기전2와 대설의 표지


 


 


창세기전2와 대설의 플롯


"소위 먼치킨으로 불리는 강력한 주인공(흑태자 = 마무정)이


동료의 배신으로 기억상실에 걸려 과거의 적들과 협력, 과거의 동료과 싸우다(G.S.=백무엽 )


전투중에 입은 충격으로 두 가지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된다.(G.S.흑태자각성=백무엽,마무정각성)


결국 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거대한 악의세력 (베라딘=북황자)의 존재를 파악하고


반목하던 두 세력을 규합하여 (실버애로우-다크아머 = 인문십좌 - 마혼십가) 최후의 결전을 펼친다."


 


서풍의광시곡과 탈명검의 플롯


자신의 연인과 지위를 노린 무리들의 모함으로 투옥된 임무정(=시라노)은 옆방에 수감되어 있던 노인(=데이모스)에게서 절기 북해의검(=마검 아수라)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절치부심 탈옥과 복수의 기회만 노리던 어느날, 같은 감옥에 투옥된 자신들의 동료를 구하러 온 무림의 인물 좌천리(=메디치)덕에 파옥에 성공한다. 주인공은 북해의검을 손에 넣어 고수가 된 후 좌천리 일행과 함께 행동하며 자신의 사랑과 행복을 앗아간 이들에게 복수를 시작하는데........


 


두 가지 모두 유명한 무협소설의 판타지 버젼의 번안이라 봐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거기에 전혀 다른 작가의 다른 소설 두 편을 하나의 세계관 속으로 융합시킨 솜씨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와 기갑창세 모스피다를 하나로 짜깁기한 전설적인 괴작, 로보텍(ROBOTEC)이상가는 센스였다. 진심으로 칭찬이 필요할 정도로 인상 깊은 번안이다.


 


만약 이것이 두 작가의 양해를 구한 뒤 이루어졌다면 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전2와 서풍의 광시곡 모두 무협소설이 원작이라는 말은 쏙 빼놓고 오랫동안 오리지널 스토리인 척 행세해 왔다는 게 문제다. 서풍의 광시곡은 조금 더 뻔뻔하기까지 하다. 사실 용대운 작가의 탈명검의 플롯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암굴왕)과 여럿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또는 켄 폴레트의 성페테스부르그에서 온 사나이를 닮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다. 둘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용대운 작가는 탈명검이 '성페테스부르그에서 온 사나이' 를 무협판으로 옮긴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밝혔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서풍의 광시곡은, 사건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분명 탈명검의 번안이 분명한데도 마치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직접 번안해 서풍의 광시곡을 쓴 것 마냥 홍보해 왔다. A->A'->A''가 있는데 A'를 A''로 옮겼으면서 A'의 이야기를 쏙 빼놓고 마치 A를 직접 가공한 것처럼 솜씨자랑을 했단 말이다. 삼분 짜장을 간만 새로 했으면서 재료사다 직접 면 뽑았다고 발뺌한 것이나 마찬가지


 


 창세기전 시리즈 개발을 진두지휘 했던 소프트맥스사의 최연규 개발팀장의 하이텔 무림동 시절 활동이 이 두 사건과 모종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을거란 심증적 추측만 가능했을 뿐, 창세기전의 제작사 소프트 맥스는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공식 입장을 표한 바 없다. 창세기전 시리즈가 한국 게임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봤을 때 이는 결코 가벼이 넘어갈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유야무야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 였다고 해야겠다. 무협소설과 다소 멀었던 당시10대 소비자층(대설은 80년대 초, 탈명검은 90년대 중반에 출간)과 아직 미약했던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지병으로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서효원 작가의 부재가 맞물려 이 사건은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국산 대표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창세기전과 그 제작사가 저질렀던 무례한 행위까지 잊혀진 것은 아니다.   


 


 


암흑의 뉴 밀레니엄


 


 



팩키지 게임 시장의 상황은 이렇게 한줄 요약 가능할 정도


 


팩키지 시장은 멸망해 버렸다. 표절작이건 아류작이건 이제는 게임이 아예 나오지 않게 되어 버렸다.


 


거미줄처럼 깔린 인터넷 통신망과 고성능 컴퓨터는 이제 전문적인 CD꾼들마저 장사를 접게 만들었다. 신작 게임은 발매와 동시에 신속하게 크랙이 깨지고, 이미지 파일 형태로 찢어져 네트웍을 타고 마구 전송되었다. 어느새 가격대 용량비가 가장 경제적인 저장매체가 되어버린 고용량 하드 디스크의 힘을 빌면 CD를 굽지도 않고 이미지파일 형태로 게임을 수십개씩 저장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정품 팩키지를 구매하는 사람은 없어졌고 수익모델을 사라진 제작사들은 하나 둘 폐업을 선언하거나 다른 분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시장과 모바일(핸드폰)게임 시장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멋진 신세계였다. 중앙 서버에 접속해 꼬박꼬박 과금을 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은 불법복제로 타격받을 일이 없었고 꾸준히 이용자가 확보된다면 장기적인 수익모델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인기 있는 팩키지 게임이라도 판매가 1년이상 지속되기 힘들다. 한번 구매하면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이용자수가 곧 판매고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 비하면 이용자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수익모델은 훨씬 지속가능형이다. 서비스 개시 후 어느덧 10년을 넘겨 상용 서비스를 계속하고 있는 리지니의 수명은 팩키지 게임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이 흐름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한 판타그램, 소프트맥스, 손노리등 기존의 명가들은 도태되어갔고 NC소프트, 넥슨과 같은 신흥 강호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니지의 대흥행 이후 MMORPG에 편향된 개발사들의 서비스는 곧 시장의 과포화 상태를 만들었다. 사실 컴퓨터를 능숙히 사용하며 인터넷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매달 수 만원의 서비스 이용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이용자 층은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사냥과 성장, 전투의 반복인 MMORPG의 컨텐츠에 이용자들은 점차 식상해져가고 있었다. 


 


이때 일찌기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하며 한국 온라인 게임의 산증인 격인 위치에 있던 넥슨에서 용감하게 새로운 바다에 뛰어들었다.


 



캐쥬얼하게, 가볍게, 누구나 즐길 수 있게!


 


사실 200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컴퓨터 게임은 '아이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었던게 사실. 정부 주도의 인터넷 PC보급 사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가정에서 컴퓨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생활의 일부가 될 거란 예측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여기에 덧붙여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 게임 타이틀 가격은 3~5만원 사이의 상당한 가격.


 


자연스럽게 게이머들의 세계에도 진입장벽 이라는 게 두텁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인터넷 PC사업으로 컴퓨터와 네트워크 이용자수와 그 연령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그 벽이 급속도로 허물어져갔다. 기존의 진입장벽에 가로막혀 있던 미취학아동, 초등학교 저 학년생, 여성과 중장년층까지도 잠재적 게이머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넥슨은 이때를 정확히 맞춰 성공했다. 물론, 비겁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 비겁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는 지난 시간에 살짝 언급했다.


 


 



구 크레이지 아케이드. 지금은 통칭 BnB


 


이미 수년전에서 길게는 십수년 전에 인기를 검증받은 콘솔, PC용 게임들을 온라인 게임으로 옮기는 것이다. 물론 80년대 MSX시절의 해적판들처럼 저작권자를 개런티나 라이센스는 전무. 게임의 진행방식과 인터페이스, 캐릭터와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낀 21세기형 해적판 게임을 만들고 창작인 것처럼 서비스 하는 것.


 


어찌됐건 상업적으로는 너무나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넥슨의 제물이 된 봄버맨과 마리오 카트는 얼추 10여년 가까이 된 게임들. 이미 여러 차례 리뉴얼과 시리즈물이 나올 정도로 게임성을 보장받은 '고전' 급의 게임들이다. 하지만 새로 게임시장의 수요자 층으로 등장한 저연령층에겐 다분히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게임들. 이들을 때깔좋게 손봐서 온라인 서비스로 부활시킨다는 발상 자체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불황에는 가요계도 흘러간 명곡 리메이크와 복고풍이 답이듯 게임이라고 이게 문제될 건 없다. 문제는, 리메이크가 아니라 도용이었다 이 말이다. 봄버맨을 베낀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어릴 적 우리가 하고 놀던 얼음 땡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들었다' 는 설명까지 덧붙었다. 내가 아는 한 저게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 가장 창의적인 요소다.


 


 



얼음떙은 무슨 땡전뉴스같은 소리하고.....


 


결국 이 사실은 봄버맨의 원저작권자인 일본의 허드슨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두 업체는 저작권 분쟁에 휩싸이게 된다. 재판 전부터 일본게임의 저작권을 한국 법정에서 판결할 수 있느냐, 모방과 영향의 구분이 모호한 문화컨 텐츠 영역에서 표절을 법적으로 판정할 수 있겠느냐 워낙 진통이 난무했던 사건. 본격적인 송사에 들어가기 앞서 2003년, 넥슨은 허드슨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갑자기 '협력제휴' 관계를 선언하면서 송사 이야기가 슬그머니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넥슨에서 후달리니까 일이 커지기 전에 돈으로 막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끝날 수 있는 상황. 이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넥슨은 2005년,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권 등 부존재확인 소송" 이라는 제목으로 이번엔 자기가 먼저 허드슨에 소송을 걸어서는, 2007년 "맵과 캐릭터 색깔과 미감이 봄버 맨과는 달라 표절로 볼 수 없다" 는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관련기사)


 


색깔과 캐릭터를 바꾸면 법원에서 무죄라고 말해준다.


마리오 카트의 색깔과 캐릭터를 바꾼 카트라이더는 흥하다 못해 장관님을 두 분이나 드라이버로 모실 뻔 했다.


골수 게이머도 아닌 캐쥬얼 게임 유저들은 고전작에 대한 기억이니 표절 같은 거 구분할 능력도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놀고 있으면 바보 아닌가.


2005년을 전후로 이제 "검증받은 고전과 콘솔게임을 온라인으로 무단 컨버젼" 하는 방법은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캐릭터 디자인, 필드의 렌더링, 원화 일러스트등을 가져오는 1차원적 모방에 그쳤다면 점차 게임의 룰, 조작법, 전체적인 컨셉을 통째로 들고오는 3차원적 표절로 그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겉보기에는 표절이 아닌 것 같아도 한 10분만 플레이 해보면 '이거..화면만 바꿨지 같은 게임이잖아?'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 이후 국내에 출시된 온라인 게임중 표절 시비를 받는 것과 그 원작으로 지목되는 게임들을 묶어놓은 리스트다.


 


 


카트라이더 - 마리오카트 


 


던젼파이터 - 던젼 앤 드래곤, 킹 오브 드래곤


 


워록 - 배틀필드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 카운터스트라이크


 


팡야 - 모두의 골프


 


4story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미니파이터 - 포켓파이터


 


위키 - 젤다의 전설


 


H.A.V.E - 팀포트리스2


 


 


무례한 것들의 미래


 


무례한 것들의 역사는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다. 베끼고 베기고 다시 베끼고. 하지만 더 통탄할 일은 이 무례한 것들이 돈을 벌고, 정부에서는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법원에선 무죄로 소독까지 되어 당당히 가슴 펴고 대로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저 공염불 삼아 해볼 수 있는 소리가 있다면 "개발사와 제작사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의 게임을 스스로의 작품으로 여기는, 장인이나 예술가와 같은 긍지를 함양하고 노력을 기울여 주십사" 하는 정도가 되겠다.


 



그렇게 말해봐야 2010년 대한민국에 씨알이 먹히기는 커녕 구로 일대에 빼곡이 자리 잡은 이름 모를 개발업체 직원들에게 비웃음이나 사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 양반이 순진한 소리하고 계시네, 차리리 표절을 안 하면 회사 부지를 재개발 해주겠다고 하면 조금 먹힐지도 모르겠다. 철딱서니 없게시리 끌끌"


 


-사실 모바일 게임 업계의 상황은 온라인 게임이나 팩키지 게임처럼 소개와 비판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막장' 을 달리고 있다. 워낙 규모가 영세하고 제도와 시장의 구조가 '빠르게 많이 만들어 일단 팔고 보면 장땡' 식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눈앞의 제작이 중요하니 저 멀리 개발이 문제가 아니다. 초록매실이 나와서 팔리면 다음 달에 바로 퍼런매실, 누런매실, 연두매실이 주르륵 달라붙는 음료나 제과 시장의 모습과 유사한 상태 -   


 


하지만 그래도 결국 '정도를 지키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는 입에바른 소리밖에 할 말이 없다.


무례한 것들의 내일은, 더 무례한 것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음 당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발 '짝퉁'게임 논란 재연, 국내 업체는 속앓이만


넥슨, 중 업체 상대 배상 소송


중국산 던파?…‘명장삼국’ 상륙 예고


 


국내 시장의 포화를 넘어서기 위해 업체들이 선택하는 길은 '게임의 한류' 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계가 북미와 일본계로 갈라질 정도로 문화적 차이가 이질적인 북미시장은 난공불락이고, 이비 베껴온 일본시장으로 수출을 시작해봐야 경쟁력을 없이 좌초할 뿐이다. 결국 업체들은 영화와 가요가 그랬던 것처럼 중화권 한류에 기대고자 하지만, 더 무례한 것들앞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미 중국의 업체들은 한국의 유명 게임들을 카피해 자국안의 시장을 틀어 잡은 걸로도 부족해 한국에 역수출(명장삼국)을 시도하는 지경까지 와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저작권 개념이 모호한 중국시장 진출시 애로 사항이 많다고 투덜거리던 업체들로서는 이제 쓴웃음도 안나오는 상황이다. 이제 베낀 걸 다시 베낀 더욱 무례한 것들이 한반도를 역으로 노리고 있다. 이런 걸 인과응보라고 해야 할까. 아마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