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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660여 건

 

독감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날이다. 인천의 고등학생이 백신 접종 이틀 뒤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에 대한 직간접적인 보도가 시작됐다.

 

이전까지의 백신 관련 의혹 보도는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독감백신과 백색 이물질이 발견된 독감백신에 대한 보도였다. 독감백신의 관리가 허술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 이후에 독감백신으로 인한 사망이 의심되는 첫 번째 사례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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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72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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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불안’, ‘공포’, ‘포비아’같은 단어들이 기사 제목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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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 세 건이 추가로 보도되면서 독감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10월 20일부터 이후 며칠 동안은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 속보가 실시간 중계하듯 나왔는데, 사례 한 건마다 같은 내용을 한 수십, 수백 건의 기사가 각기 다른 언론사 간판을 달고 쏟아졌다.

 

10월 21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183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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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자극적이었던 기사 제목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기사제목에 라임까지 맞춰가며 불안을 극대화했다. 사망 보도도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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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사망자 보도가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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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사망자 보도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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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경 최종 수정된 기사 제목은 이랬다. 일일이 기사 제목 캡쳐를 열거하지 않았을 뿐이지 21일 자로 검색된 1830건의 기사 제목을 훑다 보면 사망 한 건 당 얼마나 많은 우라까이 기사들이 나왔는지,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는 기사 제목이 모니터를 수놓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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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도 독감백신과 사망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질 때까지는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다룬 기사들이 적잖이 나왔다.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기사 제목을 클릭해서 막상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전문가 의견을 말미에 덧붙여 놓는 경우도 많았다. 기사 제목으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고 기사에 실어주기라도 하는 노력이 가상하다고 해야하는지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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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은 사망 사례가 신고된 초기부터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사망 사례를 조사 중이며, 그전까지는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독감백신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백신 접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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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발표에도 아랑곳 않고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위의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이러한 사태 인식은 당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였고 실제로 이후 경과를 놓고 보면 상당 부분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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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에 의해 독감백신은 공포가 되고 독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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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망자의 사인이 ‘질식사’로 결론 내려지자 논란이 예상된다고 한다. 정작 기사 내용에 논란이 예상되는 뚜렷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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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한마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따옴표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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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남서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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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접종 몇 시간 뒤에 숨졌는지, 어떻게 숨진 채 발견되었는지 기사 제목으로 꼼꼼하게 밝힌다. 이후 다른 사망자 관련 기사에는 ‘사우나에서 숨진 채 발견’같은 제목도 등장했다.

 

10월 21일 단 하루, 독감백신을 검색해서 나온 기사는 1830여 건, 19일부터 3일간 대략 3200여 건이다. 기사 제목을 훑어본 내가 실수한 게 아니라면 그 가운데 2019년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의 사망 건수가 얼마나 있었는지, 통계적으로 하루에 사망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몇 명이며 그 가운데 일주일 내에 백신을 맞은 사망자는 몇 명이었는지를 밝히는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사망 속보,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반응, 보건 당국 발표, 유력 인사의 한 마디, 전문가 의견 등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기사가 전부였다. 기자에게 필요한 능력이 이 정도뿐이었는가.

 

10월 22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227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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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이 되어서도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에 대한 속보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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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숫자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인 기사도 마찬가지로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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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제목의 기사 내용을 보면 막상 접종을 멈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누구인지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다. 그냥 ‘전문가’로 지칭될 뿐. 기사에게 유일하게 실명이 공개된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오늘부터는 매우 심각하게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고 기사 내에서 인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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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백신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사 제목만 보면 독감 백신 때문에 노인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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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날, 강기윤 국민의 힘 국회의원이 바이러스 분야의 전문가 서상희 충남대 교수의 자문을 받아 제기한 의혹이 보도되었다. 대량의 백신을 급하게 만들다 보면 독성물질이 섞일 수 있고, 그것으로 접종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또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지만 언론은 홀랑 받아 적어 내놓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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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여기까지만이다. 실제 그런 이유로 백신 관련 사망 사고가 터진 국내외 사례가 있었는지는 나만 궁금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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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본문에는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감염 내과 교수의 의견이 있다. 제목에 인용한 서동철 교수는 약대 교수다. 서동철 교수가 웬만한 감염 내과 교수보다 백신에 대해 더 잘 아는 전문가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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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보건 당국은 입장을 발표했다. 독감 백신으로 인한 사망(그것도 아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보다 독감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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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독감 백신은 ‘살인 백신’이 됐다. ‘죽음의 복불복’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도 나온다. 보건 당국과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하는 가운데 시민의 공포를 훨씬 강력한 근거로 내세우는 언론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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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소개된 박능후 장관의 발언을 보자. 노인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독감 백신 접종 여부를 최우선으로 묻게 되면 작년 또한 올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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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가 있는 진단임에도 ‘설화(말로 입게 되는 화)’로 치부된다.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표현만 꼬집어서 비난하는 전형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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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백신 관련 사망 의심 사례로 처음 보도되었던 인천 고교생의 사망 원인이 독감 백신과 관련 없다는 국과수의 발표가 나왔다. 그러나 언론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10월 23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130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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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전날 첫 번째 사망자에 대한 국과수 발표가 있었음에도 언론은 의혹을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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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가 나오면 궤멸적 치명타, 대한민국은 사망 속출 백신으로 추락하나. 남의 나라 이야기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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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전문가 서민 교수가 여러 언론사 보도에 인용됐다. 하나같이 그가 정은경 청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굳이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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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에서 인용한 기모란 교수의 <한국일보> 인터뷰 발언은 “단지 사망 전 백신 접종을 했다는 이유로 계속 사망 사례 수를 세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조성한다"라는 우려였다. 21일 정은경 청장의 발표, 22일 박능후 장관의 말, 그리고 기모란 교수의 인터뷰까지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사망 전 독감 백신 접종 여부를 최우선으로 물어서 사인과 연관 짓는 것 자체에 대한 우려다. 사실 이러한 발언들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왔을 때 불안과 공포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선 넘은’ 기사는 더 이상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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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SNS 괴담도 가족 잃은 사람들의 비통함도 모두 이들의 기삿거리가 된다.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오로지 불안의 확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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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사망 원인을 분석한 26명에게서 백신 관련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19일 이후로 한 시가 멀다 하고 불안에 떠는 국민들이 백신 접종을 기피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미 백신을 접종한 사람 수가 1400만 명을 넘었다.

 

10월 24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510여 건

 

토요일이 되었기 때문일까. 24일 보도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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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과 24일에 보도의 특이사항 중 하나는 사망 건수가 서른 건을 넘어가면서 언론사의 사망자 속보 경쟁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뉴스 기사 제목만 훑어도 실시간 카운팅이 되던 사망사례 숫자가 잘 보이지 않더니 질병관리청 발표 보도를 보고 나서야 그 수가 48건까지 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의심 사망 사례 보도가 나온 19일부터 24일까지, 불과 5일 사이에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 보도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극적으로 줄어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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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초기부터 그토록 궁금했던 수치다. 이런 수치를 언론은 왜 진작부터 궁금해하거나 묻지 않았나. 가만히 있다 보건 당국이 발표를 하면 그제서야 따옴표 붙여 기사를 내보낸다.

 

10월 25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300여 건

 

25일 일요일, 관련 기사는 더욱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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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간 언론의 관심은 열탕과 냉탕을 오갔을지 모르나 보건 당국의 입장은 늘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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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접종 보류를 권고했던 일부 지자체도 입장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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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기사를 쓴 기자가 보건 당국이 접종을 중단시키지 않을 근거를 끊임없이 내놓는 대도 들어먹지를 않고 마이웨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26일

-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1000여 건

 

주말보다 건수는 늘었으나 이전과는 달리 이슈 종합 기사의 일부, 해외 사례, 백신 무료 접종 연령대 확대와 같은 기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사망 보도, 불안 기사의 빈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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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입장 표명을 했다. 지난 한 주가 내도록 질병관리청장에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나서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듣지를 않으니 결국 대통령까지 나섰다. 믿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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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을 봐도 비판의 근거를 찾기 힘들다. 독감백신 맞고 사망한 사람이 수십명이라는 말만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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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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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청이 또 하나의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같은 백신 맞은 사망 사례에서도 인과성은 없었다.

 

10월 27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73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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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조사를 신속하게 한 결과가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기자는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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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나는 그냥 모르겠고 무조건 불안하다’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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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 : 정은경 청장은 독감 백신 괜찮다면서 왜 안 맞냐

기사 내용 : 나이가 아직 안 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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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인천 고교생의 사인이 독극물 중독으로 판단된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체내에서 다량의 성분이 검출된 것과 사망 전 직접 해당 독극물을 구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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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수의 언론은 사망한 고교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유족의 입장을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 서해상에서 피살 당한 공무원 사건과 엮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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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사망 사례가 나오기 전 문제가 된 일부 백신의 백색 이물질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근 며칠 동안 발표되는 조사 결과들은 예외 없이 독감 백신과 사망에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10월 28일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350여 건

 

평일임에도 관련 기사가 350여 건까지 줄었다. 내게는 이 숫자가 언론들이 크게 한탕 해먹고 떠나간 뒷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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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누가 공포를 키웠는가.

 

10월 29일

- 네이버 뉴스 검색 ‘독감백신’관련 보도 270여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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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다수의 언론은 관심을 끊었다. 질병관리청이 꾸준히 추적 관리해오다 인과성이 낮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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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독감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10월 30일. 관련 기사 130여 건. 독감백신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였지만 더 이상 지난주와 같은 불안감을 없었다. 그중에는 이번 독감 사태를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TV프로그램이 다룬다는 기사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여기까지, 10월 19일부터 30일까지 12일간 독감백신을 다룬 언론 보도의 기록이다.

 

12일 동안의 보도를 통해 드러난 언론의 민낯

 

12일간 쏟아진 기사가 만 건이 넘었다. 대략 8시간이 넘게 그 기사들의 제목을 대강이라도 빼놓지 않고 훑었다. 몇몇 기사는 내용도 살폈다. 일일이 다 보여주지 못해 일부 기사의 제목만 캡쳐했지만 비슷한 기사가 실제로는 몇 십 배씩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끝까지 지켜본 독감백신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한국 언론의 문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 거의 모든 보도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이었다. 있는 사실과 발언을 그대로 옮긴 기사가 대부분이었다는 말이다. 보건 당국과 기관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의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고 사태에 대한 유력 인사의 메시지를 따옴표 치는 식의 기사 말고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태 중반 이후 보건 당국의 대응을 비판하는 기사를 쓸 땐 객관적인 근거조차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언론이 먼저 나서서 통계적 오류를 의심하거나 과거의 통계를 살피려 하지 않는가.

 

둘, 공익보다는 클릭을 목적으로 한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분별한 보도 경쟁으로 실시간 사망자를 카운팅 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놓으며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앞장섰다. 자극적인 기사 제목 뽑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는 불안해하는 대중을 소재로 기사를 쓴다. 마치 대중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즐기기라도 하듯 말이다.

 

분석과 통찰보다는 불안과 공포가 더 쉽게 클릭을 유도한다. 어떤 기사 제목을 보면 유튜브 썸네일도 이렇게 뽑지는 않을 것 같다. 언론이 클릭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돈을 벌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건 공익이었다. 왜 그토록 방역 전문가들이 백신 접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지, 보건 당국이 제발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는지 언론 또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을철 독감 백신은 타이밍을 놓치면 소용이 없다. 백신을 늦게 접종하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시간이 되기도 전에 독감이 유행해버리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자에 독감 발병자가 더해지면 방역 시스템에 걸리는 부하는 곱절이 된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은 공익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셋, 지면 제한 없는 온라인 시대의 비극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사실 언론 보도는 보건당국과 전문가의 의견을 외면하지 않았다. 빼놓지 않고 기사에 실었다. 다만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더 많은 양의 다른 기사를 함께 쏟아냈을 뿐이다. 같은 언론사의 같은 날 업로드된 보도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한쪽은 무책임하게 불안을 조장하고 다른 한쪽은 전문가 의견을 따옴표 친 기사로 불안의 증폭을 우려한다. 사안에 대한 언론사 내부의 정리나 고민 따위는 오간데 없고 되는대로 마구잡이로 기사를 배설해내고 있는 모양새다. 지면 제한도 없는데 기사 한 건이라도 더 올려야 클릭 하나라도 더 받을 것 아닌가. 독감 백신을 접종하고 사람이 죽는 것도 기삿거리,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기삿거리, 전문가 의견과 보건 당국의 발표도 기삿거리, 유명 인사들이 거드는 한 마디도 기삿거리다.

 

넷, 코로나에 이어 이번 사태마저 정파적으로 이용한 언론사들이 있었다. 이들에겐 불안과 공포의 조장 또한 정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였다. 독감 백신과 사망 사이에 인과성이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도 어찌 됐건 이 모든 사태는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운 정부의 잘못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백신 상온 노출과 이물질 발견과 같은 사례에서 보건 당국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지적하려면 적어도 사망 사례 이후의 보도 행태가 이렇게까지 망가져서는 안됐다.

 

다섯, 그럼에도 역시나 언론은 반성하지 않았다. 극소수의 언론사가 이번 사태의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지만 정작 비판의 당사자가 되는 다수의 언론은 슬며시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수많은 기사를 질리도록 퍼나르고 받아쓰고 부풀린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는 걸 까맣게 잊은듯하다.

 

그렇게 한차례 거대한 물결이 휩쓸고 갔다. 언론이 기사로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의 파도 위에서 언론은 실컷 기사를 뱉어내며 서핑을 즐겼다. 파도가 지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은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다음 파도는 무엇이 될까 기다리는 양.

 

2020년, 코로나19와 독감 백신 사태에서 언론은 위기 극복의 조력자였는가 방해자였는가.

 

공익을 포기한 언론은 그렇게 공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