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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다른 나라와 보건의료분야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에는 이상한 기구가 하나 있다는 것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일명 ‘건정심’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에서 의사들이 투쟁하여 얻은 최대 이권이 이 ‘건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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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국민건강보험법 제4조’에 의거하여, 건정심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최고심의의결기구이다. 자문기구가 아닌 실질적으로 건강보험정책에 관한 심의와 결정을 하는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는 기구이다.

 

이 엄청난 기구, 건정심은 2002년 1월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설립되었다. 건정심이 설립된 배경은 이렇다.

 

 

건정심의 설립 배경

 

의약분업 국면에서 의사들의 진료거부 사태를 거치며,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수가 인상을 약속했고, 전편에서 말했듯이 2000년 한 해에만 5차례나 의료수가 인상이 될 정도였다. 1999년, 2000년에만 각각 12.8%, 21.7%의 수가가 인상되었다. 2001년에도 7.08%의 수가 인상이 이어졌다. 

 

수가가 과도하게 인상된 것에 더해 수익을 더 올리기 위한 의사들의 과잉진료까지 팽배(당시 의료행위량 폭증)하며 결국, 건강보험재정은 2001년에 파탄을 맞이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들은 2001년에만 보험료 인상률 20%를 맞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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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이 난 건강보험재정을 복구하는 것이 시급했고, 과도하게 높은 의료수가를 조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료수가를 인하한다면, 의약분업 사태에서처럼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인질극을 또 벌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합의를 하면 되지 않았을까? 의사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많은 수를 고민하다 정부는 현재 많은 전문가들에게 비판받게 되는 조치를 취한다. 

 

국고지원을 최대한 줄이고, 재정지원을 공급자와 가입자(국민)에게 미뤄 책임을 회피하면서 건강보험재정을 복구하기 위한 기구를 고안해 신설한다. 건강보험재정을 복구하고 운영하며 정부로서 짊어져야 할 부담에서 최대한 벗어나려는 조치였다. 

 

건강보험 정책에 있어, 세계적 기준의 상식은 보험료는 정부와 가입자(국민)가 논의하여 정하고, 의료수가는 정부와 공급자가 논의하여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공익 대표지만 사실상 정부가 지정, 정부 입장반영)를 한데 묶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보험료와 수가 등의 건강보험 정책 사안을 논의·결정하게 했다. 이런 기구는 해외 사례를 찾아봐도 이례적인 경우이다.

 

가입자와 공급자가 같은 기구 내에서 논의를 하면, 원하는 바가 다르니 결론이 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다. 결정의 방향은 최대한 국고지원은 안 하며 보험료 인상률을 올리는 등으로 재정을 충당하는 방향이다. 표면적으로는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 다 같이 논의해서 내놓은 결정으로 비춰지게 하는 것이다. 왜냐, 다 같이 모여 정한 것이니까.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공급자(의사에게 특히 더)에게 예전보다 많은 이권을 보장해주기로 했고, 공급자들은 이에 동참했다. 더 많은 이권을 보장해주며, 수가 조정도 이뤄졌다. 그렇게 하여 그다음 해인, 2002년, 의료수가는 2.9% 인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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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로 신설된 건강보험 관련 기구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다. 건정심이 신설되기 전에는 당시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있던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가 그 역할을 했다. 결정 권한은 갖고 있지 않았고, 자문기구였다.

 

 

건정심의 권한

 

건정심이 설립되기 전과 후의 건강보험 관련 정책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간단하게 비교해보면 이렇다.

 

건정심 설립 전

 

-건강보험재정 수입관리: 국민건강보험공단 내의 재정운영위원회가 결정하고, 장관이 승인. 

-건강보험재정 지출관리: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건정심의 전신)가 자문하고, 장관이 결정.

 

최종적으로 장관이 승인, 결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재정운영위원회와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가 관리. 

 

건정심 설립 후

 

-건강보험재정 수입, 지출관리: 건정심이 심의·의결하고, 장관이 고시.

 

수입, 지출, 지출의 기준 등 대부분의 건강보험 관련 정책, 결정사항 논의, 최종적 결정을 건정심이 함. 자문기구가 아닌 심의의결기구. 

 

건정심에서 실제로 결정적 권한은 정부가 갖고 있지만, 국민을 대리해 건강보험을 직접 관리하는 보험자(국민건강보험공단)의 권한은 이전보다 제한되고, 의약계(공급자)의 권한은 대폭 증가했다. 

 

 

건정심의 구성은 이상하다

 

정부는 건정심 내의 각 가입자 대표를 맡을 단체나 공익 대표들을 입맛대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정책을 독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여기까지 기사를 읽다 보면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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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가 무턱대고 의료수가를 너무 올려주는 과오를 범했고, 그 외 다른 이유들도 겹치고 겹쳐 결국, 2001년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구를 설립했다. 그 전 기구와 비교해 의사들의 권한이 늘어나긴 했다지만, 사실상 독점적인 권한도 정부가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의사들이 얻은 최대 이권인가? 편향적으로 무조건 의사들을 비판하려고만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의약분업 사태 전과 비교해, 의사들이 얻은 이권은 확실히 있다. 아마 어느 정도의 이권인지 감이 잘 안 잡힐 것이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감이 잘 안 잡힐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 그 이권에 대해 알아보자.

 

위에 정리되어 있듯이, 이원화되어 있던 건강보험 관련 정책기구의 기능이 건정심으로 통일되며, 대부분의 건강보험 정책을 다루는 단일기관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건정심 설립 전 건강보험재정 수입을 담당하던 재정운영위원회는 그대로 남아있으나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중요 권한은 건정심에 넘어간 상태로 있고, 지출을 담당하던 자문기구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는 건정심으로 격상되며 권한이 대폭 확대되었다. 그래서 결국 건정심이 대부분의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구성은 이렇게 바뀌었다.

 

보험자·가입자·사용자 대표 8명, 공급자 대표 6명, 공익 대표 6명 / 총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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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대표 8명, 공급자 대표 8명, 공익 대표 8명, 위원장 보건복지부 차관 / 총 2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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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정심의 현재 구성 / 공익대표는 정부가 대표 지정. 사실상 정부 입장 반영. 이 구성은 정부의 지정에 의해 구성원이 바뀔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한국YWCA연합회 대신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전체 가입자를 대표하고, 건강보험의 실질적 업무를 맡는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몫은 8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공급자의 몫은 6명에서 8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공급자 단체 중 의사(의협)만 몫이 2명이 되었다.

 

(병원협회도 대표가 의사이긴 하나 의협과는 추구하는 바가 달라, 서로 다른 의견을 낼 때가 꽤 있다. 그래서 건정심 구성원 중 의사는 3명이지만, 의사 대표로는 2명으로 표현한다)

 

 

당신이 알아야 할 건정심의 문제점

 

기사 처음에 건정심을 이상한 기구라고 표현했는데,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든)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정부)가 한데 모여 건강보험 정책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논의하는 과정에서 실제 가입자의 의견은 잘 반영되지 않는다. 가입자 대표들은 정부가 지정한 단체의 대표들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입자(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 실제 가입자들이 원하는 바를 대표할 수 있도록 구성이 짜여지지 않는다. 

 

양대 노총은 규모가 커서 각 1명씩, 정부가 구성원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정부는 노총 전체를 대변하는 총연맹 대표가 아닌 그 산하의 산별노조 대표를 구성원으로 지정하면서 쉽게 컨트롤하려 했다. 산하 노조는 아무래도 총연맹보다는 다루기 쉬울 것이니까.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인데, 양대 노총 몫으로 참여할 노총 산하 산별노조를 의료공급자노조로 지정했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건정심 논의에서 병원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주장했다고 한다. 정말 필요한 일일 수 있고, 이런 주장을 할 수 있긴 하나 가입자 대표로 와서 할 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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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공급자들은 자신들이 정말 원하는 것을 논의 과정에서 피력할 수 있다. 자신들의 수가뿐 아니라 원래 국민과 정부가 논의해야 하는 보험료 인상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세우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급자 중에 의사들의 주장이 가장 많이 반영된다.     

 

현재 보험재정의 80% 이상을 부담하는 가입자(국민)는 건정심 구성인원에서도 제대로 몫(인원)을 받지 못하고, 의견피력도 제대로 못 하며, 징수대상자로서만 위치하고 있다. 

 

국민들은 건강보험 정책의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방법이 없고, 방청도 할 수 없으며, 어떠한 논의로 그와 같은 결정이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공개도 제공되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 역시 이와 같은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논의되어 결정되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비용만 부담하게 되는 구조이다. 

 

가입자인 국민은 이런 상황인 반면, 의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논의 과정에 참여하여, 건강보험 정책 전반적으로 주요 사안들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피력할 수 있다. 독점적인 권한은 정부가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어떤 주장을 한다면, 정부는 결코 이를 무시할 수 없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반대되는 가입자와 공급자 중 공급자의 주장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공급자 중 의사들의 목소리가 제일 많이 반영된다. 이것이 엄청난 이권이다. 

 

(많은 의사들이 보건의료 질 개선을 위해 보험료 인상을 외친다. 정말 보건의료 질의 개선을 위해 보험료가 인상되어야만 한다면, 기꺼이 동의할 국민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공급자들이 보험료가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말 보건의료 질의 개선을 위해서일까. 이렇게 해서 인상된 보험료에 국민들의 의견은 얼마나 반영이 되어있을까)   

 

건정심이 신설된 근거인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은 한시법이기 때문에 2006년 말에 만료·폐지가 되면서 건정심의 과도한 권한이 줄어들고, 여러 문제점들이 조정되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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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별법에 규정되었던 건정심 관련 조항이 국민건강보험법에 그대로 옮겨지게 되며, 보험료율 결정권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회에 다시 돌아오지 않고, 건정심에 오늘날까지 계속 존속되고 있다. 그래서 보험료 같은 가입자의 의무에 공급자가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아직까지 이어진 것이다.     

 

 

건정심의 개혁 방향과 개혁의 어려움 

 

여러 가지로 현재의 건정심은 문제가 많다. 이를 해결하고 건강보험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정부, 보험자, 국회 역할 중심으로 의사결정의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가입자(국민)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건정심에 대해선, 건강보험 주요사안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없애고, 장단기 발전 계획 등 제도 운영의 방향성 제시를 위한 사회적 협의체로서 기능을 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건정심의 개혁은 쉽지 않다. 매우 어렵다. 본 기자와 인터뷰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로 그 어려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건정심 개혁은 정말 중요한 문제에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너무 관심이 없어요. 저희가 법안도 냈지만, 의협이나 병협 같은 공급자 측에서 원체 정치자금도 많이 대고 하다 보니 국회의원들도 이 부분의 개혁에 적극적이지가 않고요. 저희가 법안 발의 도장 받는 데 2년 걸렸어요. 2년이요. 도장 하나 받는데... 그렇게 겨우 발의했는데도 결국, 법안 상정도 못 시키고 법안에 대해 논의도 못 했어요. 반발이 너무 심해서" 

 

의협, 병협 같은 공급자 측에서 건정심을 개혁하는 것에 반발하는 건 왜일까. 어디든 이권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은 개혁을 바라지 않는다. 

 

건정심 개혁에 대한 부분도 할 얘기는 많으나, <의사파업 이야기>시리즈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아니다. 이 정도로 큰 범주만 살짝 집는 정도로만 다루겠다.

 

 

의사들 논리의 모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 내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들. 다른 국가의 의사들에 비해 엄청난 이권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의약분업 당시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부터 역대 정부들의 ‘과’는 분명히 있다. 의사들만이 악이고 잘못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얼마 전의 진료거부 사태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의사들의 수구강경우파적 마인드를 키워낸 뿌리이며, 의약분업 사태를 거치며 생산되고 확대된 그들의 논리, 즉, 정부에게 당하기만 했고 본인들은 빼앗기기만 하며 피해만 봤다는 그 피해자 코스프레 논리가 모순투성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얼마 전 진료거부 사태에서 끝까지 협상 내용의 명문화를 요구하는 이유로 여태까지 자신들은 당하기만 해서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논리가 있지 않았나. 그리고 그들은 정부에게 당하기만 했다는 그 첫 출발을 의약분업 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기사를 마치며, 혹시나 오독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의사파업 이야기>시리즈에서는 모든 의사들을 뭉뚱그려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의사 단체들, 그 단체들과 뜻을 같이하는 의사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의사 중에서도 양심적이고, 기사에서 비판하는 의사들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대외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캐나다 의사들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 그리고 간호사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의사들 월급만 올리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임금인상에 대외적으로 반발한다든지, 독일 의사들처럼 “국가의 의료개선을 위해 의사 증원을 하고, 공공의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에 요구를 하는 류의 행동을 국민들은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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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나 보건의료단체연합 같은 단체에 소속된 정말 소수의 의사들 같은 예외는 있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다. 이들이 의사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의사들을 비판하는 것이니 “모든 의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안 그런 의사들도 있다. 너무 편협한 기사다.”류의 오독은 피해 주길 바란다.

 

다음 편부터는 드디어, 1편 끝에서 말했던 의사들의 절대 면허는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왜 의사들은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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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