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나나 추천0 비추천0

2010.02.22.월요일


나나


 


영하 15도, 발목이 빠지도록 눈이 내린 베를린에서 독하게 감기몸살에 걸린 나에게, 카타리나 비트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걸 마셔야 한다며, 생강차를 한잔 더 주문했다. 20여년 전, 빙판 위에 카르멘이 되어 세계를 매혹시켰던 그녀는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때로는 과거의 추억에 젖은 듯 느릿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카타리나 비트. 84년은 당신의 첫번째 올림픽이었죠. 당신의 첫 올림픽은 어땠나요?



나는 로잘린 섬너스와 경쟁을 했죠. 당연히 러시아 선수들도 있었고요. 그땐 정말 소녀였어요. 금메달을 따고 기쁘긴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똑같이 지냈어요. 다시 연습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일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82년도에 처음 월드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 프리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와! 정말 이렇게 늦게 스케이팅을 하는 구나, 싶어서 신기해했던 기억도 있고요.


 



동독에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 유치원이 스케이트장과 가까웠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내가 살던 도시 칼 막스에선, 유치원 바로 근처에 아이스링크장이 있었어요. 그리고 우린 점심시간마다 그곳에 가서 스케이팅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난 다섯살이었지만 순간 반해버렸어요. 본능적으로 알았죠. 그것이 아름답다는 걸. 그래서 나는 6개월동안이나 엄마한테 애원했어요. 제발 나도 스케이팅을 시켜달라고요. 음, 근데 당시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일하고 있었거든요. 직업이 있는 생활인이셨어요.  부모님은 나를 링크장에 데려다 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6개월 동안이나 제발 시켜달라고 나도 저걸 하고 싶다고 졸랐어요. 나는 고집이 좀 센 아이였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의 순수함, 순진무구함은 가끔 참 끈덕지고 무자비할정도죠.


 


나는 끝없이 애원했죠. 당신도 어릴 적에 뭔가를 자발적으로 부모를 졸라 시작해봤을 테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거에요. 그 열망이 그만큼 컸어요. 드디어 6개월 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링크장에 데려다주었고 나는 그렇게 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5살하고도 절반이었네요. 그렇게 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내가 좋아해서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가 되었죠.


 


발레 동작을 결합한듯한 우아한 움직임이 참 특별합니다. 발레레슨을 따로 받았나요?



물론 발레도 꽤 오래 했어요. 피겨스케이팅을 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특별한 훈련들이 필요해요. 지상에서의 근력운동, 균형을 잡기 위한 덤블링을 이용한 훈련, 지금으로 말하자면 필라테스처럼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라인을 잡아주는 훈련, 유연성과 표현력을 위한 훈련등등 그 중 물론 발레도 속해요. 한 8년 이상 배웠어요. 포지션을 잡는 법, 시선과 손을 쓰는 법 등등 우아하게 움직이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요.


 



 


그러고 보면 동독에서의 스포츠 교육은 참 체계적이었어요. 지금이야 모든 사람들에게 요가든 필라테스든, 신청만 하고 강좌를 찾아 강습소에만 가면 그만이잖아요. 하지만 그때에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운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체계적인 접근이 이뤄지진 않았죠. 하지만 우리는 프로선수로서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어요. 링크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하는 훈련이 주가 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요.


 


스포츠 프로파간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혜택을 누리고 자란 사람으로서 나는, 동독의 피겨 스케이팅 환경이 참 체계적이고 종합적이었다고 봐요. 동독은 나름 풍성한 피겨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여자 싱글에서도 그렇고, 아이스 댄스에서도요. 피겨 스케이팅은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종목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은 종목이 없겠지만 피겨는 유독 더욱 그렇죠. 점프만 하고 활주를 빨리하는 걸 재는 기록경기가 아니잖아요? 음악이 있고, 의상이 있고, 선수들이 전하려고 하는 바가 있고 관중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고..


 


 


어떤 선수는 자신이 빙상위의 배우와도 같단 말을 하더군요.



맞아요. 누구에요? 누가 그렇게 정확한 표현을 썼지?
아무튼 나는 코치도 정말 좋았고, 독일은 피겨스케이팅에 전통이 있어요. 아이스댄스도 그렇고 여자 싱글도요.
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기술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나를 도와줬어요.


 


 


정서적이라면 어떤...?



겨우 열 여섯살의 어린 소녀가 한 여름에 스케이트화며 장비들을 챙겨들고 아이스링크장에 가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어요? 친구들은 다 수영복을 입고 휴가를 가는데! 게다가 몸은 변하고 있고 소녀에서 여인이 되는 입구에 있죠. 남들과는 좀 다르게, 평범하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이기도 해요.


 


 


그런 평범한 삶이 부러웠던 적도 있나요?



지금 돌이켜보면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시엔 다 그만두고 남들처럼 살고 싶단 마음이 종종 밀려오기도 했죠. 매일 연습을 하지만, 늘 연습이 잘 되는게 아니에요. 연습을 한만큼 늘 실력이 좋아지는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계속 연습은 하는데, 향상되는 느낌이 없이 제자리에서 머물고 있단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 늪에 빠진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어요.


 


하지만 난 평범한 성격은 아니었어요. 언제나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죠. 남한테 지지 않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스스로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요. 물론 질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이고 싸워야겠다는 그런 파이터 정신이 타고난 성격인가봐요. 늘 무대에서의 긴장감, 컴페티션의 압력을 은근히 즐겼으니까요. 물론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죠. 그렇다고 거기서 도망가거나 할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벗겨지는 기분이라던데요.


 


맞아요. 그 중압감은 말로 다 할수가 없죠.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경기를 망치는 사람도 많아요. 연습에서는 잘하는데 실전에서는 연습에서 한 것, 준비한 것 만큼 하지 못하는 거에요. 몸을 움직이면서 끝없이 생각을 해야하니까, 물론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안무를 수행하고 음악을 느끼고 관객들의 시선을 느끼고 그 모든 과정이 절대로 기계적으로 이뤄지는게 아니에요.


 


늘 빙판위에 설때마다 순간순간이 다르고, 수분의 일초가 다르게 느껴지죠. 수만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당신에게 고정되어 있는게 어떤 기분인지..아마 모를거에요. 어지간한 오페라나 콘서트 홀보다 규모가 훨씬 크잖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흥분이 되기도 하죠. 그 짜릿한 흥분을 참 사랑했던 것 같아요.


 




나를 두고 금메달을 2번 획득한 살아있는 유일한 스케이터라고 하지만 그걸 목표로 선수생활을 지속한 건 아니었어요. 84년에 사라예보에서 금메달을 따고나서 곧장 88년까지 선수생활을 하겠다. 다시 한번 올림픽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죠. 그냥 스케이팅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 해, 한 해 선수생활을 계속해 나갔어요.


 


심지어 나는 동독으로 돌아오고 나선 내가 인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매일매일의 삶은 똑같잖아요. 그 다음해의 월드에 갔는데 팬레터며 선물이 쏟아지는거에요. 그제서야 알았죠. 내가 좀 유명해졌다는 걸요. 하지만 그때에도 다음 올림픽 출전을 결정한 건 아니었어요.


 


도쿄에서 열렸던 86년 월드에서 데비에게 금메달을 빼앗겼고, 아주 오랜만에 포디움의 꼭대기에 선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다음해 월드에서 메달을 찾아오겠단 생각과 동시에 올림픽에 다시 한번 출전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먹었어요. 아직 내가 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아까 말했듯이, 제가 지는 걸 참 싫어해요. 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에 88년 캘거리를 목표로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카르멘이 되었죠.


 


하하, 맞아요. 사람들은 카르멘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미디어가 만들어낸 단어에요. 브라이언 전쟁처럼. 그 둘은 우연히 이름이 같았고..데비와 나는 동서 진영을 대표하고 있었고, 미디어는 늘 그렇잖아요. 그들은 늘 라이벌리를 만들어내야 하죠. 그렇게 해야 흥미로워지니까요.


 


데비와 나는 스타일이 달랐으니까 우리를 묶어서 라이벌이라고 칭하는 건 저에게도 데비에게도 달갑지 않은 일이에요. 우연히 같은 카르멘을 고르게 되었는데, 설령 같은 음악과 테마를 정했다고 해도 그녀와 저의 스케이팅이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각자의 프로그램에는 각각의 가치가 있어요. 단순히 트리플을 몇 개 뛰었고, 누가 실수를 했고 넘어졌고, 이런 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가치에요. 전 저 자신만의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기를 바랐어요. 제 자신에게 집중했고요.


 



 


그런데 사실 뭐랄까. 실전에서는 늘 연습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 이렇게 해야지, 하고 준비하고 생각한대로만 하는게 아니라 그걸 조금씩 벗어나면서 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작은 실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빙판 위에서 그런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가져올 수 있었던 것들이 있어요. 그런 빈틈과 공간이 저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해주었고, 그래서 더 특별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음악이 불러오는 감정들을 한층 더 진하고 깊게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가 아닐까 싶어요. 구 채점제와 신 채점제의 차이라면요. 전 신 채점제는 경험해보지 않았는데, 그냥 구성요소들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빙판위에서 스케이터에게 허용되는 빈틈이나 개인적인 공간이 줄어들었단 생각이 드네요.


 


내가 만약 뭔가 특별한 일을 했다면, 피겨 스케이팅에 뮤지컬이나 연극적인 연출을 하는걸 시도했다는 거에요. 카르멘도 그렇고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그 중 하나에요. 그게 또 제가 잘 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요. 안 그래도 새롭게 글을 쓰면서 지난 올림픽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쭉 봤는데, 제가 트리플 악셀을 포함 트리플 점프를 7개를 뛰는 이토미도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할 수는 없는거잖아요.


 


나를  감동하게 하는 건,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온다니까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는 그 숱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나를 티비로든 실제로든 내 경기와 쇼를 보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거요.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지고 내가 받았던 그 박수와 환호성과 갈채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아요. 그 순간 캘거리의 카르멘 이후로, 그 이후에 섰던 숱한 쇼의 마지막 인사를 할때로 돌아가는 것 같거든요. 음, 무대에 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분일거에요. 나는 무대를 사랑했어요. 사람들이 나로부터 감동을 받고 또, 나를 기억하는 것, 그건 정말 근사한 일이잖아요.


 


올림픽 금메달? 그건 사실 별로 대단한게 아니에요. 그래요, 내가 사라예보에서, 캘거리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고 금메달을 받았죠. 그 좋은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아요. 그래, 이제 금메달을 땄지. 오히려 그 이후엔 허탈해지기 시작하죠. 좋은일이 있으나 나쁜 일이 있으나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 시간과 함께 우리는 조금씩 무뎌지니까요.


 


대신 당신의 학교 선생님들처럼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한국처럼 대륙의 저 쪽 끝에 있는 먼 곳에서도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그게 얼마나 우주적인 건가요. 나를 감동시키는 건 그런 거에요. 이런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나를 만나는 일이 내가 무뎌지고 무덤덤해지는 것으로부터 나를 막아줘요.


 


당신은 참 좋을 때에 왔어요. 날씨는 나쁘지만요. 왜냐면, 사이트를 새로 정리하면서 새해를 맞아 올림픽에서의 기억들, 아이스 쇼와 투어의 기억들에 대해 정리했거든요. 내가 며칠전에 정리하듯 써내려간 뒤에 모든 기억이 더 정돈되었어요. 그리고는 당신을 만났네요. 그렇게 정리해둔 채, 당신에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에요. 아, 이 기분도 너무 묘한걸요?  


 


연아가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린 건 브라이언 오서를 선택한거에요. 그는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죠. 카르멘 온 아이스를 통해 그와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에요. 누구를 만나 아주 짧게 이야기하더라도 브라이언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에요. 그만큼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에요. 인격적으로나 스포츠인으로서, 선수로서도. 그런 사람에게서 받는 기운이라는 게 있잖아요. 브라이언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들, 트레이시와 데이빗을 위시한 캐나다의 사람들. 토론토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녀가 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았어요.


 



 


나도 유튜브에서 연아를 찾아봤거든요. 월드 챔피언십을 보고는 그녀가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의 영상에선 그녀도 사람이더라고요. 실수를 하기도 하는 구나. 했어요. 또 누가 있었지. 연아 말고도 몇 명 더 찾아보긴 했는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무튼 그녀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숱한 광고들 속에서 움직이는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던데요! 우유도 있고, 립스틱, 휴대폰, 요구르트, 스포츠 광고도 있고..대단한 슈퍼스타던걸요.


 


지금의 본드 걸을 보면 제가 카르멘을 할때보다도 더 어린 소녀같고, 이제 열아홉이죠? 그러니까 아직은 더 소녀라는 느낌이 강해요. 하지만 이제 여인으로서 피어나려는 듯한 시점에 있더군요. 나의 카르멘이 만개한 장미꽃이었다면 아직 연아는 봉오리 진 꽃인 것 같아요. 그 풋풋하고도 묘하게 매력적인 지점에 있는 연아를 보면서 참 매력적이란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녀의 스케이팅은 순도가 높아요. 물론 연아의 스케이팅을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유튜브로만 봐도 느껴져요.


 



왼쪽이 브라이언 오서



스케이팅에도 격이 있고 질이 있어요. 연아의 스케이팅이 특별한건 순수함 때문에,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진짜배기라는 느낌 때문이에요. 음악적이고, 때로는 드라마를 전달하는 힘이 강해서 보는 사람을 뒤흔들어 놓죠. 무엇보다 모든 기술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확해요. 그렇게 점프를 뛰는 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에요.


 


 


가르치는 코치를 놀라게 할만큼 고난도의 점프를 더 쉽게 배웠다고 알고 있어요. 트리플 5종 점프 완성을 아주 일찍 했으니 타고난 재능도 놀랍고요.


 


그래요. 재능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기술 하나 하나를 해내려면 참 많은 연습을 해야해요. 몸에 기술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나와 스케이팅이 하나가 되는 수준이어야 하거든요.


 


 


내가 스케이팅을 하는게 아니라 스케이팅이 나를 지나간다는 뜻인가요?


 


맞아요. 다른 예술가들도 그런 표현을 하는데 내가 스케이팅 그 자체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 경지는 참 경이로운 수준이에요. 연습에서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실전에 가지고 올 수는 없거든요. 예를 들어서 제가 갑자기 어느날 한번도 성공한 적 없는 트리플 럿츠를 경기중에 시도한다고 해봐요.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죠.


 


연아는 기술적으로도 흠잡을 데가 없기 때문에,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스케이터들은 자기자신을 훈련과 연습에 온전히 바치고 헌신해야 해요. 심지어 프로로 전향해도 그렇죠. 2008년의 고별 공연을 마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건 더 이상 링크장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거였어요. 어딜 가더라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링크장이 어디있지? 하면서 연습할 곳을 찾는 일이었어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호로비츠는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전세계를 돌아 다녔는걸요.



링크장이 그렇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나을거에요. (웃음)스케이터들은 링크장을 중심으로 살게 되거든요. 스케이터들은 온 아이스 훈련이 가장 중요해요. 그 감각이라는게 며칠만 쉬어도 둔해지는 거라서요.


 


당신도 알겠지만, 무언가를 그냥 잘한다는 것과 선수가 된다는 것은 다른 경지이죠. 그 선수중에서도 세계10위권에 드는 정도로 잘하는 것과 포디움에 드는 것, 세계 최고가 된다는 건 또 다른 경지에요. 모두가 그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죠.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고, 환경도 중요하고, 그렇지만 그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요구되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거에요.


 


 


그러니까 대부분의 스케이터들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그만한 노력과 삶의 대부분을 희생한, 자발적이지만, 사람들이군요.



나는 희생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피겨가 나에게 준 것이 더 많으니까요. 내가 다섯살때 유치원에서 본 게 다른 운동이었다면 내가 그렇게 부모님을 졸랐을까, 그건 모르겠어요. 다른 건 몰라도 수영이나 축구였더라면 6개월동안 그렇게 간절하게 시켜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에요.


 


스케이팅을 다시 태어나도 할거냐고요? 그럼요. 당연하죠. 이 운동이 저에게 가져다 준것들을 생각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요. 남자든 여자든, 몸 성한 사람으로만 태어나는 행운이 다시 주어진다면 스케이팅을 할거에요.


 


 


아까부터 느꼈지만, 운이 좋다는 말을 참 자주 하네요. 전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당신이 이룬 것들이,  다만 당신이 운이 좋아서, 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당신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군요.


 


내가 특별히 장애 아동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요. 남들이 뭐라든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스케이터로서 두번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전 세계를 돌면서 공연을 펼칠 수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그냥 스케이팅 자체를 시작 할 수 있었던 것, 그 어린 나이에 직접 피겨를 보러갈 수 있었던 것도, 어렵지 않게 강좌를 수강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코치와 팀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요.


 


제가 지금 서 있는 데에는 저 혼자만 있는게 아니니까요. 한번도 저에게 스케이팅을 강요하지 않은 부모님까지, 나는 정말 행운아에요. 금메달을 두번 땄기 때문이 아니에요. 피겨는 저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주었죠.


 


부모님은 단 한번도 저에게 가서 연습해, 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분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하고 기쁜가, 이게 먼저니까요. 부모님은 항상 오히려 언제라도 네가 힘들고 지루하다면 관두라고 하셨어요. 집에서는 연습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은 생각외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집에 와서까지 오늘 연습이 어땠고, 점프가 좋았고 나빴고, 몇 번 넘어졌고…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잖아요.


 


그리고 연습이라는게 언제나 문제 없이 늘 잘되고 향상되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에요. 때론 늪에 빠진 것처럼 아무거도 나아지는 게 없이 오히려 나빠지고 있단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그럴 때엔 정말로 나 자신을 잘 추스려야 할 필요가 있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네가 무얼 하더라도 너를 응원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부모님이 있었으므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가장 기본인 행운은 남들 보다 건강한 것, 운동신경이 좋은 것, 그래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신체적으로 좀 불편한 아이들을 보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요. 내가 스케이팅을 하면서 누렸던 것들을 누릴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있는 상태인 아이들인데.


 


내가 했던 일중에 가장 잘했던 일은 고향에 장애아동들을 위한 실내놀이시설을 만든 거에요. 시설이 완공되고 아이들을 초청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해요. 그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어떤 기분인지, 얼마나 저를 충만하고 기쁘게 했는지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군요.


 


내가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인격의 소유자라서 이런 사업을 하는건 아니에요. 규모면에서도 그렇고, 아주 대단한 건 아니에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몰래 다른 이들을 돕고 있나요? 연아만 해도 그래요. 연아의 후원과 기부에 대한 이야기는 당신이 보내준 기사 중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부분이었죠.


 


 


이번 올림픽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나요?


 


아뇨. 난 아무 것도 예측하지 않아요. 우리는 아무 것도 내다볼 수 없어요. 단 한번도 금메달을 따겠단 생각을 하면서 빙판에 선 적이 없어요. 그냥 스케이팅을 하는 자체가 참 좋았어요. 피겨의 모든 순간을, 심지어 올림픽 무대에서 그 엄청난 중압감조차도 사랑했어요. 그 순간엔 내가 해내야 하는 것에만, 내 자신을 잊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프로그램에만 집중했죠. 그리고 결과가 좋았을 뿐이에요.


 


순간을 온전하고 충실하게 즐기는 스케이터가 아마도 후회없이 실수없는 경기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지켜볼 생각이에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고 : 이 기사는 2010년 1월에 치뤄진 인터뷰입니다. 카트리나 비트는 현재 밴쿠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