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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태극권의 고수가 격투기 선수에게 무참히 패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통무예가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전통무예 무용론(無用論)까지 등장하면서 전통무예의 이미지가 완전히 실추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필자 또한 전통 무예인 중의 한 명으로 이런 사실이 속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통무예인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계속해서 깨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중국 태극권 고수 마보국과 아마추어 현대 격투가의 경기 영상.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예 연구가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요인은 경기 규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규칙 중에서도 안면 타격의 여부가 가장 큰 원인이다. 

 

전통 무예의 경기 규칙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얼굴을 타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전통무예를 수련할 때는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하거나,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거나, 손날로 목을 때리는 등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다양한 기술을 배우지만, 실제 경기에서 안면 타격은 모두 금지되어 있다. 

 

맨손 무예로 경기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보호하는 장치, 즉 규칙(Rule)이 존재한다. 그래도 격투기 경기이다 보니 크게 상처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찌 되었든 항상 안면 공격은 반칙으로 되어있다. 

 

소중한 눈을 공격해 상대를 실명하게 만들거나, 다시는 나지 않는 소중한 치아를 부러뜨리는 것은 아주 몹쓸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전통무예의 경기 규칙은 맨손으로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기술은 반칙으로 경기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생겨난 격투 스포츠는 쉽고 빠르게 상대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안면 공격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발달 된 보호장비 때문이다. 

 

우선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헤드기어(Headgear)가 있고, 주먹 타격으로부터 안면을 보호하는 글로브(Glove)가 잘 발달 되어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치아를 보호하는 마우스피스(Mouthpiece)도 전에는 아주 두꺼운 형태로 되어있어 착용하면 숨을 쉬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요즘 것은 착용했는지도 모를 만큼 얇으면서도 더욱 치아를 잘 보호할 수 있도록 발달 되어있다. 

 

메이웨더.PNG

▲무패의 전 복싱 세계 챔피언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얇은 형태의 마우스피스를 끼고 있는 모습.

 

보호장비가 잘 되어있으니 현대의 격투가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안면 공격을 마음대로 하면서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무예인들은 이런 발달 된 장비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얼굴을 때리지 못하는 전통의 경기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안면 공격과 방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이다. 

 

전통무예 경기에서는 얼굴을 때리는 기술이 허용되지 않으니 때려 본 적이 없을 것이고 때리는 상대가 없으니 맞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무예인들은 안면 공격에 익숙하지 않고 안면 공격의 방어에도 서툴 수밖에 없다. 격투기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안면을 한 번만 강타를 당하면 전통무예인들은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다가 계속해서 두들겨 맞고 마는 것이다. 

 

필자가 제자들에게 자주 일러주는 것 중에 “때려 본 사람이 때릴 줄 알고 맞아 본 사람이 맞을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전통무예인들은 안면 공격 기술을 배우기는 했으나, 실제에서는 사용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안면 타격을 배웠어도 실제 경기에서 사용하기가 어렵다. 

 

안면타격.jpg

▲안면 공격은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 공격하기에도 쉽지 않고, 안면에 타격을 받는 것은 충분한 경험이 없으면 한 대 맞는 순간 정신을 못 차린다. 

 

권투선수라면 상대의 공격에 얼굴을 맞더라도 안면 공격에 대한 경험이 많으니, 당황하지 않고 바로 더킹(Ducking)과 위빙(Weaving)으로 몸을 숙이며 상대의 주먹을 피하면서 바로 반격할 준비를 취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차이이고 이 경험의 차이는 경기 규칙에서 오는 것이다. 

 

택견도 전통무예이다 보니 당연히 손으로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것은 반칙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주먹으로 안면 공격을 못하는 태권도에도 수련할 때는 정권으로 얼굴을 때리는 기술이 있듯이, 택견의 수련 과정에도 얼굴을 공격하는 여러 가지 기술이 존재한다.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택견의 손기술 중에 ‘낙함’이라는 기술이 있다. 떨어질 낙(落) 아래턱 합(頜)이라는 두 글자로 조성된 것으로 원래는 ‘낙합’인데, 음이 발음하기 쉽게 전성되어 낙함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글자 뜻 그대로 손날로 위에서 아래로 턱을 내리쳐 상대의 턱을 떨어뜨리는 기술이다. 

 

▲택견의 손기술 中 1개 ‘낙함’

 

필자가 제자들에게 낙함을 가르치는데 하루는 어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낙함으로 때리면 정말 상대의 턱이 떨어지나요?”

 

필자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누구 턱을 떨어뜨려 봤어야 알지?! 스승님께 배운 대로 가르치는 거야. 그냥 열심히 수련해, 너도 누구 턱을 떨어뜨릴 일은 없을 거야!”

 

선생의 입장에서 참으로 무책임한 대답이긴 하지만 솔직히 경험이 없으니 필자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필자만 아니라 어느 전통무예인도 상대의 눈을 찔러 상대를 실명하게 만들거나 상대의 치아를 몽땅 부러뜨리는 기술을 사용해 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자세히 말하겠지만, 맨손 무예는 기본적으로 경기 무예이고 경기 무예는 그 경기의 규칙에 의해 기술들이 지배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태극권이나 영춘권 등도 열심히 대련을 하지만 상대의 몸통을 밀어내거나 팔을 못 쓰도록 제압을 할 뿐 절대로 상대의 안면을 공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올림픽까지 진출하여 이제는 세계적인 무도 스포츠가 된 태권도도 예외는 아니다. 헤드기어와 몸통 보호대, 그리고 샅보호대(낭심보호대)까지 착용하여 가장 현대적인 격투 스포츠가 되었지만, 주먹으로 안면을 타격하는 것은 여전히 반칙으로 되어있다. 

 

태권도 경기에서 선수들은 화려한 발차기로 방방 나르다가도 상대와 붙으면 그냥 서 있어야 한다. 만일 격투기 선수라면 거리가 붙는 즉시 바로 주먹, 팔꿈치로 상대의 안면을 강타하거나, 아니면 두 팔로 상대의 다리를 잡아 테이크다운(태클 따위의 기술을 걸어 상대편의 중심을 무너뜨려 쓰러뜨리는 기술)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테이크다운.PNG

▲테이크다운

 

그러나 태권도에서는 그런 것들은 모두 반칙이어서 그런 기술들을 연습할 필요도 없고 그런 기술들에 대한 대비도 없으니, 격투기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태권도 선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냥 서 있는 모양이 되고 만다. 

 

그러나 만약 격투기 선수들이 태권도 경기에 참가한다면 과연 예선이나 통과할 수 있을까? 경기규칙에서 오는 차이점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무예인들이 격투기 선수들에게 당하는 것은 경기 규칙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가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전통무예인들이 현대 격투기 선수들과 붙어보려면 우선 자신들 무예의 경기 규칙부터 바꿔서 수련하고 충분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격투기 선수와 현대의 격투기 규칙으로 붙으면 결국 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전통무예인들이 실전성을 위해 현대 격투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연습할 수도 있겠으나, 글로브를 착용하고 마우스피스를 낀 상태에서 행해지는 전통무예 경기가 과연 온전히 그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전통무예인들의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