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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월요일


필리온


 


 




 


1. Good to review



내가 게임을 리뷰하는 데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좋든 나쁘든 특징이 분명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바꿔 말하자면, 모난 데 없이 두루뭉술한 게임은 뭐라고 평하기가 참 뭣하다. 그 예로 현재 서비스 중인 A모 게임을 들 수 있겠다. 이건 그 게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이 생겨먹은 게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그대로인데, 굳이 뭐라고 말할 껀덕지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놈만큼 리뷰하기 좋은 게임도 없을 것이다.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게임이란 단순히 그 단어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 광고하는 것, 서비스하는 것,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을 서포트하는 것, 게임을 업데이트하고 유지보수하는 것... 등등 수많은 작업들이 어우러진 거대 산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게임은 정말 입이 근질거릴 만큼 뚜렷한 특질들을 보여준다. 게임에 대단히 재미있게 몰입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가 하면, 뭐라 할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정말 이토록 리뷰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인 이 녀석의 이름은, 바로 넥슨이 열심히 밀어주고 있는 신작,



마비노기 영웅전이다. (앞으로 [마영전]으로 통칭.)


 


 


2. Inside game



우선 다른 것은 접어놓고 마영전의 게임성만을 한번 따져보자. 게임의 본질인, 어느 정도로 재미있게 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거기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재미있다. 그리고 새롭다.


 



 


와우 말고는 시시해서 다른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그 와우저가 이 마영전에 빠져드는 모습을 내 주위에서만 셋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악재에도 굴하지 않은 동접 5만.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잠시 후에 설명하겠지만 이 게임의 특성상, 그리고 그 저질 서비스를 감안하면 동접 5만을 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 원동력이 뭐겠는가? 바로 게임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이제 왜 재미있는가를 설명해야 할 타이밍이다. 얘기하기에 앞서서, 싫어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다른 게임과의 비교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먼저 말해둔다.
(C9과 비교를 하지는 않는다. C9과 마영전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Non-Targeting MORPG라는 것뿐이다. 그 외의 부분에서 두 게임을 비교할 만한 요소는 없다. C9이 낫다, 마영전이 낫다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별로 비슷한 구석이 없는 게임들이라는 얘기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와우와 마영전이 다른 만큼 C9과 마영전도 다르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MORPG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에서 둘을 갖다붙이고 있지만, 솔직히 서로 비교할 껀덕지가 전혀 없다. 아, 굳이 따지자면 서버 문제는 두 게임의 또다른 공통점이 될 수 있겠다.)
마영전은 두 가지 게임으로부터 그 재미를 물려받았다. 그 둘은 바로 몬스터헌터와 마비노기다.


 


 


3. Action


몬스터헌터와의 유사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몬스터의 패턴을 파악해 치고 빠지는 전투의 액션성. 보스와 상대하는 컨트롤을 통해 느끼는 재미. 리얼리티가 극대화된 전투를 통한 몰입감의 부여. 이것은 마영전의 핵심적인 재미이며, 몬스터헌터의 핵심적인 재미이기도 하다. 마영전의 게임 자체의 본질은 몬스터헌터의 그것과 유사하다. 기본적인 게임 전투의 구성 자체가 상당히 닮아 있다. 그리고 몬스터헌터가 그렇듯, 마영전 역시 재미있다.


 



부위 파괴 역시 존재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나라 게임들은 왜 항상 베끼기만 하는가,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마영전에 대해서는 그건 너무 섣부른 결론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둠과 하프라이프의 관계처럼, 세부적인 장르 차원에서 동일하다고 해도 더욱 훌륭한 게임으로 만들어냈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임을 구성하는 패턴이 비슷하더라도, 그 패턴을 감싸고 있는 포장이 다르다면 청출어람의 가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패턴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단적인 리듬 게임과 같은 예에서도, 어뮤즈월드의 Ez2DJ 같은 케이스가 있다.



그리고 마영전은 아주 잘 만든 게임이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UI의 구성과 전체적인 그래픽의 화려함과 정교함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 물론 취향을 탈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넘어선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몬스터헌터를 훨씬 압도하는 수준이다. 특히 보스몹들의 비쥬얼적인 연출은 지금 시점에서, 세계의 그 어느 온라인 게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물론 온라인 게임만이라는 단서 하에...)
어쩌다 보니 마비노기 시리즈의 마스코트처럼 되어버린 곰탱이를 보자.


 



코볼트 무리의 평화로운 한때.


 



뭥미?


 



불쌍한 이툰크.


 



이젠 네 차례다.


 



곰이 그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나를 덮쳐오는 전투. 거기엔 틀림없이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일반적인 다른 온라인 게임들이 단지 서로 붙어서 몸을 비비는 데에만 그 화려한 그래픽이 이용된다면, 이 마영전은 곰이 펄떡 뛰고 봉산탈춤을 추는 동작의 표현을 그대로 전투에 접목시켜냈다. 피하지 못하면 죽는 거다.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은 이러한 결과물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영전의 스탭에는 전문 액션 디렉터가 존재한다. 이 디렉터는 마치 영화의 무술감독처럼 실제로 캐릭터들의 각종 모션을 시연한다. 이제는 흔한 기술이 된 모션 캡쳐를 통해 이러한 세세한 동작들을 모두 입력해 캐릭터의 움직임에 리얼리티를 더했다.


 



역동적인 모션. 여담이지만 이 게임의 고블린은 누군가와 참 닮았다.


 


맵 내의 각종 오브젝트를 사용해 전투를 펼쳐나가는 것도 신선하다. 필드 안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체를 들어올려 몬스터를 공격할 수 있고, 몬스터를 잡아 물체에 찍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색다른 방식의 전투를 목표에 추가하거나, 기력을 채워 필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의 방식으로 권장하고 있다. 자연스레 기존의 핵 & 슬래시 형태의 플레이와는 다른 게임 플레이를 유도한다.


 



이런 식으로 물체를 휘둘러 몬스터를 처리하도록 유도한다.


 


이 모든 것은 소스 엔진을 통해 훌륭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뭐 사실 한 마디로 돈지랄한 만큼의 가치를 보장한다고 해도 되겠다. 어쨌든 돈을 많이 써서 그만큼의 게임성을 이끌어냈다면, 유저로서는 반가워할 일이니까.
(마영전의 소스 엔진 사용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 부분은 차후 엔진 관련 글을 쓸 기회가 있다면 따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물론 이러한 색다른 도전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4. Story & System



이 게임의 골자bone가 몬스터헌터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살flesh은 마비노기에서 비롯되었다.



마비노기의 언급은 좀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사실 마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게임성 자체는 마비노기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C9과 비교한 것처럼, 마영전과 마비노기의 공통점 역시 '마비노기'라는 이름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러한지, 그 압도적인 액션에 가려진 다른 부분들을 찬찬히 살펴보자.
우선 마영전의 게임 뒤에 깔린 스토리가 의외로 탄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프롤로그를 스킵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일단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게임에 아직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길기만 한 프롤로그는 튜토리얼도 아니고 스토리텔링도 아닌 것이, 별로 감흥이 없고 지겨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래서 스토리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지켜보게 될 수밖에 없다.


 



뭐 프롤로그도 사람에 따라 제법 괜찮은 연출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생각은 조금씩 달라진다. 우선 스토리 자체가 '미래를 생각하고' 만들어진 스토리라는 것을 큰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는 에피소드 식으로, 그때그때 딱딱 끊어지는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 클리어하고 나면 조금 김이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영전의 스토리는 상당히 긴 호흡을 지니고 있으며,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큰 줄기를 보여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세계관 자체도 잘 짜여져 있으며, 대사와 연출 역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유저에게 다가온다.



또한 스토리에서 필수적인 요소인 NPC의 존재감도 마치 콘솔 RPG 게임에 비견될 만큼 상당한 편이다. 이러한 스토리 진행을 부드럽게 해주는 요소는,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마영전의 NPC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움직이는 NPC, 리옐.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임의 NPC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의 세상은 모든 유저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스토리 텔링이 힘든 이유도 된다.) 온라인 게임에서 세상이 변화하는 연출은 자칫하면 매우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동일한 세상을 걷고 있는 두 명의 유저에게, 한 명에게는 사막으로 보이고 한 명에게는 숲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니까.



그러나 마영전의 경우, NPC들을 다른 유저들에게 독립적인 공간인 마을 건물 안에 배치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마을 건물 안의 풍경은 공유가 되지 않으므로, NPC들의 이동은 그냥 일러스트를 옮기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다. 단순무식한 방법이지만, 의외로 효과적이다. 덕택에 다른 게임에서는 항상 안타깝게도 5미터만 가면 될 것을 유저에게 부탁하거나 누구에게 화가 나도 꼭 유저를 통해서 그 화를 전달해야만 했던 NPC들이, 직접 방문하고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싸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뭐 물론 이동도 쉽게 되건만 여전히 직접 가기 미안하다고 애꿎은 유저에게 부탁하는 NPC들도 많이 있긴 하다.) 이러한 NPC들의 자유로운 이동은 스토리텔링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놈은 '잠깐!'이라는 퀘스트로 이러한 시스템을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특히 특정 NPC가 아예 죽어버리는 연출은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반복이 되면서 짜증이 나긴 하지만, (스킵만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투 연출 스킵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처음 진행할 때의 충격과 신선함은 상당하다. 물론 패키지 게임에서는 익숙한 것이지만, 온라인 게임에서는 새롭다.



이처럼 탄탄한 스토리는 마비노기의 메인스트림 시스템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메인 스토리를 깨면서 게임의 세계관과 자신이 속한 위치를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 동시에 게임에 대한 몰입도를 증가시키고 이후 업데이트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것.



시스템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그 스토리를 구성하는 세계관 역시 마비노기에서 비롯했다. 마비노기 게임 안의 서적 중에 마영전에 대한 언급도 제법 찾을 수 있으며, 마영전은 마비노기보다 훨씬 이전 시대이기 때문에 마비노기의 일반 몬스터가 마영전에서는 레이드 보스로 등장하는 식이다. 또한 퍼거스와 같은 NPC를 은근슬쩍 배치해 두고, 스킬 시스템의 기본 방식을 마비노기에서 가져오는 등으로 친근감을 더했다.


 



마비노기를 플레이한 유저라면 심장이 덜컹할 순간.


 


즉, 몬스터헌터에서 차용하고 강화한 액션성 위에, 마비노기 세계관이라는 살을 입힌 것이다. 이 조합이 썩 훌륭했기에 지금과 같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본다.



다만, 이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자.


 



5. Risk in Action


이처럼 우리 나라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는 낯선 개념을 (몬스터헌터 온라인은 대중화되지 못했으니까... 개인적으로 정말 그 거지 같은 키조작만 어떻게 했어도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통해 시장의 다양화에 도전했다는 점에 있어서, 마영전은 충분히 칭찬해줄 가치가 있다. 모든 문화 산업이 그렇지만, 두루뭉술한 게임들이 판치는 이 시장에서 다양화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리스크가 큰 일인지를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의미에서, 말한 대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두루뭉술한 게임이 성공하는 시장에서 모난 게임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말이다.



마영전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게임 특성상, 컨트롤이 플레이에 있어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레벨이 낮아도 컨트롤이 훌륭하면 전투를 클리어할 수 있는 반면, 고레벨의 유저라도 어설픈 컨트롤로는 저레벨의 전투에서도 사망하기 십상이다. 게임에 얼마나 익숙하느냐에 따라 컨트롤 실력의 개인차가 크게 갈린다.



단언컨대, 이처럼 까다로운 컨트롤 실력을 요구하는 게임은 절대로 대중적이지 않다.


 



컨트롤을 하지 않고는 절대로 잡을 수 없는 최초의 보스.


여기서 접느냐, 빠져드느냐가 갈린다.


 


전투가 이렇게 어렵다면, 적어도 이를 커버해줄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컨트롤이 안 되는 유저도 어떻게든 조금 못한 상태라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한단 얘기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컨트롤이 모자란 유저는 게임을 아예 할 수가 없다. 제아무리 22렙의 풀장비 캐릭터라도, 컨트롤이 안 된다면 5레벨 결전의 보스 놀 치프틴에게 맞아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게 이 게임이다.



무언가 이러한 컨트롤을 대체할 만한 수단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는 버틸 수 있는 자동 컨트롤이라도 만들어주든가, 그건 알아서 생각할 일이겠지만. 초보 유저들이 컨트롤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자세는, 수많은 게임들이 포효를 뿜고 있는 이 시장에서 만용을 넘어선 자살 행위에 가깝다.



또한 컨텐츠 소진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게임의 가장 훌륭한 부분인 액션성을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개발력이 필요하다. 똑같은 던전 하나를 만든다고 해도, 단순한 핵 & 슬래시 게임에 비교해볼 때, 던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턴을 가진 몬스터에 대한 수많은 밸런싱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에 비해 컨텐츠들이 소진되는 속도는 너무 빠르다. 토큰 시스템을 통해 그렇게 필사적으로 막았는데도 불구, 이미 대부분의 유저들은 만레벨을 달성해버렸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즐기는 라이트 유저조차도 꾸준히 따라왔다면 이미 만레벨을 찍고 부캐를 키우는 상황이다.



이런 유저들에게, 어떤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줄 것인가? 개발진의 숨이 가빠오는 것이 들리는 것 같다. 결국 뒤로 가면 겉모습만 조금 다를 뿐, 똑같은 패턴을 지닌 보스들의 반복이 된다면? 컨트롤에 지친 초보 유저들이 컨트롤을 포기하고 게임을 떠나고, 컨트롤에 익숙한 기존 유저들이 똑같은 패턴에 질려 게임을 떠난다면, 남는 것은 누군가?



뭐, 이 정도의 게임을 만들어냈다면,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제발 그래야 한다...


 


 


6. Service...


사실 마영전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의 '게임'의 포괄적인 개념을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나눠보자. 게임과 서비스.



게임이란 만들어놓은 게임의 재미 그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고, 서비스란 게임을 운영하고 각종 유료화 정책 등을 진행하며, 프로모션 및 홍보 등의 모든 활동을 포괄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단순히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 게 아니라, 그 게임에 대한 서비스 역시 게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서버가 수시로 다운되는 온라인 게임은 아무리 재밌게 만들었다고 해도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게임과 서비스 양자 모두가 제대로 되어야 게임이 흥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서비스 부분에서, 마영전은 정말 최악의 상태를 보여준다.



일단 마영전은 자이언트 서버라는 기술을 내세우며 대규모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서버가 5천 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하는 데에 그쳤다면, 마영전의 서버는 5만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서버가 수용하는 인원이 5천 명인 이유는, 대부분의 게임 서버가 차용하는 IOCP 기술의 적정 인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얘기다. 모든 유저들이 하나의 서버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이를 처리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MORPG의 특성상 전투시에는 어차피 유저의 밀집도에 한계가 있으므로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마을에서의 처리가 문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마을에서의 커뮤니티 기능이 전투 못지 않게 중요하니까. 마영전은 이를 위해 다수의 채널을 만들어 유저들을 분산시키도록 처리했다.


 



채널이 무려 300개가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잘 된다면 물론 좋겠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하나의 채널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채널간의 로드 밸런싱 문제를 들 수 있다. 마영전은 이 부분의 기술적인 구현이 아직까지도 원활하지 못하다. 심지어 초반부엔 아예 채널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마을의 기능이 상실되는 바람에, 길드에 가입하려면 배를 띄우고 상대를 확인해야 하는 웃지 못하겠지만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오픈 베타 후 한 달이 넘게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겨우 마을에서 사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나, (온라인 게임의 기본적인 기능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현실이 참...) 여전히 채널을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종종 부하가 발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상의 오픈 베타인 12월 중순부터 2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마을에서 다른 유저 보는 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또한 DB 처리의 문제가 존재한다. 서버야 어떻게 분산할 수 있다고 해도, 자이언트 서버의 유저들은 모두가 단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 분산한다고 해도, 결국 DB 오브젝트는 논리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두 같은 서버의 유저니까.) 기본적으로 다른 게임 서버에 비해 10배 이상의 부하가 걸리게 되는데... 하루 한번씩 정기 점검을 하고 1회 정도는 꼭 점검을 더 해줘야 할 만큼 특별한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타개할 것인지가 정말 궁금하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라는 게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오픈 베타라면 이미 안정화된 게임이라고 당연하게 인식할 만큼 기대치가 높아진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이제 2개월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유료화가 완료된 시점에도 매일 점검을 거듭하고 각종 튕김과 렉 현상을 유발하는 이런 모습은 게임의 미래에 대단히 해롭다.


 


 


7.Service...(2)


사실 기술적인 문제는 뭐 알아서 할 문제니 그렇다 치자. 비판한다고 해서 빨리 해결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마영전의 서비스 차원에 있어 정말 심각한 문제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다. 바로 말 그대로 '서비스'의 문제다.
우선 유료화 문제.



마영전은 유료화를 상당히 일찍 진행했다. 프리미어 오픈, 즉 오픈 베타부터 거의 바로 유료 아이템이 판매된 게임이다. 돈을 내고 게임을 할 경우 유저들은 당연히 그에 맞는 서비스를 원한다. 그러나 성급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급한 유료화와 달리, 게임의 안정화 수준은 바닥을 기고 있다. 안정화되지도 않은 게임에서 유료화를 이렇게 빨리 진행한다? 이건 거의 테러다.


 



진작부터 판매가 된 아이템 중 하나, 여신의 깃털.


 


심지어 최근 게임의 업데이트는 점점 더 유료화 아이템의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캐시템이 없으면 클리어하기가 쉽지 않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캐시템을 지르게 만드는 디자인 자체는 짜증은 나지만 게임 개발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긴 하다. 문제는 이 수많은 점검과 문제 현상이 여전히 존재하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돈만 벌기 위한 유료화 아이템 촉진 정책을 펼쳤다는 거다.


 



8이비 분들의 <폐허 위의 악몽> 공략 영상이다.


유료템인 여신의 깃털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자주 오는 전투다.


 


뭐 상황은 이해는 한다. 서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고, 당장 개발비를 회수하고 앞으로도 유지할 돈을 벌어야 하긴 하니까. 현재 넥슨의 상황이 썩 좋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돈을 받고 팔려면, 적어도 하자는 없는 제품을 팔아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또다른 문제. 하자가 있는 제품을 어쨌든 욕을 하면서도 사줬다면,
적어도 AS는 잘해줘야 할 것 아닌가?



이 부분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지금까지 해온 온라인 게임 중에서, 이렇게 배를 째는 운영을 펼쳐보이는 게임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문제가 생기면 GM에게 접수를 해서 해결을 부탁하기 마련이다. 마영전의 경우 버그 리포트라는 홈페이지를 통한 접수와, 상담 전화를 통한 접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로 버그 리포트.


 



안 읽는다.


 


그렇다. 아무리 글을 써도 읽지 않는다. 매크로 답변이라도 돌아오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것이 서버 전체의 현실이다. 버그 리포트에 쓰는 글에 답변을 달지 않기로 작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답변을 하지 않을 거면 페이지는 왜 만들어 놓은 걸까? 뭐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다.



자, 그렇다면 상담 전화를 이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전화를 걸어보자. 1588-7701이다.



자, 어떤 문의입니까? 1번, 게임 관련 문의. 2번, ... 1번을 누르면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눌러야 한다. 꼭꼭꼭 다 눌러주면 다시 선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1번, 롤플레잉 게임으로 들어가고... 다시 또 골라야 한다. 22번, 마비노기 영웅전. 어찌어찌 다 골라서 들어갔다 치자.



죄송합니다. 현재 상담 문의가 많은 시간대입니다.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전화는 끊어져 버린다. (!)



내 수많은 문의 전화를 이곳저곳에 해봤지만, 통화 대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통화량이 많다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서비스는 뭐 게임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 은행 각종 서비스 센터 등등 통틀어서 처음 봤다. -_-;;; 당연히 통화 대기를 해서 조금 기다리다 보면 연결이 될 거라 생각했건만...



그런 관계로 다시 시도하려면 다시 전화를 걸고 1번을 누르고 주민번호 13자리를 누르고 잠시 쉬다가 다시 1번을 누르고 22번을 눌러서 들어가야 한다.


 


이걸 다 누르면 다시 죄송합니다. 현재 상담 문의가 많은 시간대입니다...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주세요. 하고 끊어져 버린다. 한 10번을 똑같은 짓을 해보았는데 안 되었다. 그래, 오후 시간대라 그렇겠지...



다음날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보았다. 죄송합니다. 현재 상담 문의가 많은 시간대입니다. 오전 시간대를 이용해 주세요... 지금 오전 10시인데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그리고 역시나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다시 시도를 하기 위해 다시 번호를 다 누르고 1번을 누르고 주민번호 13자리를 누르고... 하다가 걍 때려쳤다.


 



당신들의 의무를 왜 지키지 않는가?


 


...장담컨대 이런 서비스를 하면 아무리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 놔도 망할 수밖에 없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게임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아무리 게임을 잘 만들어도, 서비스가 훌륭하지 않으면 걍 다 부질없는 것이다. 지금 이런 서비스로 5만이라는 동접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 나라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최정점에 서 있는 넥슨의 서비스가 이 정도라니, 정말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서비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게시판에 말이 많은 해킹 복구 얘기를 잠시 해보자. 굳이 마영전뿐만 아니라 넥슨의 해킹에 대한 대응은 정말 너무나도 심하다. 위 상황과 관련해서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해킹을 당한 유저가 문의를 해도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문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기 힘든데 해킹 신고에는 시간 제한이 있다. 연결이 일주일 안에 되지 않으면, 그냥 신청이 기각된다. (!) 아니, 접수 자체가 이렇게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일주일간 타임 어택?



그냥 어이가 없다.


 


8. So...
마영전은 잘 만든 게임이다. 현재 온라인 시장의 흐름에 맞지 않게 용감하게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온 게임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용감한 시도가 잘 먹힐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고, 마영전의 개발진들이 좀더 잘 해야 할 것이고.
그러나, 마영전의 서비스는 현재 완전히 글러먹었다. 이래선 이렇게 잘 만든 게임이 그냥 쓰레기가 된다.



뭐 아주 좋은 예가 가까운 곳에 마침 있으니 들어보자.



결함이 있는 자동차를 급하게 팔면서, 문제가 없다고 잡아떼며 AS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제발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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