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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0.0요일


미쉬파트


 


 


 


글을 시작하기 전에 신변잡기같은 소리 먼저 조금 하겠습니다.


 


저는 딴지가 초창기, 그러니까 1회에 마징가Z에 관한 글과 이인제씨와 김영삼씨의 합성사진을 보며 낄낄댔던 독자였습니다.(그때가 1998년이었니까 그때는 20대였고 막 결혼한 새신랑(^^;)이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야, 인터넷에 별 희안한 곳(-_-)도 다 있네 하는 정도였지요.)


 


그때만해도 딴지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딴지는 스스로 밝힌 바대로 먹고 싸는 이야기로 승부를 보려는 말그대로 황색신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런 차원에서 제가 그때 가장 많이 웃었던 기사는 [콩자반]이야기였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좀 심심하고 웃고 싶을 때 와서 웃고 가는 곳 정도였던 딴지가 2002년을 기점으로 제겐 좀 달라진 곳이 되었습니다.(그때 총수님의 월드컵 기사는 지금봐도 가슴 한구석이 찡한 뭔가가 있습니다. 아, 물론 그전에도 생각할 것이 있는 기사들도 자주 올라왔지만 그래도 제겐 심심풀이 땅콩같은 곳이었지요.)


 


그 이후로, 특히 대선정국들과 맞물리면서 딴지의 기사의 논조도, 또 거기에 글을 쓰시는 기자들의 면면도, 심지어는 독투에 글 쓰는 수 많은 사람들도 다 새롭게 보였습니다.(물론 **교황님과 같은 진짜 독특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러면서 딴지에서 종종 올라왔던 종교기사, 특히 개신교에 관한 비판의 글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신학생의 입장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다가 딴지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저도 그만 시들해졌지요.


 


그런데 정말 기적같이도 [가카]의 집권과 함께 딴지도 살아났고 드디어는 말 그대로 [딴지일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개신교 욕만 죽어라고 하더니 결국 딴지는 개신교 장로덕에 살아나는구나 하며 혼자 껄껄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사실 그 덕에 다시 딴지 독자로 되돌어왔구요. (그러고 보면 우리 가카는 참 좋은 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좀 그렇지만요) 그러다가 안분님이나 이동현님의 글을 보게 되고 거기에 댓글 달다보니 어느새 저도 '이러고 있습니다' 하하. 어떻게 보면 아득히 예전에 막연하게 바라고 있었던 소망을 이룬 셈이 되는군요. (아....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닌데.)


 


제가 사실 딴지 게시판에 글을 쓴 것은 그동안 보아 왔던 딴지독자들이라면 욕도 먹고 비판도 듣겠지만 교회 내부, 그것도 목회자의 입장에서 하는 개신교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그렇게 결심하게 된 것은 안분님 덕분입니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 꺼내기도 쉽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동안 개신교에 대한 딴지글은 재미있긴 했지만 바깥에서 보는 개신교의 모습들이라서 안쪽에서 이야기하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쨌든 욕만 잔뜩 먹을 각오를 하고 글을 썼는데 의외로 긍정적인 비판과 의견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내심 놀랐습니다. 딴지에서 목사라는 커밍아웃을 하면 솔직히 매장될줄 알았거든요(-_-) 게다가 글이 메인에 올라가고 결국 300에도 들어오게 되다니...(전 300에 글 쓰는 분들은 다 괴물(-_-;;)인줄 알았습니다.)


 



괴물의 한 예


 


아..자꾸 옆길로 샙니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곳에서 종교와 교회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교회 이야기를 하면 너무 뻔한 소리들로 결론이 납니다. 그런데 비신자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에 결국 제게는 약이 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헌금 이야기 독투에 한번쓰고 잠수탈려고 했는데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이 말 한마디 하려고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됐군요)


 


 









 


 


음..잡설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그래도 꼭 한번은 하고 싶었습니다 ㅎㅎ)


 


오늘 쓰려고 하는 글은 [목사제도와 신학교 시스템]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에 쓰게 될[한국 개신교의 역사]와도 일정부분 관계가 있는 부분이라 함께 묶어서 쓸까도 생각해 봤는데 너무 길어지고 어지러울 것 같아서(그런 글주변도 사실 없습니다) 처음에 글을 썼던 목적인 [한국 개신교의 문제와 그 대안]이라는 큰 주제에 맞는 부분만 쓰려고 합니다. 다른 내용들은 제 블로그에 그냥 틈나는대로 써보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블로그에서 뵙고 의견들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한국개신교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인 목사제도와 신학교 시스템이라는 주제로 한정을 짓겠습니다.


 


 


1. 한국 개신교 목사제도의 현실


 


지난번 글(교회의 직분제도의 문제와 그 원인)에서 목사라는 직분이 무엇인가를 살펴았는데 그때는 [교회의 직분]이라는 원론적인 의미에서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현실의 개신교 내부에서 자리잡고 있는 목사제도 자체에 대해서 짚어보려고 합니다. 이는 한국개신교의 갱신에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어떻게 보면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개신교는 세계의 기독교 역사에서 유래없이 독특한 목사제도와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인해 한국교회의 문제의 대부분은 거의 이 목사시스템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개신교에서 목사제도의 문제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개신교에서 (담임)목사라는 위치는 대단히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는 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의결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담임)이라고 한 것은 목사라고 다같은 목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를 제외한 모든 나머지 목사들은 이름만 목사지 전혀 다른 신분에 불과합니다. 왜 그러냐면 담임목사는 그 교회의 주인(?)이지만 나머지 부목사들은 모두 교회에서 고용한 임시직에 불과한 사람들이 때문입니다.


 


왜 임시직이냐구요? 부목사 혹은 전도사들은 임기가 보장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마음에 들면 오래 있을수도 있지만 맘에 들지 않으면 당장 목이 잘리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이 부교역자들입니다. 대우나 위치를 볼 때 담임목사와 부목사, 부교역자들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보통 중형교회(천명 이상) 정도 되면 담임목사의 연봉은 왠만한 대기업 간부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게 일반적입니다.(보통 교회가 지탄을 받는 것은 이 경우입니다)


 


런데 부교역자들로 가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몇몇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형교회들도 풀타임 상근직 부목사들도 월 200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학교(보통 학위과정)를 다니는 파트 부목사들은 100만원 안팎입니다. 전도사들은 보통 6-70주면 많이 주는 것이죠. 이 경우 자녀가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솔직히 먹고 사는 것 자체가 거의 어렵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는 보통 목회자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모른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그 돈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인격적인 대우를 잘 못받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반말하는 경우는 태반이고 자신의 비서처럼 일을 부려먹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 이러다보니 무슨 문제가 발생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너도나도 틈만 나면 교회개척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개척을 해서 담임목사를 해서 성도수를 키우기만 하면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단을 막론하고 교회개척이 난립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원인이 이것입니다.


 



 


사실 부목사들 입장에서 너나 나나 다같은 목사인데 왜 너는 온갖 대우를 다 받는데 나는 이렇게 되냐하는 마음이 안들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드럽고 치사해서라도 내가 교회 개척하고만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다만 대형교회들은 좀 이야기가 다른 것이 거기 부목사들은 대우도 괜찮고 허드렛일도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분야만 잘 하면 되니 일도 훨씬 수월하죠. 더 좋은 것은 그렇게 오래 버티다보면 때가 되면 교회에서 일정부분 성도를 떼어 교회를 개척해 줍니다. 재정이 좋은 교회는 아예 교회를 지어주는 경우도 있지요(이건 좀 드문 케이스이긴 합니다만). 그러다보니 대형교회 부목사로 가는 것은 그야말로 사회에서 대기업 가려고 머리터져라 경쟁하는 것과 동일한 양상을 띱니다.


 


이러다보니 한국개신교는 크게 두가지 양상으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대형교회에서 부목사 일을 하려고 경쟁하거나 거기 갈 처치가 못된다 싶으면 목좋은 곳에 교회 개척하려는 사람들로 말이지요. 이것은 다 [돈]과 [명예]라는 가치를 전제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를 하는 것도, 교회를 개척해서 기를쓰고 교인들을 늘리려는 것도 표면상의 그럴듯한 이유 너머에는 모두 돈(담임목사의 연봉)과 명예(큰 교회 담임, 성공했다는 증거)를 원하는 목사들의 실질적인 목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현재의 목사제도가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일입니다.


 


담임목사만 되면 [하나님의 종]으로 대우받고 온갖 호의호식을 할 수 있는데 어느 누가 그걸 마다하겠습니까? 또 인사, 행정, 재정, 치리의 모든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그야말로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싫다고 할 사람들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개신교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을만큼의 문제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목사들부터가 돈과 권력, 명예의 노예가 되어 있는데 그 밑에 있는 성도들은 어떠하겠습니까? 게다가 그것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으로 낙인찍혀 쫓겨나는 마당에 감히 누가 거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가 있을까요?


 


자,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그것은 누가 과연 목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목사가 성경대로 [머리 둘곳도 없고, 두 벌 옷도 가져서는 안되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베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인품이 있는, 그러면서도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직분이라면 사실 이 길을 갈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가봐야 죽도록 고생만 해야 되니까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담임목사를 하면 그야말로 인생역전, 대박이 나는 길이 열려 있는 마당이다보니 소명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야말로 개나소나 다 할려고 덤벼드는 형국이 되었습니다.(솔직히 현재 교회 시스템은 그야말로 눈먼돈이 널려 있습니다 맘먹고 담임목사 입장에서 삥땅 치려면 아주 쉬운 일이죠. 재정 담당자 한두명만 포섭하면 끝입니다.) 그리고 다른 전문직처럼 오랫동안 고생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대충 말만 잘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보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최근에 들어서는 그야말로 자기 머리에 자기가 손얹고 안수하고 목사입네 하는 사기꾼들까지 섞여서 교회 목사는 목사인 저조차도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하는 웃지 못할 현실에 당면하고 말았습니다.


 


 


2. 목사안수 문제와 신학교


 


그렇다면 여기서 목사안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목사안수란 각 교단별로 자신들이 세운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을 목사로 인정하는(라이센스를 주는 것이죠) 것을 말합니다. 이것부터가 사실 문제입니다. 성경을 보면 목사나 장로는 각 교회에서 정말 인정받고 존경받는 검증된 사람들이 안수받고 세워졌습니다.



신학교육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검증할 사람도 역량도 안되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전문기관을 만들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할 수 있는 문제니 이 신학교 시스템이라도 잘 운영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학교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신학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장래의 목회자들을 키워내는 학교입니다. 목사로서 알아야 할 전문성경지식과 목회에 관한 지식, 그리고 목사로서 쌓아야 할 소양들을 배우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것을 정말 제대로 하는 신학교들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것을 이야기 하기전에 먼저 교단이라는 부분을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신교에서 가장 큰 상위개념은 교파입니다. 흔히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 루터교, 성공회, 오순절교, 구세군 등과 같이 뒤에 교자로 끝나는 것들이 교파입니다. 이 교파들을 다 묶어서 개신교(더 정확하게는 개혁신교)라고 호칭합니다.


 


신교라는 것은 구교(가톨릭)에 대한 반대의 개념에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분파된 모든 교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교파들도 하나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 같은 경우 대한예수교장로회(줄여서 예장)가 있고 기독교예수교장로회(줄여서 기장)가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의 교파입니다. 전혀 다른 곳이죠. 예장과 기장은 나중에 다룰 한국개신교의 역사에서 살펴보겠지만 같은 장로교라고 해도 전혀 다른 곳입니다. 다른 교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개신교의 역사 부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교파들 밑에는 교단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교단은 한 교파에 속해 있지만 신학적 색깔이나 의견들이 맞지 않아 분가한 단체들을 말합니다. 즉, 총회를 별도로 두고 있는 곳들입니다. 장로교의 예를 들자면 예장이라는 교파 밑에 합동(총신대학교 측), 통합(장신대학교 측), 고신(고신대학교 측), 대신(안양대학교 측), 백석(백석대학교 측) 등의 교단들이 있습니다.


 


이름들을 보면 금방 감이 오시지요? 예, 그렇습니다. 중요한 교단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을 가지고 있고 여기 출신들은 그 교단에 속한 목사로 훗날 안수를 받게 됩니다. 목사 안수는 교단 밑에 있는 하부개념인 노회라는 곳에서 받게 되는데 노회는 교단안에서 또 별도의 회의기관을 가지고 있는 자치단체들입니다. 노회는 하부개념이라기 보다는 독자적인 모임들이 모여서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옳겠군요.


 


노회도 우습게 볼 것이 아닌 것이 대형노회의 경우에는 왠만한 중소교단 전체보다도 더 많은 목사와 교회를 보유하고 있는 곳들도 많습니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노회들(100년 이상)은 산하 교회들이 수백개가 넘는 경우도 있지요. 어쨌든 신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거기서 시험(강도사 고시 및 목사 고시)을 통과하면 일정한 기간을 거쳐 자신의 속해 있는 노회에서 안수를 받아 활동하게 됩니다.


 


여기서 신학교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형교단의 신학교들은 대개 정부에서 인가받은 정식 4년제 대학교와 학위가 나오는 대학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를 나오는 사람들은 나름 머리도 되고(대개 학위도 따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력이 있는 경우 대형 교회에 쉽게 스카우트(?)도 됩니다. 나름 출세길이 보장된것이죠.


 


따라서 이런 메이저급 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력있는 목사들은 기존의 교회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핵심적 존재가 됩니다. 또 이곳 출신들은 이곳 출신들만을 키워줍니다. 따라서 현재 대형교단에 속한 대형교회들은 거의 이러한 시스템으로 목사들이 움직입니다. 일종의 엘리트화된 신학교 시스템이죠. 


 


이곳의 문제점은 여기 출신 목사들은 자신들이 마치 사법고시 출신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 난 사람들이라는 의식을 갖습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못한 학교 나온 사람들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죠.(목사가 잘 나봐야 목사인데도 말이지요) 또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되거나 개척을 하는 경우 그 오만함이 어디에 가겠습니까? 이래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대부분 남의 말을 잘 듣지를 않습니다. 엘리트화 된 교단 대학원 출신들 목사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은 사실 소수이고 거의 대부분 신학교는 소위 말하는 군소신학교입니다. 즉, 교세도 약하고 인가도 정식으로 받지 못한 사설 신학교들입니다. 현재 목사의 상당수가 이런 신학교 출신들이 많습니다. 이곳에는 대부분 정규학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혹은 늦게 신학을 하겠다고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즉, 정규 대학과 대학원은 가기 힘들고 목사는 되고 싶고 한 사람들이 이리로 오는 것이죠. 일단 뭐가 됐건 목사안수는 나오니까요.


 


이런 신학교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신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가르칠 역량이 못됩니다. 그만한 수준의 신학교 교수들은 이런 것으로 오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대충 날림으로 시간때우고 때되면 그냥 목사안수 줍니다. 이런 신학교들은 대부분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목사장사를 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학기 등록금이 상당한데도 줄을 서거든요.)


 


문제는 이렇게 졸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짜 목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목적은 하루빨리 교회를 키우고 교회를 대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냐구요? 그 이유는 그래야만 교계에서 제대로 된 목사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교회 신축 본관 조감도


 


오늘날 초대형교회들 가운데 담임목사의 분포를 보면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과 학력은 전혀 없는 사람으로 크게 나뉩니다. 그런데 그정도 큰 교회 담임이 되면 학력이나 이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인정받고 존경받지요. 그리고 교세가 작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대형교단들이 교회만 커지면 서로 나서서 모시고 오려고 합니다. 즉, 신분상승을 위한 마지막 출구가 교회의 대형화이죠. 실명을 거론하기는 뭐합니다만 오늘날 대형교회의 목사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이제 신학교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습니다. 정규신학교는 정규신학교대로 군소신학교는 군소신학교대로 다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모두 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현 교회시스템이 돈과 명예, 권력이라는 삼박자에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운용되는 제도들이 다 그러한 것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교회개혁은 어차피 물건너가는 길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아예 신학교 같은 것도 다 무시하고 자기 혼자 자칭 목사라고 하며 사기치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이게 왜 걸리지를 않을까요? 그것은 이런 것을 감독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단마다 워낙 신학교들이 난립해 있으니 어디 출신인지를 서로가 모르고 결국 그 틈새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이게 다 담임목사에 워낙 많은 콩코물들이 붙어 있다보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3. 대안은 있는가?


 


물론 제가 앞에서 언급한 목사들 가운데 아닌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양심을 가지고 목회하는 분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개천에서 용나는 사람들을 가지고 일반화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분들은 어디에서도 잘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이 문제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이 한방에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은 꾸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금보다 나은 길이 있다면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목사제도는 우리나라 개신교의 문제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개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신학교 시스템을 정비해야 합니다.


 


현재 정규신학교 과정은 신학대학(B.A) 4년, 신학대학원(M.div) 3년, 총 7년의 정규과정이 있습니다.(신학석사와 박사 학위는 목회자와는 상관없는 공부과정이기 때문에 제외시켰습니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운용을 해야 합니다. 현재 신학교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대학이 아닌 일반대학 출신이라도 학사학위만 있으면 바로 신학대학원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엄청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딸랑 3년의 대학원 과정만 마치면 누구라도 목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나 불교의 정식 사제나 승려를 받기 위해 10년이 넘는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은 수치입니다.


 


물론 현행법상 정규 4년제 대학을 마친 사람은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강제로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교단별로 일반대학을 마치고 신대원으로 진학하려는 사람은 신학교 4년의 커리큘럼에 준하는 별도의 과정을 마치고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진실로 목사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올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 신학대학원(M.div)과정이 우리나라의 신학 석박사 과정보다 더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룹니다. 그야말로 박터지게 공부해야 하지요. 이것은 이미 학부때부터 성경전반에 관한 기초학문과 언어, 그리고 기초 신학을 다 떼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학의 신자도 모르는 사람도 대학만 나오면 누구나 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보니 교육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합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목회자들에 대한 부실교육 - 목사가 되어서도 성경도 제대로 모르는 - 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과정을 훨씬 엄격하게 제한하고 아무나 목사가 되지 못하도록(진짜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 갈 수 있도록) 정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빋은 사람들을 교단별로 통합하여 관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성도들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목사들이 허위학력이나 사기로 성도들을 속이지 않도록 목사가 될 사람들은 신학교 시절부터 그들의 생활태도, 성적, 사역했던 교회 등을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사명감을 가지고 목사의 길을 갈 사람들이 걸러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쪽에도 나름 비전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훗날 뜻있는 교수님들과 함께 신학교에서 교수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이 학교 출신 목사들은 검증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롤모델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렇게 할 때 나이가 많은 분들이나 뒤늦게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불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되려 묻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늦게 목사가 되려 하십니까? 소위 은혜받고 부름 받았다는 명목 아래 목사로서의 위치나 자리가 탐이 났던 것은 아닙니까? 목사가 지금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낮은 곳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도 전혀 대우받지 못하는 자리라면 그래도 모든 것 다 포기하고 목사가 되시렵니까? 그정도의 사명감과 목적이 있었다면 왜 인생을 다 낭비하고 이제서야 그 길을 가려고 하십니까? 저는 비록 일부의 피해자가 있더라도 이것이 목회자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목사의 대우를 고쳐야 합니다.


 


이는 첫번째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는 평신도 여러분들의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담임목사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지나친 사례를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목사는 호의호식하고 남들에게 대접받는 직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부유하게 되고 떠받들리게 되면 자신들의 본분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유에 누우셨다.


 


그래서 성경은 오죽하면 [저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요하게도 마옵소서 너무 가난하면 거기에 매달려 하나님께 범죄할까 두렵고 너무 부요하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 잠언 30장 8-9절]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따라서 현재의 목회자 대우를 수정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목회자는 목사의 일 -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 에 충실할 수 있도록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담임목사든 부목사든 전임사역을 해야 하는 목사라면 누구든지 동일하게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의 소득정도로 책정하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담임목사를 하든 부목사를 하든 누구에게나 같은 대우를 하고 같은 급여를 준다면 담임목사를 하겠다고, 개척을 하겠다고 죽기살기로 하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많은 급여를 줘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 때문에 목사하겠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빠듯해도 진실로 목사로서의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기꺼이 할 것이기 때문에 돈으로 목사를 사고 파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는 각 교회의 성도인 평신도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젊은 분들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여러분들이 교회의 중추적인 사람들이 될텐데 그때 그렇게 교회를 바꾸어 나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여론을 만들고 그렇게 되도록 목소리를 내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힘든 일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어차피 이전 세대는 지나갈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서도 여전히 지나간 세대의 잔재들을 남겨 두어서는 교회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목사를 하늘같이 떠받들던 시대는 과거의 유물로 버려야 합니다. 부디 새로운 교회는 이런 잘못된 관행들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목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목사가 할일만 하면 되고 교회는 거기에 맞는 대우만 하면 될 일입니다. 사실 더 나아가 현재의 교회 시스템 자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건물짓고 조직을 운영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는 현재의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와는 너무 다릅니다. 건물을 위한 교회가 아닌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로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도 우리의 큰 숙제일 것입니다.


 


세번째로 올바른 교회관과 직분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저같은 목회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저도 사실 입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먹고 살면 한평생 고생할일은 별로 없을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 내에서는 알만한 대학 나오고 괜찮은 대학원에서 학위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적도 내내 장학금 받아가며 학교 다녔고 음악목사로 안수를 받을만큼 나름 재주(?)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기득권 내에서 성공할 확률이 꽤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현재의 목사제도는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코 나도 못할거 다 죽자고 자폭(-_-)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목회자들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 잘못된 것을 알고도 침묵한다면 - 도대체 설교 시간에 무슨 자격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목사이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설교를 못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아버지와 그때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사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정말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못하고 많이 부딛혔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그 갈등이 해결되었고 아버지를 마음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나 저는 성도들에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못하는 것을 남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교회의 잘못된 것 - 그것도 심각한 - 부조리를 버젓이 알면서도 어떻게 십일조 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많이 바치면 많이 받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목사로서 양심이 있다면 해서는 안될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국 제도권 교회 내에서는 사역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참 다행히도 학교 다니면서 좋은 지도교수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 인생의 멘토가 될만큼 인품으로도 학식으로도 뛰어난 분들을 만나서 목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분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그 길의 첫번째 단계로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바른 교회관과 바른 직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말해야 합니다. 이는 평신도들은 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는 목사 욕을 좀 해도 되거든요(^^ㅋ) 그동안 덮어 놓고 믿던 교회 성도들에게 성경의 올바른 정신과 가르침을 전하다 보면 성도들의 교회관도 왜곡된 축복관도, 기복적인 신앙도 다시 재정립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 이틀에 될 문제는 아닙니다만 반드시 목회자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번 세대에 못하면 다음 세대에라도 해야 될 일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개인적이 목회 이외에도 언젠가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을 만났듯이 다음 세대 목회자들이 될 사람들에게 제가 깨달은 바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더 많은 일들을 그들을 통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정말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쓰다보니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오고 넋두리도 나오고 영 객관적인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목사는 머리로 사는 것보다는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라 아무때나 울컥울컥 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짧지 않은 글임에도 목사제도와 신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 말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언급하려고 노력했고 읽어 주시는 분들에게는 이해가 되리라 감히 생각해 봅니다.


 


다음 번에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날 왜 한국개신교가 이렇게 많은 교단으로 나뉘게 되고 찢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한국교회와 정치와의 야합이 오늘날 왜 그렇게 극성을 부리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익세력과 한국개신교와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좋은 주제들을 많이 주셔서 생각지도 않게 글이 자꾸 길어지게 되는데 아이템 떨어질때까지는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관심 가져 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