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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올렸다. 에어컨을 돌리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보수단체에서 드라이브 쓰루 집회를 준비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 저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라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만약 3주 전이었다면? 아마 필설로 다 옮기지 못할 욕들이 튀어나왔을 거다. 

 

1. 전야(前夜) - 강제 스몰웨딩 

 

원래 150식 규모의 작은 웨딩홀을 빌렸는데, 업체 쪽에서 타협안(?!) 아니, ‘우회루트’를 제안했다. 

 

“홀을 두 개로 쪼개서 한쪽에선 식을 진행하고, 다른 홀에선 이걸 전광판으로 확인하며 식사를 하면 됩니다.”

 

뷔페식이 아니어서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50인 이하이기에 홀 2개에 나눠서 75인을 초대하기로 했다. 테이블 하나당 6명 앉는 자리를 4명으로 강제 조정하고, 그 간격도 상당히 띄웠다. 결정적으로 하객 숫자를 결정적으로 줄였다. 양가 합쳐서 75인으로 잡은 거다.

 

애초 150인에서 반으로 줄인 숫자. 50인 이하를 강제한 정부시책에 반하지 않기 위해 홀을 2개로 쪼갰고, 그 나마 100인을 채우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75인으로 잡았다.

 

진지하게 유튜브 라이브를 생각해 봤지만, 슈퍼챗을 쏘고 그걸 받은 뒤에 리액션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리액션 맛집으로 등극해서 매주 결혼식을 올리는 게 아닐까란 망상을 잠깐 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상대’는 이런 망상을 듣고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아마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게 아닐까란 추측을 해본다. 어쩌면 내 ‘상대’에게 코로나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는 ‘상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와 직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의 경우는 나보다 훨씬 더 빡빡하고, 경직된 구조로 일해 왔었다. 내 경우에는, 청첩장을 돌린 다음에, 

 

“가족끼리 하는 스몰 웨딩이다.”

“오지 말란 소리냐?”

“오지 말란 소리다.”

“진짜냐?”

“진짜다. 그러니 오지 마라.”

“알았다. 축하한다.”

“고맙다.”

 

그렇게 편하게 정리했다. 소원한 친가쪽 식구들에겐 아예 말도 안 꺼냈고, 어머니를 통해 외가쪽 일부에만 말을 전했다. 친구들과 부모 형제, 외가쪽 식구 일부. 이게 내 하객의 전부였다. 40인이 채 안 되는 숫자를 받아들고 누구에게 오고, 누구에게 오지 말라고 고민하는 것도 힘들었다.

 

40살 이상 살아온 삶의 인연이다 보니 40명의 하객을 고르는 게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제적으로 맺어진 인간관계, 자의적으로 맺은 관계 중 친분의 강도를 판단해 결혼식을 초대한다는 것...이건 정말...

 

영국에서 유학 중이라 못 올 줄 알고, 스카이프로 인사한 친구 한 명이 난데없이 한국에 나타나 2주간 격리한 다음 결혼식장에 나타났을 때는 참았던 울음이 폭발했다. 이게 진짜 우정이구나라며...청담에서 그 비싼 돈 들여 화장한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난 40인을 채웠다. 그러나 내 ‘상대’는 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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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2. ‘상대’의 상대들

 

상대의 직장은 나와 달리 조금 경직돼 있었다. 나름 알만한 대기업이고, 연구직이다 보니 상당히 루틴하게 돌아가는 구조인 듯 했다. 그래도 대기업이 좋은 점은 복지가 아닌가? 보통 경조사가 있으면 회사에서 배차를 해준다고 했다.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상대의 결혼 소식을 들은 직장에서는, 

 

“거짓말이지?”

“만우절 서프라이즈?”

 

라면서 결혼 소식을 믿지 않은 눈치였지만, 진짜란 사실을 알고 나서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결혼식 참석을 장담했다. 그러나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회사에서 수시로 단체문자를 발송했고, 경조사나 회사 외의 모임을 가급적이면 피하란 분위기가 형성 된 거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결혼식은 필수불가결한 모임이 아니지 않은가? 회사 입장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서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면? 그 파급력은 일개 회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국가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거니까.

 

결국 친한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전부 불참하게 됐다. 섭섭하지 않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 역시 감정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때문에 친구와 동료, 회사에 민폐를 끼칠 순 없다. 상대는 선선히 이를 받아들였다. 

 

지금 이 시기에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민폐다. 상대도 나도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심정적으로야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냐만, 따지고 들어가면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목덜미에서 내려가지 않는 그 ‘이해’를 꿀꺽 삼켜서 겨우겨우 납득을 했다. 

 

“이건 지금 결혼하는 우리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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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ws1>

 

3. After Wedding

 

Weedding의 어원은 ‘지불하다’ 혹은 ‘베팅하다’는 의미였던 Wedd에서 시작됐다. 여자를 돈 주고 사왔던 풍습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거기도 하겠지만, 이 여자를 사온 게 손해를 볼지 아니면 이득을 볼지 모르기에 일종의 ‘도박’이란 의미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결혼식 자체부터가 ‘도박’이었다. 애초 계획했던 규모의 1/4 수준도 안 됐다. 그 마저도 코로나 전파의 원흉이 될까 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나와 상대의 하객은 7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 날 찾아온 방명록의 숫자는 53명에서 멈췄다. 식사는 그 보다 훨씬 더 적었다(봉투 2장, 혹은 그 이상을 들고 온 이들을 생각하면 그 보다 훨씬 적었다). 상대의 눈치를 보아하니 거의 내 수준에서 온 듯 했다. 

 

예식장 보증인원을 밑도는 숫자만이 식사를 끝냈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흥행참패”

 

라며, 내 사회생활과 내 인격에 대해 반문해 보겠지만 코로나 시국이지 않은가. 오히려 이만큼이나 와 준 것에 감사했다. 식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저 기억에 남는 건, 

 

“2주 정도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지?”

 

라고 ‘상대’가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했던 말이었다. 잘 살겠다, 잘 살자, 행복하자가 아니었다. 상대는 코로나 잠복기를 말했던 거였다. 그 말 그대로 2주가 흘렀지만, 아무도 감염된 이는 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난 결혼식을 무사히 끝냈다. 

 

보증인원 위약금 없이, 75인짜리 소규모 결혼식을, 코로나 감염 없이 무사히 끝냈다. 도박에 성공했다. 

 

물론, 도박의 성공 유무는 ‘운’이다. 만약 잘못된 뽑기로 조금 ‘빡빡한’ 예식장을 뽑았을 경우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이미 몇 군데 예식장에서는 환불과 보증인과 연계된 ‘소송’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결혼 준비 사이트와 블로그, 커뮤니티 등등에서는 말도 안 되는 보증금과 답례품에 대한 성토. 그리고 소송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50인 이하로 모이라는데, 그럼 나머지 250인 분은 돌려줘야 하지 않는가?”

“집합금지라 뷔페를 아예 열지 못하게 됐는데, 이걸 어떻게 보전해 줄 건가?”“답례품으로 수저 세트를 주겠다는데, 1인당 식대가 5만 원대인데, 수저세트가 얼마인가?”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욕망과 욕망의 충돌이었다. 한쪽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또 한 쪽은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싸우는 거였다. 

 

결혼은 미친 짓이란 걸 우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알게 되는 거 같다. 어쨌든 난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신혼여행까지 무사히 다녀왔다. 이제 난 공식적인 유부녀가 됐다. 결혼에 대한 어떤 소회나 감상 이전에 결혼식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만이 남았다. 아마 지금 이 시기 결혼식을 치른 수많은 신부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거 같다. 결혼이 아니라 결혼식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힘들다니...아마, 우리의 결혼 생활은 상당히 버라이어티 할 거 같다. 아마도 말이다. 

 

끝으로 코로나 시국에 시집 장가갈 수많은 예비 신랑신부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할까 한다. 

 

“참고, 참고, 또 참아라.”

 

그리고, 

 

“조금 손해 보는 듯 사는 게 남는 거다.”

 

결혼 준비하는 반년 동안 내가 깨달은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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