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23.화요일
화성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쥐새끼 한마리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았다고나 할까. 작가들의 영혼을 돈 몇 푼으로 길들이고자 했던 가카의 정부(情婦)가 결국 그들의 '역린'을 건든 셈이 됐다. 돈 벌게 해주겠다는 사기 공약으로 대통령까지 된 가카시니 그깟 '글쟁이' 몇명 모인 단체 쯤, 지원금 안 주겠노라고 겁박하면 이내 <집회 불참 확인서>에 사인하며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해질 줄 알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무리 삽질 하는거 외에 아는 것이 없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런 황당한 발상들을 그렇게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는 건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이땅의 작가들이 누구던가. 피를 쏟으며 시를 쓰고, 뼈를 깎아 소설을 쓰는 험난한 창작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요, 살아있는 눈빛 하나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칼날 앞에서도 펜 하나로 맞서온 투사들이 아니던가. 그들이 언제 돈 벌어 출세하려고 작가가 되기로 한 사람들이던가. 감옥에 갈 것을 두려워하여 제 할말을 못하던 사람들이던가.
그런 그들에게 돈 몇 천만원에 그들의 자존심을 팔고, 펜을 꺾고, 영혼마저 저당 잡히라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문화 후진국임을 세계에 떠벌리는 정부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는 20일 열린 총회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부의 지원금을 빌미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것과 관련하여, 1~2년쯤 잡지 안 내고 외국 작가 초청을 안하고 한이 있더라도 지원금을 거부하고 정부의 어이없는 문화정책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작금의 현실에 '집단적인 저항의 글쓰기 운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치사한 돈을 받느니 차라리 배고픈 작가로 남겠다며 가카와 가카의 정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지원금이란 것도 국내의 열악한 문학 환경을 고려하여 엄연히 국민의 세금으로는 집행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걸 가지고 마치 자기들 주머니에서 꺼내서 선심쓰듯 온갖 폼을 다잡더니만 거기에 굴욕적인 항복문서까지 요구 하는 한심한 꼴이라니, 이러면서 세계적으로 국격과 위상이 높아졌다고 떠든다는 건 아예 대놓고 문화 후진국임을 떠벌리며 나라 망신을 시키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돈을 무기로 영혼을 강금하는 치졸하고 야비한 정권
8.90년대의 군부독재 정권이 무자비한 폭력을 앞세워 국민의 자유를 가두려 했다면, 지금의 정권은 물질(돈)을 무기로 국민의 양심과 영혼을 감금하려 든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양심선언을 한 연구원을 해임하고, 조금이라도 이전 정부의 녹을 먹었던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비판적인 반대파 지식인들은 가차없이 목을 자른다. 힘없는 야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명분을 내세워 은행 계좌를 검사하고 '친야쪽'으로 찍힌 기업들은 세무조사 받다가 거덜이 난다. 헌법에 보장된 평화시위를 한 촛불단체는 벌금형을, 쇠파이프와 가스통을 들고 설치는 불법단체들에게는 보조금을 준다.
하는 일없이 놀고 먹는 관변단체의 예산은 늘려주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른 시민단체의 예산은 삭감하기에 바쁘고, 아이들의 점심값을 보태주는게 아까워 그 돈으로 자신들의 아방궁을 짓는다. 이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뻔뻔하고 막가파식 정권이 있을까.
그러고 보면 권력의 힘이 실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이 무서운 건 권력 자체가 지닌 폐해 보다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력의 속성 때문인데 예컨대 유인촌의 경우를 보자. 전원일기의 순수한 둘째 아들 용식이는 어느새 간데없고 권력욕에 눈이 먼 완장 찬 '용팔이'만 남아 어느 곳보다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분야에서 조차 자기들 입맛에 맞추라고 칼을 휘두르는 홍위병이 되어있지 않은가.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채 좌파니 우파니 하는 케케묵은 잣대를 들이대며 편을 가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규정하는 만행까지 서슴치 않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한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대로 '성질이 뻗쳐서 정말' 이라는 험한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물론, XX로 표시할 수 밖에 없었던 쌍욕도 함께.
(순박한 용식이는 어디가고 용팔이만 남았을까 ⓒ MBC문화방송)
모든 억압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모든 억압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인 법, 지금 당장이야 바람 빠진 공처럼 누르면 누르는 대로, 밟으면 밟는 대로 '찌그러져' 있는 국민들을 보며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조금씩 꿈틀거리는 민심을, 딛고 일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겠지만, 그들이 억압하고 탄압한 대가를 비싼 값으로 치를 날이 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생각해보라. 그들 스스로 얼마나 불안하고 다급했으면 쥐꼬리만한 지원금을 받는, 그것도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도 아닌 문학단체에까지 재갈을 물리려 했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정권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권력자들은 항상 문학 작품까지 감시하고 통제하려 했고, 그에 맞서 문인들은 항상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펜을 들었다. 오래전의 4.19혁명과 광주민중항쟁이 그랬고, 지난 6월항쟁과 촛불시위가 그랬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거역하고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으려 했던 정권 치고 비극으로 치닫지 않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자들에 맞서 이제 다시금 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펜을 들었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첨단 매체의 등장으로 문학이 죽어간다고, 그래서 문인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시각도 있다지만, 언제 문학이 살아서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있었던가. 사실, 글의 맨 처음에서 '몇 푼' 이라고 했지만 3400만원이면 변변한 사무실 하나도 없는 그들에겐 결코 적지 않은 돈일 것이다. 시집을 열권 내도 감히 만져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액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의 위력 앞에, 막강한 권력 앞에 결코 고개 숙이지 않고 사람으로서, 문인으로서 살아있음을 국민 앞에 당당히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가회의 총회에 참여한 작가들의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구중서, 도종환, 김남일 작가를 비롯한 158명의 서명 문인들의 용기에- 일찍이 재능 부족으로 인해 문인이 되기를 포기했지만 한때 작가를 꿈꿨던 사람의 입장에서- 무한한 경의를 표하고 싶고, 익명으로 해달라며 사재를 털어 3400만원을 기탁한 70대의 그 원로 작가에게는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다
이번 작가회의의 '외침'이 다시금 국민적 저항의 시작을 알리는 불씨가 될 것을 믿는다. 그 불씨가 번져 촛불이 되고 횃불이 되어 서울에서 제주까지 들불처럼 타오를 것임을 믿는다. 그들이 밤새워 쓴 시 한줄이 숨죽인 채 살아가는 국민들을 일으키는 격문이 되고, 그들이 피눈물로 쓴 소설속 한 문장이 주눅과 열패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의 영혼을 깨우는 희망의 메아리가 될 것임을 나는 결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습니다'를 '읍니다'로 쓰는 대통령과 공적인 자리에서 쌍욕과 막말을 일삼는 장관, 그리고 남의 작품을 제것인양 베껴쓰는 파렴치한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이 수치스런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 순전히 '깨어있는' 그들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국민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뜨거운 글쓰기가 되기를 바라며, 작년 6월 9일 뜻있는 작가들이 모여서 발표한 <6.9 작가선언>의 한 문장을 빌어 끝맺음을 대신한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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